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세습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뉴스앤조이> 기사들에 의하면, 장신대 측은 명성교회 세습을 비판하며 예장통합 총회가 열리는 9월 10일까지 '수업 거부'를 단행하기로 했고, 교단 목회자들은 870:81로 가결했던 총회의 세습금지법을 7:8로 뒤집은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와 총회 재판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교단 목사들은 이러한 세습이 자기 보전을 위한 거짓, 교만, 탐욕에 의한 행위임을 천명하고 있고, 서울노회는 명성교회 세습을 하나님에 대한 도발로 규정하고 있다.

그에 반해, 명성교회 세습을 지지하는 세력도 분명 적은 수일지라도(870:81이라는 수치가 방증하듯이) 존재하고 있다. 한 미자립 교회 목사는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1면을 통해 명성교회 세습 옹호 논리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는 세습 옹호 이유로 일곱 가지를 들고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목회자 청빙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던 명성교회가 자체적으로 당회와 교인들, 목사청빙위원회를 통해 심사숙고하여 세습을 결정했고, 그러한 자주적이고 신중한 결정은 정당하다는 주장이다(심지어 교회에 유익한 결정이기까지 하다는 주장이 은연중 깔려 있다). 김하나 목사는 2017년 11월 10일 새노래명성교회 구역장 모임에서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한 바가 있다(김하나 목사는 그 모임에서 교회의 세습이 하나님의 뜻임을 천명했다는 차이는 있다. 물론 그는 세습금지법이 총회에서 가결되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혀 반대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 미자립 교회 목사는 다섯 번째로 총회의 세습금지법이 개교회 교인들의 담임목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미자립 교회의 목사가 적지 않은 사비를 들여 신문에 광고를 내는 형태로 초대형 교회 교인들의 기본권까지 챙겨 주는 이 논리는 일견 이상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명성교회 세습은 정당하고 심지어 명성교회 교인들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필수적이기까지 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목회자의 뿌리 깊은 가족이기주의에 교회 전체가 놀아나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 상반된 주장에도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다음의 사실이다. 교회 세습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논쟁하다 보면, 결국 그들 양측이 기독교인인 이상, 그 논쟁은 성서가 교회의 세습을 허용하는지로 향할 것이고, 이는 결국 교회 세습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만사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미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믿음을 간직한 기독교인들이라면 모든 행위와 사건의 정당성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세습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양쪽 기독교 진영 모두 정확히 같은 결론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은 8월 7일, 명성교회 세습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사진은 2017년 11월 12일 '김삼환 원로목사 추대 및 김하나 목사 위임 예식'.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법 농단 데자뷔
- 대법관들의 사법 농단과 총회 재판국의 신법 농단

우리가 지금, 이 골치 아픈 분쟁을 단번에 해결할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기 전에 필자를 따라 조금만 여유를 갖고 사람들이 신의 뜻 없이 분쟁을 해결하는 모습을 잠시 살펴보자. 지혜의 대명사 솔로몬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그는 왜 지혜자인가. 그는 분쟁에 거리를 둔 제삼자로서 개인 간 갈등을 해결했기에 지혜자로 불릴 수 있었다. 누구든지 분쟁에 휘말리면 객관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객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를 우리는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혜자는 반드시 분쟁에서 거리를 두고 있어야만 하고, 그럴 때만이 지혜자는 분쟁을 정의롭게 해소할 가능성을 확보한다.

현대인은 사법부가 그 지혜자 역할을 대신한다. 사법부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개인 간 혹은 단체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한다. 사법부의 결정을 다시 분쟁으로 몰고 가면 그 분쟁에 대한 또 다른 사법부가 필요할 것이고, 또다시 그 사법부의 결정에 반발하면 생길지 모를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상위 사법부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우리는 단지 세 차례만 이 과정을 승인하고 있다. 대법원 결정에는 그 누구도 항소할 수 없다. 만일 대법원에서도 끝이 안 난다면 그 분쟁은 영원히 해결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사법부에 절대적 권한을 준다.

만일 사법부가 그 권위를 잃게 되면, 개인 간 혹은 단체 간의 수많은 분쟁은 무엇이 정의로운 해결점인지 타협되지 못한 채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유일한 이유에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법부의 절대적 권한이 법관들의 사리사욕에 무너지는 현장을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법부는 더 이상 사건에 거리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여 사리사욕을 챙긴다. 우리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승복하기 힘든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무너진 사법부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신뢰를 단번에 쌓기 힘든 만큼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은 더욱 힘들다. 우리가 모두 저마다의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있고,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기에 반드시 서로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해야만 할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현실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다.

교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함은 더욱 깊어진다. 교회는 사회에 속하여 있으므로 반드시 사회 법에 따라 합법적인 행위들을 해야만 한다. 교회는 일반 사회 법체계와는 다른 또 다른 법질서를 가지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질서를 믿고 있기에 '하나님의 법'에 따라야만 한다. 하나님의 법, 즉 하나님의 뜻은 적어도 기독교인들에게는 사회 법보다 더욱더 근원적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명성교회 세습을 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모두 자신의 주장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사회 법과 일치한다면 교회의 세습에 대한 한 미자립 교회 목사의 옹호 논리도 타당할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뜻이 자본주의의 대의와 일치한다면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는 다른 기업들처럼 세금 잘 내고 교회 기업의 운영을 잘하면 세습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명성교회 세습을 비판하는 이유가 사회 법과 자본주의 프레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교회 세습은 교회 자체의 의미와 관련한 문제이다. 이때 교회가 사회 법을 지키는지, 혹은 기업처럼 잘 운영이 되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위와 판단의 기준은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성립되는 논리여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의 회장님이 아니다. 목사는 교회의 CEO가 아니다. 교회는 세습에 대해서 기업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논리에 따라 판단해야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성서가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닌가. 우리 평신도들은 성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매주 듣고 확인한다. 문제는 이제 명성교회 목사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의 권위가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김삼환·김하나 목사는 이제 문제의 사건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지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포하는 자칭 하나님의 뜻은 이제 만민에게서 거리를 둔, 그래서 만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이 깊숙이 연관된 사건에 대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라고 말한다면 그 누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겠는가.

이 자명한 이유로 명성교회 부자 목사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자들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는 자들인지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 자체로 명성교회 목사의 권위는 훼손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해야 하는 입이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입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개별 목사의 권위가 무너지면 교회도 사회의 법체계와 유사하게 총회로 문제가 넘어간다.

그런데 총회 재판국에서조차 7:8로 명성교회 세습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세습금지법에 가결 당시 찬성 비율이 870:81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마치 전 국민이 박근혜 탄핵을 원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부결한 결과를 받아들인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이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과도 아주 유사하다.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지난 10년간 정권에서 보여 준 적폐의 더러운 민낯의 데자뷔를 보여 준다.

명성교회 목사들도, 총회 재판국 목사들도 명성교회 세습 사건에서 거리를 두고 있지 않다. 그들이 모두 이 사건의 피고인들이다. 그들은 재판을 받아야만 하는 자들이지 재판을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자들이지, 하나님의 이름을 방자히 사용하여 자신들의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과 법을 그들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농단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명성교회 부자 세습을 원하지 않으신다

헌법의 기본 정신은 모든 국민의 자유와 안녕을 국가가 수호하는 것에 있다. 한 국가의 헌법 정신도 그럴진대, 하나님의 뜻이 소수자만을 위한 것일 수 있겠는가. 소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이 봉사한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창조주이자 주권자라기보다는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는 종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들에 백합화나 하늘의 나는 새도 긍휼히 여기시는 분임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신 분이시기에 오류가 없으시다. 그래서 김삼환-김하나로 이어지는 목회직 세습도 작게 보면 악일지 모르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선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명성교회 세습을 원하셨을 수도 있겠다. 물론 더 큰 그림 속에서 악을 용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한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담론들은 신정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전혀 답도 없고, 아니 답이 있을 수 없는 유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프레임에 빠져서 논의를 이어 가다 보면, 우리는 결단코 논쟁의 숲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사법 농단의 진정한 문제는 무엇 하나 시비를 가릴 수 없게 만드는 최종 권위의 파괴에 있다.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형국은 일개 교회의 부덕함 문제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교회의 최종 권위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위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이다.

"내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지 말라(제3계명)." 하나님의 뜻을 망령되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성서라는 공인된 문서, 그리고 목사라는 공인된 직분자의 해석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판별해 왔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이비 목사가 그동안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성서와 목사 직분을 이용했다. 이제 우리 평신도는 어디에서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인가. 어디에서 나의 행동이 진정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인지 잠정적으로나마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인가.

사법 농단이 심화하면 법체계가 흔들려 우리 사회가 무법천지가 될 수도 있듯이, 목사들의 신법 농단이 심화하면 하나님의 법체계가 흔들려 교회도 무법천지가 될 수 있다. 이제 이런 제3계명을 통해서 피하고자 하는 사태가 이름 없는 작은 교회들의 목사들을 통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교단 내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 자랑하는 교회의 목사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명성교회 부자 세습을 원하지 않으신다. 김하나 목사가 870:81로 세습금지법이 가결되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던 그 믿음이 옳다. 정확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870명의 사람이,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교회 세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그 믿음은 옳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저 안다.

하나님은 김삼환·김하나, 그리고 명성교회의 정치 장로들을 미워하신다. 김하나 목사가 8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추문에 휩싸인 자기 아버지, 어쩌면 그만큼이나 수많은 추문에 휩싸여 있을 명성교회 정치 장로들의 주장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였던 데서 김하나 목사 개인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논리로 김하나 목사를 설득했을 텐데, 그것에 김하나 목사는 그저 넘어가 버렸다. 전혀 목사의 감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김하나 목사는 만천하에 보였고, 자신의 수준에 딱 맞는 명성교회로 갔다.

참담하게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일부 자칭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이비-보수' 세력들이 이 자명한 악의 사태를 물타기하거나 덮기 위해 요즘 교인들에게 예민한 반동성애 담론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동성애 논의와 상관없는 '트랜스페미니즘' 신학을 앞의 어두가 같다고 '트랜스젠더'를 위한 신학처럼 포장해서 동성애 신학이라고 우겨 대고, 그것을 적으로 만들어 마녀사냥을 자행하면서 추문을 부풀리는 작태를 서슴지 않는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단체를 '종북' 혹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마녀사냥을 하던 정치적 사이비 보수 세력의 행태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진정으로 '아니다'고 말해야 할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교회 세습'이다. 제사장직은 거룩해서 대물림된다고?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다. 유대교에서 유래하지만, 우리는 개신교이지 유대교나 가톨릭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신앙적 정체성은 필요하지 않나. 자기 필요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이런저런 논리를 갖다 붙이는 행태가 전형적인 사이비의 논리 형식에 가깝지 않은가.

지금까지 큰 공헌을 하였으니, 덮어 달라고? 이 문제를 물고 늘어져 봤자,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증폭할 뿐이라고? 이는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본 개념과 취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논리이며, 뻔뻔한 세습을 묵인하고 동조하는 일을 통해 비기독교인들에게 개신교 혐오증을 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나쁘다. 교회 공동체의 자율적인 결정이라고? 교회 공동체는 교단법과 세상의 상식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생각보다 위에 서는가. 이보다 더 '인본주의적인 변명'이 또 있을까.

9월 3일 서울 종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총회 헌법 수호를 위한 예장 목회자 대회'. 신학생부터 원로목사까지 약 900명의 목회자가 참여해 명성교회 세습 반대 목소리를 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글을 마치면서, 명성교회 세습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 교단과 교단 신학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들 편에 분명 하나님의 사자가 함께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부의 말씀을 보태고 싶다. 진짜 문제는 명성교회 세습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삼환-김하나, 총회 재판국 목사들과 명성교회 정치 장로들, 이 하나님의 법질서를 농단하는 적폐 세력들이 우리 교회 생태계를 완전히 흐려놓고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게 흐르는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 그 적폐를 청산하는 게 앞으로 고된 작업이 될 것이기에 지금 이 마음 흔들리지 말고 악의 세력에 맞서라는 당부를 보내고 싶다. 그러한 싸움에 함께하겠다는 응원과 지지의 뜻도 함께 보내고 싶다. 다른 교단들은 세습에 이처럼 잠잠할 수가 없다. 부끄럽다. 그러나 현재 예장통합은 불의에 맞서고 있다. 응원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길.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진정한 신도들과 동지들 역시 당신들과 함께할 것이다.

장효진(가명) /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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