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정부에서 예멘 난민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다고 하여 내심 기다렸다. 법무부의 대책은 '엄정, 정확, 신속한 심사를 한다' 외에 없었다. 오히려 이번에 입국한 예멘인들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던지며, 난민을 돕는 시민에게 '지나치게 온정주의적으로 접근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국가나 지자체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런 요청을 해도 문제인데, 대책 마련도 없으면서 시민을 훈계했다. 더욱이 난민들 입국 자체를 차단하려는 시도는, 난민법이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인지 감시와 통제하기 위한 법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국가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희한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독일은 3년 전, 12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당시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90만여 명이다(2017년에는 18만 5000명을 난민으로 인정). 이번에 제주에 예멘 난민이 500여 명 들어온 것에 나라 전체가 난리 법석이다. 실소를 금할 수밖에 없다(한국의 경우, 난민 인정률 4.1%에 근거해 추산하면 500여 명 중 20명 정도가 난민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3년 전, 이주민 관련 공무원 7명과 '유럽 다문화 도시 벤치마킹'이라는 주제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코디를 맡았다. 각 기관을 연결하고 통역을 맡아 주관한 바 있다. 당시 아주 생소하고 충격적인 일정이 있었는데, 바로 독일 난민 수용소 방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갑작스런 난민의 물결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에 대한 점검은, 오늘 우리가 당면한 예멘 난민 사태에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내가 방문한 하이델베르크 난민 수용소는 1952년부터 2013년까지 미군 기지로 사용됐다. 현재는 하이델베르크시 사회국과 개신교 사회 실천 재단 '디아코니아', 가톨릭 사회 실천 재단 '카리타스', 적십자가 공동 운영하고 있었다.

당일 수용소 정문에서 만난 마르틴 헤스 소장은 나와 하이델베르크대학 디아코니아학 연구소에서 디아코니아학(개신교사회실천학) 디플롬 과정 동기생이었다(그는 현재 하이델베르크 디아코니아 대표다). 16년 만에 만난 우리는 부둥켜안고 기쁜 해후를 했다.

당시 소장인 친구를 통해 상세하게 난민 관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서술해 본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난민 서류를 신청 및 접수하고, 임시 보호 등 난민을 지원하는 것이란다.

독일은 3년 전 12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독일 의사당 사진.

- 수용소에는 어떤 시설은 있고, 난민 수나 직원 수는 얼마나 되는가.

직원 사무실, 난민 거주 숙소, 경찰서, 치과 병원 등이 있다. 치과 병원에서도 난민 서류 접수를 병행하고 있다. 지난 겨울에만 이곳 미군부대를 난민 1000여 명의 임시 숙소로 사용할 계획이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2900명으로 증가했다. 현재 근무하는 인력은 카리타스, 디아코니아 실무자 9명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제일 먼저 난민을 수용하는 곳이다. 모든 난민은 모든 권리와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특별한 상황에 있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돕는다.

- 난민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정부에서 정확한 난민 리스트를 주지 않고 있다. 단지 필요한 서비스와 지원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려우나, 난민 중 50% 이상이 싱글 성인 남성이다. 그 밖에 임신한 여성, 16세 전후 청소년이 많은 상황이다. 시리아에서 온 난민이 제일 많다. 발칸반도 코소보와 보스니아 등에서도 많이 온다. 가족들이 전부 오는 경우도 있다. 현재 모두 보호받고 있는 상태다. 아프간, 이란, 파키스탄,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에서 전쟁과 분쟁을 피해서 온 난민들이 심사를 기다리는 첫 관문이기도 하다.

- 난민 발생 원인은 대체로 무엇인가.

난민 중 1/3은 전쟁 때문에 발생한다. 또 1/3은 종교적 이유 등 개개인의 사정 때문이다. 나머지 1/3은 경제적 요인으로 발생한다. 그중 발칸 지역 저소득계층은 난민으로 받지 않는다. 차별이나 배제를 피해서 오는 경우도 있다.

- 개인 사정으로 난민이 되는 경우 어떻게 검증하는가.

시리아, 코소보, 알바니아 등에서 오는 사람들 개개인의 성향과 기질은 다양하다. 처음 3개월간 같이 있으면서 난민 발생 원인과 관련한 분야의 특수한 전문가들이 인터뷰한다. 그렇게 해서 나라에서 난민을 결정하고 세분화하고 있다.

- 의사소통은 보통 어떻게 하는가.

영어나 독일어가 되는 난민들도 있다. 자원봉사자가 통역하면서 생활을 돕고 있기도 하다. 의사소통이 예상외로 잘되고 있어 놀랐다.

- 난민들 건강은 어떻게 돌봐 주는가.

긴급 상황이거나, 통증이 심한 사람을 먼저 치료해 준다. 만성질환은 15개월 후 난민 인정을 받은 후에 건강보험으로 치료 가능하다.

- 난민 신청은 어떻게 하는가.

일단 국경을 넘어 독일 땅으로 들어와서 스스로 신청해야 한다.

- 일은 어떻게 할 수 있나.

처음 3개월은 일할 수 없다. 3개월에서 15개월 동안 외국인출입국사무소에 신청 가능하다(독일, 유럽연합 실업자에게 먼저 배정된 후에 기회가 온다). 15개월 이후에는 보통 사람과 같이 직업 신청 및 직업 상담이 가능하다. 일자리 자체가 큰 이슈이며 서류 절차가 검토되는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시간당 1.5유로를 받는 일자리를 준다. 청소나 빨래, 기타 난민촌의 잡일을 하는데, 지원자가 너무 많은 상태라서 경쟁이 심하다. 자유 시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스케이트보드장 개설, 어린이집 운영, 운동 시설 활용)을 돕고 있다. 현재 전담 인력이 7명인데, 턱없이 부족해 10명을 더 뽑을 계획이고, 내년에 15명 추가로 채용된다. 난민 100명당 1명을 담당하는 것으로 비율을 잡으려고 한다.

6월 30일 저녁,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난민 반대 집회 현장. 뉴스앤조이 최승현

3년 전 기억을 되살리며, 오늘 우리에게 닥친 난민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정리해 본다. 우선 독일에 처음 들어온 난민은 3개월간 일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생활하는가. 국가가 개입하고, 민관 협력 기관인 개신교 디아코니아, 가톨릭 카리타스, 적십자가 실질적으로 일을 감당한다. 그리고 국가가 개입해 난민들의 건강검진을 하고, 양식과 숙박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일단 3개월 내지 6개월간 심사가 끝나면, 그룹별로 도시 안에 거주지를 잡아 이동한다. 거기에서 독일 사회에 통합을 위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자리를 얻고 사회에 통합된다.

우리는 어떤가. 예멘 난민이 몰려오니 제주도에서만 머물라고 출도 금지 명령을 내린다. 예멘 사람들은 향후 입국 자체를 금지하기로 했다. 숙소도 일정한 장소가 없이 호텔, 게스트하우스, 공원 등 심지어 노숙하는 사례까지 벌어진다. 하여 시민사회는 긴급 예멘 난민 도움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쉼터를 마련해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을 정부가 부담할 수 없으니, 예멘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노동 현장으로 나간다. 이것도 정부의 배려라면 배려일 수 있다. 본래 법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할 수 있게 제한을 없앤 것이니 말이다. 독일의 경험에 비춰, 갑작스런 난민 신세의 예멘인들을 노동시장에 편입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자문해 볼 수 밖에 없다.

난민으로 온 사람들은 자국에서의 전쟁과 폭력으로 트라우마가 심한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안정을 취할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긴급 예산을 투여하여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해야 온당하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얼마 전 제주시가 운영하는 수영장에 예멘인들을 몇 명씩 입장해, 샤워실에서 샤워만 하려 했는데, 거부당했다. 엄밀하게 말해 예멘인을 차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쪽박을 깨서는 안 되지 않은가.

독일은 난민이 들어왔을 때 민관 협력 기관들이 깊이 개입한다. 시민사회와의 연계 가운데 자원봉사, 명예직 등 시민사회의 자발성과 헌신성을 오히려 국가에서 유도한다. 한국은 전술한 것처럼, 시민에게 지나친 온정주의에 의한 도움을 자제해 달라고 이야기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일탈한 일부 개신교에 속한 이들이 이슬람 혐오주의에 기반해 배제와 추방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정부의 미온적 태도와 애매한 입장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거짓 뉴스와 정보를 통해 예멘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와 종교 편향적 이데올로기를 아무 여과 없이 대중에게 노출해 연대와 공감이 아닌 혐오와 배제의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신자유주의가 진행될수록 초국적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에 대한 탐욕과 불의로 여러 분쟁이 세계 도처에 범람한다. 세계를 떠도는 6500만 난민은 이러한 원인과 맞물려 있다. 때로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로 분쟁이 일어나 폭력과 내전으로 비화한다. 현재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예멘의 경우, 미국 지원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다국적 군사 진영, 이란의 지원 아래 자기 땅에서 대리전쟁 성격으로 진행되다가 2015년 분쟁의 비등점을 지나면서 폭발한 것이다.

지금 예멘은 국가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기본적 삶의 자원도 고갈되어 아비규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젊은 남성들은 반군이나 정부군의 징집으로 전장에 나가 죽음의 사선을 넘는다. 오늘 이 땅에 난민으로 온 예멘인들은 바로 이러한 사선을 넘고 구사일생으로 아시아의 끝인 한국에 온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차제에 한국인의 난민을 향한 인식을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힌다. 가짜 난민은 없다.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전체는 달리 보인다. 의심의 눈초리로 처음부터 난민의 존재를 규정하고 보면, 모든 난민 신청자가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세계시민의 눈으로 동등한 하나의 사람으로 난민 신청자를 보게 되면 어떻겠는가. 극심한 고난의 현실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사력을 다해 탈출한 그들의 심경을 생각하고 자비의 마음으로 다가가면 달리 보인다. 여러 물질적 후원보다도 더 선행해야 할 것이 이 공감의 마음과 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소통의 능력을 갖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3년 전 120만 난민을 맞아들인 독일 총리 메르켈이 얼마 전 난민 문제로 연정 파기를 주장하며 난민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수용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기독교사회연합 대표 제호퍼에게 한 말이 있다. "기독사회연합이라는 당명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정당이 맞는가." 그러자 기독사회연합 대표는 연정 파기로 으름장을 놓앗지만, 결국은 타협점을 찾으며 일단락이 되었다. 메르켈 총리는 극우 정당 압박으로 협상은 하였지만, 단호했다.

"다시 2015년처럼 난민이 100만 명이 몰려온다 해도, 똑같이 난민을 수용할 것이고, 난민을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홍주민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디아코니아학 디플롬(Dip.Diakoniewissenschaftler) 및 신학 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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