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루디아는 자색 옷감을 파는 여성 상인이다. 빌립보 지역에 사는 루디아는 전도 여행을 온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루디아는 집을 제공하는 등 바울과 실라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의 집은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고, 빌립보 교회 전신이 되었다.

임미숙 대표는 2005년 루디아(Lydia)에서 이름을 착안한 리디아알앤씨(Lydia R&C)를 세웠다. 중국에서 생산한 섬유제품을 유럽·미주·아시아 등에 수출했다. 옷감을 팔며 바울의 선교를 도운 루디아처럼 자신이 세운 회사가 하나님나라를 위한 도구로 쓰임 받길 원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 선교 사업도 병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성경이 말하는 오늘날 고아와 과부는 누구일까. 임 대표는 '청년'과 '경력 단절 여성'을 떠올렸다. 단군 이래 가장 높은 스펙을 지닌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서 10년간 청년부 부장을 맡은 임 대표는, 자신이 젊었을 때보다 실력이 뛰어나고 준비가 잘된 청년들이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청년들은 우리 사회가 받아 주지 않는 고아가 아닐까. 내가 먼저 이들을 받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임 대표는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주변 동료나 후배 여성을 보면, 학벌도 좋고 능력도 출중한데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회사를 관두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회사에 들어갈 때 결혼하면 사직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입사했다. 결혼이 죄가 아니지 않나.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이 많은 여성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스템의 문제다.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어 보자고 다짐했다."

리디아알앤씨 직원은 33명이다. 전체 직원 중 여성이 23명이고, 기혼 여성은 14명이다. 2016년에는 '경기 여성 고용 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여성만을 위한 특별한 복지 제도가 있는 건 아니다. 임 대표는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제도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을 뿐 특별히 챙겨 주는 게 없다고 했다.

임미숙 대표는 청년, 경력 단절 여성과 함께 기업을 이끌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임미숙 대표를 8월 2일 일산에 있는 리디아알앤씨 사옥에서 만났다. 임 대표는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돌며 회사 곳곳을 소개했다.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최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근무하고 있었다. 벽에는 워크숍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팀별 목표와 과제가 붙어 있었다. 꼭대기 층에는 직원들이 가끔씩 바비큐 파티를 여는 루프탑이 있었다. 음향 시설과 조명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인근에 있는 교회가 이곳에서 여름 성경 학교를 진행했다.

임 대표는 성경에 나온 가치대로 회사를 운영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독 경영인이 꼭 기독교 기업을 표방하며 매주 월요일 예배하고 성경 공부 모임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남들처럼 뒷돈을 주거나 직원들을 마구 해고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임 대표는 잘못된 업계 관행을 따르지 않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회사를 경영하는 일이 기독 경영인의 사명이자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상고 출신 여성, 무역 전문가로 성장
중국 시장 개척 위해 퇴사 후 대학 진학

임미숙 대표는 1985년 상고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 취직했다. 지금은 무역 전문가로 대성했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임 대표에게 무역에 특별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다. 모태신앙인 그는 당시 하나님께 비전을 허락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하나님이 꿈속에 나타나 계시를 준다거나 마음속에 불을 내리는 일을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일을 하면서 삼각무역에 눈을 뜨게 됐다. 당시 삼성물산은 홍콩·일본 등에 있는 해외 법인을 통해 중국·베트남과 무역을 하고 있었다.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국이었다. 임 대표는 군사정권이 집권하고 있던 서슬 퍼런 시대에 수교국이 아닌 공산국과 거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군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을 잡아가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삼각무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중국은 무역 시장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였다. 임 대표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저렴하고 질 좋은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면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사내 어학 강좌를 신청했는데, 회사가 이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영어, 일본어는 전 직원이 무료로 들을 수 있었지만, 중국어는 인기가 높아 대졸 남성만 들을 수 있었다. 임 대표는 회사를 관두고 대학에 진학했다.

임 대표는 1992년 홍콩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무역중개상으로 일했다. 8년간 무역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영어와 중국어를 모두 구사하는, 중국 시장을 잘 아는 한국에 몇 안 되는 '중국통'으로 성장했다. 2000년에는 자신의 영어 이름 '리디아'를 따서 리디아무역을 차렸다. 중국에서 생산한 섬유제품을 유럽 시장에 수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독일 홈쇼핑 QVC에 초극세사 침구를 공급해 연간 2000만 불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리디아무역과 스콜로스헬렌스타인코리아를 합병해 리디아알앤씨를 설립했다.

리디아알앤씨는 현재 동종 업계에서 매출액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유망 중소기업이다. 평균 연간 매출액은 130억 원이고, 지난해는 매출 목표 180억 원을 거의 달성했다. 리디아알앤씨가 내놓은 브랜드로는 헬렌스타인과 블레스네이처가 있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판매만 주력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별도 해외 법인을 만들어 백화점 11곳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리디아알앤씨 사옥. 헬렌스타인(HELLENSTEIN)은 임미숙 대표가 2002년 국내에 출시한 고급 침구 브랜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직원이 사장 되길 꿈꾸는 기업
직무별·직급별 사내 교육 강조

리디아알앤씨는 일반 중소기업보다 많은 비용을 직원에게 투자하고 있다. 직원의 능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며, 기업과 직원의 동반 성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자체 교육 시스템이 없다. 신입을 채용해 조금만 가르치면 금방 이직하니까 주로 경력직만 뽑는다. 청년들이 대기업에만 지원하는 걸 뭐라고 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회사는 직원들 역량을 기르기 위해 매달 사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직원들끼리 직무별로 조를 구성해 학습활동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조는 2개월간 섬유를 공부하고 다른 조는 갈등 관리를 배우는 식이다. 조원들이 무엇을 공부할지 스스로 정한다. 팀장급 직원들에게는 MBA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임 대표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직원들이 언젠가 독립해 대표이사가 되어 자신만의 회사를 경영하길 바라고 있다.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공부하지 않으면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왕년에' 라고 말하며 과거 경험을 근거로 사고하는 사람은, 학습이 '왕년에'에 멈춰 있는 사람이다. 배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걸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걸 개인 책임으로 돌려야 할까. 회사도 책임이 있다.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역량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신입 사원을 뽑을 때는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 학교, 성적, 자격증 등은 채용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일하려는 의지와 배우려는 욕구만 있으면 된다. 신입 사원은 3개월간 수습 기간을 거쳐서 정직원이 되는데, 이 기간에는 회사가 지정한 필독서를 읽고, 기업의 핵심 가치, 인성 및 직무 교육을 받는다. 수습 기간이 끝나면 신입 사원은 전 직원 앞에서 3개월간 수행했던 과제를 발표하고, 전 직원이 투표로 채용을 결정한다.

임 대표는 "수습 기간이 신입 사원과 회사가 서로 유연하게 알아 가는 데이트 단계라면, 그 다음부터는 결혼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전 직원이 투표로 채용을 결정하는 건, 이들이 신입 사원을 동료로서 받아들이는 하나의 의식이다"고 말했다.

리디아알앤씨에는 여성 직원이 많다. 실제로 인터뷰하러 갔을 때 사무실에는 남자 직원이 2명밖에 없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리디아알앤씨는 고급 침구 브랜드 '헬렌스타인'과 유기농 아동복 및 완구 '블레스네이처'를 선보이고 있다. 사무실 한쪽에 걸려 있는 제품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여성이 일하기 편한 회사
"근로기준법만 준수해도 충분"

리디아알앤씨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이 많다는 점이다. 회사는 창업 초기 특별히 일산에 거주하는 경력 단절 여성을 채용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임 대표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구조와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주력했다. 자녀를 둔 직원은 아이를 등원하고 올 수 있도록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했다. 직원들은 하루 7시간 30분만 근무하면 된다. 금요일 오후 4시가 되면 대다수 직원이 퇴근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연차도 근로기준법에 나와 있는 대로 준수하고 있다.

"특별히 복지라고 할 게 없다. 법이 보장하고 있는 제도를 제대로 따를 수 있으면 충분하다. 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면 누구나 반차를 쓸 수 있다. 직원들이 서로 이해하며 백업을 해 주는 분위기다. 그래야 자신도 언젠가 급한 일이 생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기독 경영인이라면 엄격한 경영 윤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가정과 기업도 하나님나라
기독교인, 세상에서 인정받아야"

임미숙 대표는 많은 기독교인이 이원론적인 사고로 교회를 직장이나 가정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도 하나님나라라며, 이곳에서 기독교인들이 빛과 소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기독 경영인들이 엄격한 경영 윤리를 갖고 회사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 지켜보고 있지 않나. 기독교 기업이라고 내세우며 굳이 회사에서 신우회 만들고 사목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성경의 가치대로 회사를 운영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에서 기독교인은 절반도 안 된다. 신앙을 가진 직원은 동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바르게 일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꼭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의를 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교회에서 인정받는 데 너무 몰입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주일은 7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중 주일에만 너무 집중한다. 하나님은 7일 모두 똑같이 창조하셨다. 어떻게 보면 평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좋겠다.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봤을 때 정말 예수님 믿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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