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를 혐오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이단 사상을 추종하는 것과 다름없고 성경적이지도 않다고 몰아세운다. 적어도 우리 교단에서는 그렇다. 마치 신 사상 검열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최기학 총회장) 소속 A 목사는 교단 안에 불어닥친 반동성애 '광풍'에 우려를 쏟아 냈다. 멀쩡하던 교단이 한순간에 반동성애에 취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힘없는 신학생들을 옥죄고, 교단에서 제일 큰 신학교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 찬반이 신앙의 기준이 됐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다른 이슈와 달리 반동성애 광풍은 악성종양처럼 빠른 속도로 예장통합 안에 퍼지고 있다. 반동성애 광풍은 교단 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교계 최대 이슈였던 명성교회 세습과 서울동남노회 선거는 말 그대로 '묻혔다'. 예장통합 총회가 역점을 두고 1년간 진행해 온 '마을 목회' 또한 마찬가지다. 굵직한 총회 행사마다 동성애 반대 강연만 이어지고 있다.

반동성애 광풍은 총회 동성애대책위원장 고만호 목사(여수은파교회)와 함해노회가 중심이 돼 이끌고 있다. 소수가 주도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제지하지 못한다.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연구와 토론을 해 보자는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한때 비슷한 취지로 목소리를 냈던 소신파들은 "아직 때가 아니다"며 몸을 사리고 있다.

어수선한 시기, 총회 정치와 담을 쌓고 지내 온 이근복 목사(64·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가 반동성애 광풍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 목사는 청년 시절, 공장노동자들을 위해 야학 운동을 전개했다.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뒤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 총무를 지냈다.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 2015년부터 진보 개신교계에서 유서가 깊은 크리스챤아카데미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근복 목사는 "특정 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단 내 반동성애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소수가 주도하고 있지만, 예민한 문제를 가지고 뒤흔들다 보니 선뜻 제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반동성애 운동이 과열될수록 교회와 총회에 혼란만 가중할 것으로 봤다. 지금의 반대 운동은 설득력도 없고,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서 지탄만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소수가 '빨갱이', '종북 좌파'의 뒤를 이은 '동성애' 프레임을 이용해 교단을 어지럽히고 있다. 연구와 토론은 없고 무조건 반대만 외친다. 상대적으로 명성교회 세습 등 교단 내 중요한 문제들이 묻히고 있다"고 했다.

이근복 목사와의 인터뷰는 7월 24일 크리스챤아카데미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예민한 주제임에도 이 목사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이근복 목사는 예장통합에 부는 '반동성애 광풍'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별안간 등장한 동성애
"소수가 정치 위해 이용,
반동성애 운동 '설득력' 없어
'미투 운동', '성 문란' 관심 가져야"

- 예장통합이 '동성애' 이슈로 뜨겁다. 말 그대로 광풍이 부는 듯하다.

과거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을 보는 듯하다. 다수가 반동성애 운동에 참여하는 건 아니고, 소수가 떠들고 있다. 지금까지 총회가 동성애로 시끄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우리 교단에 동성애를 조직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고 본다. 평화의 시대에 '종북 좌파' 프레임이 안 먹히니까,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동성애를 들고 나왔다고 본다. 동성애자들을 낙인찍고 몰아가는 것이다. 일부 목회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얹혀 가고 있다.

합리적으로 동성애를 연구하고 조사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몰아붙인다. 설득력도 없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한국교회에 혼란만 주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죽느냐 사느냐 위기에 놓여 있다. 동성애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사회적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서 이런 운동을 하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응밖에 안 나온다. 결과적으로 교회를 위축하고, 선교하는 데 지장을 준다고 본다.

사회적으로는 동성애보다 '미투 운동'이나, '성 문란'이 더 심각하다. 이런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지, 동성애만 다루려 해서는 안 된다. 입지만 좁아질 뿐이다.

- 지난해 총회의 동성애 결의(신학교 입학 제한 등)는 시작에 불과한 듯하다. 동성애를 지지하면 이단으로 간주하고, '목사 고시'도 못 보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해 102회 총회의 동성애 관련 결의는 느닷없이 진행됐다. 동성애 문제는 기타 토의로 넘겨 진지한 토론을 거쳤어야 했는데, 분위기에 휩쓸리고 말았다. 일단 총회가 결의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본다. 총회에 동성애대책위원회가 있으니, 대책위를 중심으로 합리적·상식적으로 접근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특정 노회의 일부 목사들이 사설 단체를 만들어 독자 행보를 하고 있다. 최근 전국 장로 수련회에 가서 장신대 총장 징계를 위한 서명을 받고, 무지개 퍼포먼스를 한 학생들 모습이 담긴 플래카드를 설치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일탈 행위, 총회 질서를 허무는 행위다. 오히려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은 "성경이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남색'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남자는 동성애 하면 안 되고 여자는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동성애에 관련한 성경 구절에 대해 신학자들도 입장 차이를 보인다. 성서에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과 맥락을 잘 살펴본 다음 토론하면서 정리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혼란이 없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혐오와 배제, 증오를 부추기면 안 된다. (최기학) 총회장도 동성애자들을 사랑하고 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회적 차원에서 그들을 어떻게 돌볼지 고민해야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

막말로 동성애 없애고, 동성애자들을 싹쓸이한다고 치자. 그런다고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달라질까. 그들이 바라는 것처럼, 교인과 헌금이 늘어나고 젊은이들이 물밀 듯 교회를 찾아올까.

동성애는 예민한 문제다. 다만 상식선에서 접근해야 한다. 선천적으로 동성애를 안고 태어난 경우도 있다. 이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처럼 공격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격하고 혐오할수록 대항 세력만 늘어날 것이다.

보수 개신교는 7월 14일, 퀴어 문화 축제 '맞불 집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교계는 퀴어 문화 축제에 맞서 해마다 맞불 집회도 열고 있다. 올해 퀴어 문화 축제 반대 국민대회 대회장은 예장통합 총회장이었다.

다양성 차원에서 (맞불 집회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인 입장, 양심에 따라서 얼마든지 찬반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성숙한 사회라면 (반대도) 인정해 줘야 한다. 다만 '가짜 뉴스'를 만들어 퍼뜨리거나, 폭력 등 물리적 방법을 동원하는 건 문제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무지개 퍼포먼스를 한 장신대 학생들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공식 행사를 한 것도 아니고, 채플 끝나고 사진 한 장 찍은 게 전부인데 너무 과하게 대응하지 않나 싶다. 학교는 학문의 전당이다. 누구든지 입장을 표명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면 공개 토론 등을 통해 해결하면 될 일을, 징계 절차를 밟는다는 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만일 평상시 같았으면 권면하고 조용히 끝났을 텐데, 외부에서 하도 떠드니까 학교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신대 교수 중 명성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공격한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총장도 징계하라고 주장하던데, 절대 그럴 만한 사안이 아니다.

- 목사님이 신대원에 다닐 적에는 이와 유사한 일은 없었나.

1980년대에 신대원을 다녔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었다.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에는 서로 대화하고 의견을 나눴다. 각자의 입장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

학교는 배우는 공간이다. 가능하면 나눔, 섬김, 사랑 등 신앙적 가치가 더욱 강조돼야 하고 공감, 소통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열띤 토론 문화도 필요하다. 신학교에 이런 풍토가 조성되지 않으면, 신학생들은 목회 철학 없이 현장으로 나오게 된다. 양적 성장을 좇는 목회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장신대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임성빈 총장의 서신을 두고도 말이 많다.

교단 직영 신학교이다 보니 총회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다. 궁여지책으로 서신을 발표했을 것이다. 특정 세력이 비상식적으로 학교를 흔들어 대고 있으니까. 장신대를 공격하는 단체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학문의 전당이 흔들리면 결과적으로 교단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학교를 공격하면, 교수와 총장이 위축될 것이고 학생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이다. 틀에 박힌 신학을 배워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게 나오면 교회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명성교회 세습 철회 목회자 대회 준비 중
"세습금지법 어겼으니 응당 처벌해야,
교회 크다고 법 무시하면 총회 권위 상실"

이 목사는,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도부터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동성애 이슈가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명성교회 부자 세습 문제가 관심에서 밀려난 느낌이다. 8월에 김하나 목사 위임목사 청빙 무효 소송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8월 7일로 예정된 선고를 총회 재판국이 미룰 수도 있다고 본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총회에서 이슈가 될 것이다. 총회에서 이슈가 되면 명성교회는 여러모로 불리할 수 있다. 조용히 세습금지법 개정을 시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문제가 묻히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나는 지금 '명성교회 세습 철회를 위한 예장 목회자 대회' 준비실무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회는 9월 3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한다. 1000명 정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한다.

- 일각에서는 "김하나 목사기 이미 시무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주장하는데.

명성교회 측에서는 김삼환 목사가 이미 은퇴했기 때문에 세습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은퇴했든 안 했든 '세습'한 게 맞고, 총회 법을 어긴 게 분명하다. 자꾸 꼼수를 부리려고 한다. 법을 어겼으면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총회 기강이 세워진다. 교회가 크다고 총회 법을 안 지키면, 총회는 권위를 상실한다. 노회와 지교회도 지도할 수 없게 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교회는 위기 상황이다.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교회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사회는 급변하는데 교회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상식적·합리적으로 바뀌기만 해도 "교회답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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