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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길

[평화가 살길이다] 싱가포르 모델에 주목하는 북이 배워야 할 것

조성찬   기사승인 2018.06.19  0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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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카고 트럼프인터내셔널호텔&타워, 뉴욕시 아메리카 애비뉴 1290번지, 뉴욕시 트럼프타워, 플로리다 마라라고, 뉴욕시 트럼프파크, 뉴욕시 월스트리트 40번지, 라스베이거스 트럼프펜트하우스, 워싱턴D.C. 트럼프호텔. 건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부동산 자산 목록이다(<Forbes Korea>, 2017.5.26.). 심지어 한국 여의도에도 대우건설이 이름만 빌려 건설한 트럼프월드가 있으니 다 나열하려면 몇 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의 재산은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현재 자산이 약 28억 달러(한화 3조 원) 수준이다. 그는 현재 남북 평화 체제 수립의 선봉장으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평화 체제 수립의 시대적 역할을 잘 감당한 이후 북 경제개발에까지 깊숙이 관여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의 부동산 편향적인 이해관계 중심의 사고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상회담과 '비핵화-체제 유지의 동시 진행'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여기서 더 나아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 경제를 흔들었던 미국이 자신의 금융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북에 이식한 후 북의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은 적어도 평화 체제 수립 때까지이지, 그 이후의 경제개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주 곤란하다.

싱가포르

2018년 6월 12일 오전, 북미 두 정상이 싱가포르의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기 전, 분주한 상황이 한 방송사를 통해 TV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때 패널로 참석한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가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적인 정상회담 전날 밤에 2시간 정도 싱가포르 관료들과 외출을 했다.

북측 조선중앙통신 12일 자 보도를 보면, 전날 "최고 영도자(김정은) 동지께서는 싱가포르의 자랑으로 손꼽히는 대화초원(가든바이더베이)과 세계적으로도 이름 높은 마리나베이샌즈 건물의 지붕 위에 위치한 스카이파크, 싱가포르항을 돌아보시면서 싱가포르의 사회경제 발전 실태에 대하여 요해(파악)하시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귀국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을 안내한 이들은 싱가포르 정부의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무장관과 옹 예 쿵 교육부장관으로, 차기 총리로 유력한 인물들이다(<연합뉴스>, 2018.6.12.). 싱가포르가 역사적인 만남의 장소로 결정된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원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싱가포르와 북은 긴밀한 경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북의 7번째 교역국으로, 평양에서 봄, 가을에 개최되는 국제 상품 전람회에도 자국 기업 10개 정도가 매년 참여하여 기업 홍보도 하고 투자협력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평양에서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영업하는 편의점이 있는데 이러한 서구 음식 문화를 확산하게 한 체인점은 모두 싱가포르 자본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와 북의 협력은 비영리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두 국가가 협력하여 만든 '조선익스체인지'(Choson Exchange)는 북에 시장경제와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는데, 당이나 군에 들어가 고위직에 오르는 대신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149회, 2018.5.31.).

더 놀라운 일이 있다. 현재 금강산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혜의 요새로 알려진 원산 해안가를 따라 대형 호텔 지구가 개발되고 있다. 5월 24일 진행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해 세계 기자들을 초청할 때 이용한 공항은 평양 순안국제공항이 아닌 원산 갈마국제공항이었다. 싱가포르 기업들이 요즘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곳은 바로 여기 갈마국제공항이 있는 '원산'이다. 전체적인 투자 규모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한 150억 달러로 추정된다. 갈마국제공항도 싱가포르 기업의 투자로 성사된 경우다(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149회, 2018.5.31.). 갈마국제공항은 원래 군 비행장이었으나, 김정은 집권 이후 2014년 6월 11일에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중앙급)가 결정되면서 2015년에 민간 국제공항으로 변신했다.

북은 현재 원산의 성공적인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취소한 다음 날 김정은 위원장이 찾아간 곳은 바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이었다(<노동신문> 2018.6.13.).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군민이 힘을 합쳐 원산 갈마해양관광지구 건설을 최단기간 내에 완공"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원산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고향 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김일성 주석이 이 사업을 유훈으로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25년 전인 1994년 1월 27일 김일성 주석이 '금강산 관광 개발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 서명을 했던 것이다. 계획의 핵심은 10년에 걸쳐 금강산에서 원산 지역까지를 3단계로 나누어 개발하고, 원산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관광시설을 분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김정은 위원장의 개발계획과도 일치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2년간 유학했던 스위스의 수도 베른을 본받아, 마식령스키장도 3억 달러를 들여 완공했다. 그런데 미국 제재로 원산 지역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만들어 북의 경제를 살리려는 계획이 좌초 위기에 빠진 것이다.

다시 싱가포르

폐쇄적인 북이 싱가포르에만 문을 열어 주는 이유를, '조선익스체인지'의 전 이사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은 "싱가포르는 사회주의 정책들이 많은 곳이다. 그러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시장 원칙을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북은 싱가포르의 효율성에 주목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이 보기에 싱가포르 모델이 '체제 유지'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모델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평양이나 원산 개발 사업의 투자국 이상으로, 싱가포르식 토지공개념과 경제개발구 관리 운영 노하우에 있어서 배울 가치가 있는 국가다.

▶싱가포르식 토지공개념

세계 경쟁력 지수 3위(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 2009년 기준, 당시 한국은 27위)의 나라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65년 8월에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 독립한 국토 면적 659.9㎢(서울 605.21㎢)의 작은 도시국가다. 싱가포르가 독립하면서 추진한 대표적인 정책이 토지국유화다. 정부가 토지 매입을 통해 토지 국가 소유 비율을 85% 이상 끌어올렸다. 그리고 토지를 민간에게 장기 임대하는 싱가포르식 토지공개념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필자의 학문적 견지에서 보자면 싱가포르는 '공공 토지 임대제 전환형' 국가인 것이다. 개요를 잠깐 소개하면, 토지를 99년간 임대하면서 지대는 토지 임대료와 조세로 환수한다. 그렇다고 지대 환수 비율이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임대 가치의 12%를 환수하며, 자가 소유 주택의 경우에는 매년 임대 가치의 4%를 환수한다. 임대료를 통해서 환수하지 못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개발이익 환수 장치를 통해서 환수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지대 환수의 과표가 '지가'가 아닌 '지대', 즉 임대료라는 점이다.

싱가포르의 주택 제도는 매우 유명하다. 싱가포르 주택 모델은 노무현 정부 때 '토지 임대부 주택'이라는 정책으로 도입되었다가 오늘날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토지 임대부 사회 주택'로 진화했다. 토지 임대부 주택은 '반값 아파트'로도 유명했는데, 50년이라는 장기 토지사용권과 건물 소유권이 결합하는 재산권 구조이다. 싱가포르의 저렴한 주택가격과 높은 자가 주택 보유율은 임금 상승 요구에 완충작용을 했으며, 상품의 국제경쟁력 제고 및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싱가포르의 2016년 기준 1인당 GDP는 5만 2961 US 달러로, 한국의 2만 7539달러를 크게 앞지른다. 공공 토지 임대제가 시장경제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사회정책 추진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개발구

싱가포르는 김정은 위원장이 방문했던 리조트만큼 유명한 것이 바로 경제개발구 관리제도다. 1994년 중국이 수조우시에 경제개발구를 만들 때 싱가포르와 합작했다. 당시 싱가포르는 1980년대부터 구역 발전 전략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이미 인도(1992), 베트남(1996) 등지에 공업단지를 건설했다. 수조우 경제개발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경제개발구 개발은 중국-싱가포르 합작 투자 개발 공사가 책임지고, 행정 및 관리는 중국 정부가 전반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지며, 대외 투자 유치는 양국이 공동 책임지는 구조다. 둘째, 중국 국무원이 수조우 경제개발구에 자치권을 부여하여 싱가포르의 경제활동과 공공 관리 방면의 경험을 참고하도록 했다. 싱가포르와의 합작이 성공하자 중국 내에 싱가포르 모델 확산을 위해 6개의 거점이 만들어졌다.

싱가포르 경제개발구 모델에서 더 눈여겨볼 지점은 토지임대 방식의 경제적 효율성이다. 한때 한국도 경제특구 개발이 이슈가 되었을 때,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공적 소유의 매립지는 매각보다 장기 임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싱가포르국립대학의 신장섭 교수(경제학과) 역시 공단 부지는 정부의 총괄적인 계획 아래 한꺼번에 개발하고 전체를 임대하는 방식이 부동산 투기도 막고 재원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하다고 보았다. 수조우 경제개발구는 한계가 많은 토지 임대료 일시 납부 방식이 아닌 매년 납부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토지제도에서 크게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조성찬, 2012).

북이 정말로 싱가포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국가 차원의 토지공개념 제도와, 경제개발구에서의 토지 관리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라는 중앙급 경제개발구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여 원산이 개방의 새로운 실험대가 되는 것이다.

6회 연속 칼럼을 마치며

어느 학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주의의 이상은 위대하고 숭고하다. 또 실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이 말을 마르크스가 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마르크스와 이론적으로 날선 대립을 했던 헨리 조지다.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자. "그러나 이런 사회는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성장하여야 한다. 사회는 유기체이지 기계는 아니다.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삶에 의해서만 지속된다. 각 개인의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발전 속에서 전체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사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데 필요한 것은 (중략) '토지와 자유'다."

현재로서 남북 간에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고 평화 체제가 수립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나면 결국 중요해지는 것은 경제 발전이다. 이는 북에게도 그리고 청년실업 및 중장년층 실업이 심각한 한국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하며 공정하고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경제 발전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경쟁력 있는 혁신 기업이란 먼저 출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시행착오를 분석한 이후 장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에 나오는 기업이 더 생명력이 있다. 혁신 기업에 비유하자면, 마지막 사회주의계획경제 국가인 북은 혁신 기업의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북이 한국보다 더 건강한 경제 발전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지나친 낙관일까. 다만 그 관건은 지난 여섯 번의 칼럼에서 강조했듯이, 건강한 토지 소유 및 사용 제도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 원칙을 성서의 '희년'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

토지+자유연구소 조성찬 통일북한센터장이 '평화가 살길이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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