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아난(36)은 예멘에서 호텔리어로 지냈다. 근무지는 5성급 호텔로, 인테리어가 유명한 곳이었다.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세 자녀를 남기고 말레이시아로 몸을 피했다. 제주도가 구직 환경과 생활 여건이 좋다는 말을 듣고, 올해 5월 터전을 옮겼다. 그는 현재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주관하는 난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심사가 하루빨리 끝나 난민 인정을 받고 번듯한 일자리도 구해, 고향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길 원한다.

아마르(28)도 아난과 비슷한 시기에 제주에 왔다. 그는 집안 장남으로, 밑으로 동생이 10명이다. 내전이 일어나자 가족들은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장남이라도 살려야 한다'며 아마르를 해외로 탈출시켰다. 그는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동생들을 위해 어서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

제주에서 아난과 아마르를 돌보고 있는 이정훈 목사(늘푸른교회)는 예멘 난민 신청자 대다수가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은 이들이 대부분 20-30대 젊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가짜 난민'이라 주장한다. 이들을 한 명 한 명 제대로 안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를 놓고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인권센터(박승렬 소장)가 7월 10일 '제주의 난민,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난민에 대한 허위 사실과 혐오·차별 발언이 계속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어떤 태도로 난민들에게 다가가야 할지 논의했다.

교회협 인권센터는 한국교회가 난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멘인들 주거·일자리 문제로 어려움
교계는 난민 찬반으로 분열
개교회 중심으로 돕고 있는 교역자들

현재 제주에는 무사증 제도로 입국한 난민 신청자 수가 1048명이다. 예멘인이 549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인(355명)이 두 번째로 많다. 지난해 무사증 제도로 입국한 난민 신청자는 313명이다. 무사증 제도로 입국한 난민 신청자 수가 1년도 안 돼 세 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정훈 목사는 "난민 신청자가 대거 유입하자 일부 도민이 격렬하게 반대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제주도청 홈페이지에는 난민을 모두 쫓아내고 무사증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글이 1187건 올라왔다(6월 25일 기준)"며 도내에 형성되고 있는 난민 반대 여론을 소개했다.

현재 제주 거주 예멘인이 가장 어려워하고 있는 사안은 일자리와 주거 문제다. 정부는 지난달 예멘인을 대상으로 조기 취업을 승인했다. 지난달 14·16일에는 취업 설명회를 열어 제주도에 남아 있는 예멘 난민 신청자 486명 중 382명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줬다.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7월 9일 기준, 당시 구직자 382명 중 135명이 해고당하거나 일을 관둬, 현재 취업 중인 예멘인은 247명이다. 이 목사는 "예멘인들이 취업한 업종은 어업·양식업·요식업 등이다. 처음 경험하는 일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고용주가 차별적인 대우를 해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상담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하면 주거 공간도 마련할 수 없다. 현재 제주이주민센터가 이들에게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들이 침대를 마련해 줘 예멘인 53명이 센터에 거주할 수 있게 됐다. 제주이주민센터는 주거 지원 외에도 인권·노동 상담 및 한국어 교육 등 여러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주 교계도 난민들을 돕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정훈 목사처럼 일부 목회자는 개교회 단위로 예멘인을 돕고 있지만, 430여 교회가 모여 있는 제주기독교교단협의회는 아직까지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목사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올 때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왔다. 제주 교계는 난민을 놓고 반으로 갈라졌다. 예멘인을 도와야 한다는 목회자가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나그네를 환대하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난민 관련 간담회를 진행해, 제주 교계가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할 계획이다"고 했다.

아브라함·야곱·이삭·요셉
출애굽 모두 나그네 이야기
경계를 넘어 이방인까지
포용한 예수와 바울

최형묵 목사(교회협 정위평화위원회)는 성서가 기본적으로 거류민과 나그네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성서의 신앙 세계를 형성한 사람들이 대부분 삶의 근거지를 벗어나 떠도는 이들이었다고 말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이며, 그의 아들 이삭부터 야곱·요셉의 이야기 역시 나그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 중 하나인 출애굽 이야기도 히브리 민족이 나그네로서 겪는 억압과 해방을 담고 있다.

신약성서에는 나그네를 환대하고 맞이하라는 가르침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예수는 시돈 여인,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며 유대인 정통주의를 넘어서려 했다. 최 목사는 "예수가 삶의 뿌리를 떠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을 보인 건, 구원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바울도 성서에서 이방인들을 옹호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최 목사는 "바울의 인의론認義論(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다는 가르침)은 민족적 정체성과 일부 기득권이 형성한 경계를 넘어 구원의 보편적 성격을 역설하고 있다"며 바울이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형성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서에 나타난 나그네 의식을 소개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퍼뜨리며 난민을 향한 혐오와 배제를 펼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신앙을 명분으로 혹은 성서를 근거로 난민을 차별하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예멘인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줬다. 그러나 노동 환경, 차별 대우 등에 어려움을 겪고 일을 그만두는 예멘인이 늘어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날 긴급 간담회에서 <뉴스앤조이>는 예멘인과 관련한 '가짜 뉴스'들을 소개했다. 제주 예멘인 유입을 계기로, 과거에 거짓으로 판명난 소문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가 난민에게 1인당 138만 원을 지원한다""예멘인이 브로커를 통해 입국한 가짜 난민이다""무슬림에 집단 강간 문화가 있다""무슬림 난민 수용하면 레바논처럼 이슬람 국가가 된다""난민들의 목표가 한국의 이슬람화다" 등은 이미 거짓으로 드러난 가짜 뉴스다.

<뉴스앤조이>는 수년 전부터, 때가 되면 돌고 도는 이슬람 루머들을 팩트 체크해 왔다. 그러나 언론이 아무리 진위를 밝혀도, 근거 없는 정보가 매번 새롭게 유통된다. 인터넷에 돌고 있는 난민과 관련한 뉴스는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루머 중 개신교발 루머가 많은 만큼, 기독교인들은 난민과 이슬람에 관련한 뉴스를 한 번 더 사실 확인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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