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지옥에서 가장 가까운 곳." 해외 언론은 예멘을 이렇게 표현했다. 5년째 내전 중인 예멘은 국민 2800만 명 중 20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고 약 19만 명이 해외로 탈출했다. 90만 명이 전염병에 간염돼 2100명이 사망했고, 당장 식량 지원이 긴급한 사람이 2000만 명에 달한다.

숫자로는 그 심각성을 머릿속에 그리기 어렵다. 선교 단체 인터서브코리아 전 대표 박준범 선교사는 기자에게 예멘 현지 사진과 영상을 보여 줬다.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이 갈비뼈를 그대로 드러낸 채 힘없이 누워 있었다. 도시 곳곳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파괴됐다. 그는 "예멘은 아랍 국가 중 가장 가난한 나라다. 의료·식량·주거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준범 선교사는 에멘의 열악한 의료 시스템 때문에 영아 사망률이 약 30% 된다고 했다. BBC 갈무리
예멘 주요 도시들은 폐허가 되었다. DW 갈무리

박준범 선교사는 2001년 의료 선교사로 예멘에 파송됐다. 수도 사나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지방 도시 보건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현지 의사들도 가기를 꺼려, 보건소에는 박 선교사와 캐나다에서 온 산부인과 의사 둘만 있었다. 박 선교사는 외과의사였지만 대개 주민들은 전공 구분 없이 남성은 박 선교사에게, 여성과 아동은 캐나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예멘은 의료 시설이 부족해 주민들이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5년, 박 선교사는 국제 의료 구호 기관 글로벌케어 지원을 받아 도시 빈민을 위한 병원을 설립했다. 주민들이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고, 현지인 20여 명을 직원으로 채용한 규모 있는 병원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진료비와 수술비는 시중 병원의 20~30%를 넘지 않았다. 박 선교사는 2012년 인터서브코리아 대표직을 맡기 위해 현지 의사에게 병원을 그대로 넘겨주고 귀국했다.

제주에서 만난 박준범 선교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멘에서 13년간 사역했던 선교사로서, 박준범 선교사는 예멘인 난민 신청자가 대거 몰려온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7월 18일, 제주 기독교인들이 주최한 난민 간담회에 참석하러 제주이주민센터를 방문한 박 선교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예멘 난민 신청자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짜 뉴스에 시달리는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현지에서는 지금도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아이들이 신음하고 있다. '젊은 남성'이 대부분인 예멘 난민 신청자들은 이들의 오빠이자 형이었다.

그는 "이 사건은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한국교회, 특히 제주 교계가 난민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들이 떠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후에 그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 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최종 경로일 뿐 
예멘에서 아프리카 국가 거쳐 입국
단순 이주 노동자라는 주장, 근거 없어"

박준범 선교사는 7월 초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만났다. 그가 만난 예멘인들은 제주 조천면에 있는 한 숙박 시설에서 두 달 넘게 지내고 있었다. 아들 또래의 이십 대 청년 16명이 한 방에 8명씩 나눠서 자고 있었다. 방 한쪽에는 아랍어와 한국어로 생활 수칙을 적은 종이가 있었다. '시간과 돈 아껴 쓰기', '전기·수도 절제하기', '떠들지 않기'….

박 선교사는 "현재 예멘은 내전으로 시끄럽지만, 예멘인은 원래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다. 사회질서와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예멘 난민 신청자의 탈출 경로도 들을 수 있었다. 예멘인 수용을 반대하는 이들은 난민 신청자 549명이 대부분 말레이시아에서 몰려왔기 때문에, 이들을 전쟁 피난민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박 선교사는 후티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사나, 타이즈, 호데이다에서 온 사람이 많다며, 반군의 무차별 징집을 피하기 위해 온 피난민이라고 했다. 그는 이들이 남쪽 항구 도시 아덴에서 배를 타고 수단·지부티 등 아프리카 국가에 갔다가 말레이시아를 경유해 한국에 입국했다며,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이들을 돈을 벌러 온 이주 노동자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준범 선교사와 예멘 병원 직원들. 사진 제공 박준범

"예멘 사회, 한국보다 관용적
이슬람포비아에 물든 한국교회
왜곡된 교회론·선교론이 문제
눈앞의 강도 만난 사람 내버려 둔다면
누가 한국교회 사랑과 봉사 믿겠나"

한 난민 신청자는 박준범 선교사에게,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험한 인물로 보는 시선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해가 안 되는 건 박 선교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경험했던 예멘 사회는 범죄도 적고 관용적인 사회였다.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을 때도 다친 사람만 없으면 굳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각자 갈 길 갔다. "오히려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마다, 한국 사회가 더 팍팍하고 거칠게 느껴졌다"고 그는 말했다.

무슬림을 수용하면 범죄율이 증가한다거나 한국 기독교가 쇠퇴할 것이라는 말은 모두 잘못된 선교론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한국교회 선교론이 물리적 영토 개념에 매몰되어 있다. 기독교가 증식하거나 침식한다는 시각으로 선교를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배타성이 강한 종교적 근본주의로 빠지고 결국 이슬람포비아를 성행한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여러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종교 국가다. 여러 종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한국을 마치 기독교 국가로 인식하는 것 같다. 마치 무슬림 난민을 수용하면 기독교가 약화하고 우리의 영역이 침식된다고 여긴다. 잘못된 세계관이다.

교회는 세력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빛과 소금의 공동체로 부르셨다. 세상을 비추고 사람들 속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복음을 전할 때도 사람들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의 세를 과시하며 다른 종교와 적대하고 싸우는 모습은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이 아니다."

현재 제주 교계는 예멘 난민을 놓고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9개 교단장들이 7월 10일 교회가 예멘인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제주 교계는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다. 

그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올해 10월 안에 난민 심사가 끝나면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것으로 봤다. "지금 예멘인들에게 시급한 문제는 숙식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대신 교회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이들이 난민이냐 아니냐를 놓고 따지고만 있으면, 이후 한국교회가 말하는 사랑과 봉사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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