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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은 '보수 개신교'가 아니다

한국전쟁 겪은 '구 기독교 우파' vs. 반독재 운동하던 '신 기독교 우파'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8.09.16  14: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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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종종 뉴스에서 "보수 개신교의 반대로 XXX이 무산됐다"는 표현을 본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 개신교'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한 것도 보수 개신교,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 것도 보수 개신교,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태극기 부대'도 보수 개신교, 무슬림 난민의 한국 정착을 반대하는 것도 보수 개신교다.

한 묶음으로 보이는 '보수 개신교'가 알고 보면 단일 연합체가 아니며, 그 안에도 다양한 갈등과 역학 구도가 있다고 보는 학자가 있다. 서명삼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는 청어람ARMC(양희송 대표)가 9월 14일 주최한 '한국 개신교 보수주의를 해부한다' 강좌에서, 보수 개신교 내에도 서로 다른 그룹이 존재하며 이는 한국 기독교가 세대별로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서명삼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학교 종교학부에서, 개신교와 목회자들이 한국 정치 구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주제로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 교수는 박사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한국에서 '보수 개신교'를 대표하는 목사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했다. 인터뷰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들이 정치·경제·교회론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고 분류해 '구 개신교 우파'(OCR·Old Christian Right)와 '신 개신교 우파'(NCR·New Christian Right)로 나누었다.

서명삼 교수는 '보수 개신교'라 통칭되는 그룹을 잘 이해하기 위해 그 안에도 서로 다른 그룹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정치·경제·교회 보는 시각 따라
나뉘는 OCR과 NCR
"어떤 사건 겪었는지에 따라
세대가 이해하는 기독교도 달라"

서명삼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OCR은 조용기·김장환 등 한국전쟁을 겪었고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동조한 세대다. NCR은 김진홍·서경석·인명진 등을 위시한 1980년대 빈민·노동운동에 앞장섰던 목회자들이 중심이 된 그룹이다.

NCR은 한동안 '진보' 계열로 분류되다가 이명박 정권 때 '뉴라이트' 그룹으로 재편하면서 '보수 개신교' 일원이 됐다. 서명삼 교수는 NCR에 속하는 목회자들을 인터뷰하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젊었을 때는 운동권에서 열심이었던 이들이 후배 세력에게 축출된 경험들이 있었다. 서 교수는 "운동판에서 물러나게 되거나, 거세게 비판받은 경험이 있다. 여기에서 세대 단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변절자'라고 표현하는데, 단순히 그들을 '극우 개신교'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두 그룹을 구분하는 기준은 정치와 경제, 교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먼저 종교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다르다. OCR은 종교의 정체성을 현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본다고 서 교수는 설명했다. '현상 유지의 종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OCR 세대는 당시 월북하지 않고 남한에 남는 것을 택한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정권의 리더십이던 군 장성, 정부 관료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일이 많았다.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NCR은 OCR 기준에서는 '빨갱이'였다. NCR에게 종교는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각종 사회변동, 여기서 시작한 정치·질서 등 모든 현상에 저항하는 '저항의 도구'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들을 '용공분자'라고 낙인찍었지만, 이들은 남한에서도 독재 정권은 안 된다는 입장으로 민주화 운동에 임했다.

OCR과 NCR은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OCR은 번영신학을 중요시했다.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한국을 일으키기 위해 조용기 목사의 삼중 축복이 사람들에게 큰 힘을 줬다. 이 같은 신학을 현실에서 적용하고 그대로 살아 낼 수 있는 '자신감에 찬 모험가'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분류했다.

2017년 초 '보수 개신교'는 탄핵 반대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NCR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방안을 연구한 '개발신학'을 주요 모토로 삼았다. 이들은 사회적 아픔과 고통에 사회과학적, 이성적으로 접근했다. 작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 집단으로 대응했다. 김진홍 목사는 두레공동체를 만들어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인명진 목사는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조직해 노동운동에 앞장섰다. 이들은 목사 모습을 벗고 현장으로 가 현장 노동자처럼 생활했다.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두 그룹 사이에 차이가 있다. OCR은 교회라는 이름 아래 있으면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윤리적 보편주의'를 택했다. 이들에게 '목사'는 중세 시대 '사제'와 같은 위치에 있다. 목사의 도덕적 자질이 어떠하든 중요하지 않고, 목사와 교회를 한 몸처럼 여겼다.

NCR은 기성의 제도권 교회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서명삼 교수는 "서경석 목사 같은 분도 교회 개혁 운동을 엄청 열심히 했다. 작은 교회 운동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에게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와 결을 같이한다. 이들에게 교회는 그저 다닌다고 멤버십을 보장해 주거나 구원을 받는 곳이 아니었다. 교회가 내세우는 가치, 언약 등에 동의하고 이를 그대로 이행하기로 서약할 때 공동체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서명삼 교수는 논문에서 이렇게 두 그룹으로 구분 지었는데, 현실에서 이 같은 구분을 명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논의를 통해, 같은 '보수 개신교'라 하더라도 세대별로 다르게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전쟁을 겪은 OCR과 반독재 운동에 앞장섰던 NCR의 차이는 그 세대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들의 행보나 언행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서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개신교가 세대별로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세대는 나이별로 무 자르듯 자른 게 아니다. 서 교수는 특정 집단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유한 '사건'이 무엇인지에 따라 세대를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서명삼 교수는 세대별로 개신교가 무엇인지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왼쪽부터 이재근 교수, 서명삼 교수, 양희송 대표. 뉴스앤조이 이은혜

과거 '보수', '진보' 구분으로
설명 안 되는 개신교 집단 등장
"서 교수 연구, 다양한 그룹 이해에 도움"

서 교수의 이 같은 세대 구분은 최근 200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에 등장한 다양한 그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80년대, 에큐메니컬 진영은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고, 복음주의 진영은 교회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약 20년 전부터 보수 신앙을 견지하면서, 사회적으로는 진보·개혁적 성향을 띠는 개신교인들이 등장했다.

양희송 대표는 서명삼 교수의 작업이 다양한 한국 개신교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양 대표는 "그동안 에큐메니컬 진영의 원로들을 초청해 이야기 듣는 시간이 있었다. 이분들 중에는 복음주의에 가까운 보수 신앙을 유지하면서 사회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해 온 분들도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원로들과 사회문제에 적극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더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재근 교수(웨신대)는 앞으로 서 교수가 2000년대 등장한 '복음주의 좌파'에 대한 더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 나가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개신교를 단순히 '보수', '진보' 구분이 아니라 조금 더 층위를 나누고, 분류를 세분화하는 작업은 결국 한국 개신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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