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통합 103회 총회는 명성교회 세습을 용인한 헌법위, 규칙부, 재판국 보고를 받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1500명이 모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림형석 총회장) 총회는 럭비공과 비슷하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당연하다 싶은 게 뒤집어질 때도 있고, 무슨 소리냐 싶은 게 결의되기도 한다. 자신들이 한 결의를 하루 만에 뒤집을 때도 있다. 분위기에 잘 휩쓸리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 탓에 103회 총회가 명성교회 세습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다행히도 뚜껑을 열어 보니 상황은 달랐다. 총회는 명성교회 세습에 길을 터 준 헌법위원회의 유권해석과 세습금지법 개정안, 규칙부의 서울동남노회 헌의위원회에 대한 해석, 총회 재판국의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 무효 소송 판결 보고를 받지 않았다.

소셜미디어에는 '사필귀정'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교단 원로 유경재 목사(안동교회)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직도 우리 총회에 문제가 많지만 올바른 신학과 의식이 결집되면 잘못된 길로 나갔다가도 다시 바르게 그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총회 결의를 지지했다. 김동호 목사(PPL 이사장)도 "교단이 통째로 망신당하지 않고 최소한의 체면은 지킨 것 같아 감사했다"고 했다.

예장통합 총회는 치열한 논의 끝에 결과를 도출했다. 세습 철회를 촉구하는 총대들은 103회 총회 시작부터 끝까지 명성교회 세습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이번 총회에서 가장 눈에 띈 총대는 양인석 목사(전주강림교회)다. 양 목사는 9월 10일 회무 시작과 동시에 "헌법위원회 보고부터 받자"고 제안했다. 모든 시선이 명성교회 세습에 손을 들어 준 '총회 재판국'을 향해 있을 때, 헌법위원회부터 짚고 넘어가자고 한 것이다.

헌법위는 "현행 헌법으로는 '은퇴한' 담임목사 자녀의 청빙을 제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앞서 총회 임원회는 세습금지법에 위배되는 해석이라며 반려했지만, 오히려 총회 재판국은 헌법위 해석을 근거로 명성교회 세습은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명성교회 판결 뒷받침한
헌법위 유권해석부터 공략
"명성교회 측, 논리적으로 상대 안 돼"

양인석 목사는 총회가 시작하자마자 헌법위원회 보고부터 받게 해 달라고 제안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양인석 목사는 9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총회 시작 전 전략을 세웠다. 총회 재판국 판결보다 판결의 근간이 되는 세습금지법 유권해석을 바로잡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헌법위 보고부터 요청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명성교회 지지 그룹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다. 총회 둘째 날 9월 11일 예장통합은 특별위원회 중 헌법위 보고를 가장 먼저 다뤘다. 총회는 헌법위의 현행 세습금지법에 문제가 있다는 해석과 세습금지법 개정안을 받을지 말지를 놓고 양분됐다. 당시 보고자로 나선 헌법위원장 이재팔 목사는 유권해석보다 개정안 통과에 목을 매는 듯했다. 이 목사는 "개정안은 어차피 헌법개정위원회가 다루니까 일단 받아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세습 철회를 촉구하는 이들은 '결사반대'를 외쳤다. 양 목사는 "헌법위원장의 주장은 교묘했다. 개정안을 헌법개정위로 넘기면 명성교회 세습은 건드릴 수 없게 된다. 현행 세습금지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총회 스스로가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정안 상정 자체를 결사반대했다"고 말했다.

명성교회 문제를 두고 총대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세습을 반대하는 총대들은 "헌법위의 잘못된 해석으로 세습금지법 정신이 훼손됐다", "'은퇴한' 목사는 세습금지법에 저촉 안 된다고 하면 헌법은 사문화할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세습금지법을 만들지 않았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명성교회를 지지하는 총대들 주장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이들은 "명성교회 세습은 세습이 아니다", "성총회가 되도록 싸우지 말자"는 이야기뿐이었다. 한창 세습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성애·차별금지법 안 막으면 동물의 왕국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양인석 목사는 "논리적으로는 명성교회 측이 이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양 목사는 "헌법위가 엉터리로 해석하는 바람에 이 문제가 총회까지 왔다. 특정 문제로 물 타기 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논리적으로 상대가 안 되니 별소리를 다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교회 세습은 진리 문제 아냐,
한국교회 미래 위해 안 하는 게 바람직"

이국현 목사는 자신도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회 세습은 탐심과도 같다며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명성교회 문제로 거친 발언이 오가는 상황에서 절도 있고 품위 있는 발언으로 집중을 받은 총대도 있었다. 이국현 목사(한일교회)는 9월 11일 저녁 회무 시간, 세습금지법 개정안 토론이 한창일 때 발언권을 요청했다. 이 목사는 한국 사회가 대물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편법 세습이 가능한 개정안을 받지 말자고 말했다.

이 목사는 "어떤 분은 '세습'이란 말이 틀렸다고 한다. 우리 솔직하자. 아들에게 물려주면 세습이다. (중략)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했다. 우리 목사들이 내려놓자. 다음 세대에게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내려놓으면, 교회도 사회도 정말 바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발언이 끝나고 난 뒤 몇 초간 적막이 흘렀다. 이어 총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보냈다.

이국현 목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 사회에서 세습은 '나쁜 것'이라며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세습이 성경적·신앙적으로 위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습하면 한국교회에 악영향을 미친다. 세습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다. 진리라면 끝까지 사수해야지만,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서는 세습을 안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예장통합 총회장까지 지낸 김삼환 목사가 세습을 하지 않았다면 '국가 원로'가 됐을 것이라며 너무 아쉽다고 덧붙였다.

"명성교회만 문제 아냐
교회 크기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인이라 고백해야"

교회 세습을 영적 근친상간에 비유한 바 있는 홍인식 목사는 총회가 끝날 때까지 명성교회 세습을 문제 삼았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명성교회 세습 문제가 총대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틈틈이 환기해 준 총대도 있었다. 해방신학자 홍인식 목사(순천중앙교회)는 "세상도 교회도 주목하는 핵심 문제를 미루는 건 문제가 있다"며 수시로 논의를 촉구했다. 명성교회 문제가 총회 마지막 날까지 가게 되자 "총회 안에도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세간의 우려를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홍인식 목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앞으로 명성교회 없는 교단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우리 교단 소속 교회부터 신학교, 총회까지 재정적·영성적으로 명성교회에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명성교회는 형님 같은 교회였다. 그럼에도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총회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어쩌면 지원이 끊기고,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명성교회 없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총회 결정을 단순히 명성교회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홍 목사는 "명성교회처럼 큰 교회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개척했다면서 주인 노릇하고 마음대로 하려 한다. 크기만 다를 뿐 하는 건 똑같다.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임을 고백하고,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명성교회 교인들이 총회가 열린 9월 10일, 이리신광교회 앞에서 통성기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103회 총회가 진행 중일 때 명성교회가 교단을 탈퇴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명성교회에 불리한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교단 탈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단 구성원들은 명성교회에 법을 지키든지 나가든지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명성교회 한 관계자는 9월 14일 기자와 만나 "당회에서 그런 논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집안에서 공격을 받는다고 성姓을 함부로 바꿀 수 있겠는가. 총회가 폐회 직전 명성교회 문제를 임원회에 일임했다. 우리는 임원회가 바른 결정을 내려 주길 기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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