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여성을 위한 비영리단체 에코팜므(박진숙 대표)가 10월 11일부터 4주간 매주 목요일 '넘나 쉬운 난민 이야기'라는 연속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0월 18일에는 헬프시리아 압둘 와합 사무국장이 예멘 난민에 대해 강의합니다. 강의를 앞두고 박진숙 대표가 보내온 글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어떤 영화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다. '크래쉬 Crash'(2004)가 그랬다. 영화 포스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8개의 충돌, 8개의 상처. 그 끝에서… 사랑을 배우다!" 영화 초반부를 보면, 서로 다른 계층과 서로 다른 민족이 오해를 쌓아 가며 끊임없이 부딪치고 상처를 준다.

10년이 지나도 잊히는 않는 대목이 있다. 남편에게마저 사랑받지 못하고 분노 속에 살아가는 부유한 백인 여성 '진'이 위험에 빠졌을 때, 막상 옆에서 그를 지켜 낸 사람은 평소 무시당하던 라틴계 가정부였다. '누가 당신의 선한 이웃인가'라는 질문이 대번에 떠오르는 장면이다.

난민과 어울려 산 지 13년이 넘었다. 2006년 6월, 난민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남편을 따라 '세계 난민의 날' 캠페인에 나간 것이 시작이었다. 풍선 하나 들고 피부색이 다양한 무리에 섞여 걷다가 대학로 공원에 앉아 쉬고 있었다. 임신했는지 배가 꽤 부른 아프리카 여성이 옆에 앉아 있기에 말을 걸었다. 콩고에서 왔다는 미야(애칭)는 마침 불어를 썼다. 대학 때 불어를 전공한 터라, 오래 잊고 살던 단어들을 끄집어내 몇 마디 나누고 헤어졌다.

딱 1년 후 한글 교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콩고 난민 엄마 넷이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니, 불어 전공자로서 기초한글반 교사로 봉사하라는 요청에 마지못해 응한 상황이었다. 미야는 대번에 나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전화번호도 교환했다면서 반가워하는데 창피함이 몰려왔다.

"왜 연락 안 했느냐"고 물으니, 한국인에게 먼저 연락하면 싫어할지 몰라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는 너는 왜 안 했느냐"고 묻는데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냥 까맣게 잊어버렸으니까. '아프리카', '난민', '여성'은 당시 두 아이를 키우며 간신히 대학원 공부를 해 내던 내게 아무 의미도, 소용도 없는 단어들이었다. 다시 만난 우리는 처음에는 선생님과 학생으로, 그다음에는 친한 친구로, 지금은 대표와 스태프로 10년 넘게 만남을 이어 왔다.

미야를 비롯한 네 명의 콩고 난민 여성은 알고 보니 나름 좋은 집안 출신이었다. 외교관의 딸이라 유럽에서 성장한 자끌린느(가명)는 네 개 국어에 능통했다. 중국으로 유학 갔다가 스파이로 몰려 정치 난민이 된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미쇼(애칭)는 으리으리한 집에 살다 왔다고 했다. 미야만 해도 은행 고위직 아버지 밑에서 상류층으로 곱게 자라,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국 기업에서 일하던 엘리트였다. 상관에게 밉보여 스파이로 몰리는 바람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했다.

그동안 알던 난민 이미지처럼 그저 불쌍하고 가난하며 못 배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에 살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난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을 뿐이다.

콩고 친구들처럼 난민은 갑자기 닥친 어려움을 피해 다른 나라로 보호를 요청하러 온 사람인 것이다. 나라 사정이 좋아지면 언제든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일부러 한국을 선택해서 온 것도 아니라고 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누군가 한국 비자를 발급받도록 도와주는 바람에 왔다고 했다. '올림픽·월드컵을 치른 동양의 작은 나라'라는 사실밖에 몰랐다는 것이다. 막상 와 보니, 선진국 한국에서 인권과 지원을 어느 정도 보장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내가 만난 난민은 뿔 달린 도깨비나 외계인이 아니다. 위험한 인물은 더더욱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위험한 순간에 용기를 내 "아니오"라고 말했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이 낯선 나라 한국에 불시착한 사람들이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내다 보니 마음씨 좋고 생활력 강한 이웃이요, 내가 힘들 때 같이 기도해 주겠다며 등을 토닥여 주는 친구가 되었다.

한창 유행했던 미술 서적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오픈하우스)가 기억난다. 난민을 비롯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알려고 노력하면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

제주 예멘 난민 이슈로 전국이 시끌시끌할 때 '맘카페'에서 유난히 반기를 들고일어났다. 조혼 풍습이 있는 예멘 남자들이 어린 여자아이들을 겁탈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 주된 걱정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도 크게 거들었다. 제주에 와 있는 예멘 난민들도 그냥 사람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사를 쓰느라 밤낮으로 뛰어다니고, 식당에서 요리를 하던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더듬어 보니, 초·중·고와 대학을 통틀어 이슬람 문화나 역사를 배운 적이 거의 없다.

난민에게는 그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다. 문득 가려진 이야기들이 알고 싶어졌다. 내가 대표로 일하는 에코팜므에서 같이 공부하자는 취지로 '넘나 쉬운 난민 이야기' 강좌를 진행 중이다. 이번 목요일 10월 18일에는 헬프시리아 압둘 와합 사무국장이 와서 '시리아 난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예멘 난민 이슈'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한국어를 잘해서 통역도 없다. 놓치면 아까운 기회이니 한 분이라도 더 함께했으면 좋겠다.

박진숙 / 에코팜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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