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퍼포먼스'에 참여했다가 징계를 받은 오세찬 씨가 자퇴서를 제출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자퇴서를 제출했습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목회자 길을 걷던 신학생이 자퇴서를 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임성빈 총장) 신학대학원 1학년 오세찬 씨는 '무지개 퍼포먼스'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사회봉사 100시간, 교수 면담 2회 이상, 반성문 제출'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징계가 부당하다고 느낀 오 씨는 통보받은 7월 26일 당일, 자퇴서를 제출했다.

오세찬 씨는 7월 31일 페이스북에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을 올렸다. 징계 철회 요청과 함께 성소수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표했다.

"징계를 철회해 주십시오. 학생으로서 자유로이 공부할 수 있고 치열하게 학문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당면한 그리고 당면할 세상과 문제들은 '결의를 따름'으로 해결될 만큼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습니다. (중략) 

우리 장신 공동체에 있는 성소수자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위로와 화해의 의도였다 한들 저의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계실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살아 내 주십시오."

'무지개 퍼포먼스'는 오세찬 씨가 처음 제안했다. 8월 1일 기자를 만난 오 씨는 주위에 있을지 모를 성소수자들을 위해 '혐오 반대' 행동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피케팅을 할 계획이었지만, 동아리 담당 교수의 제안에 따라 피케팅은 하지 않았다. 대신 예년처럼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채플에 임했다. 무슨 행사를 한 것도 아니었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다. 채플이 끝난 후 기념사진 한 장 찍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기념사진이 외부에 공개되면서 학교 안팎으로 논란이 일었다. 교단 내 반동성애 목사·장로들이 압박했고, 학교는 학생들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오 씨는 두 번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딱히 잘못을 저지른 게 없으니, 당연히 징계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무엇보다 "학교는 학생들을 보호하려 한다"는 교수들 이야기에 안심했다.

예상과 달리 징계가 떨어졌다. 오 씨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책임은 퍼포먼스를 제안한 내가 지겠다. 대신 다른 학생들의 징계를 철회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청했다. 오 씨는 조사를 받는 두 달 동안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용기도 잃었다고 했다. 그는 "무지막지한 교단의 벽을 마주하니까, 쉽게 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주위에서는 오 씨의 자퇴를 만류했다. "일단 태풍은 피해야지 않겠냐"며 설득했다. 그러나 오 씨는 "먼 훗날이 아닌 지금의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하다. '과정'이 결과와 비슷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작은 공동체 세우는 게 꿈
징계 철회 안 되면, 진로 바뀔 수도
"성소수자 신앙인 존재 지우면 안 돼"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족도 덩달아 괴로워했다. 오세찬 씨는 부모님 서원과 '사람을 위한 사람이 되겠다'는 자신의 소명을 가지고 목사가 되기로 했다. 목사가 되면 작은 공동체를 꾸리고 싶었다. 누군가의 땀으로 먹고사는 목회자가 아니라, 생계와 목회를 병행하고 싶었다. 서로의 곁을 지켜 주되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공동체를 꿈꿨다.

군목 시험에 합격했을 때 목사인 아버지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러나 오 씨가 무지개 퍼포먼스로 학교 조사를 받게 되자, 아버지와 매일 대립했다. 아버지는 학교 입장에 섰다.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니 따르라고 권면했다.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교단 관계자들은 "아들이 사과문이나 입장문을 써야 살 수 있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오 씨는 상처를 받았다.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신앙의 양심을 부정하는 사과문과 입장문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장신대 측은 학생 징계와 관련해 "교단의 눈치를 본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오세찬 씨는 자기 정체성을 숨기고 신앙생활하는 성소수자들이 눈에 밟힌다고 말했다. 분명 우리 주위에 성소수자 신앙인이 있는데, 교단과 학교가 그들의 존재를 지우려 한다고 했다. 오 씨는 이야기를 하며 순간 울컥했다.

"오늘(8월 1일) 아침 예장통합 교단 성소수자 교인이 연락을 해 왔다. '성소수자 모태신앙인입니다'라는 문자를 보고 감정이 북받쳤다. 지금 우리 교단 안에서 도저히 통용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장이 아닌가. 자기 존재를 숨기며 예수의 사랑을 지켜 가는 게 대단해 보이면서도, 너무 아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특정인들의 결의에 따라 누군가가 아파하거나 존재에 대한 부정을 느낀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데서 목사를 하는 게 뭔 의미가 있을까 싶다. 목사는 주변의 나그네와 함께해야 하는데 우리 교단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 씨는 학교의 징계가 부당하다고 거듭 말했다. 자신의 자퇴 유무와 상관없이 나머지 학생들에 대한 징계가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 기어이 죄목을 부과해서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이대로 넘어가면 외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장신대의 퇴보를 불러올 것이다."

아직 오세찬 씨의 자퇴서는 수리되지 않았다. "조속히 처리해 달라"는 오 씨의 요청에 대해, 신학대학원장 홍인종 교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한 상태다. 만약 자퇴서가 수리되면 오 씨는 생각했던 삶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 씨에게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신학생이자 군목 후보생으로서 손에 쥔 것은 하나도 없다. 내 몸 하나 보전하자고 불의에 침묵하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일에 순응한다면 나중에 어떤 목사가 되겠는가."

학교 "교단 눈치 본 것 아냐
교육 차원에서 학생 지도 중"

<뉴스앤조이>는 학생 징계 건과 관련해, 장신대 임성빈 총장과 신정 이사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신학대학원장 및 징계위원장 홍인종 교수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한 학교 관계자는 "징계 철회 가능성에 대해 확답하기 어렵다. 당사자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교육적 차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나가고 있다. 학교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교단이나 누구의 눈치를 본 게 아니다. 학교 본연의 모습으로 학생들을 교육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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