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보수 단체 한국교회언론회(유만석 대표)는 SBS 드라마 '리턴' 방영 당시, 방송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리턴에 나오는 사이코패스가 신학교수인 것을 지적하며 "신학대 교수의 성품이나 인격과 전혀 맞지 않는 억지 설정이며, 한국의 유수한 신학대 교수를 모욕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매우 불쾌하고 저질스러운 드라마다. 어찌 신학대 교수가 온갖 범죄에 연루되는 인격 파탄자가 되는가"라고 했다.

리턴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쾌하고 저질스러운 드라마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신학대 교수가 사이코패스라는 건 좀 과한 설정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영화나 드라마에서 교회와 크리스천이 대부분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그렇다. 구제에 힘쓰고 사회적 약자의 보호자가 되는 교회와 기독교인도 있는데.

그렇다고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에게 거품 물고 달려드는 것도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크린 속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교회는, 크리스천들은 대중문화에서 무엇을 되새겨 볼 수 있을까.

<뉴스앤조이>는 tvN 드라마 '아르곤'의 공동 작가 주원규 목사(동서말씀교회), 월간 <복음과상황>과 라디오 CBS광장 등에서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는 최은 평론가, 신앙과 문화의 조화를 고민하는 빅퍼즐문화연구소 강도영 소장에게, 도대체 왜 영화·드라마에서 교회와 크리스천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지 서면과 대면으로 물어봤다. 각각 조금씩 다른 의견을 보였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게 바로 기독교의 '민낯'이라는 것이었다.

대형 교회 비리 보도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는 보도팀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아르곤'. tvN 영상 갈무리

"오랜 시간 쌓여 온 감각·정서가
부정적 묘사를 수용하게 해"
"영화·드라마가 어떤 맥락에서
기독교 묘사했는지 잘 살펴야"

- 2000년대 영화·드라마 속 교회와 기독교인 묘사를 살펴보니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대중문화에서 기독교가 왜 이렇게 표현되는 걸까.

주원규 / 영화·드라마의 부정적 묘사는 한국 기독교가 자초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사회에 대한 관심보다 개인의 축복, 성취, 성공에 목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사회에서 기독교를 '개인주의적 종교'로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환멸의 분위기가 표출됐고, 그 분위기가 미디어에도 스며들었다. 영화·드라마는 시의성을 떼 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집단 자살, 헌금 전횡, 세습 등 사회에서도 큰 문제로 인식되는 일들이 교회 내에서 번번이 발생하다 보니 사람들이 교회를 터무니없고 황당한 집단으로 인식하게 됐다. 어느 집단보다도 도덕적이어야 하는 기독교가 도덕과 윤리를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대중은 한편으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반복·재생산되었다고 봐야 한다.

최은 / 이명박 정권 전후, 소위 '개독교' 담론이 유통되며 '종교는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무너졌다. 종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삭발 시위나 보이콧 운동을 펼치며 대중문화와 적대적 입장을 고수해 온 보수 개신교 단체의 맹활약도 영향을 줬다. 보수 개신교 단체의 움직임이 기독교가 조직적으로 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개신교의 교회는 불교의 사찰이나 가톨릭의 수도원보다 대중에 더 가까운 이웃 이미지로 자리매김해 왔기 때문에, 대중이 더 크게 실망한 지점도 있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이미지를 드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강도영 / 기독교에 대한 묘사는 부정적이라기보다 적확하게 느껴진다.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최근 교계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볼 때, 현실의 기독교 문제가 드라마에 영향을 끼친다는 인식 자체가 오히려 모순적으로 보일 정도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위선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전도사(김병옥 분). 영화 '친절한 금자씨' 갈무리

- 기독교가 상업 미디어의 소재로 활용되면서 더 자극적으로 묘사되거나 이미지가 왜곡·과장되는 면도 있지 않나.

강도영 / 과장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예술 범위 안이다. 작가가 마음먹고 특정 종교를 왜곡한 이미지를 묘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영화나 드라마의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설정을 할 이유가 없다.

영화·드라마가 어떤 맥락에서 기독교 묘사를 배치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최근 작품들이 예전 작품들보다 훨씬 더 사이코패스적이고, 잔인하며, 사회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기득권의 위치에 있는 기독교를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대중의 기독교 이해가 드러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최은 / 영화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전한' 모험을 할 뿐이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이야깃거리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제작자들이) 이미 '대중이 이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디어는 대중의 공감대가 예상되지 않으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한두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 온 기독교에 대한 감각과 정서가 대중에게 부정적 묘사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부정적 묘사가 기독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당장 멈추라"는 식의 반응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기독교 내부에서 자성의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 정말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면, 자본이나 미디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과시하지 말고, 기독교가 내부적으로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것이 지금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원규 / 작가의 창의성과 메시지를 모니터링하고 심사숙고한 후 성명을 내거나 반응하면 좋을 텐데, 피상적이고 표면적으로 접근하니 오히려 '꼴통들이 난리 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는다. 좀 더 너그럽게,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며 접근해야 한다.

성명서를 내며 고압적으로 반응할수록 창작자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대중이 기독교라는 종교 권력을 문화 예술에 담을 쌓고 강압·압제하는 집단으로 여길 수 있다. 미디어의 부정적 묘사에 접근하는 기독교의 태도가 기독교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 직접 찾아보니, 꽤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기독교를 직간접적인 소재로 삼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독교가 상업 미디어의 소재로 자주 활용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최은 / '친절한 금자씨'에서만 해도 기독교인은 그저 위선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데 그쳤지만, 그 이후 미디어 속 기독교는 '악한 모습'으로까지 그려지고 있다. 기독교가 더 '만만해지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기독교와 한국교회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혹은 건드리지 않는 조직이 되는 것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권력화하거나, 혹은 기독교는 원래 악한 집단이라고 인식되어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후자로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아 기독교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주원규 / 상업 미디어가 기독교의 다양한 모습을 소재로 활용하면서 기독교 내에 필요한 고민을 던져 주기도 한다. 영화 '밀양'이 던진 질문이 기독교 내부적으로 유의미한 화두가 되지 않았나. '신의 용서'와 '인간의 용서'를 대비해 제시한 이야기는, 기독교 자체에 대해 환기하게 하고 잘못된 교리 해석에 문제를 제기해 주기도 했다.

한편으로, 쏟아지는 부정적 묘사들은 한국교회에 '자정 능력을 가진 집단으로 거듭나라'는 사회의 요청일 수도 있다. 타 종교와 다르게 사회에서 현실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부정적 부분을 달게 받아들이면서, 긍정적 역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히면 좋겠다.

주원규 목사는 영화 '밀양'이 "기독교 내 유의미한 신학적 화두를 던졌다"고 했다. 영화 '밀양' 갈무리

-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영화·드라마 속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묘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은 / 이 같은 묘사들을 잘 살펴서 대중이 어떤 지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묘사들이 복음과 구원에 관한 관심과 질문인지, 기독교인들의 개인적 삶에 대한 비판인지, 개신교 조직·지도자의 타락에 관한 문제인지, 출구 없는 현실의 고통에 관한 호소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을 고문하는 형사는 고문 장소에서 기독교 서적을 읽고 있다. 이후에 감옥에서 목이 터져라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당시 교회가 민주 인사들을 숨겨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고문과 탄압의 가해자들도 신자였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기독교의 양면성을 지적하는 장면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영화·드라마 속 묘사를 보며 개인 신앙과 사회참여의 관계를 고민하고, 대중문화를 통해 계속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강도영 /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이미 기득권의 위치에 있다. 그 말은, 사람들의 평가나 비판의 타깃이 되는 일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대중문화에 대한 교계의 대응을 보면, 너무 예민하고 항상 자기 입장을 보호하기만 한다. 교회의 긍정적 역할이 사회 안으로 침투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교회가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주원규 / 미디어가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정과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기독교의 민낯'을 인정해야만 스스로 고쳐 나갈 수 있다. 민낯을 솔직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종교야말로 신뢰할 수 있는 종교다. 자기 자신을 고발할 수 있는 종교가 가장 힘 있는 종교다. 스스로 민낯을 고발하고 자정의 몸부림을 보여 준다면, 기독교가 미디어는 물론 다양한 영역에 선한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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