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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반대해 온 교회, 군사주의 넘어서야

헌재,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 '헌법 불합치'…대체복무제 시대, 평화의 길 묻다

박정경수   기사승인 2018.07.02  16: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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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종교적·정치적 이유 등으로 입영을 거부한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제를 제공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5조 1항을 '헌법 불합치'라고 결정했다. 비록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근거로 사용된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려 아쉬움이 남지만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그간의 병역거부 논쟁도 일단락됐다.

이번 결정은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 합헌 결정을 헌법재판소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는 89건이나 되는 병역거부 무죄판결과 대체복무제에 대한 여론 변화, 판문점 선언 이후 긍정적인 남북 관계 등이 반영됐다고 평가된다. 그간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2017년에만 하급심에서 44건의 무죄판결이 있었다. 2016년 처음 항소심 무죄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이 무죄판결이 무더기로 쏟아진 것에 일선 재판부가 집단적으로 데모를 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병역거부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려야 했던 재판부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강력하게 요청한 것이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많이 바뀌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여론조사를 보면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2005년 10.2%에서 2016년 46.1%로 변화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병역거부 자체를 반대하는 여론은 많았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비율은 2018년 73.4%로 나왔다. 병역거부를 반대하더라도 지금처럼 감옥에 보내는 것에는 반대하는 여론이 늘어난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병역거부를 인정할지 말지 논쟁할 시점은 지났다. 이제는 어떤 대체복무제를 도입할지,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 어떻게 사회적 변화를 받아들일지 더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 가야 한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당장 재판을 받으며 수감을 기다리던 900여 명이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 현재 수감된 200여 명도 형 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날 가능성이 생겼다. 해방 이후 1만 9000명 넘게 수감됐던 끔찍한 역사도 끝날 것이다.

무엇보다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은 우리 사회 국가의 역할과 안보 개념을 확장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지나치게 군사력 중심의 전통적 국가 안보 개념만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외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일도 중요한 안보 개념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94년 처음으로 '인간 안보'라는 단어를 쓰면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것'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2011년 독일에서 징병제를 폐지할 때의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사회복지 영역 한 축을 담당하던 대체복무제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사회복지가 중요한 국가 역할이라는 인식으로 그동안 9만 명에 달하는 대체복무자들이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돌봄 노동을 향한 사회적 인식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독일 대체복무제 경험은 대체복무제를 통해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대체복무제에는 병원이나 요양원 등 사회복지시설 영역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남성들이 대체복무제를 통해 돌봄 노동에 참여하면서 돌봄에 대한 성별 분업이 무너지고 사회가 돌봄 노동을 진지하게 고민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은 개인의 인권 문제를 넘어 군사주의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다. 2001년 병역거부 문제 공론화 이후 많은 병역거부자가 평화를 이야기했다. 스스로 감옥을 선택하는 병역거부를 적극적으로 평화를 실천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라크 파병과 평택 군사기지 확장, 쌍용자동차 노조와 밀양에서의 국가 폭력, 그리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제 국방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를 혼동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참여하는 것이 안보를 튼튼하게 한다는 인식도 생겨날 것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신화의 시대가 끝나면서 이 땅에서 색안경을 끼지 않고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도 점차 다가올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던 날 현장에는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바른군인권연구소 등 기독교 단체이거나 목사들이 대표를 맡고 있는 단체들이 나와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인권과 평화의 가치에 반대하는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것에 반대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수감된 병역거부자 대부분이 여호와의증인 소속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신교·가톨릭·불교 등 다른 종교를 가진 병역거부자와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가진 병역거부자도 꾸준히 있었다. 전 세계 수감자의 92%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그 숫자가 결코 작지 않다.

개신교만 놓고 본다면 최근 공론화한 예비군 병역거부 문제에 개신교인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군대를 갔다 왔는데도 평화적인 이유로 8년 동안 계속되는 재판과 벌금의 고통을 감당하겠다는 이들이다. 내가 활동하는 전쟁없는세상과 평화 단체들에도 병역거부 문제 해결을 위해 묵묵히 활동해 온 개신교인이 많다. 병역거부 문제에 가장 큰 반대 세력이 보수 개신교라는 점을 생각하면 꾸준히 개신교 병역거부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다. 대개 교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초대교회 역사와 평화교회 전통을 공부하는 이들이다.

대체복무제 시대, 이제는 교회가 질문을 받을 차례다. 잘못된 전쟁에 파병하고 끊임없이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평화적 신념에 따라 박해받아 온 병역거부자들을 탄압하는 것이 교회 역할인가. 스스로를 국가, 혹은 군대와 동일시해 온 교회 역사는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이제 교회 스스로 찾아야 한다.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의 신화가 벗겨질 때에 비로소 바른 교회의 길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정경수 / 평화 활동가, 병역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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