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로교회는 성서문자주의와 교리주의를 떨쳐 내지 못한 채, 타인의 신앙을 정죄하는 악습에 빠져 왔다. 그 결과, 내부적으로는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교단 분열을 경험했으며, 사회적으로는 배타주의와 혐오의 온상처럼 변한 교회 모습이 불통과 환멸의 대상이 되어 기독교 선교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암울한 모습을 이번 주에 진행된 여러 교단 총회에서 보게 된다.

9월 1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예장백석대신·이주훈 총회장) 총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임보라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단 논쟁은 대체로 신학적 상상력이 고갈된 곳에서 생겨나는 정치적 결정이자, 소아병적 바리새주의가 낳은 불모의 열매이다. 예수를 본받고자 하는 신앙이라면, 이단 규정이라는 섣부른 칼춤보다 내부 성찰과 자정 작업에 힘을 쏟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틀이 지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림형석 총회장) 교단이 가세했다. 퀴어신학과 임보라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다'는 이단대책위원회(이대위) 조사 결과를 채택하는 것으로, 수구 신앙의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에 있던 예장백석대신의 결정에 비하면 신중하다기보다는 비겁해 보인다. <뉴스앤조이> 보도에 따르면, 이대위가 보고에서 임보라 목사를 가리켜 "기독교 신앙과 별 상관없는 인본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일반 인권 운동가의 시각으로 활동하는 자"라고 했다는데,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인본주의 및 박애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다시 살펴볼 것을 권한다.

8개 교단 이대위 관계자들이 6월 1일 모여 몇 가지 사항을 결의한 바 있다. 이단 시비에서 첫 결정은 해당 교단 교인과 교회를 보호하는 선에서 하고, 타 교단에 소속된 단체나 기관이나 사람에 대한 최종 결정은 소속 교단에서 선조사하도록 배려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안다. 예장백석대신과 예장통합은 자신들이 참여한 결의를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 문제와 연관된 기장의 두 상임위원회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임보라 목사를 옹호하고 나섰다. 하지만 지난 교단 총회에서 이미 성소수자 문제에 매우 소극적인 결정을 내린 적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예상되는 교단 전체의 행보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를 느낀다. 특히 지난 3년여 동안 한신대학교 총장과 이사들의 문제로 골머리가 썩어서 기장 교단은 거의 탈진 상태에 들어간 듯하다. 미래를 향한 진취적인 결정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장 총회가 다음 주에 열린다. 자기 교단 소속 목사가 타 교단으로부터 이단 규정을 당한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서 교단이 어떻게 자기 책임을 이행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장기적으로 더욱 중요한 점은, 문제의 원인이 된 '성소수자 교우 돌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한국 개신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불통의 아이콘이 된 답답한 현실에서 기장 교단이 힘을 내서 먼저 길을 열어 가기를 기도한다.

김희헌 / 향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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