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원해서 난민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재난·기근·핍박 등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외부 상황 때문에 난민이 된다. 난민이 된 이들은 모순을 경험한다. 왜 난민이 됐는지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이에게 '난민'임을 증명해야 한다. 7년 전, 수단에 있다가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아담(32)도 난민 심사를 받으며 그랬다. 

수단 서부 지역 다르푸르에서 태어난 아담은 경영학을 공부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어릴 때 다르푸르에서 참상을 목격했다. 수단은 1989년부터 2005년 평화협정까지 북부 정부군과 남부 반군이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을 겪었다. 2003년, 다르푸르에서는 민간인 20만~30만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른바 '다르푸르 학살'이다. 

대학생이 된 아담은 정부군이 저지른 다르푸르 학살 사건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는 시민들이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시민을 탄압하고 반대 목소리를 틀어막는 정권을 비판하며 반대 집회와 강연회를 열었다. 

정부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아담은 세 차례 감옥에 갇혔다. 고문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2011년 3월, 지인에게 비행기표를 구해 서둘러 수단을 탈출했다. 도착지는 인천국제공항이었다. 그는 입국한 지 얼마 안 돼 난민 신청을 했다. 

아담은 2018년 6월 29일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7년은 힘든 시간이었다. 잠잘 곳을 구하지 못해 PC방에서 지내기도 하고, 문득문득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해야 하는 현실에 절망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자신이 겪은 핍박을 한국 사람들이 믿지 않을 때였다. 9월 18일, (사)한국알트루사가 주최한 '난민과 함께 살기' 모임에서 아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했던 차별과 혐오를 덤덤하게 풀어냈다. 

아담은 한국에 들어오고 7년이 지나서야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믿어 주지 않는 사람들 
"한국은 피난처가 아니었다"

서둘러 수단을 빠져나올 때 아담은 '코리아'가 어떤 나라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갖고 있는 여권으로 입국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는 이곳이 '노스'(north)인지 '사우스'(south)인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은 기대했던 피난처가 아니었다. 그는 당시 학생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싶었다. 생활비와 학비를 벌 수 있는 직업도 알아봤다. 그러나 난민 신청을 하고 6개월간 공부도 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혹스러웠다. 그는 생활비가 떨어져 잠잘 곳을 찾아 전전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PC방에서 잠을 자는 일이 많았고, 6개월 이후부터는 공장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해결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은 그가 난민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이 난민 신청자를 다루는 방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았다. 심사관들이 경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도 냉대와 의심으로 아담을 대했다. 아담은 한국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너 어디서 왔냐"는 질문이라고 했다. "어떤 목적으로 왔느냐", "돈을 벌러 왔느냐"고 묻는 이도 많았다. "사람들은 난민을 잘못된 시각으로 보는 것 같았다. 마치 한국 국민의 일자리와 돈을 빼앗기 위해 온 사람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아담은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들었다고 했다. 

"누구도 원해서 난민이 된 사람은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스스로 선택해서 온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난민이 되었고, 한국에 온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게 어려웠다. 나도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민 상황 이해할 때, 
오해·편견 사라진다"

난민도 사람이다. 그들의 상황을 자세히 들을 때 난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진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담은 난민 지원 단체 피난처(이호택 대표), 법무법인 어필(김종철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우연히 피난처를 알게 됐는데, 아직도 피난처를 처음 방문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처음 해 준 질문이 인상 깊었다. '어디 아픈 곳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나를 사람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현재 아담은 자원봉사로 다른 난민 신청자들을 돕고 있다. 한국어에 서툰 난민 신청자를 위해 통·번역을 한다. 대학교, 기업, 시민단체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는 "난민이 왜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난민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때, 의심이나 편견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 가서 예멘인을 만나기도 했다. 아담은 예멘인을 둘러싼 각종 가짜 뉴스와 혐오 표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잘못된 정보를 접한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반대 여론을 퍼뜨린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한국인과 예멘인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서로 마주보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시간이 있었다. 서로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준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중 한 9세 어린아이는 워크숍을 진행하기 전 예멘인이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워크숍이 끝났을 때는 예멘인과 친해졌더라. 가장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아담은 난민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 때 사람들의 오해나 편견도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난민 문제를 알리는 데 노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난민들은 무능력하거나 무익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중에는 기술자도 있고 의사도 있다. 유능한 사람이 많다. 이들이 한국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사)한국알트루사 '난민과 함께 살기' 모임에서는 난민을 일방적으로 도울 대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서로 도우며 함께 이웃이 되어 살아 가고자 합니다. 난민 초청 강연, 의료, 법률, 교육 지원 등에 함께할 후원자와 봉사자를 기다립니다. (문의: 02-762-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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