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단들의 이단 광풍狂風은 올해도 계속됐다. 한국교회사에서 교인 60명 남짓한 작은 교회 목사가 이렇게 여러 교단에서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나 싶다. 자신을 재림 예수라 칭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다며 직통 계시를 주장한 것도, 가진 재산을 팔아 목사에게 바치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거나 이단성이 있으니 교인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한국에서 목회를 시작한 2003년부터 한 가지 원칙은 지켜 왔다. '목회는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이다.' 임 목사는 미군 부대 확장으로 고통받는 평택 대추리의 농민,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유명을 달리한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 부당 해고로 삶이 무너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해군기지 건설로 자연과 공동체가 파괴된 강정마을 등 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서 있었다.

성소수자들의 아픔을 듣고, 그들과 함께 길을 걸어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림형석 총회장)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그런 임보라 목사를 가리켜 "목사라기보다는 기독교 신앙과 별 상관없는 인본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일반 인권 운동가의 시각으로 활동하는 자"라고 지칭했다.

임보라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이지만,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하고 신앙을 키워 온 곳은 예장통합 교회였다. 지금도 임 목사는 예장통합을 모교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넓은 품을 가진 줄 알았던 모교단에서조차 '이단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임 목사에게 또 다른 충격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은 임보라 목사를 9월 14일 향린교회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광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9월 14일, 임보라 목사를 명동 향린교회에서 만났다. 임 목사는 무려 다섯 개 교단에서 이단 소리를 들은 사람치고는 침착해 보였다. 오히려 그는 9월 8일 있었던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겪은 일들 때문에 더 힘들다고 했다. 임 목사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지난해로 끝난 줄 알았는데, 올해도 이단 논란이 계속됐다.

이전에는 교단 총회 시즌이 되면 관련 이슈가 있는지 알아보곤 했는데, 올해는 개인적인 일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예장합동에서 형식적이나마 두 번이나 공문을 보내 자료를 요구해 오기에, 대충 어떤 일이 있을 거라고는 알고 있었다. 올해는 그런 절차도 없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작년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 올해도 재탕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모교단이라고 생각하는 예장통합에서 "임보라 목사는 이단성이 매우 심각하다"고 규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전날 예장백석대신에서 이단 결의를 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걱정하며 연락을 줬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괜찮다"고 답했다. 그런데 예장통합 결의를 들었을 때는, 뭐랄까. 섭섭함보다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아픔이 있더라.

기장 목사지만 신앙의 기초를 세워 온 건 예장통합 교회에서다. 청소년·청년기를 보냈고 여러 부서를 섬기면서 다져 온 나의 신앙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신앙적으로 나를 양육해 주신 목사님들, 오랜 교회 친구들, 선후배들도 생각났다. 여전히 돈독하게 지내는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더 마음이 아팠다.

- 어떤 교단은 '이단'으로, 어떤 교단은 '이단성이 있다'로 판정을 내렸다.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지.

예장통합에서 이 사안을 결정할 때 이웃 교단 목사를 이단이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이단성이 있다'로 수위를 낮췄다는 정황을 전해 들었다. 듣는 사람들이 둘 사이에 무슨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 싶다. 어차피 이단은 이단인데. 이단으로 지정하는 것과 이단성이 있다고 하는 것에 차이점은 없다고 본다. 자신들에게 가해질 비난을 피하려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만처럼 보이기도 한다.

- 지난해도 그랬지만,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하기까지 토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문제는 '질문하기'와 연관돼 있다. 총회에서 어떤 사안을 결의할 때,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오'를 외치라고 한다. 이미 한쪽으로 치우친 상황에서 '아니오'를 외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본인이 신학적으로 옳지 않다 생각해도, 누군가를 색출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 앞에서는 토론을 끌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동안 수많은 오류를 범해 왔다.

- 한국에서 유명한 이단은 사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신격화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이단에 대한 기준이 형성돼 있다. 대부분 교주 본인이 신의 자리에 있거나, 재림 예수라고 하거나, 교인의 재산을 갈취하고, 그룹을 빠져나가려고 하면 폭력을 행사한다. 나한테 그런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동안 해 왔던 신학적 고민, 신앙 상담 중에 나를 섬기라고 한 적도 없는데. 기가 막힌 일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임보라 목사의 모교단이다. 함해노회는 예장통합 내에서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노회 중 하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목사님을 따르는 사람이 수천수만 되는지 알겠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누구처럼 '임사모'(임보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모임 - 기자 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억울하다. 나는 누가 교회 좀 소개해 달라고 해도, 가능하면 우리 교회가 아닌, 그 사람이 사는 지역의 좋은 교회를 소개해 주려 한다. 그 교회 다니는 것이나 섬돌향린교회 다니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이단인가?

내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다. 작은 교회다 보니 상근하는 사람은 나 혼자다. 아침에 교회 나가면 텃밭에 물 주고, 그날 처리해야 할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한다. 우리 교회는 처음 등록할 때 심방을 원하는 사람은 알려 달라고 하고, 그 사람의 선택에 따라 심방을 진행한다. 교인들 전화 상담, 심방이 수시로 있다. 그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기도하고, 평범하게 산다.

- 섬돌향린교회는 기성 교회와 많이 다른가.

우리 교회는 장로교회에 소속돼 있지만 미조직 교회로, 목회운영위원회가 있다. 최대한 많은 교인이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장한다. 교인 전체 회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늘 뜻 펴기'라 부르는 설교는 한 달에 내가 2회, 교인들이 2회를 맡는다. 주일예배를 마치면 그 주간 당번이 준비한 식사를 함께 나누는데, 목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나도 당번을 맡고 내 차례가 되면 전 교인이 먹을 분량의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 결국 동성애가 문제라는 건데. 보수 교회들은 동성애가 교회를 무너뜨릴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동성애자를 위한 목회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보수적인데, 정말 성소수자가 교회를 위협할 정도인지, 또 뭐가 '위협'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라고 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쏟아 낸 혐오 발언과 주장을 어떻게 번복하나 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아닐까. 기독교 역사를 보면, 강력하게 주장해 왔던 것도 결국 번복되기 마련이다. 나는 이들이 지금까지 해 온 아귀가 맞지 않는 주장들을 나중에 어떻게 쓸어 담을지 걱정이다.

- 예장통합에서 이단성 판정을 내리는 현장에, 해외 파트너 교단, 기관 대표들이 참석했다고 들었다. 현장을 목격한 이들이 후에 충격을 표했다고 들었는데.

해외 심포지엄에 가면, 한국 대표로 예장통합·기장이 함께 간다. 한국에서 전 세계 교회와 협력하는 교단은 예장통합과 기장이다. 오늘 아침에도 독일의 한 선교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예장통합에서 일어난 일을 들었다며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예장백석대신은 잘 모르지만 예장통합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곧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한다고 했다. WCC와 함께하는 교단·단체들은 이번 일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어떻게 PCK(예장통합)가!" 계속 그렇게 얘기하더라.

- 사실 한국의 장로교회 교인들을 다 합쳐도, 세계 기독교인 전체 비율로 보면 극소수에 불과한데.

한국은 장로교회가 대다수지만 전 세계적으로 장로교회가 차지하는 비율은 낮다. 세계 교회가 동성애 이슈를 놓고 어제오늘 고민한 게 아니다. 1960년대부터 고민을 시작한 교회들도 있다. 한국교회들은 세계 교회가 왜 이렇게 오랜 시간 공들여 고민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상당한 게으름도 포함돼 있다고 본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정의로운 것이고, 그 정의가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에 빠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혼을 합법화했기 때문에, 북미·유럽 교회 예배당이 술집이 되고 교인들이 다 떠났다고 주장한다. 그곳에 가서 선교를 통해 법을 바꿔야 한다고 흥분한다. 우물 안 개구리 사고방식이다. 교회가 왜 그렇게 됐는지 본질적인 문제는 보지 않고, 아집과 신앙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면 도태되는 거다.

임보라 목사는 매해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해 다양한 성소수자와 연대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목사님도 그렇지만 교인들도 상처받았을 것 같다.

어떤 교인은 "되돌이표인가요"라고 묻더라. 교회 운영을 맡고 있는 목회운영위원 중 한 분은 기장 총회 관계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작년에 교단 대처가 약했다고 보시는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번 일이 우리 교회를 흔들지는 못한다는 거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마음이 일치한다. 이 계기로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교인들의 관심도 크다.

- 지난주 있었던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라는 피켓이 많이 보였다. 각 교단 총회를 보면 결론적으로 '사랑하니까 내쫓자'는 걸로 보인다.

사랑하니까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거나, 사랑하니까 교회를 떠나라는 말은 사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사랑한다면 곁에 두고 소통하고, 아픔이 뭔지 들어야 할 것 아닌가. 저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성소수자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한다"고 말한다. 진짜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어떤 피해를 받고 있는지 너무 모른다. 인천 퀴어 문화 축제만 봐도, 그들의 행동은 절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하니까 욕하고, 사랑하니까 때리고, 사랑하니까 잡아 할퀸다? 그들의 사랑은 폭력이다.

어떤 사회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피해를 주는가. 어떻게 존재를 반대할 수 있나. 누군가의 존재를 반대하는 게 과연 신앙의 언어인가. 공동체 안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존재를 복원하는 게 예수님의 복음 사역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랑하니까 너의 존재를 지우라고 말하는 건 반성경적이다.

- 목사님과 교인들은 의연하게 이겨 나가겠지만, 어쨌든 타 교단의 이단 지정이 운신의 폭을 좁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느 단체에서 나를 위원으로 위촉한다고 하면, 항상 '내가 참여하는 게 단체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 단체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는데 나 때문에 공격받으면 안 되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도 이런 것일 텐데. 활동이나 말이 좀 위축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런 부분이 좀 아쉽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열차는 계속 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전에는 1량짜리 열차였는데 이제는 세월이 지나 5량, 10량으로 늘어났다. 계속해서 터널을 지나는 것 같지만, 벗어나는 지점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를 타깃 삼아 공격해 온다고 하면 '좋다, 내가 견디면 나은 세상이 온다'는 생각으로 견딘다.

저분들이 착각하는 게, 이런 식으로 강도를 높이고 언로를 막으면 원하는 대로 교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동성애가 그 어떤 죄보다 더 큰 죄악이고, 교회가 절대 허용하면 안 되는 죄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본인들 눈앞에 있는 교인만 교인이 아니다. 이런 일을 계기로 그동안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퀴어, 성소수자 같은 용어도 잘 모르던 이들이 '대체 무슨 일이기에 임보라 목사를 이단으로 지정하는지 이야기나 한번 들어 보자'면서 나를 부른다.

직접 대화를 나누면 조금씩 생각이 바뀐다. 그들의 신앙으로는 여전히 성경이 동성애자를 어떻게 말하는지 바로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지만, 최소한 이단 정죄는 잘못됐다는 데 동의한다. 이렇게 부당한 일을 알리고 한목소리를 내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임보라 목사의 손등과 팔 곳곳에는 뜯긴 자국이 남아 있다. 지난 인천 문화 축제에서 반동성애 진영의 기독교인들에게 얻은 상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결국 사랑이 이기는 건가.

그렇다. 사랑이 혐오보다 강하다. 사랑하면 사실 목숨을 내어 주는 게 두렵지 않다. 누가 내 목숨까지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겠지만.(웃음) 사랑은 두려움을 없애고, 두려움이 없어지면 용기를 갖게 된다.

기독교 복음의 정수가 뭔지 다시금 되새기게 해 주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내가 베푸는 사랑은 부족하다. 하지만 그동안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쌓아 온 신뢰 관계에서 축적한 사랑의 양이 있다. 아무리 교단들이 흔들려 해도 이 사랑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