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기독교와 시민단체가 주관한 퀴어 축제 '맞불 집회'가 대한문 인근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서울시청광장 북서쪽 부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에 선글라스를 쓴 한 남성이 섰다. 한 손에는 십자가 깃발이, 다른 손에는 '동성애 박멸!, 깨끗한 한국, 할렐루야'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남성과 같이 온 교회 사람들은 '동성애는 죄'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서울시청 본관 앞. '예수재단'이 주최한 '대한민국 살리기 서울 예수 축제'가 열렸다. 현장에는 20개 남짓한 간이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망국적인 동성애를 조장하는 동성애 합법화 기수, 문재인과 박원순은 회개할지어다' 문구가 들어간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서울시청광장 서쪽 대한문 부근에는 대형 무대가 설치됐다. '동성애 퀴어 축제 반대 국민대회'(대회장 최기학 목사)가 마련한 무대였다. 주최 측은 대형 교단들이 참여한 국민대회에 5만 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날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지만, 참여도는 작년보다 높았다. 사람들은 끈적거리는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수 기독교와 시민단체는 7월 14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에 맞서 '진'을 쳤다. 규모와 단체는 서로 달랐지만, 이들의 요구 사항은 동일했다. 

국민대회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피켓과 구호가 넘쳐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규모가 제일 큰 '국민대회'는 행사 시작 전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기독교동성애대책아카데미·합동보수총회·청교도영성훈련원·한동대학교(아가청)·총신대학교(카도쉬)·바른군인권연구소 등 18개 단체가 부스를 차리고, 동성애 반대를 외쳤다.

국민대회는 국민의례로 시작했다. 이어 연세중앙교회(윤석전 목사) 어린이들의 공연으로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연사들은 무대에 올라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를 열거했다.

대회장 최기학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는 대회사에서, 동성애가 합법화하면 사회가 비극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최 목사는 "한국교회와 국민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는 가정을 동성애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아멘', '할렐루야'가 터져 나왔다.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최 목사는 "우리는 동성애와 퀴어 축제를 반대할 뿐이지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한국교회는 동성애자를 품고 치유해야 할 형제 자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직전 대회장 김선규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전 총회장)는 격려사에서 동성애를 '사회악'으로 규정했다. 김 목사는 "우리는 동성애자의 영혼은 사랑하지만, 잘못과 멸망을 향해 가는 죄악(동성애)까지는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나라에 사회악이 건설되지 않도록 (기독교인이) 동성애 반대를 외쳐야 한다"고 했다.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이용희 대표(에스더기도운동본부)는 청와대를 겨냥했다. 퀴어 축제 반대 청원 글에 20만 명 이상 동의를 했는데, 청와대가 별도의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럴 거면 국민 청원 제도를 왜 만들었는가. 우리는 거룩한 나라, 하나님이 축복하신 나라의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수고로 서울시와 조국 대한민국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설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엄기호 대표회장이 전했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는 것을 순리로 규정한다면서 동성애를 반대했다. '역리'에 해당하는 동성애가 확산하면 국방력이 약해지고, 나라가 위태할 것이라고 했다.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는 긍휼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엄 대표회장은 "우리는 동성애자들의 영혼을 붙잡아야 한다. 저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들도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위배하며 살지 않도록, 긍휼과 연민으로 도와줘야 한다. 동성애자가 줄어들고 없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국민대회는 "동성애자는 돌아오라", "정부는 잘못된 인권 정책을 철회하라",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 보장하라", "국가인권위원회 해체하라", "교육부는 나쁜 인권 조례 폐지하고, 올바른 성교육을 실시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동성애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해 달라고 통성으로 기도했다. 이날 국민대회에는 윤석전(연세중앙교회)·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도 참석했지만, 직접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다.

소강석 목사(왼쪽)와 윤석전 목사가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후 2시간 30분가량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대한문에서 출발해 숭례문-서울시청-광화문-세종문화회관을 거쳐 다시 대한문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행진 도중 만난 목회자들은 "남자가 며느리 되고, 여자가 사위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에이즈 환자 때문에 국고가 막대하게 손실되고 있다", "동성애는 죄악 그 자체다"고 말했다. 일부 20대 청년은 "교회를 따라 나왔다"고 말했다.

국민대회 측이 광화문 앞을 지날 때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외치는 대한애국당 지지자들과 마주하기도 했다. 트럭 위에 올라서 있던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은 국민대회 참가자들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행진 코스가 겹치면서 양측은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나란히 걸었다. 조원진 의원이 "대한애국당은 동성애법 반대한다"고 외치자, 행진하던 이들은 동시에 "반대한다, 반대한다"고 외쳤다.

국민대회 측이 다시 대한문으로 돌아왔을 때,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가 무대를 사용 중이었다. 100여 명의 참가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고 외쳤다. 정치 구호가 남발하는 가운데 갑자기 동성애 반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무대에 선 신소걸 목사는 "문재인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하나님과 대적하려 한다.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과 싸워 이긴 적 없다. 대한민국이 나라인가. 기독교인이 일어나야 한다"고 외쳤다.

신 목사는 "하나님과 '원수 된 법'을 제정하려는 문재인은 내려가라. 서울광장 내준 박원순도 내려가라. 박근혜 대통령은 무죄이니 석방하라"고 했다.

국민대회 측이 행진을 할 동안 극우 단체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가 무대를 사용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국민대회 측은 무대만 같이 사용할 뿐 국본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홍호수 사무총장은 "탄핵 이후 국본이 대한문 앞에서 계속 집회를 해 왔다. 집회 신고를 국본이 먼저 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퍼레이드를 할 동안 무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국본 행사는 우리와 관련 없다"고 했다.

한편, 일부 국민대회 참가자는 퀴어 축제 측의 행진을 막아서기도 했다. 청년 30여 명이 을지로입구역 사거리 근처 도로 위에 누워 성소수자들의 행진을 방해한 것이다. 경찰이 개입해 청년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했다. 홍호수 사무총장은 "그런 방식의 행위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 결국에 벌어졌다.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대회 참가자들은 행진을 하며 "동성애 반대"를 외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회장 최기학 목사(사진 가운데)는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기독교 단체들은 서울시청광장 인근에서 개별적으로 시위를 이어 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