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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교 중독자

[정신실의 신앙 사춘기] 중독과 은혜 사이

정신실   기사승인 2018.08.03  17: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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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상담실에서 진행하는 일대일 상담이 있었다. 전체 학생 대상이었는지 지원자만 참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다소 절박한 심정으로 상담 시간을 기다렸었다. 담당 선생님이 교인이었다는 정보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의뢰하고 싶은 내 어려움은 엄마의 주일성수 강요였다. 돌이켜 보면 각종 고민 다 짊어지고 살던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친구 관계, 이성 친구를 향한 관심, 그와 관련한 자아상의 고민부터 전공 선택,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한 실존적 고민까지. 한데 상담실에 찾아가 내놓은 현안이 '주일성수'였다니.

아닌 게 아니라 사춘기부터 시작된 엄마와의 갈등은 주일성수로 대변되는 '종교'였다. 이는 끔찍한 일이었다. 엄마는 거의 율법의 안식일 조항을 그대로 지키려는 것 같았다. 물건을 사고팔지 않는 건 기본이고 죽어 영안실에 누워 있지 않는다면 예배에 빠질 수 없었다. 어렸을 적에야 당연한 줄 알고 지켰으나 나름 주체적으로 읽은 복음서의 예수님은 전혀 엄마 편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엄마와의 종교 전쟁은 시작되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 고치신 예수님과 시내산 하나님의 대리전을 엄마와 내가 치렀다. 엄마와 딸이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놓은 형국. 엄마는 평생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했고, 끊임없이 지켰고, 바쳤고, 기도했다.

'종교 중독'이란 개념을 습득하고 많은 부분에 이름 붙일 수 있었다. 예수님을 향한 엄마의 사랑, 그 열렬한 사랑이 왜 내게는 억압으로 다가오는지. 신앙 행위가 억압이 되는 지점, 열정이 집착이 되는 지점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상담실을 찾게 한 것은 종교적 규율의 강요와 소통 불가의 폭압이었다. 중독 행동은 어떤 특정한 욕구에 대한 집착적 행동이다. 중독에는 자유가 없다.

중독의 본질에 대해 <신앙, 집착에서 참열정으로>(생활성서사)에서 쉐일라 파브리칸트 린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중독이 우리의 삶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현실, 특히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피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실체 또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내면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어떤 것을 피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외부적인 어떤 것을 사용한다. 중독의 목적은 자신과 대면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신앙 성장을 위해 기도할수록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진다는 '앤'이라는 여성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종교가 만족스럽지 않은 결혼 생활이나 또 다른 부분에서 오는 고통스런 느낌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앤은 종교 중독에 빠진 것이다. 남편에게 자신의 종교 행위를 애써 강요하며 남편의 생활을 종교적으로 통제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에 비추면 엄마의 종교적 열심은 중독에 가깝다. 현실도피로서의 신앙생활이라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느낀 강요와 통제가 그 방증이다. 엄마의 생은 신산한 삶을 기도로 버텨 온 나날이다. 목사 남편이 늦게 얻은 두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현실의 찬바람을 그대로 맞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곤궁한 일상을 버틸 힘을 새벽 기도와 철야 기도에서 얻었고, 밀려오는 세파에 무력해질 때면 금식 기도에 돌입하였다. 고통과 두려움, 현실의 벽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종교였다. (그렇다면 종교 중독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신앙인이 몇이나 되겠는가만. 어릴 적 내 이해심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중독이 가진 일반적 폐해에 더하여 '종교' 중독이 가진 치명적 해악이 하나 더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누가 봐도 나쁜 중독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중독 자체를 숨기거나, '난 그 정도는 아니야' 하며 깎아내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 중독의 행위들은 곧바로 종교적 자부심이 된다. 새벽 기도, 십일조, 주일성수 등의 행위가 신앙심의 유일한 지표라 착각하기에 치료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대표 선수는 바리새인들이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상처를 입히며 단절을 경험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갈망하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더는 숨길 수가 없다. 중독자의 가정에서 중독자가 나는 법이다. 상담실을 찾았던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봄이었고 그해 가을에는 수학여행이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없었던 일정인데 굳이 주일을 끼어 간다는 것이다.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못 간다' 결정했다. 우리 집 딸로 자란 내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불참의 이유가 주일성수라는 것을 아신 기독학생반 지도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주일에 숙소에서 예배하도록 하겠다며 긴 시간 나를 설득하셨다. 뭐라 답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가지 않겠다는 뜻만큼은 확고했다. 벌게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시던 선생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돌이켜 더듬어 보면, 속이 터지셨을 것이다. 내가 엄마와 대화하다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60대 권사님도 아니고 열여섯 청소년이었다! '하나님 뜻' 같은 조커가 나오면 게임이 끝났다는 것을 신앙인들은 다 안다. 더는 대화가 불가능한 지점, 주먹으로 이 불통의 벽을 쳐봐야 내 주먹만 아플 뿐인 그 답답한 지점.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는 주일 행사로 출근해야 한다기에 사직서를 썼다. 이 일로 동료들의 공분을 샀고 일종의 따돌림을 당했는데 (이제 와 생각하면) 부끄럽게도 나는 이것을 '의를 위해 받는 핍박'으로 온전히 기쁘게 여겼다. 이쯤 되면 청출어람이다. 엄마보다 더 강력해진 것이다. 엄마는 배움이 짧아서 자기 논리 같은 것을 내세울 수도 없었는데 나는 말과 글로 나를 포장하는 기술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종교 중독이란 개념을 온몸으로 알아듣고 엄마의 증상에 이름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병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종교 중독자로 나는 큰 좌절 없이 살아왔다. 오히려 칭찬과 보상을 누렸다. 결혼 후 수년이 지나 남편이 늦게 신학을 하고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 목사, 동생 목사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목회자 가족의 삶을 모르지 않았는데도 목회자 아내의 삶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익히 알고 있던 목회자들의 이중성이 더 또렷이 보였다. 말로는 기독교인이지만 돈을 믿거나, 아이의 대학 입시를 숭배하는 교인들. 그 욕망의 바다에 적당히 물 타기 하면서 자리보전하는 목사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아이를 조련하여 결국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고지에 세우고 "다 하나님이 하셨어요" 하는 교인들과 그걸로 간증을 시키는 목사.

익히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새롭게 견딜 수 없어졌다. "기도할게요", "축복합니다" 같은 교회 언어들은 듣기도 싫었다. 종교 중독자답게 연기는 또 잘하니까 겉으론 멀쩡히 교회 생활을 해냈지만 속은 하염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연기가 빛을 발할수록 내면의 빛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깜깜해지고 말았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깜깜하고 긴 터널이었다. 아침에 우울과 함께 눈을 떠 분노를 덮고 잠이 들었다. <해로운 신앙>(그리심)의 저자 스티븐 아터번과 잭 펠톤은 종교 중독의 진행 과정을 설명한다. 그중 말기 증상을 말하며 절망, 분노, 깊은 우울, 침체 등의 감정을 든다. 그렇다. 종교 중독 말기 증상이거나 어쩌면 금단현상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내가 죽겠다 싶었다. 은혜로 이해하는 대신 부조리를 부조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니 그 이전에도 찔끔찔끔 해 왔지만 스스로에게 허용했다. 과감하게 허용했다. (중독자인) 내가 아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며, 악인을 벌하시는 분이며, 약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하며, 해 아래 압박 있는 곳에 계셔서 그 팔로 막아 주시는 하나님이었다. 중독자 집단에서 한발 물러나 두 눈 뜨고 제대로 보니 도통 그런 하나님이 아니었다. 내 하루 일상에서도, 교회에선 물론, 사회, 국가 어디에서도 그분의 정의와 사랑의 흔적은 찾아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영혼의 빛이 꺼져 버린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 그런 밤이 밤낮없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영혼의 빛은 꺼졌으나 육신의 눈을 말짱하여 그나마 읽을 수 있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을 읽고, 아빌라의 데레사를 읽고, 헨리 나우웬, 리차드 로어, 제랄드 메이, 브래넌 매닝, 안셀름 그륀, 래리 크랩, 데이비드 베너, 칼 융을 읽었다. 이들 영성의 빛이 희미한 등대로 보였다. 잠깐 나타나 위안이 되었다 이내 사라지는 반딧불만 한 빛이 생겨났다. 거기 비춰 나의 실체를 보니 나는 종교 중독자였다. 잘 돌아가던 중독 시스템이 내 맘처럼 작동하지 않으니 화가 나고 서럽고 우울했던 것이다. 엄마에게 중교 중독 중증 환자라는 낙인을 찍고, 믿음 좋아 보이는 모든 사람을 밀어내고 혐오했던 것은 내 안의 중독자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중독 치료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AA(Alcoholics Anonymous: 무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 12단계 치료는 옳다. 그 1단계가 '나는 중독자입니다'의 인정이다.

'엄마는 중독자'라 이름했을 때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면 '나는 종교 중독자였다'고 인정할 때 무너졌다. 하늘이 무너졌고 그 믿음직하던 하늘과 함께 내 과거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엄청난 자부심으로 품고 다녔던 수학여행과 사직서의 경험은 내다 버릴 수도 없는 수치스러운 흉터가 되었다. 젊은 날 주일학교 교사로, 성가대 지휘로, 주보 편집자로, 리더 언니로 쏟았던 열정과 시간은 중독자의 병 짓에 지나지 않았다. 반딧불 하나로 밝혀지기 시작한 내 영혼의 실체를 아직도 확인해 가는 중이다. 10년째 확인 중이다. 나는 종교 중독자였고, 중독 치유 과정을 밟는 중이다. 치유는 더디게, 그러나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자부심이며 자랑이었던 '수학여행 포기자인 나'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어둠의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를 조금씩 받아 주기 시작할 때가 터널의 끝에 섰던 것 같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방향감각을 잃어 걷는 길에 확신이 없어졌다. 힘도 잃고 자신감도 잃었지만 아주 조금 자유로워진 것도 같다. 수포자(수학여행 포기자) 그 아이가 무슨 죄라고. 그 애를 추어올렸다, 바닥에 내팽개쳤다 했던 시간을 한발 더 물러서서 본다. 친구들 수학여행에서 불국사 단풍을 볼 시간에 텅 빈 교실에 앉아 부러움과 헛헛한 자부심을 부여잡고 외롭게 자습하던 아이가 가엾다. 혐오도 과장된 찬사도 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의 숙제이다. 그 아이와 화해하는 것이 지금의 나와 내 앞의 사람들과, 나의 하나님과의 화해이기 때문이다. '어구구, 그 나이에 대단했네.' 넉넉하게 안아 줄 날도 있으리라.

앞에서 언급한 <해로운 신앙>에서는 종교 중독자를 진단하는 지표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그 지표를 거울삼아 여러 통찰을 얻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마음, 특히 동기에 대해 더듬는 일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체크리스트 몇 항목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적 행위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사람의 열정적 행위가 하나님 사랑인지, 자기과시이거나 현실도피인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으랴. 여성 정신분석가인 카렌 호나이는 "사람들은 건강한 성격 발달과 성격장애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고 한다. 종교 중독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영성 발달과 중교 중독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인생의 높고 낮은 파도를 넘으며 그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균형점으로 오는 과정이 지난했고, 그 시간은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았지만 돌아보니 끝은 아니었다. <신앙, 집착에서 참열정으로> 에 이 지점을 잘 짚어 준다.

"똑같은 행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종교 중독 증세로 나타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의 발달 단계로 정상적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종교의 외적 권위에 의존하는 것은 종교 중독의 일반 증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믿음 발달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전형적 모습이기도 하다. 외적 권위에 일시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더 높은 단계로의 계속적인 성장을 위한 안정된 구조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므로 건강한 발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외적 권위에 대한 의존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것은 종교 중독의 징조가 될 수 있다."

삶의 모든 부조리와 내 어두운 내면의 실체를 섣불리 통제하거나 회피하려 할 때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중독자인 나'이다. 한때 중독자였고, 지금도 여전히 중독자라는 정체성은 나를 겸손하게 한다. 성찰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중독과 은혜>(IVP)를 쓴 제럴드 메이가 "중독을 인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영적 굶주림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중독은 일종의 은혜를 찾는 수단"이라고 하니 크게 위로가 된다. 원조 중독자 우리 엄마의 여전한 중독 행동을 고발하며 마칠까 한다.

어렸을 적에 저녁마다 가정 예배를 드렸다. 귀찮아서 죽을 것 같은 거룩한 낭비의 시간이었다. 머리가 커지고, 귀가 시간이 들쑥날쑥하니 서서히 사라진 가족 문화가 되었다. 가족 문화는 사라졌지만 엄마의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94세 엄마는 아직도 저녁 8시에 혼자 가정 예배를 드린다. 그 예배는 내 눈으로 확인한 기간만 50여 년이다. 맞는 돋보기를 찾을 수도 없는 눈이라 '읽기'를 포기하신 지 벌써 몇 년이다. 오직 기억에 의존하여 드리는 예배. 성경 찬송 없이 유배된 자처럼 외우고 있는 성경 구절 몇 개와 찬송가로 예배를 드린다.

저녁 8시 어간, 엄마에게 전화 걸다 '아, 예배' 하고 내려놓는다. 엄마의 그 예배, 그 예배를 배우고 내 것 삼았으며, 미워하고 반항하다, 화해해 가는 딸이다. 그 예배의 다른 이름은 '중독과 은혜'이다. 9시가 다 되어 내 휴대폰이 울린다. 중독이자 은혜의 90여 년을 살아온 신비로운 여인이 '중독과 은혜'의 의식을 마쳤다는 뜻이다.

정신실 작가가 '신앙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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