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정치부장 등을 지낸 이정환 목사가 명성교회 세습을 두둔하는 호소문을 총대 1500명에게 발송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최기학 총회장) 103회 총회의 가장 큰 화두는 명성교회 부자 세습이다. 세습을 용인한 총회 재판국(이경희 재판국장) 판결은 후폭풍을 불러왔다. 교단 구성원들은 명성교회 김삼환-김하나 부자뿐 아니라, 이를 용인한 재판국원들과 세습을 옹호하는 교단 인사들까지 규탄하고 있다.

세습을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명성교회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솔솔 나오고 있다. 명성교회를 감싸는 인사 중 이정환 목사(팔호교회)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총회 정치부장, 이단사이비대책위원 등을 지낸 이 목사는 예장통합 안에서 '언어의 마술사', '법통' 등 총회 정치에 밝은 인물로 통한다. 매년 총회가 열릴 때마다 총대들은 그의 입을 주목했다. 논리 정연한 발언, 교단 헌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 특유의 카리스마로 회중을 압도했다. 이 목사에게 대신 발언을 해 달라고 요청하는 총대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교단 안에서 나름의 커리어를 쌓아 온 이정환 목사는 2016년 특별사면위원장을 맡으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이 목사는 김기동·변승우·이명범·박윤식 목사를 이단에서 해제하자는 데 앞장섰다. 예장통합 총회 임원회는 사면 선포까지 했다가 교단 안팎의 반발에 사면을 취소한 바 있다. 이 목사는 101회 총회 석상에서 공개 사과까지 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한동안 총회 정치를 멀리했던 이정환 목사가 최근 명성교회 세습을 비판하는 이들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 목사는 9월 4일 '총회가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A4 3장짜리 호소문을 총대 1500명에게 발송했다.

이 목사는 호소문에서 명성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재판국 판결은 확정판결로 총회라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재판국원 해임은 초법적 행위이자 헌법 유린이다 △102회 총회에서 재심 제도를 폐지했기에 재심을 결의할 권한이 없다 △명성교회 출교 주장은 장로교 정치제도를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총회 판결을 신사참배에 빗댄 신학교 교수들을 교단의 명예를 훼손한 범죄로 다스려야 한다 △헌법 28조 6항은 유신 시대 긴급조치권과 같으며 명성교회를 타깃으로 만든 법이다 △총회는 요청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 지교회 문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때 WCC(세계교회협의회) 문제로 김삼환 목사와 척을 졌던 이정환 목사가 명성교회를 적극 옹호하고 나선 것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목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WCC와 베뢰아 사상 문제로 김삼환 목사를 공격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옹호하는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목사는 "총회 현장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보고 나름 합리적인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명정위)는 명성교회 직원들이 9월 4일 호소문 발송 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명정위 한 교인은 기자에게 "발송 작업을 한 다음 이정환 목사 교회가 있는 경기도 포천까지 가서 우편으로 보냈다"고 전했다. 하지만 명성교회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명정위 주장을 부인했다. 

2013년 세습금지법 제정 당시 '반대' 의견
"총대들이 상황 파악 못 할 것 같아 문서 발송,
명성교회 옹호 아냐…김삼환 목사와 악연 많아"

이정환 목사도 9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명성교회와의 유착을 부인했다. 그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작업해서 보냈다. 명성교회가 내 호소문을 총대들에게 보낼 이유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교회 청년들을 동원해 며칠을 작업했고, 적잖은 돈이 들어갔다고 했다. "총대들이 무슨 내용인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것 같아 문서를 발송했다. 잘못하면 군중심리에 휩쓸릴 수 있다"는 이유다.

명성교회를 옹호한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 목사는 "총회 때 말고 명성교회에 발을 들인 적도 없다. 김삼환 목사와 악연도 많다. 누차 말하지만, 세습금지법 자체가 문제다. 명성교회를 타깃으로 만든 것이다. 교회 세습이 정말 문제라면 이전에 세습한 교회들 다 쫓아내야 한다. 왜 명성교회만 나가라고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이정환 목사는 예장통합이 세습금지법을 제정할 당시 반대 의견을 드러낸 바 있다. 이 목사는 세습금지법이 교회와 교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법이 아닌 '권고 사항' 정도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총회는 84% 찬성으로 세습금지법을 제정했다.

명성교회 문제로 교단이 두 쪽 나게 생겼다고 지적하면서, 정작 책임은 총회 임원회에 돌렸다. 이 목사는 "지난해 세습금지법에 위헌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임원회가 즉시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 지금 사태가 빚어졌다. (최기학) 총회장의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호소문에서 주장한 것처럼 명성교회 판결은 총회가 다룰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미 재판국 판결로 명성교회 문제는 끝이 났다. 재심도 못 한다. 총대들이 이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정환 목사는 특별 사면 문제로 총회가 발칵 뒤집힌 2년 전에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 있다. 총회 임원회가 특별사면을 선포한 것과 관련해, 당시 이 목사는 "사면은 사면하면 끝이다. 총회도 사면을 무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장통합은 정기총회에서 사면 선포를 취소하고, 아예 없던 일로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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