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가 한국교회의 교회 이탈 현상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개념이라면, '세속 성자'는 가나안 성도가 촉발한 질문에 공감하는 이들이 결국 찾아 나서게 될 신앙적 지향은 무엇인지 대답하려는 노력입니다. 이 논의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기독교 신앙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새로운 질문은 무엇이며, 새로운 대답은 무엇인지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0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세속 성자'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교회 현주소를 짚고 기독교적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 나왔다. <세속 성자 – 성문 밖으로 나아간 그리스도인들>(북인더갭)이다. 이 책은 2005년부터 한국교회 내에서 '다양한 담론과 상상력이 펼쳐지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해 온 복음주의 단체 청어람ARMC 양희송 대표의 신간이다.

<세속 성자>는 양 대표가 2013년부터 가나안 교인을 위한 '세속 성자 수요 모임'을 진행하면서 5년간 고민했던 내용이 담겼다. 이 책은 이전에 그가 써냈던 저서들의 연장선에 있다. 성직주의·성장주의·승리주의 종교가 된 한국 개신교를 진단하는 <다시, 프로테스탄트>(복있는사람)와 가나안 교인 현상을 고찰하면서 제도권 교회의 교회론에 물음을 던지며 교회 밖 신앙의 의미를 묻는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포이에마)의 문제의식을 잇는다.

<세속 성자 - 성문 밖으로 나아간 그리스도인들> / 양희송 지음 / 북인더갭 펴냄 / 252쪽 / 1만 4000원. 뉴스앤조이 강동석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는 오래다. 교회 세습, 재정 비리, 설교 표절, 목회자 성 문제, 신학교 분쟁, 정치권력과의 유착 등 언론 보도를 통해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 왔다.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교회는 내부 문제를 살피기보다, 오히려 이슬람·동성애 혐오 운동에 앞장서거나 가짜 뉴스를 배포하는 데 일조하고 각종 단체에 대한 사상 검증 작업을 하는 등 외부의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교회 현실을 일본에서 메가 히트를 친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비유하면서 문제를 제기한다. '진격의 거인'에서 인류가 성벽 밖 거인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굳게 쌓은 성벽 안쪽으로 계속해서 도망치는 것처럼, 교회도 자신들만의 성채를 만들어 고립하는 형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 양희송 대표는 문제의 해답을 성벽 밖에서 찾는다.

교회를 이탈하는 '가나안 교인'은 제도권 교회의 문제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다. 저자는 100만~200만 명으로 추정되는 가나안 교인의 순례와 구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들을 성문 밖으로 나아간 그리스도인 '세속 성자'라고 정의한다. '진격의 거인'처럼 현실을 타파할 대안이 바깥에 있으며, 교회 밖으로 나아간 '각성된 개인' 세속 성자의 네트워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집단주의적 교회론,
성속 이원론 벗어나야

<세속 성자>는 한국교회 현주소를 살피면서 '세속 성자'의 의미를 살피고(1부), 믿음·기도·예배·전도의 불가능성을 되새기는 세속 성자의 신앙생활을 고찰하며(2부), 1부와 2부 논의를 통과하면서 주어지는 실천적 과제를 제시하는 것(3부)으로 구성된다.

저자가 내세운 '세속-성자'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성자(saint)는 세속(secular)과 정반대에 있는 존재로 규정돼 왔는데, '거룩한 사람'이라는 성자의 정체성으로 세속의 일상을 살아 내는 '역설적 긴장'을 통해 이 시대 가운데 신앙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안은 역설적으로 다시 세상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은 중세적 성속 이원론을 꿰뚫어 보고, 세상을 성과 속의 범주로 나누어서 율법의 긴 목록을 만들고 분할통치하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가 결코 풀릴 수 없음을 분명히 폭로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장을, 일상의 세계를 신앙이 구현되어야 할 장으로 인식할 때라야 제대로 된 거룩의 추구가 가능함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종교적 공간 내부로 국한될 수 없고, 신앙생활이 곧 교회 생활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48쪽)

성자는 '거룩한 무리'를 뜻하는 성도의 단수형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폐해는 집단주의적 교회론에서 찾을 수 있다. 집단이 아닌 신앙의 개인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세속 '성자'다. 집단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로 공동체를 사유하기 위해 개인 신앙 양심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가나안 교인 중 상당수가 집단의 실패를 보며 신앙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졌지만, 제도권 교회에서 거부당해 단수형의 '성자'로 살아남는 법을 익힌 사람들이다.

"한국 개신교 내에서도 집단주의적 교회론이 자주 발견됩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주의'로 인한 폐해가 많다며, 그 대안으로 '공동체'를 강조하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중세의 집단주의와 다름없는 이야기를 용어만 '공동체'로 바꾼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중략) '신 앞에 단독자' 인식을 제대로 회복해야 신앙의 자기 책임성도 발휘될 수 있습니다. 이를 너무 쉽게 권위자에 의존하거나 제도로 대체하는 것은 옹호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전체로서의 '성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말하기 위해 개인으로서의 '성자'에서 출발해야 마땅합니다." (24~25쪽)

교회가 편을 가르고 사회에 지나치게 배타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성속 이원론에 기초한 태도다. 저자는 성속 이원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성속 이원론으로 이해했을 때,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지점이 성경 속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룻·욥 등 구약 인물들의 예가 그렇다. 신약성경은 더 나아가 성속 이원론을 넘고자 하는 의지를 메시지에 담아낸다. 거룩과 세속성을 대립 구도로 보지 말고, 세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 낼 것인가를 과제로 삼아 과감하게 "세속적이기를 시도하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그간 교회에서 '성속'을 매우 편의적으로 나누어서 가르쳤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접해 왔음에도 정직하게 여기에 직면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교회 일은 성스럽고, 직장 일은 속된 것이 아닙니다. (중략) 교회 울타리로 들어간다고 세속성이 작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직장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거룩의 요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공간적 이동에 따라 가면을 쓰는 방식 말고, 어떤 공간이든 견지해야 할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신앙적 과제이겠지요." (82쪽)

저자는 제도권 교회가 보여 온 믿음·기도·예배·전도에 대한 이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재평가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네 가지 요소의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할 것인지를 풀어낸다. 믿음·기도·예배·전도를 다루는 2부 주제를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규정한 것이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각각 "~아니다"로 시작해서 "~이다"로 나아가는 식이다.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과정이고, 기도는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것이며, 예배는 하나님과의 대면이 아니라 대면이라는 불가능한 이상을 새기는 일이다. 전도 또한 회유와 강제의 방식이 아니라, 신자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 주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신앙은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구도求道의 과정입니다. 한순간 완성되어서 더 이상 새로움도 놀라움도 없는 화석이 아니고, 늘 새로운 도전과 탐구 앞으로 우리를 이끄는 '가 보지 않은 길'입니다. 세속 성자의 신앙은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안정감을 찾기보다는 미래를 향한 도전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찾아보려는 '시간 여행자'의 자리에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67~168쪽)

교인들 모임 넘어선
'기체 교회'의 가능성

세속 성자의 실천적 과제를 제시하는 3부에서는 하나님나라 신학, 교회론, 영성, 공공선 등을 살핀다. △'천당' 말고 하나님나라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일과 쉼이 있는 영성 △절박한 가치, 공공선이라는 소제목들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제도권 교회가 고착화한 개념 이해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물려서 각각의 개념을 설명해 낸다.

그리하여 저자는 교회당을 중심으로 물리적 상징체계를 갖춘 '고체 교회', 물리적 상징체계 없이 모임의 본질이 있으면 된다는 관점을 취하는 '액체 교회'를 넘어서 '기체 교회' 개념을 이야기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239쪽) 존재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기독교 신앙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 책은 일관되게 한 영웅적 지도자가 충성된 한 무리를 이끌어서 위대한 목표를 성취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거부합니다. 저는 개인의 각성이 더 중요하고, 그 각성된 개인들이 더 큰 목표를 위해 서로 연결되면서 생성되는 백 가지 천 가지의 자유분방한 네트워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247~248쪽)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아닌 어떤 집단이나 권위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의 삶을 추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한 시대 (그리고 공간) 속에서 그 제한의 최대치까지 탐구해 보는 삶, 운동장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뛰어다니며 자기 인생이란 경기에 최대치로 임하는 것, '세속 성자'의 이야기에서 이끌어 내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대목이었습니다."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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