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면서

6월 중순, 언론을 통해 알려진 예멘 난민 소식은 난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새롭게 했다. 문제를 촉발한 것은 정부의 두 가지 조치였다. 제주도에 상륙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은 4월 30일 '출도 제한'이라는 생경한 국가의 법적 조치로 제주도를 떠날 수 없게 됐고, 6월 1일 예멘 난민들의 한국 입국 자체도 금지됐다. 이는 세인의 주목을 끌었으며,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언론 정보를 통해서는 근본적인 답을 얻기가 힘들었던 필자는 해외 언론에서 예멘의 실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필자가 접한 영상은 독일 공영방송에 방영된 것이었다. 프랑스 기자와 유엔 직원이 예멘에 들어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현지 상황을 1시간가량 보도했다. 이 영상을 보면서 국내 언론의 보도와 가짜 뉴스를 통해 예멘 난민에 대한 정보가 많이 왜곡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멘의 실상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난민 수용에 반대하고 난민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 글에 동의한 사람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수십 만 명이 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혼란을 느꼈다. 청원으로 정부를 압박하려는 움직임이 일탈한 개신교 세력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곤혹스러웠다. 이것이 성서의 정신이나 기독교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제를 느끼며 예멘 난민들 실상을 바로 알리고 이들을 돕고자 긴급 행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러한 행동에 마음을 같이하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한 달가량 모금한 디아코니아 헌물을 제주이주민센터, 대책위원회, 예멘인들을 돌보는 처소에 제공할 수 있었다.

이 글은 갑작스러운 예멘 난민 사건을 보면서, 향후 한국교회가 난민과 이주민에 대해 어떤 방향과 전망을 세울 수 있을지 정리한 것이다. 예멘의 실상과 세계 난민 문제,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독일 개신교의 디아코니아를 설명하고, 한국의 현재 난민 상황과 문제점, 난민을 향한 한국교회의 디아코니아적 책임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15년 독일에 방문했을 때 난민센터로부터 난민 상황에 대해 소개를 받았다. 사진 제공 홍주민

II. 예멘 상황과 한국에 온 예멘인

'중동의 방글라데시'라 불리는 예멘은 대표적인 저개발국이다. 인간 개발 지수는 세계 174개국 중 148위, 인구 성장률은 1870만 명으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극심한 빈곤으로 보건, 교육, 의식주 문제가 심각하며 국민소득은 2017년 449달러에 그치고 있다. 영아 사망률은 15~31%인데다 산모 사망률은 매우 높아 9명당 1명이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사망자의 30%가 감염 예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결핵과 말라리아가 만연해 있고 열악한 의료 장비와 약품 부족으로 1~2차 진료가 극히 부실하다.

예멘은 1990년대 후반부터 내전이 시작됐다. 2014년 9월 '후티'라는 시아파(종주국 이란) 반군이 수도를 점령하고, 남쪽 지역으로 수니파(종주국 시리아) 정부를 내몰면서 내전이 본격화했다. 2014년 예멘 내전 발발 이래 사우디 주도 연합군은 병원, 보건소, 산업 시설 전반을 공습하고 파괴해 전면 봉쇄시켰으며, 예멘 인구 78%가 마실 물조차 확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인구 70%에 해당하는 2000만 명이 식량 부족 가운데 있고, 자국을 떠난 이가 19만 명에 달한다.

정치적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튀니지·이집트·리비아·시리아의 바람이 예멘에도 이어졌다. 33년간 독재해 온 독재자 살레 정권이 붕괴하고 하디 정권이 등장하여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예멘의 옛 독재 정권을 비호하던 미국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면서 비극이 확산됐다. 2015년 3월부터 2년간 1만 3600여 명이 예멘에서 사망했다. 기근으로 굶어 죽은 사람만 5만 명을 웃돈다.

지금의 예멘 상황은 초국적 군수물자 카르텔의 담합과 열강의 패권 다툼으로부터 기인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군사협정을 맺고 있는 아랍에미리트도 사우디아라비아와 합세해 예멘 내전에 가담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180억 원 상당의 탄약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에 반출했던 것이 김종대 정의당 의원 폭로로 밝혀지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현재 난민 사태 발생에 대한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다.

제주에 있는 예멘인들은 대부분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를 통해 왔다. 말레이시아에는 현재 난민이 15만 7580명이 있는데, 그중 예멘인은 2830명이라고 한다. 특이한 점은 이들의 범죄율이 0%라는 것이다. 이주민은 아무 데나 옮겨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진지하게 새 삶을 모색하는 이들이다. 상당한 규모의 이동에는 반드시 역사적·정치적 이유가 있다. 특히 난민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 확산되는 예멘인들과 무슬림을 향한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폄훼는 거짓 정보다. 마녀사냥을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6월 말 이후 제주를 방문해 예멘인들과 숙식하면서 대화를 많이 했다. 성서 속 이름(예를 들어, 이스마엘)을 가진 청년이 많았는데, 만나면서 '다름'과의 차이는 단지 '새로움'을 향한 창조적 만남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특히 가짜 뉴스를 통해 확산되는 이슬람포비아 내지 혐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예의 바르고 수줍음을 잘 타며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향한 애잔한 마음이 절절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강대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에서 나라가 초토화한 것에 대한 황망한 마음을 설명하는 예멘인들을 통해 예멘 상황이 한반도 운명과도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호 세대인 스물 어간의 예멘인들과의 만남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어찌 이토록 어린 나이에 세계를 유랑하는 난민 신세가 되어 아시아의 끝자락까지 밀려왔는가.

제주로 온 난민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었다. 사진 제공 홍주민

III. 세계의 이주 문제와 난민 상황

이주민은 출생국이 아닌 지역에서 12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으로 2억 5770만 명에 이른다. 세계 인구의 3.4%다. 수십 년 동안 3% 안팎에 머물던 이 비율은 최근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다. 이주민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4980만 명)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독일(각각 1220만), 러시아(1170만), 영국(880만)이 그 다음이다. 이 다섯 나라가 지구촌 이주민의 40% 가까이 차지한다. 이들 외 미국에는 1130만 명, 유럽에는 800만 명의 불법체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이주민 중 난민은 10% 정도인 2540만 명이다. 난민은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아 국적국 밖에 거주하는 사람"(유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다. 넓은 의미의 난민인 강제 이주자는 이들에다 비호 신청자, 귀환민, 국내 실향민 등을 더해야 한다. 모두 합치면 6850만 명이다. 2차 대전 때(5000만 명)보다 많은 사상 최대 규모다.

난민은 1980년대부터 늘고 있다. 70% 이상이 6개 나라에서 발생했다. 시리아·아프가니스탄·남수단·미얀마·소말리아와 유엔이 별도 관리하는 팔레스타인이다. 최대 난민 배출국은 8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다. 팔레스타인(500만)보다 난민이 많고(600만), 국내 실향민도 600만 명이나 된다.

왜 이주와 난민 상황이 계속해서 전개되는가. 서구 나라들은 중동·아프리카·중남미 나라들을 지배하면서 착취하고, 국내 모순을 이들 나라에 전가해 왔다. 이 지역 나라들은 한편으로는 저항하고 한편으로는 협력했다. 냉전 시절이었다면 이곳 젊은이들은 반군이 되거나 서구 나라를 본떠 조국의 근대화를 꿈꿨을 것이다. 독립 이후 수십 년이 지났으나, 이들 나라의 발전 수준은 여전히 서구에 비해 낮다. 세계화 시대인 지금 이들은 계속되는 국내 갈등과 혼란에 좌절해 자의 반 타의 반 서구로 향한다.

예멘은 지금 3년 반이 넘도록 내전을 치르고 있다. 전체 2900만 예멘 인구 3/4에 해당하는 2200만 명이 원조와 보호가 필요한 상태다. 100만 명이 콜레라에 감염됐고, 전투로 1만 명이 피살됐으며, 4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날마다 평균 130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는 예멘 상황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humanitarian crisis)라고 말한다. 지금 예멘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옥에 가까운 나라"로 불린다. 유엔난민기구 한국 대표부는, 이런 상황에 처한 예멘 난민들을 송환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결단코 정의롭지 않은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IV. 독일 개신교 디아코니아의 난민 수용

예멘 난민 사태를 접하며 필자는 독일에서 유학할 때 10여 년간 이주 노동자로 살았던 기억을 소환하게 됐다. 한국에 와서 서울, 성남 그리고 진천에서 했던 이주민 관련 디아코니아 실천 5년여를 소급해 보면서 난민에 대한 고민을 집중적으로 하게 됐다. 독일 인구 8175만 중 이주 경험이 있는 독일인은 22.5%(1860만)다. 이 중 터키인이 280만으로 가장 많고 종교적으로는 무슬림이 470만(5.1%)이다. 기독교인이 58%라는 것과 비교하면, 무슬림은 1/10인 셈이다. 그중 난민은 140만여 명이다. 특히 프랑크푸르트에는 인구 40% 이상이 이주 경험을 한 사람들이고, 이들 중 24.3%가 이주민이다.

세계 난민 러시 이후, 2015년 이래 독일에 난민 신청자 120만여 명이 입국했다. 필자는 그 해 여름 유럽 다문화 도시 벤치마킹이라는 주제로 다문화분과 공무원 7명과 유럽을 방문하면서, 당시 하이델베르크 난민 수용소를 방문했다. 독일은 순발력 있는 대처로 무난히 사태를 넘긴 상황이었다. 특히 독일 개신교 디아코니아가 적극 개입해 난민 수용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이델베르크의 경우, 디아코니아가 3000명을 수용하여 보호하고 있었다. 예전에 미군 부대였던 곳을 숙소로 사용했다. 난민 심사를 받는 6개월 정도를 이곳에 머물면서 여러 복지 혜택을 받기도 하고 건강검진이나 언어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후 난민 심사를 마치면 도시의 여러 섹터에 그룹별로 정착하는 기간을 보낸 다음, 일자리와 함께 사회에 완전히 통합된다. 이러한 거대한 위기 상황에 민과 관이 협력해 나가면서 이뤄지는 민의 자원봉사나 명예직의 연대 행동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 결과 당시 입국한 난민 중 90만여 명이 일을 하면서 독일에 정착하고 있다.

제주 예멘 난민들과 한국인들의 축구 경기. 사진 제공 홍주민

V. 정리: 제주 상황과 교회의 디아코니아 책임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고 분단국가이기에 이주민들이 접근하는 것이 대륙의 상황과 다르다. 하여 이주민 유입은 아주 근래에 본격화했고 이주민과의 경험도 일천하다. 난민이라는 특수한 처지에 있는 이들과의 경험이나 접촉은 더욱 그러하다. 이런 이유로 이번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신청자 문제는 전에 없던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하지만 어쩌면 예멘 난민 문제를 평화 프로세스로 가는 한반도 현실에서 세계 문제의 선험적 학습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몇 가지 문제점과 전망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해 본다.

제주도에 난민 신청을 하러 온 사람들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2013년 1명, 2015년 227명, 2016년 295명, 2017년 312명, 2018년 현재 1055명으로, 예멘인 549명, 중국인 353명, 인도인 96명이다. 특히 예멘인들 중 남성은 504명, 여성은 45명이다. 문제가 된 것은 2017년 제주도가 무비자로 입국 가능하게 한 후, 이번에 들어온 예멘인들에 대해 특별한 조처를 내린 부분이다. 한국은 1951년 한국전쟁을 통해 생긴 600만 명의 난민 문제로 생긴 유엔 난민 협약에 1992년 가입했고,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법으로 정한 난민법이 문제가 됐다. 부끄러운 일은 199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만 2733명이 신청해, 겨우 792명(2.4%)이 난민 지위를 얻었다. 유엔 난민 협약 가입국 전체 난민 인정률(34.4%)의 1/10도 되지 않는다.

이번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들 중 난민으로 인정받거나 인도적 체류 허가로 보호받게 되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 대부분 소송을 진행하는 지난한 세월을 견뎌 내는 삶을 이어 가야 한다. 처절한 난민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으로, 혐오와 배제의 기류도 있지만 환대와 공감의 기류도 있다는 점을 확인한다. 일례로 한국디아코니아는 난민 디아코니아 직접 행동으로 기부금을 모아 숙식 제공에 일조해 왔고, 전문성을 가진 이주민센터와 대책위원회의 도움과 개별적 도움 행동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도움 체계를 선진국 독일과 비교했을 때 여러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결핍 요인을 따지면, 특히 난민 위기 발생 시 정부와 지자체의 구체적 대책 결여와 보충 원리에 의한 민관 협력의 부재 등을 들 수 있는데, 극복해야 할 핵심 문제라 여겨진다. 또한 언론 보도와 가짜 뉴스를 통해서 난민에 향해 갖게 된 인식의 혼란은 국제사회의 약속과 대한민국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 특히 일탈한 개신교 일부 세력의 이슬람 종교를 향한 망발은 세계 종교의 보편성을 심히 왜곡하고 평화와 화해의 문화를 손상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러한 언론 보도와 가짜 뉴스 유포, 일탈한 종교 근본주의에는 적절한 방지책이 필요하다.

붕괴, 새로운 출발이라는 기치로 지난날 적폐를 청산하고 새롭게 역사를 써 나가는 오늘, 사회의 가장 낮은 이들을 향한 근본적 대안을 세워 나가는 일은 선결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에 대한 인식 조정은 공감·평화·화해에 대한 소통 능력과 소통 의지를 학습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는 대한민국을 연대 국가와 안전 국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초석이다. 시민사회의 의식이 교육과 학습을 통해 사회 저변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성과주의나 관료주의에 기댄 지난날의 구태를 벗어나는 중요한 전기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마태복음 25장 최후의심판 비유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명토 박는다. "주님, 언제 나그네로 우리에게 오셨습니까?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이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갈 것이다."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 속에 있다. 죽음의 능선을 지나 겨우 생존의 구명보트에 매달려 이 땅에 온 난민 신세에 놓인 예멘인들을 추방하고 다시는 받아들이지 말자는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교회에 구원은 없다. 한국 개신교의 시계가 지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근본적인 물음이 절박한 때이다. 난민들을 추방하는 일,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시도는 기독교회임을 포기하는 심각한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홍주민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디아코니아학 디플롬(Dip.Diakoniewissenschaftler) 및 신학 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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