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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난민은 없다

사선을 넘어 찾아온 난민들 환대해야

홍주민   기사승인 2018.07.01  19: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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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에는 한 장의 사진이 놓여 있다. 아버지 사진이다. 1955년 청주 변두리 난민 수용소에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교회를 세우는 현장감 있는 사진이다. 질통을 지고 못질하고 기초를 다지는 작업을 비롯해 많은 것을 교인들이 함께했다. 나이 서른다섯, 전쟁의 상흔이 다 가시기 전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급식소였다. 특히 난민으로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은 하늘이기에, 아버지는 여러 구호 물품을 조달받아 전해 주는 전달자로서의 교회가 됐다.

유엔난민기구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 이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들을 위기에서 탈출하게 하고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구성한 국제조직에서 시작됐다. 종전 초반, 무상 원조가 없었다면 적게는 수백만 명, 많게는 인구 절반이 극심한 기아 상태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난민 규모는 600만여 명이었다. 이들은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남미, 인도로 흩어졌고 가까운 일본으로도 갔다.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많은 난민을 실은 수송선은 미국 매러디스빅토리아호이다. 1950년 12월 22일, 난민 1만 4000여 명을 수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배에 탔던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현재 해외 거주 800만여 명의 한인은 1960년대에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로 간 이민자들을 제외하고 거의 난민 출신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진. 사진 제공 홍주민

제주에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들어와서 나라가 온통 난리다. 우리나라 인구 1/10만 정도가 들어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얼마 전 독일인들이 와서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왜 독일이 120만 정도의 이슬람 난민을 수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며 이슬람의 호전성과 문란함 등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독일인이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독일 인구가 8000만 명인데, 120만 정도 들어온 것을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단다. 한 교실에 학생 80명이 있는데, 1명이 새로 들어온 상황이다. 큰 영향이 있는지 반문한다. 이슬람도 평화를 존중하는 종교이기에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독일은 난민이 들어와서 오히려 사회적 문화, 연대의 기운이 더 활성화됐다고 한다.

특히 교회는 디아코니아가 직접 개입해서 난민을 섬기다 보니 교회를 다니다가 안 나왔던 이들도 다시 교회에 출석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단다. 더 나아가 이슬람 난민들이 자기 나라 주변 이슬람 국가에서도 받아 주지 않는데 기독교 국가 독일에서 흔쾌히 자신들을 받아 주는 것을 보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례도 나타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한국전쟁 이후 세계 수많은 나라가 보내온 소중한 생명의 후사들을 통해 연명해 온 사람이다. 어렸을 때 교회가 급식소였으니 늘 구호물자가 있었다. 가난하지만 배를 채울 수 있는 최소한의 먹거리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 제주에서 만난 예멘 친구들은 대부분 세월호 세대였다. 20~28세로, 나의 아들과도 같은 아이들이었다. 내 어린 시절과 내 아들들의 얼굴이 오버랩하면서 가슴이 메였다. 내 아들이 기타 치면서 노래한다고 하니 눈이 동그랗게 되면서 자기도 노래를 좋아한다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여 준다.

이들이 가짜일까. 아니다. 이 친구들이 제주로 온 목적은 단 하나다. 생존을 위해서. 물론 이들은 이제 심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1994년부터 이때까지 4만 470명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진짜 난민으로 받아들여져서 난민 지위를 획득한 사람은 839명이다. 결국 얼마 안 있으면 그들은 등급이 분류되어 난민 지위를 획득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2%이다. 아니면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본국 송환이 결정되거나 타국으로 송출될 것이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앞에 줄을 서 있는 예민인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500년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랑스 출신 개혁가 장 칼뱅도 난민 신세로 개혁 운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임종을 얼마 앞두고 획득한 국적은 서러움과 회한의 결과물이었다. 하여 칼뱅은 그 도시에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안전장치를 만들었고, 제네바는 당시 전 세계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로 유명했다고 한다. 오늘날 제네바가 국제기구 200여 개를 존치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제주도, 진정한 마음으로 '평화의 섬'으로 남길 원하는가. 배척과 혐오의 눈길을 거두시라. 한국, 아시아, 세계에서 평화의 심장부로 역할을 하길 바라는가. 사선을 넘고 이 땅에까지 찾아온 난민들을 따듯하게 맞이하라. 평화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홍주민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디아코니아학 디플롬(Dip.Diakoniewissenschaftler) 및 신학 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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