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발달로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된 우리 현대인들은 이제 단순히 생계를 넘어 더 잘 먹고 더 좋은 것을 먹는 데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 요즘 TV만 틀면 나오는 각종 '먹방'(먹는 방송)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무엇이 몸에 좋다 혹은 나쁘다 하는 먹거리 뉴스나 방송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뉴스나 방송에서 무엇이 몸에 좋다 하면 솔깃하여 귀를 기울이고 따라 먹게 된다.

좋은 음식이 뭘까? 하나만 먹으면 만병통치약처럼 몸에 좋은 그런 음식이 정말로 있는 걸까? 과학자로서 매일매일 소개되는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보면 이런 궁금증이 든다. 현대 과학은 우리가 먹는 식물과 동물의 성분들 하나하나를 찾아내고, 그 성분의 역할과 영향을 철저히 분석해 낼 만큼 발전했다. 현재 과학은 식물과 동물을 구성하는 화학 성분(분자)을 약 3000만 가지나 찾아냈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커피' 하면 카페인이 딱 떠오르지만 커피에는 카페인 말고도 아세트알데히드, 아세트산, 아세톤, 아세틸메틸카르비놀, 아세틸프로피오닐, 암모니아, 크레졸, 디아세틸, 디에틸케톤 등 100~700여 종류의 낯선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우리에게 여유와 편안함을 주는 커피 속에는 인체에 유익한 물질뿐 아니라 유해하다고 알려진 성분도 다수 들어 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백 종의 화학물질 중에 좋은 성분을 강조하면 좋은 음료가 되고, 나쁜 성분을 강조하면 독극물이 된다. 커피 예찬자들은 커피 속에는 폴리페놀과 같은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최근 커피 속에서 미량이지만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와 화제가 되었다. 와인 속의 에탄올은 발암물질로 규정되어 있지만 그 속의 항산화제는 칭찬을 받는다. 이처럼 먹는 것은 수많은 화학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어떤 성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몸에 좋은 식품이 되기도 하고 나쁜 식품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어떤 특정한 식품이 마치 특효약처럼 유행을 타기도 하고 또 유해 논쟁에 휩쓸리기도 하는 이유이다. 사람이 먹는 먹거리 속에 유익한 성분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해한 성분이 들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그런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고 말한다. 아담의 죄로 저주 아래 놓인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가 원래의 선한 상태에서 벗어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음 가운데 구속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는 과학은 타락의 결과 비참해진 창조 세계를 자연의 원래 모습이라고 규정한다. 생존경쟁 자체를 자연스럽고 선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 이후의 생명체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동물처럼 달아날 수 없는 식물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각종 독소를 뿜어내거나 다른 보호 성분을 만들어 품고 있다. 나무는 외부의 공격에 맞서 각종 독극물들의 집합체인 피톤치드를 내뿜는다. 자연 상태에서 내뿜을 때는 그 양이 많지 않아 우리 몸에 있는 미생물만 죽이는 정도라 우리가 삼림욕으로 즐길 수 있지만, 그것도 농축하면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독극물이 된다.

같은 양일 경우 아직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그 어떤 독도 이렇게 자연의 생명체가 살기 위해 품고 있는 독의 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쥐의 치사량을 기준으로 볼 때, 파라티온이라는 대표적인 인공 합성 살충제에 비해 버섯의 독은 16배, 복어 독은 360배, 뱀독은 1800배, 아주까리 식물의 독은 3만 6000배나 독성이 강하다. 식물 추출액으로 만드는 천연 농약이 자연에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해하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다. 그 천연 농약 때문에 죽어 가는 생명체들은 사람이 만든 농약과 같은 혹은 그보다 더 강한 독성 때문에 죽는 것이다.

또 식물은 미생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부제 혹은 항산화제 등 각종 방어 물질을 품고 있다. 우리는 채소나 과일의 비타민C(아스코르브산)를 좋은 영양분으로만 평가하지만 식물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씨가 들어 있는 과일을 지키기 위해 이 비타민C를 방부제로 만든 것이다. 의식이 없어 보이는 식물이지만 생명체로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동물들은 또 어떤가? 밤낮없이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고달프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자연 전체는 인간의 타락으로 이처럼 고달픈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다. 피조물들은 이 생존경쟁의 상황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롬 8:19-22). 우리는 그래도 아름다운 자연은 죄와는 무관한 영역이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타락 이후의 자연은 결코 정상적이라거나 선하다 말할 수 없다.

과학이 먹는 것의 성분을 밝히면 밝힐수록 사람들은 몸을 이루는 먹거리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이 먹거리 뉴스나 방송이 많은 이유이다. 신자인 우리도 이런 흐름에 귀와 눈을 막고 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음식을 찾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먹거리를 선별할 때 먹는 식물과 동물이 우리에게 유익한 성분만이 아니라 유해한 성분들도 같이 가지고 있고, 이것은 자연의 원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 이후 자연계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인간의 타락으로 오염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방식을 쓴다 해도 좋은 성분만으로 된 먹거리를 찾아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먹거리 뉴스나 방송을 볼 때도 인간의 타락으로 비참해진 이 세상을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성영은 /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발행하는 '좋은나무'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원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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