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지역 개신교 세력을 등에 업고 인권조례를 폐기에 앞장섰던 자유한국당 소속 충남도의회 의원들 대부분이 재선에 실패했다. 학생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나쁜 인권조례 제정 반대'를 내건 보수 교육감 후보도 패배했다.

충청남도는 광역 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존재하는 '인권조례'가 폐지되는 일을 겪었다. 충남도의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2월 지역 보수 개신교와 손잡고 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자유한국당은 6년 전 자신들이 만든 인권조례안을 자신들 손으로 폐기하는 유례없는 일을 자행했다. 지역 시민단체와 인권 단체들이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비판했지만, 의원들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직접 표를 행사한 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건 지역 목회자들이다. 인권조례에 적극 반대하는 목사들은 각 지역별로 '바른인권위원회'를 조직해 활동하며 의원들을 압박해 왔다. 목사들은 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며 의원들을 적극 설득했고, 교회 단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세력을 과시했다.

지역 기독교 눈치를 보며 인권조례 폐지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은 이번 선거에서 대부분 탈락했다.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한 11명 중 8명이 낙선했다. 충남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조장한다며 폐지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김종필 의원(서산2) 역시 재선에 실패했다. 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 중 선거에 나선 의원들은 전부 재선에 성공했다.

자유한국당은 기독교 세력의 눈치를 보며 인권조례안을 폐지했지만, 정작 표심은 반대로 드러났다. 충남 인권조례 폐지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우삼열 목사(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 위원장)는 충남도민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판단을 내려 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도민이 인권조례 폐지안을 두 번이나 가결한 세력에 준엄한 심판을 한 것"이라 평했다.

우 목사는 "도민들이 '인권조례가 동성애 옹호·조장한다'는 몰상식한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준 결과다. 충남 인권조례는 반드시 다시 만들어야 하고, 인권조례를 공격하며 도민의 인권을 짓밟았던 세력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선거 기간에는 충남기독교총연합회가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지역 곳곳에 걸렸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인권조례 폐지를 지지했던 충남기독교총연합회(충남기연·전종서 대표회장)는 이번에 교육감 선거에서 목소리를 냈다. 선거 기간 "충남기독교총연합회에서 지지하는 바른 교육감 명노희"라는 현수막이 충남 지역 곳곳에 걸렸다. 교계 단체가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서도 전면에 내세운 건 "임신·출산·동성애 조장하는 나쁜 학생인권조례 만들지 않겠습니다"였다. 명노희 후보는 김지철 현 교육감에게 13만 6695표 차이로 패배했다. 김지철 교육감은 "학생 인권조례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3월, 충남기연은 도내 15개 시·군 기독교 연합회에 "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한 목회자들을 제명·탈퇴시켜 달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각 지역 기독교 연합회는 이 결정을 받아들여 인권조례 폐지에 반대 목소리를 낸 목사를 제명하거나 목회자가 속한 교단 노회에 당사자들을 "엄정하게 처리해 달라"며 진정을 넣기도 했다.

동료 목회자를 린치하고 특정 교육감 후보를 지지한 충남기연. 전종서 대표회장은 6월 14일 "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선거가) 끝났는데 그거 가지고 왜 전화했나. 뭘 더 목적하는 게 있어서 전화한 건가. 물어보려면 정식으로 와서 얘기하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