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6월 29일 오전 11시 40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는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으로 바글바글했다. 그 사이로 '구글' 로고가 박힌 흰색 티셔츠를 입고 무지개색 풍선을 든 20여 명이 줄을 지어 걸어갔다.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글 스티커와 명함 모양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 앞면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구글은 '모두를 위한 구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소수자가 구글에서 일하고 있고, 구글은 성소수자가 일하고 싶은 회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구글은 올해도 전 세계의 퀴어 문화 축제에 함께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카드 뒷면에는 2018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7월 1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다는 안내가 담겼다. 구글 직원 20여 명은 점심시간을 쪼개 '역삼역 - 강남역 - 신논현역 - 역삼역'으로 이어지는 1.4km 구간을 행진했다. 행진하면서 만나는 행인에게 돌아오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마치 '노방전도' 같았다.

직원들은 행인에게 구글 스티커와 명함 모양 카드를 나눠 줬다. 맨 앞에는 정김경숙 전무(가운데 검정색 모자 쓴 이)가 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 행사는 사내 성소수자 인권 지지 모임 '구글게이글러스'(Google Gayglers)에서 준비했다. 공동대표 정김경숙 홍보총괄전무는 행렬 맨 앞에서 깃발을 들고 힘차게 걷고 있었다.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니 관심을 갖고 참여해 달라고 외쳤다. 행진은 유쾌하게 진행됐다. 외국인들은 참석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구글코리아는 성소수자 인권 증진 사업에 적극적인 기업이다. 2014년부터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회사 부스를 설치하고 직접 만든 기념품을 판매한다. 2015년 성소수자 청소년 위기 지원 센터 '띵동' 설립을 도왔고, 지난해에는 인권재단 사람과 함께 한국 사회 성소수자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무지개인권프로젝트-온' 사업을 지원했다. 이 때문에 반동성애 진영 개신교인들은 구글을 '동성애 옹호·조장 기업'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이런 사업들의 중심에는 정김경숙 전무가 있다. 정김경숙 전무는 구글이 성소수자를 돕는 사업에 앞장설 수 있도록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에 다니고 있는 그리스도인이기도 하다. 행진을 시작하기 전, 구글코리아 본사에서 그를 만나 어떻게 이런 길을 걷게 됐는지 들어 봤다.

5년째 퀴어 문화 축제 참여
해마다 참여 직원 늘어
"반대 세력 비판 있을 수 있지만
옳은 일이면 하라는 게 회사 방침"

- 언제부터 퀴어 문화 축제에 참석하게 됐는가.

퀴어 문화 축제가 2013년 홍대에서 열렸을 때는 혼자 갔다. 다음 해에는 퀴어 문화 축제에 공식적으로 구글 부스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그때도 동료들에게 같이 가자는 말을 못 하겠더라. 내가 위험에 노출되는 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까지 그렇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아이를 막 꼬셨다.(웃음) 그래서 나와 아이, 회사 직원과 그의 아내 이렇게 네 명만 참석했다. 그 다음 해에는 회사에서 12명, 그 다음 해에는 30명이 참석했다. 올해는 더 많은 직원이 참석할 예정이다.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구글은 2014년부터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은 2014년 부스 모습. 구글코리아 블로그 갈무리

- 회사 내부에서는 어떤 식으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는가.

사내 직원들의 공감을 얻는 게 중요하다. 매해 퀴어 문화 축제가 다가오면 성소수자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을 초청한다. 매주 금요일 전 직원이 모이는 시간이 있다. 이때 성소수자부모모임 어머니들도 왔다 갔고, 이번에는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를 초청했다. 직원들도 성소수자 당사자 혹은 그들의 가족, 지지자들 이야기를 들으며 젠더 감수성을 키운다.

올해는 '게이글러스'에 속한 직원들과 함께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 중이다. 거리 행진도 부스 운영 방안을 논의하다 나온 아이디어다. 퀴어 퍼레이드가 강북에서 열리는데, 강남 직장인들은 행사를 잘 모르니까 밖에 나가서 적극 알리자는 취지다. 대범한 아이디어다. 같이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구글이 동성애를 옹호·조장한다며 불매운동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성소수자 이야기를 할 때, 회사 내부에서 반대는 없었나.

퀴어 문화 축제에 구글 부스를 처음 설치한 2014년에는 성소수자 청소년 위기 지원 센터 '띵동'이 설립 준비 중이었다. 구글에는 사내 공모 형식을 통해 필요한 곳에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띵동을 지원하면 좋겠다 싶어 프로그램에 응모했다. 응모 전 "구글이 왜 이런 걸 하느냐"며 반대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조마조마하게 준비했는데, 상사가 "정말 좋다. 당신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right thing to do', 옳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더라. 프로젝트는 통과됐고 띵동에 3000만 원을 지원했다.

이듬해 사내 공모에 또 띵동을 지원하겠다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때도 다른 상사가 "당신이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 지난해에는 인권재단 사람과 함께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 8개에 자금을 지원했다. 회사에서는 언제나 "당신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 같은 과정을 세 번 거치니까 '구글 사람들은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지난해 매니저에게 "한국에는 크리스천이 많아서 우리가 이런 거 하면 반대할 수도 있고, 회사 앞까지 와서 불매운동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매니저가 웃으면서 "로이스(정김경숙 전무 영어 이름), 우리 제품은 다 공짜야"라고 하더라.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가 그렇게 이야기해 주는 게 정말 큰 힘이 됐다. 비즈니스에 안 좋을 수도 있지만, 옳은 일이면 해야 한다는 걸 명확하게 해 줬다.

- 회사 외부의 반대보다는 동료들의 동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퀴어 문화 축제 때가 되면 '화나신 분들'이 안내 데스크에 전화를 건다. 그 기간에 지속적으로 오는데, 그때가 지나가면 또 괜찮다. 회사 외부보다는 내부의 반대를 제일 걱정했는데, 회사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옳은 가치를 실현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부 사람에게는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비즈니스를 한두 해 할 것도 아니다. 계속 이 길을 간다면 결국에는 진정성을 인정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주화 운동 피해 간 부채 의식
10년 전 집회서 향린교회 알아
섬돌향린과는 5년째 함께
임보라 목사 이단 시비 신경 안 써

- 섬돌향린교회 교인으로 알고 있다. 기성 교회와 조금 다른 교회다. 어떻게 다니게 됐나.

부모님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교회를 다니셨다. 주일성수 안 하면 큰일 나고, 주일에 돈 쓰거나 음식 사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던 곳이었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그 교회를 다니다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 시작한 중·고등학교 때는 부모님과 있을 때만 교회에 갔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더 안 나가게 됐다. 눈에 보이는 신앙 행위만 중요하게 여기는 게 갑갑하고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녔는데, 그 시대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곤경에 처한 사람이 많았다. 그것 때문에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운동권이 아니어서 안전하게 대학 생활을 했으니 (그들에게) 빚진 마음이 많았다.

정김 전무는 약 10년 전부터 향린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섬돌향린교회와는 개척 때부터 함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나이가 들어 사회의식이 깨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진보적이라 알려진 교회들을 몇 년씩 다녔지만 정착하지 못했다. 그러다 광우병 사태가 나면서 시청 집회에 참석했는데 향린교회 깃발이 보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역사가 오래된 곳이더라. 그런 교회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향린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나랑 딱 맞았다. 나는 하나님이 주체적 인간으로 날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나는 주체적으로 이 사회를 어떻게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향린교회를 만난 것이다. 향린교회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좋고 교우들도 좋아서 잘 정착하게 됐다.

- 섬돌향린교회는 분립할 때부터 함께한 건가.

향린교회는 규모가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분립하는 규정이 있다. 나는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비주류, 작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섬돌향린교회를 일부러 선택했다기보다, 내 삶의 원칙이 그랬다. 또 한 가지. 혹시라도 나의 사회적 위치가 교회에 도움이 된다면 작은 곳으로 가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섬돌향린교회 다니기 전에도 성소수자에게 관심이 많았는가.

향린교회 다닐 때는 막연하게 '모든 사람은 동등하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섬돌향린교회에 와서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실제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어떤 성소수자 교인이 파트너와 함께 사는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자동차 보험도 가족 특약, 부부 특약 이런 게 적용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문제였다. 이런 사연을 들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 지난해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이단 시비를 겪었다. 교인으로서 힘들지 않았나.

이전에도 구글에서 '향린'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로 '이단'이 나왔다. 사실 이단이라고 불리는 게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가 기성 교회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다만 임 목사님이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단 시비는 결국 8개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결론 내고 끝났다. 화는 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너무 말이 안 되니까, 교인들도 그냥 털어 버리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결국 본질이 중요한 거니까.

- 임보라 목사 이단 시비도 결국 성소수자 혐오에서 시작한 문제다. 지금 개신교는 한국 사회에서 혐오에 앞장서는 집단이 됐다.

그 사람들을 내 잣대로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가 믿는 바가 뚜렷한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사는 거 아닌가. 다만 나도 기독교인으로서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았는데, 왜 사람을 모양새로 차별하고 판단할까. 그런 것에 화가 난다.

그 사람들이 변하면 제일 좋겠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들이 변화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려면 우리가 계속 활동해야 한다. 우리 목소리를 높이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미국이 성소수자 이슈에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그곳에도 분명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미국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 더 행동하면 좋겠다.

정김경숙 전무가 회사 내 '다양성도서관'에서 <예수, 성경, 동성애>(한국기독교연구소)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나서고 싶어도 그 다음 일이 걱정돼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향린공동체 다니면서 배운 것이다. 실행이 중요하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행동해야 한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준비해서 발표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도하면 뭔가 결과가 생기지만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할 수가 없다.

개신교에서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 ─ '영생'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서는 좀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좀 다른 것 같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주변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는 이곳에서 활동해야 할 것 같다. 영원한 삶에 대한 기대보다, 지금 이 사회를 조금 더 낫게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그게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주신 역할이라 생각한다.

- 개신교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시야를 조금 넓혔으면 좋겠다.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교회, 우리 교단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넘어, 더 넓게 보자. 다른 사람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경계선을 넘어 기독교인의 한계가 넓어지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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