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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무의식 이야기

[서평] 류대영 <한 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광현   기사승인 2018.06.12  16: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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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친구의 이야기다. 한 영화제에 갔는데,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영화와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한 30대 남성이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그에게서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냥 이야기가 고파서요."

인간은 이야기가 고픈 존재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 배가 고픈 것처럼, 이야기를 먹지 못하면 이야기가 고픈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 이야기를 먹고 또 먹는다. 이야기를 오랫동안 먹지 못하면 굶주린 사자처럼 이야기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러다 덜컥 자신의 이야기를 먹으면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할머니 등에 업혀 옛날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행복감을 말하는 이가 적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할머니 이야기가 내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에는 우리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우리의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어렵다. 듣기 좋은 말을 한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듣기 좋은 이야기건 그렇지 않은 이야기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기울어진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기울어진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일 테니까.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 솔직하고 공정한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이고, 그것만이 우리를 살게 한다. 솔직하고 공정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류대영의 <한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솔직하고 공정한 이야기책이다. 할머니 등에 업혀 듣는 것 같은 솔직함에 역사학자의 학문적 공정함이 실려 있다.

<한 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 류대영 지음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펴냄 / 430쪽 / 2만 3000원

부검하는 법의학자 같은 심정으로

이 책은 1세기 중엽 팔레스타인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한반도에 들어온 여정을 서술하면서 시작한다. 저자는 경교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전해진 동방교회가 신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을 검토한다. 삼국시대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말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당에서 유행하던 경교가 신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증거는 고고학적으로 의심스럽고, 문헌 증거는 없다." (17쪽)

고려시대 때 몽골로부터 들어왔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진단한다.

"그러나 신라, 발해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개연성만 있을 뿐 어떤 확실한 증거도 없다. 이들 나라에 동방교회가 전파되었다고 해도 불교와 특별히 구별되지 않았거나 사람들의 삶과 생각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유행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19쪽)

이처럼, 이 책은 곳곳에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쉽사리 휩쓸릴 수 있는 역사에 대한 허황되고 과장된 이야기들을 엄격하고 간결하게 정리해 준다.

한반도에 처음으로 접촉한 귀츨라프, 토마스 선교사 이야기, 청과 조선의 교역 시장이었던 고려문에서 한문 성서와 전도 책자를 받아든 의주 상인이 집으로 돌아가 성서를 읽고 다시 선교사를 찾아가 세례를 받은 이야기, 그리고 곧바로 한글 성서가 번역된 이야기 등은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과정을 흥분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이후 초기 선교사들의 입국 과정,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여러 활동들, 선교사들을 보낸 각지 선교부의 성격들, 초기 교회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권서勸書에 대한 이야기들 등 한반도에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도 감동스럽게 읽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에 대한 환상보다 한국인들이 보여 준 신앙의 모습들을 그린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이기에 가능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박사 논문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 서문을 보면 그가 선교사들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제가 기독교인으로서 선교사들에 대하여 가지는 존경심과 학자로서 제 연구의 대상에 대하여 가져야 할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이 양립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저는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와 같은 심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죽은 사람의 몸을 열고 장기를 이리저리 뒤지면서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일은 결코 콧소리 흥얼거리며 가볍게 할만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잘 모르기는 해도, 사망 원인을 알아 내야 한다는 정당한 목적이 아니라면 아무리 숙련된 법의학자라도 부검하는 일을 취미 삼아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초기 미국 선교사들을 연구하면서 제가 그 동안 선교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환상'들을 깨뜨리는 증거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런 발견은 결코 즐겁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 그런 증거들을 기록한 것은, 그런 것들이 초기 미국 선교사들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이해가 없이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것은 환상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들이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환상과 진실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선교사들에 대한 존경은 환상이나 짐작이 아니라 사실에 바탕해야 할 것입니다." (류대영,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 서문 중)

이렇듯 법의학자 같은 심정으로 저자는 대부흥을 지나, 일제강점기, 삼일운동, 해방과 전쟁, 독재와 교회 성장, 최근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의 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부검해 한 권의 책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때로는 놀랍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울컥하고, 때로는 분노와 실망하는 한국 기독교의 민낯을 저자의 부검 과정을 통해 긴장하며 엿보게 된다. 이것은 환상과 진실을 구별하는 것이자 사실에 바탕을 둔 한국 기독교에 대한 애정을 가능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한국 개신교의 완전히 다른 두 집단

"한국 개신교는 계층, 문화, 세계관과 관심이 완전히 다른 두 집단에서 시작했다. 만주에서 내려온 개신교는 중앙의 정치로부터 거리가 먼 상인과 민중이 받아들였고, 일본에서 개신교를 만난 사람들은 양반관료 및 지식인이었다. 만주 쪽 개종자들에게 개신교는 개인의 삶을 구원하는 종교였고, 일본 쪽 개종자들에게 개신교는 휘청거리는 나라를 살릴 수 있는 힘을 가진 무엇이었다. 전자는 민중적 신앙, 후자는 민족적 신앙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선교자들이 들어오고 개신교의 중심 무대가 한반도가 된 후에도 이 두 흐름의 구별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민중적 신앙의 주된 관심은 영혼의 구원과 교회 건설이었고, 민족적 신앙의 관심은 개신교를 통한 문명개화와 독립 자강이었다. 물론 이 둘이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었고, 민중적 신앙에서 출발하여 교육과 경험을 통해 민족적 신앙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나오는 등 인물과 시기에 따라 교차·중첩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 개신교에 두 개의 구별되는 흐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128쪽)

이 한 권의 책으로 한국 기독교 역사 전체를 훑어보고 나면 저자 말대로 완전히 다른 두 집단에 의해 한국 개신교 역사가 추동된 것을 느낄 수 있다. 민족적 신앙 전통과 민중적 신앙 전통을 가진 이 두 집단은 삼일운동 때 잠깐 만났다가, 식민지 민중을 위로한 부흥 운동과 항일 민족운동으로 서로 떨어졌고, 선교사의 신학에 따라 차이와 갈등을 표출하며, 일본 제국에 협력하거나 저항하고, 심한 갈등과 분열로 교파가 갈라지고, 교회 성장을 위해 불의한 정권에 우호적이거나 민주화 운동에 동참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컬 진영으로 나누어진 채로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 두 집단은 하나의 신앙을 가진 집단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두 갈래의 극명한 다른 길을 보여 준다.

이 두 집단이 다시 만나게 되는 시점은 1990년대 이후 평화운동, 여성운동, 환경 운동,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 여성 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고 북한을 돕기 위해 1993년 조직된 남북나눔운동을 통해서다. 저자는 이것을 "보수와 진보가 신학적·이념적 차이를 뛰어넘어 힘을 합"(398쪽)치고, "사랑과 평화, 화해와 용서라는 기독교의 본질적 정신을 실현하는 일이었다"(399쪽)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완전히 다른 두 집단이 삼일운동 이후 다시 만난 의미 있는 사건인 것이다. 물론 이 평가가 곧바로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한 저자의 낙관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2010년대 한국교회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문제를 고심 끝에 나열하고 있다.

그럼에도 삼일운동 시기와 비교했을 때 현재의 두 집단의 만남은 여전히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삼일운동 시기에 두 집단의 만남이 그만큼 폭발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일운동 전후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개신교인들의 커다란 역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과정에서 개신교인들이 받은 고통과 피해도 엄청났다. 그들은 당시 그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선교사들에게 운동의 거사를 알리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주체적 신앙을 통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저자의 말대로 "삼일운동은 대부흥 이후 각기 제 갈 길을 가던 민족적 신앙과 민중적 신앙이 만나 일어날 수 있었다."(188쪽)

삼일운동에서 보여 준 민족적 신앙과 민중적 신앙의 만남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도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그들이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과 적극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거사를 준비하던 천도교 측에서 이승훈, 함태영 등 개신교 측에 연합 전선을 펴자고 제안했고, 개신교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불교계도 가세했다.

둘째는 그들이 당시 정치적 무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선교사들이 신앙인들을 비정치적이게 교육했는데도 젊은 개신교인들을 중심으로 전투적 항일 투쟁을 이어 왔을 뿐만 아니라, 부흥회나 목회에 전념했던 길선주, 신홍식, 신석구와 같은 개신교 지도자들이 삼일운동에 동참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타 종교'와 '정치'는 가장 적대적인 두 영역인데, 이를 가장 적극 끌어안은 사건이 바로 삼일운동인 것이다.

넓은 안목에 세심한 시각

이 책은 거시적인 관점뿐 아니라 세밀하지만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미덕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민족주의적 관점을 기본적으로 따르되 그 한계 극복을 위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로 안목을 넓혔"고, "책 전체의 이야기와 논지를 좀 더 일관성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 역사에 집중하고, 선교사보다 한국인, 그리고 여성과 문화현상에 좀 더 관심을 보"였다고 말한다. 이런 저자의 의도와 관심을 책을 읽는 내내 확인할 수 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해 솔직하고 공정하게 기술했는지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소수 교단의 역사와 그들이 선교사 및 서구 신학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노력을 주의 깊게 살펴주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 여성에 관한 저자의 관심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천주교회의 박해를 다루면서 이런 문장을 남긴다.

"순교자만큼 배교자도 많았지만, 여성교인들이 남자에 비해 배교는 적게 하고 순교는 많이 했다. 남성과 비교할 수 없이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에게 예수의 복음이 더 소중했다는 뜻일 것이다." (33쪽)

삼일운동에 참여해 체포되거나 피소된 개신교인에 대해 서술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문장을 잊지 않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성 피소자 가운데 기독교인이 471명으로 전체의 65.6%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대부분은 개신교 학교 교사, 학생, 전도 부인 등이었는데, 개항기부터 개신교가 여성 교육과 지도자 양성을 통해 여성의 의식과 지위를 향상시켜 온 결과일 것이다. 개신교 여성은 당시 한국 여성 가운데 가장 근대적 의식을 가진 사람에 속했다." (169쪽)

아주 최근에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믿는페미'와 '갓페미'도 언급할 뿐 아니라, '한국적 신학의 모색'을 다루는 절에서,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과 더불어 여성신학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여성신학자들은 해외 여성신학을 도입하여 이론의 토대를 다지는 한편, 교회 내외에 만연한 성차별적 구조 타파를 위해 투쟁했다. 진보적 기독교 여성 행동가들이 1986년 결성한 기독여민회는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을 접목하여 예수, 여성, 민중을 아우르는 민중여성신학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비혼모, 이주 여성 노동자, 도시 서민 여성 등 소외된 여성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1989년 설립된 여성교회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여성만의 교회였다. 대안적 교회 공동체로서 신학, 예배, 신앙생활에서 가부장적·계급적 전통을 완전히 철폐하고 여성주의적 교회를 추구했다. 이 교회는 주기도문 대신 '여성교회 살리미 기도'를 만들었고, 1995년에는 남성적·전투적 언어를 여성 예배에 맞게 고친 <우리 찬송가>를 만들었다. 여성교회의 '여성 기도'는 신을 '어머니 하느님'이라 칭하며 모성적 사랑을 간구했다." (379쪽)

한국교회의 무의식,
한국 기독교 역사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그 이론을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낀 데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의식으로 다 해석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이 깜짝깜짝 놀라는 사건을 설명해 주는 게 프로이트의 이야기인 셈이다.

들뢰즈는 무의식이 정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식의 여집합 전체, 즉 세계 자체를 지칭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적 무의식만 탐구해서는 안 되고 세계 그 자체를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주 전체를 이해해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존재를 이해해야 의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와 들뢰즈 사이에서 우리는 역사가 우리의 무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무의식이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 역사는 현재 한국교회의 무의식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 신앙인들에게 한국교회는 아픈 가정사와 같다. 모른 척 버릴 수 없지만, 가시 돋은 품을 안을 수도 없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아픈 가정사를 솔직하고 공정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때로는 마주하는 것만으로 치유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으로도 치료가 된다. 이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계에는 반드시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려온 것도 우발적 사건이었지만 우주를 바꿨다. 500년 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도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역사를 변하게 했다. 변화는 이 우연한 사건을 붙잡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혹독한 일본의 압제 속에서 우연히 복음을 만난 이들이 삼일운동에 자신을 던진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우연한 사건을 힘을 다해 붙잡아야 한다. 내년이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 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로 내년을 준비하고, 우리에게 주어질 새로운 일을 기쁨으로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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