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변칙 세습과 목회자 성폭력, 각종 범법 행위, 교회의 갑질 등을 뒤로하고, '동성애'만 막으면 한국교회는 거룩해질 수 있을까. 불투명한 재정 사용을 비롯해 목회자들 윤리 문제로 한국교회 신뢰도가 곤두박질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말 '동성애'만 반대하면 기독교는 몰락의 길에서 회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동성애와 기독교 신앙>(무지개신학연구소)은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에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성경이 동성애를 금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이들에게, 이 책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자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신학자 19명의 견해가 실려 있다.

원서는 1999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책이 나올 당시 미국 사회는 동성애 문제로 논쟁하고 있었다. 엮은이 월터 윙크는 서문에서 "오늘날 교회들은 동성애 문제를 놓고 서로 형제 자매를 살해하는 중이며, 그 뜻밖의 결과는 동성애자들만이 아니라, 교회들 자체들이 그 희생자들이 될 것 같다는 점이다. 순전한 혐오, 빈정댐, 닫힌 마음, 노골적 멸시는 엄청나서, 인종 분리 정책에 대한 반대 투쟁 이래로 그 어떤 문제에 대해 내가 목격한 것들 가운데 가장 신랄하다"(7쪽)고 썼다. 2018년 한국교회 상황을 보는 듯하다.

<동성애와 기독교 신앙> / 월터 윙크 엮음 / 무지개신학연구소 펴냄 / 195쪽 / 9700원.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대 유대인 성 인식 담긴 성경
현대 '동성애' 정죄 기준 될 수 있나

<동성애와 기독교 신앙>을 쓴 저자들은 "동성애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큰 틀에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고, 동성애 문제에만 이중 잣대를 보인다는 점이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는 문제를 살펴보자. 많은 교회가 "우리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다"는 성경무오설 입장을 취한다. 성경에 쓰인 글자를 그대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성경무오설과 동성애를 엮으면, 동성애는 반대하면서 왜 레위기에서 언급하는 규율을 다 지키지 않느냐는 반박이 나온다. 성경은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하고 합성섬유로 만든 옷의 착용도 금한다. 심지어 관자놀이의 머리를 돌아가며 깎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있다.

이 책은 이 논쟁에서 한발 더 나간다. 동성애로 비롯한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단순히 우리에게 허락하거나 금한 것을 알려 주는 척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동성애에 대한 논쟁은 절호의 기회다. 왜냐하면 단지 이번 경우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특별히 예리한 방식으로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진짜 문제는 단순히 동성애뿐만 아니라, 오늘날 성경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대해 알려 주는가 하는 문제다." (54쪽, 월터 윙크, '동성애와 성경')

구약성경은 고대 유대인의 성 인식이 반영된 행동 규범을 규율로 정했다. 부족의 생존을 위해 자녀 생산을 중요시하는 남성 중심 사회였다. 남성 위주로 쓰인 율법은 당연히 남성들의 성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 문화와 맞물리는 부분이다.

고대 유대인들은 '동성애'가 뭔지도 몰라 '남색하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현대사회에서 사용하는 '동성애'라는 용어는 최근에 생겨났다. 양성애자, 레즈비언, 인터섹스, 트랜스젠더 같은 단어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표현을 지금의 '동성애'라는 단어에 끼워 맞추려 한다.

"'문자적(literal)'이라고 부르는 성경 읽기 방식은 실제로는 생각(ideas)을 위해 단어(words)를 무시하는 성경 읽기 방식이다 즉, 생각이야말로 변경될 수 없는 것이라서 단어들은 단지 부호들이라고 여긴다. 용어가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 실상은 다른 단어들로 비난받았다고 여긴다. (중략) 동성애(homosexual)라는 용어가 19세기에 만들어진 용어라는 사실은 상관이 없다고 여긴다." (107쪽, 마리아 해리스 & 가브리엘 모란, '동성애: 문자로 쓰지 않은 말')

저자 중 한 명인 윌리엄 슬로언 코핀 목사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복음'이 필요한 건 동성애 혐오자들이라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동성애에만 이중 잣대
두려움에서 기인한 혐오는
성소수자 겨누는 칼날

저자들은 기독교인이 유독 동성애 문제에만 이중 잣대를 보이는 건 감정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에게는 정말 성경이 현대사회의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경은 동성이 동성을 사랑하는 행위를 보고 드는 불편한 감정을 정당화해 주는 도구다. 성경을 방패 삼아 또 다른 반대 논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동성애 반대는 성경을 지키고 기독교를 지키는 행위가 된다.

기독교인의 이중 잣대가 심각한 건,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 표현은 그들의 존재를 위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을 듣는 성소수자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 믿는 바를 관철하기 위한 '혐오'라는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반전운동가였던 윌리엄 슬로언 코핀(William Sloane Coffin) 목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감정이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기독교 복음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봤다. 그는 이렇게 '감정에 기반한 불관용'이 기독교 역사에서 반복되는 건 "불확실함이 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랑해서 반대한다고 하는 이들은 진정한 복음이 필요한 두려움에 둘러싸인 사람들이다.

"해방되기를 가장 필요로 하는 포로 된 자들, 오늘날 골방 문이 활짝 열리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희생자들보다는 억압자들이다. — 즉, 순응주의자들, 인종차별주의자들, 성차별주의자들, 동성애 혐오자들, 그리고 그들의 두려움이 이성이라는 등불을 불어 꺼 버렸기에 어두운 무지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다." (154쪽, 윌리엄 슬로언 코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동성애와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에서도 동성애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해석을 제시한다. 하지만 동성애 이슈에서 한국교회는 한 가지 답만을 강요한다. 원하는 답을 말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이단', '반기독교 세력'으로 낙인찍는다. 그런데 성경이 그 부분에 명확한 답을 내리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진실을 말하자면, 낙태나 동성애, 그 어느 영역에서도, 우리에겐 명확한 안내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의 목구멍을 찢어 버리기보다는, 자신들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내가 정확하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나는 어떻게 아는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기독교인들이, 우리도 틀릴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목소리 크기를 95% 낮추고, 우리의 신념들을 조용히 나타내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75쪽, 월터 윙크, '동성애와 성경')

2018년 퀴어 문화 축제가 다가왔다. 이제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의 '퀴어 축제 반대 국민대회'도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또 어떤 말의 칼들이 난무하게 될까. 우리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기보다, '동성애 반대'를 극렬하게 외쳐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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