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종교의자유'의 손을 든 판결을 잇따라 내놨다. 미국은 최근 몇 년 동안 개신교인 가게 주인이 동성 결혼식에 쓰일 물건을 팔지 않아 피소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온 주에서 발생한 일이다.

각 주 법원은 가게 주인들이 이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벌금을 부과했다. 가게 주인들은 개신교 법률 지원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연방대법원에 상소하고 판결을 기다려 왔다.

공을 넘겨받은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4일 콜로라도주에서 '마스터피스케이크숍'을 운영하는 잭 필립스(Jack Phillips)에게 우호적 판결을 내놨다. 잭 필립스는 2012년, 동성 커플이 결혼식에 쓸 케이크를 주문하자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들어 제작을 거부했고, 콜로라도주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연방대법원은 동성 커플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동성 결혼에 쓸 케이크 판매를 거부한 잭 필립스(사진)의 종교적 신념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자유수호연합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연방대법원은 필립스 사건에 이어 6월 25일 워싱턴주의 꽃 가게 주인 배로넬 스터츠만(Barronelle Stutzman)의 손도 들어 줬다. 스터츠만은 2013년 동성 커플이 결혼식에 쓸 꽃을 주문하자,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거절했다가 벌금을 내야 했다. 워싱턴주 법원은 사업자가 고객의 성적 지향을 차별의 도구로 쓰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항소도 전부 기각했다.

각 주 지방법원에서 모두 유죄로 판결난 사건들이었지만, 연방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연방대법원은 항소법원에서 상고한 모든 사건을 심리하지 않는다. 대법관 9명이 각각 항소 사건을 심리해 4명 이상 찬성하면 상고를 허가하는 '상고허가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언론은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을 보수 성향 5명, 진보 성향 4명으로 분류한다. 잭 필립스 사건의 경우 7대 2로 필립스에 우호적인 판결이 나왔다. 진보 성향 판사 두 명도 콜로라도주 법원이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5년 동성 결혼 합법화 판결 때 우호적 판결을 내린 앤서니 케네디(Anthony Kennedy) 대법관은 "사업 소유주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결혼과 웨딩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열린 심리에서, 필립스의 반대편인 콜로라도시민권익위원회가 필립스의 종교적 신념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연방대법원이 6월 25일 내린 판결은 이 같은 견해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스터츠만의 경우 필립스 사건처럼 연방대법원이 직접 이 사건의 당사자들을 불러 심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대신 스터츠만이 지방법원에서 공정한 판결을 받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심리하라는 취지로 돌려보냈다.

필립스와 스터츠만의 변호를 맡은 개신교 법률 단체 자유수호연합(Alliance Defending Freedom)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명백한 승리"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은 멀다. 미국 22개 주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채택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명확한 판결 대신 지방법원의 재심리를 명한 만큼, 종교의자유를 주장하는 진영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옹호하는 진영 사이의 충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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