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가나안 교인'을 바라보는 기성 교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곱지 않다 못해 이들을 안티 세력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교회 밖에서 교회 문제점을 들추고 비판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는 가나안 신자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특별히 '안 나가' 신자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 교회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한동안 다녔는데 교회가 싫어서 지금 안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나안 신자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가나안 신자'로 표현하면 안됩니다. 이런 사람은 글자 그대로 '안 나가 신자'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은 좋아하지만 교회는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교회를 험담하고 아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합니다. 그러면서 기존 교회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전복시키려고 합니다." [<가나안? 안 나가!>(쿰란출판사), 163쪽]

이렇게 인식하는 기독교인이 누군가를 교인인지 아닌지 평가하는 척도는 '교회 출석'이다. 교회 떠난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오랫동안 섬기던 교회를 왜 떠나야 했는지, 교회를 떠날 만큼 그들을 힘들게 한 일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미 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교회를 떠났다'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 이야기였다. 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사연은 절절했다. 선교 단체에서 헌신을 강요받은 사람, 교회 봉사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목회자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 자기 비밀을 교인들에게 털어놨다가 오히려 정죄의 대상이 된 사람….

이성민 씨는 교회를 떠난 뒤에야, 교회를 떠난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 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은 이성민 씨(35). 영상 제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 씨는 10여 년간 다니던 교회를 떠났고, 그 뒤로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다 최근에야 한 교회에 정착한 평범한 교인이었다. 그를 6월 7일, 서울 천호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 자신의 이야기부터 교회를 떠난 여러 사연을 접하며 느낀 점 등을 들어 보았다.

10여 년 섬기던 교회 떠난 뒤
우울증·공황장애로 힘들어하다
내 이야기라도 올리자고 시작한 페이지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이성민 씨도 교회를 떠나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이 씨는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와 섬길 교회를 찾아다녔다. 딱히 기준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규모가 너무 크지 않아 가족같이 신앙생활할 수 있는 곳을 찾다 A교회에 정착했다.

10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에 목회자는 담임목사밖에 없었다. 교회가 분쟁을 겪고 난 뒤라 담임목사는 부교역자와 동역하기 꺼렸다. 교육부서를 전담할 사역자가 없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성민 씨는 유초등부에서 교사와 설교자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청년부는 기본이고 성가대는 물론 교회 행사에서 사진을 찍고 멀티미디어 작업도 도맡았다.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정착한 교회였다. 그때는 정말 교회에서만 살았다. 학교 졸업하고는 취업하지 않고 사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더 자유로웠다. 봉사는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제일 사랑하는 유초등부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 설교하기 위해서는 또 준비하는 시간도 있어야 했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따로 공부하고 자료 찾아보는 데도 시간을 많이 보냈다."

정신없이 바쁜 것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아니었다. 담임목사가 교회 운영을 독단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재정이 어떻게 쓰이는지 공개하지 않고 제직회도 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담임목사와 그 주변인들은 이성민 씨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인사해도 받아 주지 않는 건 예사였고 나중에는 이 씨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까지 매도했다.

20대를 전부 보낸 교회였기에 떠나기를 결심하기까지 2~3년을 고민했다. 아버지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목사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에 싫은 소리를 하는 교인, 목회자의 잘못을 찾아 내는 교인이 싫을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담임목사와 그 주변인들은 이성민 씨가 가장 사랑했던 유초등부에서 봉사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교회 정관을 바꾸면서까지 이 씨를 겨냥했다.

"정말 나가라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하나님께) 신호를 달라고 기도했다. 2014년 송구영신예배 때 사모님이 예배 도중 나에게 오더니 '너가 성경 넘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예배를 못 드리겠다'고 하더라. 정말 나가라는 사인으로 알고 2015년 초 교회를 떠났다."

교회를 떠나고 찾아온 첫 번째 주일, 이성민 씨는 '멘붕'이 왔다. 어딘가로 가야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새로운 교회를 찾기까지 3년 정도를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매주 출석할 교회는 찾았지만 새로 정착한 교회에도 온전히 속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예배에 참석하고 있지만 자신이 구경꾼처럼 느껴졌다. 몸은 교회에 있지만 신앙의 회복은 더디다고 느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지난해 겨울,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왔다. 잠도 못 자고 길 가다가 숨 막히고. 죽고 싶고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병원에 갔는데, 왜 이렇게 심해질 때까지 안 왔느냐고 하더라. 약 처방받아서 먹었는데 약 먹으니까 또 괜찮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내 이야기를 올리기로 결심했다."

다양한 사연 알리는 데 중점 
성소수자 제보 올렸다가 뭇매
"비판 감수, LGBTQ 논의 많아져야"
"전국 목회자들이 보면 좋겠다"

직접 교회를 떠나 보니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던, 교회를 떠난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교회에 몸담고 있을 때는 그들의 아픔을 나 몰라라 했다는 게 미안했다. 이성민 씨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제작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교회를 떠나고 난 뒤 했던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올렸다.

자기 글을 올리니 비슷한 사연들이 제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니던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고 떠나거나, 문제의식을 느낀 교회에 계속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헌신을 강요하는 선교 단체에서 힘들어하던 사람들 이야기도 접했다. 저마다 사연이 구구절절했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힘들다고 하면 '괜찮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데 그 말을 듣기가 힘들었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할까. 그렇다 보니 착한 이야기만 한다. 안 좋은 이야기를 꺼내면 뒷담화 혹은 가십거리가 되고 진심 어린 위로를 받기 힘들다. 듣는 사람은 그냥 듣고 공감해 주기만 하면 되는데 들으면서도 '이게 잘못됐다'면서 정죄하고, 그러니 대화가 안 된다."

페이지 팔로워 수가 늘어나면서 제보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매일 10개 정도의 제보를 받는다. 제보는 익명 혹은 이메일, 개인 메시지 등으로 온다. 이성민 씨는 익명으로 온 제보에 짧은 의견을 덧붙여 게재한다.

짧은 의견을 덧붙이는 게 원칙이지만 얼마 전 LGBTQ(성소수자) 당사자 사연을 올리면서는 꽤 긴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 글에는 댓글 1000개가 넘게 달렸다. LGBTQ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과, '동성애는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크고 작은 논쟁이 지속됐다. 어느 정도 중도적인 입장을 피력한 이 씨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올리기 전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올릴 때도 어느 정도 논란이 될 줄 알고 있었고, '젠틀 혐오'라고 비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한국교회가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것처럼 LGBTQ 당사자들을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교회에서 LGBTQ를 바라보는 여러 스펙트럼이 있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의 포지션이라고 봐 주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을 올릴 때 '죄는 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건, 개신교에서 일반적으로 죄를 어떻게 말하는지 정의한 것이었다. 이후 지금 한국교회에서 LGBTQ를 신학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는지 썼다. 세계적으로 신학적 논의가 지속되고 있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는 건 알지만, 지금 한국교회 입장에서는 죄라고 보고 있으니까. 그 이후 쓴 문장들은, 그럼에도 그들을 정죄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오는 건 막지 말자는 뜻이었다."

성소수자의 제보를 올린 후, 페이지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떠난 교회 또 떠나게 만드는 페이지', '교회 떠나라고 부추기는 페이지'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성민 씨는 이런 비판도 자신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LGBTQ 이슈와 관련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그 기회를 통해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고 했다.

"지금도 LGBTQ와 관련해서 제보가 두 건 더 있다. 그 부분도 어떻게 실어야 하는지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만약 내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LGBTQ 당사자가 와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했다고 치자. 그때 교회 공동체가 그 사람을 정죄하고 쫓아내면 나도 따라 나갈 거다. '성적 지향'이 어떻든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현재까지 내 입장이다."

이성민 씨는 '교회를 떠났다'가 교회를 욕하기 위한 페이지가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더 많은 목회자가 교회를 떠난 이들의 사연을 알면 좋겠다고 했다.

이성민 씨는 교회 떠난 사람들 사연을 접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위로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페이지를 전국의 목회자들이 더 많이 보면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라 해도 교인 개개인이 느끼는 아픔과 상처를 다 알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교회를 떠났다'의 모든 사연 끝에는 "'교회를 떠났다'는 교회를 욕하기 위한 페이지가 아닙니다"는 말로 시작하는 공지가 실린다. 교회의 안 좋은 점, 잘못된 문화 등을 지적하면 무조건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으로 치부해 온 한국교회에, 이 페이지는 조용히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성민 씨는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는 목소리를 누구라도 한 번 더 보게 만드는 페이지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사연을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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