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한국여성의전화,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기독교여성상담소 등 680개 단체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서 연 '성폭력 가해 목사에 대한 기하성 여의도순복음 총회의 책임 촉구 기자회견'의 연대 발언문입니다. - 편집자 주

우선, 사건 발생 후 숱한 시간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았을 피해자분께 위로와 격려를 표합니다. 교회 성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교회 내 성폭력 문제는 오래된 성차별, 여성 혐오의 교회 전통과 그 맥을 같이하며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여성을 대상으로 성희롱하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남성이 아니지만 우리는 교회에서 남성 목회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대하라고 교육받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종'이 성폭력 가해자로 드러나는 순간은 모든 교회 공동체에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건 성폭력 가해 목사를 싸고도는 남성 중심 교회와 교단의 태도입니다.

가해자는 20년 전 저지른 미성년자 친족 성폭력 범죄에 대해 아직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공소시효가 도과徒過하여 하나님의 법으로 판결해 달라고 절규하며 호소했던 피해자의 울부짖음을 교단은 듣지 않았습니다. 교회 법전을 펼치며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고 핑계를 댔던 그들은 가해자와 한통속이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사기극처럼 재판위원회가 진행되었고 목사들은 조직폭력배와 다름없는 태도로 가해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를 때리라고 강요했습니다. 피해자가 다시 한 번 공포와 폭력을 경험하며 합의서에 서명하게 된 것은, 남성 중심 교단의 '성폭력 목사 살리기'와 '제 식구 감싸기' 전략의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교회 성폭력은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범죄를 덮어 주고 용인하며 피해자에게 섣부른 용서를 강요하는 교회와 교단의 남성 권력자들이 주도하는 문제입니다. 목회자의 성범죄를 '목회자의 일탈', '불륜'으로 탈바꿈시켜 교인들이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게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피해자를 '꽃뱀', '이단'이라고 소문내고 가해자 말을 진실처럼 전파하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점점 추상적인 것이 되고 교회는 세상에 대한 선교를 감당하기도 전에 내부로부터 붕괴하여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이 땅 위의 교회가 아니라 저 세상의 교회, 소통 불가능한 집단이 되어 갑니다.

교회 성폭력은 교회 지도자가 약자들을 그루밍해서 성적으로 착취하는 젠더 폭력입니다. 그러므로 이유 불문하고 전적으로 가해자인 교회 지도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교회 성폭력 근절 운동을 시작하고 20년이 지나도록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없던 교회에도 미투 운동의 바람이 불었고 피해자들이 직접 일어나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이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자성의 목소리를 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기하성 여의도순복음총회가 지난 7월, 성폭력 목회자를 강력 처벌하겠다고 발표할 때 우리는 그 말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가해자의 교단 탈퇴 소식은 다시 한 번 기만당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죄에 대한 처벌을 면하려는 가해자의 교단 탈퇴를 징계와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교단의 태도는 거짓말을 진실로 합리화하려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아직도 성폭력 가해자는 버젓이 목회하며 성도들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음으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속고 있을 교회 공동체, 죄를 부인하는 가해자 모두를 또다시 폭력과 속임수의 굴레에 가둔 교단은 거짓 선지자의 행보를 중단하기 바랍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성경 말씀과 다르게, 권력으로 거짓말을 진실처럼 재생산해 내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이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단은 가해자를 면직하고 오랜 세월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보상하십시오.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가해자들과 공범이 되기를 중단하고 약속한 대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교회 성폭력 관련 법과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만드십시오.

남성 중심 교회가 모든 이들을 위한 교회로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회를 떠나 우리들 스스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하여 교회와 맞서 싸우겠지만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여전히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요청하고 싶습니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흐를 수 있도록 성평등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나갑시다.

채수지 /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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