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하 우리 사회는 '종북', '동성애'로 씨름하다가 난민을 주제로 여론이 분열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견줄 때 난민 수용에 열린 시각을 지닌 사람들 숫자가 훨씬 적어 보입니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 태극기 세력과 씨름하면 되었으나 난민에 관해서는 노란 배지를 달고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 간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걱정이 많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두렵고 불안한 사회가 된 탓이라 하였습니다. 정말 주변에는 힘들고 고통스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N포 세대의 절망에 분노하는 젊은이들로 인해 부모 세대인 우리들 마음도 지독히 고통스럽습니다. 이웃과 타자를 향한 증오와 혐오가 사회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으니 '난민'의 고통을 품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소수자들을 희생양 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습니다. 현실적 절망감을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들에게, 그리고 이제는 난민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탓입니다. 심지어 일부 여성 페미니스트들조차 난민을 성폭력자로 규정하고 배타했으니 상대적 약자(소수자)들끼리 갈등하고 혐오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에 이슬람을 '악의 축'으로 학습해 온 기독교인들 역시 크게 일조하고 있기에 '난민'에 대한 이해가 앞으로도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하지만 서구 유럽의 일로만 여겼던 난민 문제가 땅끝 예멘 난민을 통해 우리들의 현실이 되었고, 그들이 소수자 중의 소수자, 약자 중의 약자가 된 이상 이 땅의 교회는 세상과 다른 소리를 내야 옳습니다. 청와대를 향해 수십만, 수백만 명이 반대를 청원했더라도 그것과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들 몫이자 할 일일 것입니다. 내 몸의 중심이 아픈 곳에 있고 부모의 마음이 못난 아들에게 가 있듯이,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이 의지처(고향)를 잃은 고아와 과부, 떠돌이 나그네를 품었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인 까닭입니다. 이 확신이야말로 꺼지지 않는 촛불, 촛불을 넘어 '빛'으로 불리어졌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사실 난민 문제로 크게 홍역을 치르고 있는 곳은 유럽이며 그 중심에 독일이 있습니다. 이미 이슬람 난민 80만 명 이상을 수용한 독일이었으나 유럽연합(EU) 붕괴 위기로 난민 정책 수정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받으면서도 메르켈 총리는 지중해에 수장당하는 난민들, 사하라사막에서 아사하는 난민들을 기억하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들을 저버리고도 자신들 정당 앞에 '기독교'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난민에게 냉정한 이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이슬람 국가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수백만 난민을 만든 원인이 유럽 국가들의 탐욕인 것을 아는 탓입니다. 난민 문제는 유럽 국가들의 업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바다와 사막에서 죽게 하고 이동 경로를 차단해 미래조차 빼앗는다면 이들의 죄악을 기억하는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제주도에는 500여 명의 예멘 사람들이 난민 신청 중에 있습니다. 예멘이란 나라는 로마와 교역하던 그 시절, '환희의 도시'라 불릴 만큼 좋은 곳이었습니다. 20세기 초엽 이후 이념과 민족 간 갈등 탓에 외세의 침탈로 우리처럼 분단되었기에 '슬픈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웃 국가 일본에 의해 고통당했듯이 아주 작은 국가인 이들 또한 주변 이슬람 국가들(사우디와 이란 그리고 터키)로 늘 힘겨웠습니다. 내전으로 백성들이 죽음으로 내몰리자 살길 찾아 제주까지 온 사람들, 이들을 내치면 우리들 과거와 미래가 조롱받을 것입니다.

주지하듯 우리는 3·1 독립 운동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촛불 정부는 당시 세워진 상해 임정을 국가의 정통 역사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국토를 결했다고 '나라'가 아니라 했던 친일파들과 싸워 이긴 쾌거입니다. 우리들 정부가 외국 땅에서 수립된 것을 기억한다면 100주년을 축하하는 이 시점에 예멘 난민을 기쁘게 보살필 일입니다. 더구나 남북이 하나 될 기운이 감도는 한반도에서 난민을 '손님'으로 환대하는 것이 우리를 미래를 위해서도 축복입니다. 남북 화해의 길이 열리는 시점에서 전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온갖 추측성 증오를 앞세워 난민을 내친다면 세계도 우리들의 미래를 하찮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다행히도 가수들, 연예인들 남녀 10여 명이 자발적으로 난민을 이해하고 수용하길 바라는 힘찬 노래를 만들어 우리 사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 말하다'(Talk about love)란 곡으로 두 가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땅끝에서 온 사람들을 친구로 환대하자는 것과 이 땅에 사는 우리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낯선 이방인(난민)처럼 여기며 살 것을 서로의 눈빛을 보며 힘차게 노래했습니다. 사회의식이 일천(?)하다 여기기도 했던 예술가들의 노래와 춤이 너무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세상 아픔을 느끼는 예민한 그들의 감수성이 두터운 편견에 쌓인 우리들의 신앙보다 많은 아픔을 품었고 세상과 더 잘 소통했습니다. 이들의 노래 속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메시지를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출구 없는 세상 속 우리 시대 철학자(사상가)들은 로마서에서 희망을 보았고, 그 저자를 21세기 지금 상황으로 불러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으나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As if not…) 살았던 바울, 그의 생각을 산상수훈조차 능가하는 세상 구원의 실마리로 여긴 것입니다. 세상 구원을 위해 바울은 지혜 없는 듯이,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힘(권력) 없는 종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 냈습니다. 그에게 선교란 바로 이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그것을 그리스도가 준 자유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의 존재(Sein in Christo)란 바로 이런 형태의 삶을 일컫습니다. 이런 지혜를 가수들이 'Talk about love'란 노래 속에 담았습니다. 땅끝에서 온 사람처럼 우리 자신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할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제 이 노래를 들은 우리들이 다시 '사랑'을 말할 차례입니다. 피차 사랑이 빚만 지라 했던 말씀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를 일군 신앙의 후배들은 이/저 아픈 곳을 찾으면서, 최근에는 서촌 궁중족발 앞에서 '하느님 義는 세상 법을 넘어서 있다'고 외쳐 왔습니다. 세상 법이 하느님 義를 다 담을 수 없기에 법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법을 갖고 억울한 자의 눈물을 씻길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느님 義는 때로 법을 철저히 무력화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했고 동시대 철학자들이 소환한 'As if not…', 곧 하느님의 義이자 사랑입니다. 이 마음으로 가수, 연예인들이 내민 손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땅끝에서 온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며 하느님 義를 실현해야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마태복음 1장 1-17절)을 언급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설교 말미에 본문 의미가 약술되는 듯싶어 설교자로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메시지는 아주 단순 명료합니다. 우리들의 과거사가 그랬듯이 예수의 족보 속에도 '난민'이 있었다는 가르침입니다. 예수의 유대인 됨을 족보를 통해 강조했던 마태였습니다. 이 족보 속에는 숨기고 싶었으나 숨길 수 없었던 여인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생존을 위해 시아버지를 속인 여인, 여리고성을 꿰뚫어 보았던 기생 라합, 먹고살고자 유대인과 결혼한 경제 난민 룻, 그리고 다윗의 후처로 살아야 했던 밧세바 등이 그들입니다. 이들 여인들은 오늘의 잣대로도 자유롭지 못한 존재였으나 마태는 이 여인들의 이름을 족보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신학자들 중에는 마리아 역시 이런 부류의 여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여인들을 통해 태어난 예수, 그가 바로 메시아이자 구세주였습니다. 한 맺힌 아픔들을 품고 태어났기에 예수, 그만이 세상의 고통에서 뭇사람을 자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의 노래, 마리아 찬가가 바로 이를 웅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할 구세주가 바로 자기 품속의 아이가 될 것이라고 마리아는 마음껏 자랑했습니다. 예수 속에 난민의 아픔, 창기의 고통, 살고자 애썼던 뭇 생명의 애환들이 너무도 잘 기억·보존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고 그리스도 안의 존재가 된다는 것도 실상은 이 기억들과 함께하겠다는 삶의 다짐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기억을 환기하겠습니다. '예수 속에 난민 있다'고.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며 이곳에 모인 우리들은 앞으로도 절대 소수일 것입니다. 세월호 어머니들이 교회로부터 내쳐져 소수자가 되어 외롭게 싸웠듯이 '스스로 난민 되자'는 우리들 외침 역시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최초로 불거진 '난민'을 위해 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 사회이자 교회라면, 의인 열 사람이 없어 멸망하게 된 소돔과 고모라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단연코 이 땅의 미래는 없습니다. 한반도에 드리운 평화의 기운도 실종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만 하기 위해 모이지 않았습니다. 난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위한 자리가 되길 원합니다. 후속 모임들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고 '환대'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을 일입니다. 이 땅의 소수자 중의 소수자, 약자 중의 약자가 바로 '난민'이기에 그들이 우리들 중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정배 / 전 감신대 교수,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 현장아카데미 원장

위 글은 7월 12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난민 환대를 위한 기도회'에서 이정배 교수가 마태복음 1장 1-17절을 본문 삼아 설교한 "예수 족보 속에 '난민' 있다" 전문입니다. 이정배 교수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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