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치신학, 또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탐구는 신학 역사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늘 중요한 주제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하나님의 도성>은 이교도의 침략으로 멸망하던 로마와 교회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16세기 급진적 종교개혁은 교회를 국가와 구별되는 대조 사회로 보았다. 루터는 군주제적 두 왕국론을, 칼뱅은 공화제적 두 왕국론을 모델로 삼았다. 오늘날에도 제국적 권력과 기독교적 신념 및 논리로 무장한 미국의 패권적 권력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군사정권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 이데올로기 및 보수 권력과 밀착된 행보를 통해 그 세를 불려 왔던 개신교회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저명한 현대 신약학자 톰 라이트는 비교적 최근 저작인 <광장에 선 하나님>(IVP)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그려 낸다. 원서에 달린 부제목은 '성경은 오늘날 권력을 향해 진리를 어떻게 말하는가'(How the Bible Speaks Truth to Power Today)이다. 여기서 '권력'은 영적 권세가 아니라 통치 권력을 뜻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세속화된 현대 민주주의 제도에 모든 것을 위임한 채 교회가 영적 문제만 다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주교였던 라이트는 특히 영국적 배경, 즉 영국성공회가 국교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광장에 선 하나님 - 그리스도인, 어떻게 권력을 향해 진리를 외칠 것인가> / 톰 라이트 지음 / 안시열 옮김 / IVP 펴냄 / 336쪽 / 1만 6000원. 사진 출처 IVP

영지주의, 제국, 포스트모더니티 한가운데서
방향 잃은 오늘날 교회

이 책을 이해하려면 먼저 톰 라이트의 질문을 알아야 한다. 그는 현대 교회가 영지주의, 제국,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시대 흐름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영지주의는 초대교회 당시에 번성했던 종교로, 물질과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고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을 통해 구원을 추구했다. 톰 라이트는 구원을 영적이고 내면적 영역에 국한하는 기독교를 일종의 영지주의라고 본다. 이는 계몽주의를 거쳐 현대 세속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의 대립으로 구현되고 있다.

'제국'은 오늘날 전 지구화 상황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을 일컫는 인문 사회학적 개념이자 분석 틀이다. 국민국가 사이의 지배 관계를 제국주의라고 한다면,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을 통해 볼 수 있듯이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 일종의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을 제국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은 오늘날 패권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이는 과거 식민지 시대처럼 정치 군사적 점령을 통한 것이 아니다. 톰 라이트는 미국패권주의, 미국예외주의 등을 언급하고 미국이 경제적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을 제국이라 일컬으며 현대 교회가 제국을 향해 성경의 진리를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티는 근대성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탈근대를 지향하는 사상이나 사회문화적 현상을 가리킨다. 포스트모더니티가 근대성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해체하는 현 상황에 톰 라이트는 '더러운 인간적 의가 해체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긍정적 기여를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포스트모더니티가 거대 서사를 부정하면서 모든 정체성을 해체하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톰 라이트는 영지주의, 제국, 포스트모더니티가 오늘의 시대를 이끄는 주된 세 요소라고 지적하면서 교회가 여기에 사로잡혀 본래의 역할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영지주의를 통해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공적 영역에서 분리한 채 개인적이고 내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제국의 압제 속에서 교회는 더 이상 통치 권력을 향해 성경의 진리를 말하지 않고 있다. 포스트모더니티의 거센 물결에서 교회는 성경의 거대 서사를 사실상 포기한 듯 보인다. 세 요소의 영향으로 교회가 공적 성격을 상실했다는 것이 라이트의 문제의식이다.

톰 라이트,
하나님나라의 공공성과
현존 방식 밝히다

그렇다면 라이트가 제시하는 답변과 그 근거는 무엇일까. 라이트는 이 문제에 관한 기독교적 답변을 '성경 그 자체'에서 찾아내려 한다. 즉, 이미 전통으로 확립된 교리 체계나 일종의 선이해를 근거로 삼기보다 성경이 정말 무엇을 말하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물론 정말 이런 작업이 가능한지는 논쟁적일 수 있다.)

라이트는 주요한 본문 몇 가지를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예수님과 빌라도의 대화가 나와 있는 요한복음 18~19장을 중요하게 다룬다. 우리는 이 대화를 목회적이고 선교적으로 읽기 쉽지만, 라이트는 가이사의 왕국(권력)을 향해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을 전달하는 정치적 대결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는 끊임없이 개인적이고 영지주의적으로 요한복음을 읽으려 하지만, 사실 요한복음은 공적이고 정치적으로 쓰여 있으며 이런 반제국적 요소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 책이다.

다른 본문들도 마찬가지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는 예수님의 말씀이 정교분리의 근거 구절로 사용된 것은 계몽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고린도교회의 당파 싸움(고전 1:18-25)은 교회가 권력을 향해 경고해야 할 바로 그 제국의 원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건이다. 팔복은 바로 그 제국을 하나님나라로 변화시킬 사람들의 특징을 가리킨다.

영지주의적 성경 읽기에서 벗어나 성경을 그 자체로 읽으면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은 하나님나라가 공적으로 이 땅에 임한다는 거대 서사라는 것이 라이트의 주장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소식을 공적으로 전해야 하며, 개인적이고 내면적이며 영적이고 내세적인 것으로 전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바로 공적 언어로 현실의 통치 권력을 향해 전해져야 한다. 또한, 성경은 이 세계에 대한 분명한 거대 서사를 말하고 있기에 포스트모더니티가 아닌, 이를 넘어서는 포스트-포스트모더니티를 교회는 지향해야 한다.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나라의 방식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압제적인 제국에 근본적으로 승리하신 것처럼, 섬김과 고난, 폭력과 압제에 대항하는 사랑이 하나님나라의 방식이며 교회가 전하고 살아야 할 복음의 메시지다. 예컨대, 국가의 압제를 받는 난민이나 버림을 받은 홈리스 등을 돌보는 일, 미국패권주의의 폭력이 드러난 이라크 전쟁 등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 등이 교회가 공적 언어로 성경의 진리를 권력에게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기독교 복음은
근본적으로 공적인 메시지다

톰 라이트의 <광장에 선 하나님>은 장점이 많은 책이다. 이 책은 조직신학과는 다른 성경신학적 접근을 통해 중요한 현대적 문제를 풀고 있다. 성경을 제대로 읽기만 해도 기독교의 복음은 근본적으로 공적인 메시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반적 상식과 얼마나 다른가!) 또한 라이트는 성경 본문을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1세기 유대교에 관한 새로운 이해(새관점), 하나님나라, 제국 담론, 덕 윤리, 거대 서사와 포스트모더니티 등 그가 다양하게 연구해 왔던 주제들을 구체적인 현실에 일관성 있게 접목하고자 한다. 톰 라이트의 기존 연구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그런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논의들이 구체적인 삶의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다만 공공신학이나 윤리학 등의 전문적인 논의들을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기존의 공공신학 논의에 대한 검토나 대화를 통해 보다 전문적인 논의를 제시하는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성경과 오늘날의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톰의 스타일로 성경을 공적으로 읽는 안목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주일 / Evangelische Theologische Faculteit, Leuven에서 Bible and Theology 신학 석사 과정. Systematic Theology(윤리학) 공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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