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가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받게 해 주세요."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한 중학생이 7월 11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국민 청원(바로 가기)이 언론을 타면서 전국에 알려졌다. 7살 때 한국에 온 이란인 친구가 올해 5월 대법원 판결로 본국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는 내용이다. 그는 친구가 한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이란으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수 있다며 친구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글의 주인공 이란인 알리(가명·15)는 2010년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왔다. 이듬해 8살 때부터 알리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알리의 부모와 친척들은 모두 무슬림이었지만, 알리는 한 번도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슬람은 어른들의 종교일 뿐이었다.

이란은 이슬람권 국가 중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시아파 맹주국이다. 법적으로 개종이나 전도를 허용하지 않고, 개종한 사람을 사형 혹은 구금에 처한다. 국내 체류 기간이 끝나 가면서 알리는 이란으로 돌아가는 게 걱정됐다. 핍박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알리는 2016년 난민 신청을 했다. 출입국사무소는 알리가 기독교 교리를 잘 모르고 종교적 신념을 가질 수 없는 나이라며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알리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도 2심 판결을 받아들이며 알리의 항소를 기각했다. 출입국사무소는 알리에게 올해 9월까지 출국하라고 명령했다.

알리와 친구들은 머리카락이 온통 샛노란색이었다. 요즘 중학생들 사이에 이런 헤어스타일이 유행인가 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란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여 있는 알리를 7월 24일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였다. 친구들은 알리가 언론과 인터뷰를 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돼서 따라왔다고 했다.

알리는 예상외로 표정이 밝았다. 친구들은 알리가 평소 사교성이 좋고 낙천적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고 자꾸 농담을 던지며 옆 사람을 톡톡 치는 장난기 많은 사춘기 학생이었다. 얼굴만 이국적으로 생겼지, 친구들과 하는 말이나 행동이 똑같았다. 

알리의 밝은 표정은 출입국사무소 얘기만 나오면 어두워졌다. 그는 학창 시절을 모두 한국에서 보냈다. 한국은 제2의 고향이었다. 이란어는 말만 할 줄 알지,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한국어가 유창하고 더 편하다. 이슬람 교리가 지배하고 있는 이란 사회도 낯설고 두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이란에는 미성년자인 알리를 돌볼 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알리의 아버지는 아직 한국에서 난민 심사와 관련해 소송 중이고, 이란에 있는 친척들은 7년 전 알리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말을 들은 뒤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와 친구들이 모두 한국에 있는데 왜 저만 혼자 이란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초등학생 때부터 교회 출석
교회학교 행사 꾸준히 참석
노회 주관 대회에서 수상하기도
"기독교인들 자유로워 보여"

알리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일용직으로 지내고 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사업 목적으로 한국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2010년 한국에 왔을 때는, 자식을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에 알리를 데리고 왔다.

그는 독실한 무슬림이 아니었다. 이란에서 라마단 기간에 담배를 피웠다가 태형을 당한 일도 있었다. 그는 이슬람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규율과 제약이 많다고 느꼈다. 알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말했을 때도 특별히 나무라거나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누이는 '어떻게 종교를 바꿀 수 있느냐'며 화를 내고 연락을 끊었다.

알리는 2011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잠실새내역 인근에 있는 대형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교회학교에 적극적이었다. 수련회나 운동회 등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노회에서 주관하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 금상을 받기도 했다.

알리는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보다 자유로워 보였다고 했다. "이란에 있을 때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형식적으로 기도를 하거나 예배에 참석할 때가 있었는데, 기독교는 달랐어요. 개개인이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도하고 찬양했어요.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구주라고 고백하는 것 같았어요."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혼자 살 수 없잖아요. 저마다 부족한 부분이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해요.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도와준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정말 맞다고 생각했어요."

2016년, 아버지와 함께 난민 신청
출입국사무소, 난민 불인정 
1심에서 승소, 2·3심에서 패소 
"종교적 신념 갖기에 나이 어려"

한국에 와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인 알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종교 박해를 받을 수 있다. 그는 난민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불인정 판결을 내렸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알리는 체류 기간이 끝나 가면서 이란으로 돌아갈 게 걱정됐다. 이란은 개종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인이 고향에 돌아갔다가 경찰에게 구타를 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그러던 중 외국인이 정치·종교 등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2016년, 아버지와 함께 출입국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했다.

출입국사무소는 알리에게 난민 불인정 판정을 내렸다. 알리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알리의 손을 들어 줬다. "이란으로 돌아가면 개종한 기독교인들은 종교를 감추고 살아야 해요. 누가 옆에 와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더라도, 개종한 기독교인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자유롭게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박해인 거잖아요. 1심 재판부도 제 주장을 들어줬어요."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란 정부가 알리를 공개적으로 지목하지 않았고, 그가 종교적 신념을 가지기에 나이가 어리다고 봤다. 대법원도 심리 한 번 열지 않은 채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알리의 중학교 친구 A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대법원이 '심리 불속행 기각'을 했는데, 그런 판결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억울해서 항소한 건데 어떻게 변론도 한 번 안 들어 보고 판결을 내릴 수 있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리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 B도 대법원 판결을 듣고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항소가 기각됐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이 모두 실망했어요.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같이 자란 사이인데, 앞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어요."

학교 교사·학생 돕고 나서
조희연 교육감, 법무부에 전향적 결정 촉구
"한현민 형처럼 모델 되는 게 꿈"

알리와 같은 반 학생들은 7월 19일 서울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사진 제공 A중학교

학교에서는 대책 회의가 열렸다. 같은 반 학생들은 자치 회의에서 알리를 어떻게 도울지 논의했다.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 청원을 올리고 언론에 알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어요. 언론에 제 얘기가 나온다면 이란 사회도 금방 알게 되거든요. 그러면 핍박받을 가능성도 더 커지는 건데,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이 더 컸어요."

7월 19일, 알리와 같은 반 학생들은 서울 양천구에 있는 출입국사무소에 찾아가 "친구를 도와 달라", "공정한 난민 심사를 진행해 달라"며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집회에는 노래가 빠지지 않는 법. 친구들은 기타 반주에 맞춰 이한철의 '슈퍼스타'를 불렀다고 한다. "괜찮아 잘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알리는 이날 출입국사무소에 난민 지위 재신청을 했다.

친구 B는 "평소 알리는 에너지가 넘치고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친구예요. 대법원 판결이 난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낙심했는데, 다행히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번 재신청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어른들도 거들기 시작했다. 알리의 중학교 교사들은 난민 심사 진행에 필요한 소송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알리의 사연을 알게 된 조희연 교육감은 7월 19일 학교를 찾아가 알리를 격려하고, 법무부가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며 입장문을 발표했다. 한 에이전시 사장은 알리의 꿈이 모델이라는 말을 듣고 방학 기간에 모델 학원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악성 댓글로 저를 비방하는 분도 있지만, 물심양면 도와주는 분도 정말 많아요. 친구들의 은혜도 잊지 못할 거예요. 저는 한현민 형처럼 모델이 되는 게 꿈이에요. 친구들이 키는 더 자라야 하지만 외모는 개성 있게 생겼대요. 꼭 꿈을 이뤄, 도움을 준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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