[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개혁신학과 창조과학. 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개혁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장 칼뱅도 창조과학을 믿었다는 얘기가 돌기도 한다. 얼핏 보기에는 둘 다 문자적 성경 해석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관점이라는 인상이 있다.

윤철민 목사(신서귀포교회)는 <개혁신학 vs. 창조과학>(CLC)에서 이 둘의 차이점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자 윤 목사는 "창조과학은 성경을 '겉보기'로 해석하는 2등급 해석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린다. 보수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목사인 그는, 칼뱅과 헤르만 바빙크 등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겉보기 문자주의'로 해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뉴스앤조이>는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개정 증보판 발간을 맞아, 윤철민 목사가 설명하는 개혁주의는 무엇이고 창조과학과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봤다. 윤 목사는 "현장의 목사로서 창조과학에 의문을 가진 성도들과 창조과학자들의 성경 해석에 대해, 개혁신학이 어떻게 답하는지 답답해하고 궁금해하는 성도들에게, 그런 의문은 정당한 것이라는 신학적 확신을 주고, 의문을 뛰어넘어 대안까지 제시하려고 했다"(10쪽)고 책을 낸 이유를 밝혔다.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 윤철민 지음 / CLC 펴냄 / 318쪽 / 1만 5000원. 뉴스앤조이 최승현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돼 있다.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1장은 창조과학의 성경 해석 패턴을 개괄한다. 2~5장은 천지창조 때 하나님이 지은 생물을 총칭하는 '네페쉬(nephesh)' 해석에 관한 것이다. 네페쉬에 대한 창조과학식 해석과 이를 논박하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한다. 6장은 창세기 족보에 나오는 인물 수명을 다 더해 '젊은지구론' 이론을 만든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밝히고, 7장은 파자破字를 동원해 한자를 성경에 끼워 맞춰 해석하는 문제를 다뤘다. 8장은 다양한 창조 신앙들을 소개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윤철민 목사는 창조과학이 내세우는 해석이 왜 개혁주의 전통에 부합되지 않는 억지 해석인지 상세히 풀고 있다. 특히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네페쉬 교리'에 관한 내용은 칼뱅과 바빙크 등 개혁주의자들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창조과학이 '반개혁주의적 해석학'임을 분명히 한다.

킹제임스성경에서는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네페쉬 하야'를 'living soul'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NIV성경이 'living being'이라고 번역한 것과 대조된다. 윤 목사는 창조과학이 이 'living soul(개역한글판에서는 생령)'이라는 표현에 기초해 태초의 식물은 '무생물'로 해석한다고 했다. 창세기에 따르면 인류의 타락 이전에는 '죽음'이 없어야 하는데, 식물도 생물이라고 취급하면 이 명제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에서는 초식만 허용되며, 약육강식이나 먹이사슬 같은 상황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족보 해석 문제에서는 창세기와 마태복음, 누가복음이 설명하는 예수의 족보가 상이하다는 점을 짚는다. 창조과학식 해석에 따르면, 예수 선조들의 나이를 다 더한 결과 지구 나이가 6000년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족보가 정확하지 않다면 지구 나이를 상정하는 데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누가복음 3장에는 등장하지만 창세기 11장에는 없는 인물로 '가이난'이다. 칠십인역에만 등장하는 가이난 때문에 발생하는 공백은 130년. 윤철민 목사는 지구 나이 6000년주의자들이 결국 가이난의 존재를 무시하기로 했다고 폭로한다(223쪽).

배 선자가 배 주 + 여덟 팔 + 입 구 자로 구성됐다는 창조과학식 설명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아의방주에 8명이 탔다는 기록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는 창조과학식 주장이다. 옳을 의의 경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도록 양을 제물로 드리고 나我는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라는 뜻이며, 세분화하면 손이 창에 찔려 죽임당한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윤철민 목사는 세계적 한자 전문가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의 해석에 근거해 창조과학의 설명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한다. 옳을 의의 경우 시라카와 시즈카는 이 한자가 '양을 톱질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길흉을 점치는 모습에서 '옳다'는 뜻이 유래했다는 '팩트 체크'를 해 주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사례를 들어 한자의 형성 과정과 창조과학 해석이 왜 다를 수밖에 없는지 언급하고 있다.

인류의 타락 전에는 죽음이 없었다는 말을 문자대로 믿으려면, 동물은 육식을 해서는 안 되므로 초식을 했다고 봐야 한다. 윤철민 목사는 이 해석이 개혁주의 전통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림은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동산'.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윤철민 목사는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창조과학자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논박한다. 몇몇 문장에서는 조소嘲笑가 느껴지기도 한다. 머리말에 "비판의 질주 본능을 억제하지 못해 과속했더라도 젊은 목사의 목회적 열정으로 너그러이 용납해 주시기 바란다"고 썼는데, 과연 책을 읽으며 '이렇게 강해도 되나' 싶은 문장이 더러 있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성경에는 예언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666의 비밀인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예언 능력자들을 위해 태초에 666의 비밀을 숨겨 놓으셨다.' 만약 이런 광고지를 받는다면, 독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사이비 종말론자가 집회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김OO 씨가 창세기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방법과 사이비 종말론자가 예언적인 능력으로 해석하는 방법이 너무 비슷하지 않는가?" (35쪽)

"한국의 대표적인 창조과학자 이OO 씨는 '마치 빅뱅 이론이 증명된 것처럼 주장한 것은 과장되어도 상당히 과장된 것이었다. 빅뱅 이론은 과학의 기본 법칙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많은 천문학자가 동의하는 이론도 아니다'라면서 이석영과 스티븐 호킹의 주장을 일축해 버린다. (중략)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질학 석사 학위 소지자가 노벨상을 받은 이론을 '과학의 기본 법칙과 일치하지도 않는' 것으로 보고 무시해 버리는 그 수준의 담대함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런 담대함이 창조과학의 매력이다." (301쪽)

칼뱅·바빙크 근거해 창조과학 논박
"한국교회, 성경 해석 다양성 필요"
"일주일에 한 번 설교 시간 값싸져,
제대로 된 성경 해석 가르치길"

<뉴스앤조이>는 윤철민 목사를 10월 18일 만나 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원래 창조과학의 수동적 지지자 정도 스탠스를 지니고 있었는데, 마음 한구석은 늘 불편하고 꺼림칙했다. 그러다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교의학> 번역본을 보고 개혁주의가 얘기하는 인간론, 창조관이 창조과학과 뭔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직접 저술에 나섰다. 2년간 책을 쓰며 국내외 창조 신앙에 대한 서적은 물론, 창조과학회 강연과 각종 자료까지 두루 훑었다고 했다. 실제로 윤 목사 책에는 창조과학회와 개혁주의·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책 인용이 많다.

윤철민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창조과학 해석이 2등급 해석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독자들이 창조과학이 과학을 보고 해석하는 눈, 한자를 보는 눈이 다 수준 낮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한국교회에 창조과학 같은 문자주의적 해석이 만연한 이유가, 태생과 관련 있다고 했다. 미국 근본주의 운동 이후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면서 한국교회가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은 개혁주의 성향 신학교들이 근본주의와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며 어느 정도 나눠진 측면이 있는 데 비해, 한국은 근본주의와 개혁주의가 섞이면서 극우적 성향을 띠게 된 것 같다고 봤다. 윤 목사는 "한국교회가 다양성을 인정해야 신학이 풍성해질 것이다. 흑백 논리로 편 가르기 하는 문화는 배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교단 소속 목사로서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책을 펴내는 데 우려는 없었는지 묻자, 윤 목사는 "물론 교단 전체 분위기는 친창조과학이다. 그러나 나는 개혁주의 신학자 칼뱅과 바빙크의 해석을 따라가고 있고, 고신 신대원 조직신학 교과서로 쓰는 후크마 책도 인용했다. 이들에게 의지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답했다. 오히려 대표적 개혁주의 신학자들을 인용해 창조과학을 논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책이 2013년 처음 나왔을 때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한 독자가 항의성 이메일을 보내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독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책을 사지 말라. 괜히 책 사 줘서 저자 주머니에 (돈) 들어갈까 봐 걱정된다. 필요하면 제본할 수 있도록 PDF 파일을 드리겠다"는 글을 올린 사람이었다고 했다. 당시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으니, 그는 "그렇게라도 내 책을 봐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 거 같다"며 웃었다.

고신대 수업은 문자주의에 함몰돼 있지 않고 역사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는데, 유독 신학교만 졸업하고 목회 현장으로 나오면 배운 내용이 교인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윤 목사는 "이미 많은 대중이 문자적으로 성경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올바른 해석이라 믿고 있어서, 목사들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두려운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철민 목사는 한국교회에 근본주의적 성경 읽기 문화가 사라지려면, 목회자들이 공부하고 설교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결국 교인들이 성경을 만나는 시간은 주일 오전이다. 일주일에 한 번인 그 시간이 너무 값싸져 버렸다. 신앙 간증이나 강연회처럼 돼 버리니, 교인들이 제대로 된 성경 해석을 배울 길이 없다"고 말했다.

"교회 강단은 유언비어가 유포되기 가장 쉬운 곳일 수 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귀가 얇은 목사가 신적 권위를 덧붙여 선포할 때,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 자체의 권위마저 불신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난다."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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