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들 다 때려서 족치고 집 보내 버려야지." 
"동성애 하면 지옥 간다."
"부모님이 널 낳은 거 후회하겠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재앙이 저들에게 일어나게 하소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인천광역시 첫 퀴어 문화 축제가 예정됐던 9월 8일, 동인천역 북광장은 난장판이었다. 반동성애를 외쳐 온 개신교인들은 주최 측이 광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버스로 입구를 막아 버렸다. 경찰에 이미 신고를 마친 합법적인 집회를 진행하려는 주최 측과 인천 땅에 절대 퀴어 축제는 안 된다고 반대하는 이들이 한데 얽혔다.

사람 수로 따지면 반동성애 진영이 훨씬 많았다. 이들은 축제 참가를 위해 현장을 찾은 성소수자 당사자와 지지자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겹겹이 둘러쌌다. 부스를 설치하지 못했고, 예정된 순서대로 행사를 진행하지 못했으며, 행진도 가로막혔다.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은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폭언과 폭력에 그대로 노출됐다. 현장에 있었던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은 이 때문에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보건정책관리학과) 연구팀은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당일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경험을 온라인으로 조사했다.(전문 바로 가기)

9월 8일, 동인천역 북광장에 있던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차원의 폭력을 행사했다. 사진은 10월 3일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무산 규탄 집회에 참석한 또 다른 반동성애 개신교인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사에 응답한 이는 총 305명으로, 이 중 83%가 성소수자(LGBTQ), 17%가 비성소수자였다. 응답자 69%가 20~30대였으며 10대도 23%나 됐다.

응답자들은 반성소수자 세력에게 성소수자 비하 발언, 욕설·조롱을 들었다. 신체적 폭력에 대한 위협이 있었다고 응답한 사람도 225명으로 응답자의 73%나 됐다. 꼬집히거나 맞은 사람(99명), 물건을 빼앗긴 사람(82명),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람(46명)도 있었다.

설문 응답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혐오 발언, 물리적 폭력을 상세히 기술했다.

"혐오 세력 몇백 명이 깃발을 보자마자 '내리라'고 '장애인까지 들먹이고 싶냐'고 소리를 쳤고, 장애인인권연대 측에서는 '이분들도 퀴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기독교 연대(형광 노란 조끼를 입고 똥머리를 한) 여성 한 명이 휠체어를 강제로 넘어뜨리려고 했고, 퀴어들이 서둘러 그 사람을 끌어내고 몸으로 휠체어를 지키려는 듯이 서로 엮여 있었습니다."

"제 가슴을 쥐고 '여자가 남자 맛을 안 봐서 레즈인 거다', '나는 바로 이성애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며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하지 말라'고 하면, 그들은 핸드폰을 들이대며 우리의 신상을 알리겠다며 협박했습니다."

"행사장에 들어가겠다고 덤불이 있는 한구석으로 헤치고 지나가려는데, 혐오 세력이 (우리를)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며 본인과 동행들을 밀치고 잡아당기기 시작했고 둘러싸고 때렸는데, 그 순간 저는 기절해서 상세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겨우 밖에 있는 사람들끼리 퍼레이드를 하는데, 기어이 따라와서는 계속 집에 가라며 행사 트럭 바퀴에 구멍을 내고 통로를 몸으로 막고 방해하며 불법 촬영을 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두 집단을 분리하는 데 실패했다. 혐오 발언과 물리적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 아무런 제재 없이 서 있었다. 복수의 응답자는 경찰이 반동성애 세력과 감정싸움하지 말라는 말을 성소수자 진영에만 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이 같은 폭력적 상황의 책임자로, 성소수자 혐오 세력(302명), 집회 신고를 마쳤는데도 장소 사용에 이례적 조건을 내건 인천동구청 허인환 구청장(268명), 인천지방경찰(246명)을 순서대로 꼽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폭력에 노출됐던 응답자들은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승섭 교수 연구팀은 응답자 305명 중 215명이 우울 증상, 257명은 급성 스트레스 장애, 202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현장에서 반동성애를 외친 개신교인들은 방언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성소수자들에게 저주 및 혐오 발언을 퍼부었다. 응답자 중 한 명은 그 후 찬송가에 트라우마가 생겨 교회에 나가지 못한다고 답했다.

"찬송가를 들으면 하나님의 은혜보다 그 혐오 세력들의 눈빛과 악다구니가 떠올라서요. 그리고 그런 주제로 혐오적인 내용의 설교를 들으면 제가 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 인천 퀴퍼와 관련된 영상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영상을 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의 경험이 자꾸 떠올라 일상이 괴롭다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응답자는 "굴다리나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굴다리에서 혐오 세력과 대치했던 상황이 자꾸만 생각나서 무섭다"고 답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폭력적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고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갈 때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생겼다"고 답했다.

인천퀴어문화축제비상대책위원회는 10월 1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축제를 방해한 모든 단체를 고소·고발한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공식적인 가해자는 아직 없지만 피해자는 많은 상황. 인천퀴어문화축제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당시 폭력 사태의 책임을 묻기 위해 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집회를 방해하는 데 앞장선 인천기독교총연합회(이동원 회장), 인천성시화운동본부(김흥규 대표회장), 예수재단(임요한 대표) 등을 형사 고발했다.

비대위는 10월 10일 인천지방검찰청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발언자로 나선 김승섭 교수 연구팀 이혜민 선생은, 조사 시작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은 성소수자 당사자와 비성소수자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심각한 상태라며 결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면 좋겠다고 했다.

법률 대응을 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이승경 변호사는 "당일 반대 집회를 개최한 단체를 업무방해, 집회 방해 등으로 고소·고발한다. 하지만 조사 결과에서 보듯 개별적 피해도 많다. 개별적 피해에 대해서도 추후 형사 고소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퀴어 문화 축제 현장에서 여러 혐오 범죄가 있었지만 인천에서 일어난 일은 최악이었다. 다른 지역의 퀴어 문화 축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혐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당사자이면서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소속 박한희 변호사는, 인천에서 일어난 일이 명백한 '혐오 범죄'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퀴어 문화 축제는 성소수자가 그 도시에 있다는 걸 알리는 행사다. 극우 개신교 등 혐오 세력은 축제의 정신을 망가뜨렸다. 이들의 메시지는, 성소수자는 사회에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데, 이는 퀴어 문화 축제의 의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증오 범죄는 존재를 지운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앞으로의 싸움이 지리멸렬할 수 있지만 존재를 건 싸움에 포기란 있을 수 없다"며 끝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대규모 혐오 범죄 책임자를 처벌하라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던 9월 8일, 우리는 동인천 북광장에서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극우 개신교 단체들은 가짜 뉴스와 왜곡된 정보를 무분별하게 유통했으며, 이에 선동당한 반대 집회 측 사람들은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에게 물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주는 등 폭력적인 불법 행위를 자행해 타인의 존엄한 권리를 침해했다.

또한, 시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경찰과 동구청은 사실상 폭력 사태를 방관하며 북광장을 범죄 현장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혐오 세력의 폭력 행위에 경찰과 동구청의 무책임한 태도가 더해져 축제에 참여했던 성소수자와 장애인, 여성, 청소년들은 심각한 혐오와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돼야 했다.

그날의 광장은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배제가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은 어디로 갔는가? 혐오 세력이 국민에게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규정을 깡그리 무시함으로써 반헌법적 폭력 사태를 저지르는 동안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기본적인 집회의 자유조차 보장받지도 못하는 성소수자는 동등한 시민으로서 이 사회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에 인천퀴어문화축제비상대책위원회는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한 비방과 명예훼손,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집회 방해를 일삼은 인천기독교총연합회와 인천성시화운동본부, 예수재단, 인천퀴어반대대책본부 등의 단체들과 교회들, 그 구성원 일부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법적 절차를 밟아 고소, 고발을 진행하고자 한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끝까지 법적, 사회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성소수자 역시 공동체의 동등한 시민이므로 그 어떤 이유로도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보편타당한 명제를 사법부의 입을 빌려 천명하려는 것이다.

5시간에 걸쳐 끝냈던 9월 8일의 행진처럼 법정 공방이 힘겹고 지리멸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존재를 건 싸움에 포기란 있을 수 없다. 소수자 인권을 향한 정의가 이 사회에서 세워질 때까지 우리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타인의 존엄한 권리를 짓밟은 혐오 세력과 9월 8일 폭력 사태에 일조한 공권력, 소수자와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의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고 마침내 한 발씩 진보해 나갈 우리의 힘을 믿는다.

하나. 혐오 범죄 뿌리 뽑자. 성소수자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한 이번 대규모 혐오 범죄 사태를 일으킨 주동 세력에게 응당의 책임을 묻겠다. 인천 퀴어 문화 축제와 참가자들이 입은 모든 물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

하나. 본인의 책임을 면피하고자 '불허'를 방패막이로 사용함으로써 모든 시민을 위해 열려있는 광장을 범죄 현장으로 만들고 차별과 폭력을 조장, 방조한 허인환 동구청장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하라.

하나. 조직적인 폭력 사태와 방해 행위 앞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여 사태를 키운 경찰은 책임 소재를 밝혀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2018년 10월 10일
인천퀴어문화축제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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