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가족을 돌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정치하겠습니다.' 선거철마다 중년 여성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다. 이 같은 캐치프레이즈에는 '엄마'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관념이 담겨 있다. 따뜻하게 사람들을 감싸는 포용의 이미지와 억척스럽게 일하는 '아줌마' 이미지다.

'남성 중심 정치 문화'가 정치 부패를 초래했다며 정치에 뛰어든 여성 정치인이 많지만, 그들이 여성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내세워 정치계에 입문한 김을동 전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 40여 건 중 여성 문제와 관련한 법안은 단 3건이었다. 여성 급식 노동자를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비하하거나, '국방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여성 의원도 있다.

누구보다 저출산·보육·교육 문제에 공감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을 것이라 생각한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 정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느낀 엄마들이 모여 2017년 6월 만든 단체가 '정치하는엄마들'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기존 정치인이 바꾸지 못한 엄마·아이를 위한 정책과 인식 개선을 목표로 삼는 시민단체다. 이름 그대로 정치'하는'에 방점을 찍어, 당사자 입장에서 정책을 제안할 뿐 아니라 생활 정치에 참여하고 제도권 정치에도 도전하고자 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단체 회원은 벌써 300명이 넘었다. 열심히 활동하는 인원만 따져도 100명은 족히 된다. 준비부터 열심히 참여하다 보니 어느새 대표가 되어 있었다는 조성실 공동대표를 7월 24일 마포구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잠시 시간을 내 인터뷰 자리에 왔다는 조 대표는 기자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했다. 조 대표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정치하는엄마들 조성실 공동대표를 7월 23일 마포구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돌봄'이 열등하다는 인식 벗어나야
엄마로부터 오고, 엄마로 살아가는
'당사자 정치'의 필요성

- '정치'와 '엄마'는 보기 힘든 조합이다. 기존 정치권에서도 엄마 이미지를 내세우는 시도가 있었는데, 정치하는엄마들은 기존의 시도와 어떻게 다른가.

정치에서 엄마들의 역할은 지금까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교육정책 제안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면, 부모 대표로 한두 명 들어가는 정도다. 엄마들은 의견을 내는 수준에 그치고, 기획부터 결정, 실행은 결국 관료·엘리트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 목소리는 반영되기 힘들었다. 전통적 여성상에서 엄마는 애나 잘 보면 되는 존재다. '집에서 애 키우는 게 뭐가 어렵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한국 사회이기에 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이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정치하는엄마들 회원 대부분은 아이를 낳은 후 당사자 정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고 한다.

- '맘충'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엄마를 혐오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엄마'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이유는.

"된장녀가 자라서 맘충이 됐는데, 맘충이 정치까지 한다"는 댓글도 봤다. 여성 혐오 현상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반에 '돌봄'은 열등한 일이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임금이 낮고 승진할 가능성이 적은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게 당연한 수순이 됐다.

기독교에서는 품에서 아이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이상적인 어머니상이라 가르치기도 한다. 육아 등에 도움 받을 사람이 없는 여성은 커리어를 쌓고 싶어도 아이를 낳으면 결국 전업주부가 되고 만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그 틀을 깨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엄마'를 버리지 않고 전면에 내세운다. 우리는 모두 엄마로부터 왔고, 엄마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정치는 왜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가. 왜 우리 일상은 그대로인가. '애 보는 일'의 수고로움과 가치를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회에 질문해야 한다.

엄마들이 모두 다 정치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엄마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돌봄'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모순을 경험한 사람들이라야 사회문제를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엄마들이 정치에 가장 적합할 수 있다.

작년 12월 정치하는엄마들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정책 간담회를 진행했다. 조성실 공동대표(가운뎨)가 질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정치하는엄마들

- 정치하는엄마들에는 어떻게 뛰어들게 됐는지 궁금하다.

나는 학창 시절 정치인을 꿈꾸며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과 환경의 변화로 전업주부로 살아가게 됐다. 엄마로 살면서 겪는 실제적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다. 정치를 꿈꿔 온 사람으로서 엄마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역량이 부족했다. 우연히 엄마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너를 위한 모임"이라고 소개해 준 게 시작이었다.

'장하나의 엄마 정치'라는 칼럼을 게재하던 장하나 전 의원이 구심점이 됐다. 장 대표가 불러 모은 첫 모임에 약 30명이 모였다. 엄마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제도권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모두 공감했다. 결국 엄마 정치를 내세우는 시민단체를 만들기로 했다.

일면식도 없던 두 공동대표와 처음 만난 날 "나는 미친 춤을 출 용기는 없는 사람인데, 미친 춤을 추고 싶은 열망은 가득하다. 다만 누군가 먼저 춤춘다면 멈추지 않고 같이 출 수 있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장하나 대표가 웃으면서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냐"고 묻더라. 그때는 공동대표를 하게 될 줄 몰랐지만, 지금은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이 정치하는엄마들을 만들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 정치는 엘리트가 하는 '큰일', 거대 담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정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친정아버님께서 5선 기초의원 출신이다. 중앙 정치와 다르게 지방 정치는 일상생활과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체감했다. 도로 놓는 일부터 쓰레기 수거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얘기들을 집안에서 들으며 정치가 생활과 밀접하다고 느껴 왔다.

정치의 밑바탕은 '생활 정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재 국무조정실, 인천교육지원청과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작년 국무조정실 산하 부패척결추진단은 전국 95개 유치원·어린이집 특별 감사에서 비리·횡령 총 605건을 적발했다. 명단을 확인할 수 없어 각 지방자치단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대부분 정보를 공개해 주지 않았다. 행정소송을 통해 명단을 입수하면 발표할 예정이다.

정책 개선을 위한 제안과 맞물려 인식 개선도 이루어져야 한다.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성평등 교육'이 모든 이슈를 아우를 수 있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성평등, 인권 교육 등을 아울러 '함께 교육'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부터 평등, 인권, 돌봄을 교육해야 한다. 성평등 인식은 많이 개선됐지만 성평등 교육 모델은 없는 현실이다.

아이들의 입에서 여성 혐오 용어들이 난무하는 현상을 보며, 현실과 교육의 간극이 너무 크다고 느낀다. 아동 대상 콘텐츠들은 여성을 육감적으로 묘사하거나, 비주류로 묘사하는 등 여성을 타자화한다.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교육은 물론이고 여러 콘텐츠를 통해 남성적 가치관이 주류라는 개념을 주입받고 살다 보니, 성장한 후 여성으로서 가치 있는 일을 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 정치하는엄마들에 참여하려면 '자녀 출산 경험이 있는 엄마'여야만 하나.

단체 내에서도 '엄마'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오랫동안 논의했다. 자녀 출산 경험이 있는 엄마뿐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하는 '돌봄'과 그 지향을 이해하는 모두가 엄마라는 의견에 회원들이 동의했다. 실제로 비혼 회원도 있고, 20대 남성들이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한다. '모두가 엄마'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엄마에 대한 기존의 차별적 패러다임을 깨자고 이야기하게 됐다.

누구는 조력자가 되어야만 하고, 누구는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회는 온전한 사회가 아니다. 한 인간 안에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정체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 비혼주의자, 싱글맘, 조손 가정 등 다양한 구성원을 통해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여러 배경을 지닌 사람이 모이면 의식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

작년 7월 열린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조성실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정치하는엄마들

인권·성평등 운동도
총체적 하나님나라 운동
인식·제도 변화 위해
제도권 정치 도전

- 학창 시절부터 정치인을 꿈꿨다고 했는데, 개신교 신앙이 정치를 꿈꾸고 선택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고등학생 때 회심하면서 정치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도권 정치인을 꿈꿨다. 짐 월리스의 <하나님의 정치>(청림출판)를 읽으며 정치 멘토를 찾아다녔다. 하나님나라 정치를 말하는 곳은 많았지만, 하나님나라 정치를 실천하는 단체는 찾지 못했다.

대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비운동권을 표방하는 기독 선거 본부에 들어가게 됐는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기도했는데 하나님 뜻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다른 의견을 피력할 수도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발견한 기독 정치 그룹이었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신앙적으로는 혼란스러웠다. 결국 그 그룹을 나오게 되면서 내가 지향하는 정치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하게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요한복음 12장 12절을 깊이 묵상했다. 생명을 키우는 일에 희생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전문직 여성'이 되고 싶었다.

'비주류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아이를 낳고서도 열심히 살았다. 아이를 돌보면서 책도 많이 읽고, 며칠 밤을 새며 일하던 중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좋은 그리스도인 엄마'라는 교회 내 통념을 따라 살아온 나의 모습을 자각하면서 영적 허상이 무너져 내렸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하나님의 선교>(IVP) 같은 책을 읽으며 내 세계관의 편협한 점을 깨달았다. 신앙인 그룹이라야 하나님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신앙과 비신앙을 나누는 이원론적 세계관이었다.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과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함께 일하는 장하나 대표도 신앙인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한다. 맞지 않는 지점들은 서로 조율하고 소통하며 잘 맞춰 나간다. 정치하는엄마들 내부의 신앙인들과도 계속해서 함께하고 있다.

학창 시절 '기독 정치인'이라는 내 꿈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연락해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인도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제도권 정치인이 되는 일이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을 지금도 완성해 가고 있다고 믿는다.

- 교회 내에서는 여성에 대한 인식은 물론, 정치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여성·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가 사회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성경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인권, 성평등 운동도 총체적 선교로의 하나님나라 운동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내가 먼저 살아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생각의힘)에는 정치하는엄마들의 1년간 활동이 담겼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보육·교육 등 이슈에 동일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다른 단체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정치인을 만나 직접 정책도 제안해 왔다. 엄마들의 목소리가 필요한 정책을 계속 제안할 예정이다. 현안인 어린이집 사고에 대한 긴급 좌담회나, 아이들의 놀이 문화 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도 준비 중이다.

인식과 제도 개선을 함께 이뤄야 하는데,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제도의 변화에는 제도권 정치인의 힘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다음 선거에 기회가 온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도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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