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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교인④]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

평화교육 단체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

이은혜 기자   기사승인 2018.06.30  2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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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평화' 하면, 주로 '안보', '통일', '한민족'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이런 단어는 주로 국가 단위에서 실행할 수 있는 거대 담론과 연결된다. 평화가 중요하다고는 말하지만, 정작 우리 일상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인들에게 '평화교육'은 '호국 안보 교육'과 동의어였다. 학교에서 접할 수 있는 평화교육도 대부분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하는 반공 교육이었다. 분단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논하기보다는, 이 체제 안에서 북한을 어떤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지 교육받아 왔다.

피스모모(PeaceMomo)는 우리 삶 곳곳에서 어떻게 평화교육이 가능한지 고민하는 시민단체다. 한국은 분단 상황이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혐오로 평화가 깨진 상태다. 피스모모는 한국 사회에 점철된 비평화를 개선하려면 시민 각자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피스모모는 공교육에서 평화교육의 필요성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2012년 창립한 단체다. 문아영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평화교육'을 전공했다. 문 대표는 교원대에 진학했지만 교사가 되는 것은 본인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진로를 고민하던 중 '평화학'을 알게 됐다. 이후 코스타리카에 있는 유엔평화대학에서 평화교육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단체를 시작했다.

문아영 대표는 목회자 자녀로, 모태신앙인이기도 하다.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문 대표는 지금도 주일이면 아버지가 목회하는 강원도 춘천의 한 교회에서 교사로 아이들을 만난다. 문아영 대표는 개신교인 정체성이 평화교육이라는 생소한 길을 가는 데 균형추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평화교육 단체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를 6월 19일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피스모모가 입주해 있는 서울혁신파크에서 6월 19일 문아영 대표를 만났다. 피스모모 소개부터 문 대표가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들었다. 문 대표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겉으로 보이는 잔잔함 속
내재된 구조적 폭력
평화교육으로 극복

- 피스모모에 대해 소개해 달라.

피스모모는 평화교육 단체로 평화운동과 교육 활동을 연결하는 게 중요한 비전이자 미션이다. 보통 평화운동이라고 하면 반전反戰, 대체복무제 도입, 군비축소 캠페인 등을 떠올린다. 평화운동 단체들은 군사화를 반대하고 원하지 않는 곳에 무기를 배치하는 데 반대 목소리를 내 왔다.

하지만 공교육에서는 평화운동이 해 온 다양한 활동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고, 시민교육 영역에서도 평화운동이 확산되지 못했다. 평화운동이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만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일차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평화교육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직접 학생을 만나기보다 학교 선생님들과 만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처음에는 교사 연수에 특화한 비영리단체로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평화를 접하고 교육 현장에 돌아가 본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설립 초기 목표였다.

'피스모모'의 '모모'는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는 의미다. 우리는 가르치는 행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가르친다'는 행위에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전달하면 수동적 위치에 있는 학습자가 반응할 것이라는 관계가 설정돼 있다. 피교육자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능동적으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재구성한다. 재구성하고 탈락시키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학습이 일어나는 것이다.

피스모모의 중요한 키워드는 '가르치지 않는 평화교육'이다. 교사 각자가 스스로의 경험과 지식에 기반해 중요하게 생각한 것과 피스모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반응과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 이후는 선생님들이 만들어 가면 된다.

- 가르치지 않는데 배운다는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다. 보통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하나.

일방적 강의식 교육 대신 워크숍 형태로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만나는 게 핵심이다. 평화교육의 핵심이 무엇인지 개념을 공유하고, 활동과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는다.

'평화'라는 단어는 보통 '전쟁'의 반대말이나, "여기 평화롭다", "안전하구나", "쉴 수 있구나" 같은 느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상은 많은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일상을 낯설게 보지 않으면 평화로워 보일 수 있다. 이것을 드러내고 변화하게 하는 작업이 평화교육이다.

평화로 가는 과정 자체가 평화롭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소 불편하고 요동치고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

- 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의 방법론도 제시하는가.

우리는 정답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혐오하지 말라"는 포지션을 취하지 않는다. 유려한 언어로 "타자를 환대하는 건 중요하다"고 말하더라도, 이게 내 삶으로 들어오면 내 문제가 된다. 내 문제는 다른 사람이 책임져 줄 수 없다. 각자가 극복해야 하는 두려움의 몫이 있다. 그런 자기 자신의 한계를 나눈다.

타자에 대해 확실하다고 믿는 것이 정말 확실한 것인지 묻는다. 평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한다. 낯선 경험이 중요하다. 낯설어지는 경험이 다양해질수록 사회 안에 다양성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잘 모르는 존재를 배척하고 적대하고 혐오하지 않으면서, 호기심을 갖고 그들과 내가 무엇을 같이할 수 있을지 조금 더 여지를 열어 놓는 것이다.

피스모모에서는 통일에 초점을 맞춘 교육보다 분단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를 살펴보는 '탈분단 평화교육'에 집중한다. 사진 제공 피스모모

통일되면 분단 폐해 저절로 사라질까
"한반도 평화 분위기,
로맨틱하게만 보지 말아야"

- 학교 문제 외에 한국 사회에서 주목하는 분야가 있나.

오랜 분단을 겪은 한국인에게는 외부의 적을 방어하려는 감각, 타자에 대한 혐오의 감각이 있다. 예멘 난민이 정착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20만 명(6월 30일 현재 54만 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 청원의 근거가 심지어 '여성 보호'다. 켜켜이 쌓인 타자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한 존재를 잠정적으로 배제하는 게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성정체성, 성별 이분법에 들어오지 않는 범주는 일단 없는 것처럼 치부하고 싶은 것이다. 나와 타자 혐오의 문제,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분단 상황도 이와 같다. 공교육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나라 사랑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호국·반공 교육을 진행해 왔다. 시대가 다르고 콘텐츠가 조금 다르다 해도 정부는 북한을 '적'으로만 규정하는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만 키워 왔다.

우리는 평화교육을 진행할 때, 북한을 누구라고 규정하지 않고 '탈분단'에 집중한다. '통일 교육'이라고 하면, 결과로서의 통일을 말하지 분단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는 과정은 없다.

탈분단 평화교육에서는 분단이 일상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찾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분단을 국가적·민족적 사건이라고 여긴다. 분단이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탈분단 평화교육은 73년이라는 분단의 시간이 우리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었는지, 남아 있는 비슷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다.

적대감으로 똘똘 뭉친 반공 교육 메시지를 내 안에서 꺼내 보는 게 '탈분단 평화교육'이다. 도대체 내가 분단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누구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내가 적으로 규정한 사람들이 진짜 적이 맞는지 평화교육 참석자들과 나눈다. 분단이라는 사건이 통일이라는 또 다른 사건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도 고민한다.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손잡고 넘나드니까 통일이 다 된 것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통일을 낭만화하면 안 된다.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분석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국가 차원에서 '대전환'을 이루려면, 우리 일상에서 통일을 삶으로 살아 낼 준비가 돼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로맨틱하지 않을 것이다.

- 한국 교계에서는 북한을 주로 선교 대상으로 봐 왔다.

북한을 선교 대상, 구원 대상으로 설정하는 순간 남북 관계의 미래는 어두울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셔너리(missionary)라고 부르는 선교사는 불가피하게 제국주의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예수님을 모르니까 우리가 가서 알려 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피스모모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르치는 행위'에 가장 부합한다. 일방적인 구원자 입장의 접근은 예수님의 삶 -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낀 일상과도 배치된다.

북한을 선교 대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교 대상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 삶이 어떻게 신앙과 부합하는지 같이 탐구하는 동반자이자 동료라는 설정 없이 북한 주민을 만나면 안 된다. 한국전쟁 전후 선교사들이 한국을 복음화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북한에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면,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북한이 남한 개신교회와 같은 모습의 교회를 가지게 될 미래를 생각하면 슬프다. 교회의 바람직한 모델을 초대교회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통일 운동을 주도하는 몇몇 대형 교회가 그런 모델에 부합하는지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 모델 그대로 북한에 전달할 거라면, 그냥 안 하는 게 좋다고 본다.

문아영 대표는 개신교인 정체성으로 어떻게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사야서 읽으며 진로 결정
개신교인이라면 예수의 삶
재해석해서 현재에 적용해야

- 평화교육을 진로로 택할 때 개신교 신앙이 영향을 미쳤나.

교원대에 진학하고도 임용 고시를 보지 않기로 결심한 건 그때 만난 이사야 말씀 때문이다. 이사야서 1장 17절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는 말씀이 강력하게 다가왔다.

사회적 약자라고 하는 사람들 곁에서 뭐라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진로를 못 찾고 갈등하고 있는 나에게 주신 선물 같은 경험이다.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런 순간이 있었지만, 내 신앙의 어떤 부분이 평화교육을 선택하게 했는지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태어났더니 아빠가 목회자이고 엄마가 독실한 개신교인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나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고민해 왔다. 성장 과정에서 신앙적 갈등이 있을 때도 사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버텼다.

오히려 그간 개신교 문화에서 경험했던 것은, 지금 내가 평화교육을 통해 추구하는 것과 대척점에 있다. 신학적 딜레마도 있다. 예수님을 참 좋아하는데, 선택한 민족만 챙기는 구약의 하나님은 가치 혼란을 준다. 구약 본문으로 하는 설교를 듣다 보면 더 이상 못 들을 것 같은 순간도 있다.

다만, 내가 정말 크리스천이 맞는지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평화교육을 하는 데 중심과 균형을 잡는 추 역할을 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이, 결국 내가 가려는 방향이 맞는가라는 질문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평화교육을 하면서 개신교인 정체성을 함께 가져가는 건 도전이 되는 일이다.

- 평화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시위나 집회 현장에도 나가던데.

강정마을에서 문정현 신부님이 새긴 서각을 받았는데 거기에 '평화 싸움 꽃들이여'라고 적혀 있었다. 그 말이 굉장히 좋았다. 종교를 기반으로 평화운동 하시는 분들은 뭔가 경건하고 온건할 것 같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분노도 많고 다혈질이다. 비폭력 원칙을 존중하지만, 비폭력을 따르면서도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비폭력적 방법을 쓰면서 어떻게 최고의 저항을 할 수 있을지 더 치열하게 탐구해서 국가권력, 제도에 도전하고 싶다. 기존의 억압을 정당화해 온 모든 세력에 도전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으로서의 비폭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평화교육을 하다 보면 현장과 거리가 생기게 되기 때문에 그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과 실제 삶에 일어나는 행위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이 발생하는 현장에 가서 연대한다.

피스모모는 평화가 위협받는 현장으로 가 연대하는 일도 한다. 서울 국제 항공 우주 및 방위 산업 전시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문아영 대표. 사진 제공 피스모모

- 평화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개신교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이 지금 개신교가 생산하는 혐오 담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 것 같다. 세리와 같이 밥을 먹은 예수님이 서 있는 위치는 명료하다. 개신교인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모델이 명료하다는 뜻이다. 그 모델을 따라 내 삶에서 신앙을 재해석한다면 '개독교'라는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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