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질문이 타당성을 지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래전 서구에서는 '흑인에게 영혼(soul)이 있는가' 또는 '여성에게 영혼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심각하게 논의된 적이 있었다. 또는 19세기 서구에서 '여자가 자전거를 타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주요한 사회적 논쟁이 된 적도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러한 '사실'들이 시대적 또는 문화적 정황에 따라서 매우 '비정상적'인 일들로 간주되어 온 것들이 사실상 참으로 많다. 질문에 다시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 정치적 과제이다. 어떠한 질문이나 라벨 자체가 문제가 있을 때, 그러한 질문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회적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낭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는 그 질문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 대한 '인식적 폭력'이다.

2. 누군가가 "당신은 이성애를 지지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열이면 열 사람 모두 그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어이없어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애'는 당연하고 규범적인 정상 행위라고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비정상적, 병적인 섹슈얼리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의학적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섹슈얼리티(sexuality)는 특정한 성행위만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매우 복합적인 육체적/정신적/감성적 층위를 드러내는 개념이다. 이성애(heterosexuality), 동성애(homosexuality), 양성애(bisexuality), 무성애(asexuality) 등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양태는 인간의 다양한 자기 존재 방식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존재 방식'이란 어느 특정한 섹슈얼리티가 타고난 '지향(orientation)'이든 또는 하다못해 '선택(choice)'이라 할지라도, 한 인간이 자신의 살아가는 존재 방식으로서의 섹슈얼리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 지지자'라는 개념 자체가 지독한 모순을 지닌 것임은, '이성애 지지자'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3. 한국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지난해 2017년 '동성애자나 동성애 지지자'에 대한 입학 금지를 결의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지지자'의 목사 고시 응시를 제한하는 청원안을 10월 총회에 올리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신학대학원에서 신학대학원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지내고 있는 나는 깊은 착잡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동성애(homosexuality)'라는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즉, 성서에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동성애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중심에 서 있는 '예수'는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주된 메시지는 '사랑'이다.

4. 동성애자는 물론 '동성애 지지자'도 입학을 금지하겠다는 신학대학교는 도대체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교수로 있는 대학원에는 학장이 레즈비언이자 안수받은 목사이고, 역시 목사 안수도 받은 게이 교수가 있다. 미국의 많은 신학대학원에는 성소수자(LGBTQ) 학생 모임도 있다. 마치 '이성애자'들만이 예수와 신을 대변할 수 있다고 하는 신학대학교들에서 가르치는 기독교는 어떠한 기독교일까. 예를 들어서 성서에 '일부다처제'가 나온다고, 지금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일부다처제를 옹호할 수 있는가. 성서에 자신의 딸을 소유물로 생각하며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남자들에게 내어 주며 극도의 성폭력을 허용하는 아버지를 이 21세기에 옹호할 수 있는가. 사랑만이 아니라 극도의 폭력이 존재하는 성서에 나오는 상충적 메시지들을 보면서, 성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신앙은 자신과 다른 타자에 대한 인식적 폭력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5. 만약 예수가 이 21세기에 등장했다면, 그는 '이성애 지지자'는 물론 '동성애/양성애/무성애 지지자'가 아니었을까. 내가 본 예수의 메시지를 신학적/철학적으로 해석해 보면, 예수의 윤리적 판단 기준은 개별인들의 섹슈얼리티의 양태가 무엇인가가 결코 아니다. 다만 오직 그들이 온 존재를 다하여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닌가이다. '동성애 지지자'라는 개념이 유의미하려면, '이성애 지지자'라는 개념이 이상하게 들리지 말아야 하는 정황에서만이다.

6. 나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 평등성, 그리고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지'한다. 나는 동성애 또는 이성애 지지자가 아니라, '모든 인간 지지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지를 실천하고 사회·정치·종교적으로 제도화하는 것,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는 아마 한국의 신학대학교에서 교수는 물론이고 학생으로 '입학'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올 10월 총회에 모여서 '배제와 차별의 정치'를 예수의 이름으로, 성서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자 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위 글은 "당신은 '이성애 지지자'인가?: 나는 '모든-인간-지지자'이다"라는 제목으로, 2018년 6월 7일 강남순 교수(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페이스북에 실렸습니다. 허락을 받고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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