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한국교회에서 '인권'은 불편한 주제가 됐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동성애, 여성, 성범죄 피해자, 난민 등 교회가 마주하기 싫어하는 소수자에 관한 이슈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보수 교계 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주적으로 삼고, 삭발을 하고 혈서를 쓰면서까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인권센터(박승렬 소장)는 이 같은 현실이 한국교회의 인권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주요 교단과 선교 단체의 교회학교 교재들이 얼마나 '인권 감수성'을 바탕으로 구성돼 있는지 6개월 동안 연구한 끝에, 한국교회의 인권 교육 실태를 돌아보는 '인권 교육 실태 조사 발표회'를 열었다. 10월 11일 한국기독교회관 에이레네홀에서 열린 발표회에 모인 20여 명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연구위원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교회협 인권센터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파이디온선교회(파이디온) △한국어린이전도협회(전도협회)의 교회학교 교재를 인권 측면에서 조사했다. 연구위원은 각 교단에서 활동하는 인권 활동가들과 교육학자, 인권 전문가 8명이 맡았다. 위원들 각각의 인권 감수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의 차별 사유를 참고해 기준을 마련했다.

교회협 인권센터 박승렬 소장은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연령·성별·피부색 등에 의한 차별이 교회에 내재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회학교 교재 내용을 '인권 감수성' 측면에서 분석해 봤다. 교계 내 이런 시도가 한 번도 없었다. 처음이니만큼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교회가 왜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고 말했다.

조사는 대상으로 선정된 교단·단체의 교재에서 △인권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었는지 △소수자나 특정 집단이 배제되지 않고 균형 있게 다루고 있는지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소수자 등에 대한 비하·고정관념·왜곡·편견이 개입된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진행했다. 발표회에서는 이에 따라 각 교재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주요 교단과 선교 단체의 교회학교 교재들이 얼마나 '인권 감수성'을 바탕으로 구성돼 있는지 연구한 '한국교회 인권 교육 실태 조사' 발표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조사 대상 교재들에는 공통적으로 '여성'을 중심인물로 내세운 경우가 없었다. 각 교재가 사용한 성경 본문도 여성 인물이 중점적으로 나오는 본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은경 교수는 파이디온이 발간한 교재 내용을 설명하며 "성서 본문의 배경이 된 당시 가부장적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남성 중심의 서사나 전쟁사가 포함된 이야기가 모든 과에 걸쳐 제시된다"고 말했다.

감리회 교재도 마찬가지였다. '신앙 영웅 되기'를 주제로 하는 교재에 등장하는 '신앙 영웅'은 모두 남성이고, 일반 영웅으로 제시된 인물도 나폴레옹, 이순신 등 모두 남성이었다. 이 교수는 "성경 속 인물들을 젠더 균형에 맞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감리회·파이디온 교재 삽화 속 등장하는 교사와 아동은 한쪽 성에 치우치지 않게 잘 제시됐다. 이 부분은 바람직하다"고 평했다.

'장애'나 '이주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도 부족했다. 이은경 교수는 "삽화들에 비장애인만 등장하고 있다. 장애를 다룰 때는 '예수님의 사역 대상'으로만 묘사하면서 수혜자 입장으로 그리는 데 그쳤다. 이주 배경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주 가정, 다문화 가정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한 번도 언급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감신대 이은경 교수(사진 왼쪽)는 "성경 속 인물들을 젠더 균형에 맞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연구위원들이 가장 심각한 부분이라고 입을 모은 내용은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를 그린 파이디온 교재의 삽화였다. 평화교회연구소 전남병 소장은 삽화를 들어 보이며 "밧세바가 성폭행을 당한 후 다윗 앞에 왔는데도, 가해자인 다윗을 존경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사고를 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파이디온 교재 속에는 고정적 성 역할과 성별 분업을 드러내는 삽화도 있었다. 전남병 소장은 "율동하는 사람은 여자 선생님으로,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정장 입은 남자 선생님으로 그린 삽화가 있다. 이런 그림은 교회 내 성 역할에 대한 차별적 관념을 심어 줄 수 있다"며 성평등한 삽화를 넣을 것을 제안했다.

전도협회 교재에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전 소장은 교재 속 '문준경 전도사' 일화를 설명하는 부분에 불필요한 단어 선택이 많다고 지적했다. 교재에는 "어려서부터 예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본인을 남편 있는 생과부라 부르며 체념했다"는 등의 표현이 나온다. 전 소장은 "여성은 예뻐야 하고 남편에게 의존적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왜곡된 표상을 심어 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전남병 소장이 교재 속 고정된 성 역할이 묘사된 삽화를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교재들에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지만, 예장통합의 '고학년 지침서'에는 "동성애가 하나님과의 관계 중에 저지르는 성적인 죄악"이라고 써 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박재형 연구실장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의견이 많고, 이것이 혐오와 차별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굳이 동성애를 죄의 맥락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의문이다. 성소수자들이 죄인인 것처럼 고정적 표현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교재 속 활동들이 '경쟁 평가'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인권정책연구소 김은희 연구원은 예장통합 교재의 활동 대부분이 '평가-경쟁-보상-선착순'의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학교·학원에서도 성적 위주의 경쟁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교회가 또 다른 경쟁의 장으로 인식된다면, 하나님나라를 지향하는 교회의 변별력은 사라지게 된다. 경쟁보다는 협업과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집필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연구위원회는 교재 속 본문 내용 이외의 부분도 살폈다. 예장통합의 여름 성경 학교 참가 신청서에는 '부모님 성함'을 적는 칸이 있다. 전남병 소장은 "한 부모 가정 또는 조손 가정의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보호자'로 변경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장 교사용 교재 속 안내문 양식에는 '부모님(보호자)'으로 함께 적었다. 인권적으로 적절하나, 이 표기가 교재 내 다른 양식에 반영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구정화 교수는 "'교재가 아이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발표회 후에는 구정화 한국교원대 교수와 (사)인권정책연구소 김형완 소장의 논찬이 이어졌다. 구정화 교수는 "'교재가 아이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텍스트를 바꾸지 않는 한에서 인권의 관점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어려웠을 것이다. 교회가 무엇을 위해 가르치고 존재하는지 고려한다면, 인권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중요하게 고려할 대상이다"고 말했다.

김형완 소장은 "인권의 플랫폼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기독교의 당연한 책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권 교육 실태 조사는) 매우 바람직하고 고무적인 연구라고 생각한다. 창세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에 대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고, 십자가 사건을 통한 '긍휼함'이 박애·연대의 실천과 일치한다는 점은 인권의 가치와 성경의 내용을 충분히 조합할 수 있다는 의미다"고 논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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