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앨리슨 헌틀리(Alyson Huntly·60) 교수는 캐나다 몬트리올 소재 연합신학대학교(United Theological College)에서 목회신학(pastoral theology)을 가르치고 있다.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 소속 목사이기도 한 헌틀리 교수는 7년 전부터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헌틀리 교수 아버지 역시 같은 교단 목사였다. 헌틀리 가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회'였다. 개신교 전통 안에서 나고 자란 헌틀리 교수는 교회에 헌신하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길을 택했다. 그는 30년 넘게 목회자로 살고 있다.

장성해서 결혼한 세 자녀, 손주들과 모여 식사하는 걸 즐겨하는 평범한 할머니이자 목사. 헌틀리 교수는 지금의 배우자와 함께 18년을 살았다. 배우자 이름은 '앤드리아'(Andrea), 여성이다. 헌틀리 교수는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 레즈비언(lesbian) 신학자다.

한국에서 열린 성소수자 목회 가능성을 논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한 헌틀리 교수를 5월 21일 서울 신설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헌틀리 교수 아내 앤드리아도 동석해 인터뷰를 지켜봤다. 헌틀리 교수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성소수자 목회 가능성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한 헌틀리 교수를 5월 21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이성과 한 번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이야기를 좀 해 달라.

내가 19살, 20살 때만 해도 캐나다 사회는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안정감 있는 인생을 원했고, 결혼이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성 커플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일시적인 것이라는 미신이 있었다. 당시 나는 서로에게 헌신을 약속한 영구적인 관계를 원했다. 이혼한 전 남편과는 지금도 친구처럼 지낸다.

- 남성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당신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고 있었는지.

그렇다. 남편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를 형제나 친척처럼 '사랑'할 수는 있다.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돌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이 누구인지 결정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그 차이를 발견하면서 점점 더 고통에 빠졌고,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내 몸의 일부를 떼어 낸 채로 살 수는 없었다.

남편과 헤어진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결정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남편은 그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세 아이 중 막내를 제외하고 두 명은 힘들어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화도 내고 했지만 지금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 같이 모인다. 남편의 새 가족, 나와 앤드리아의 가족, 결혼한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까지. 우리는 가족으로서 보여 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실제로 살고 있다.

- 어떤 계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하게 됐는가.

내가 신학적으로 생각을 크게 바꾸게 된 계기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고 하는 '성육신 신학'(incarnation theology)을 제대로 이해하면서부터다.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하나님이 육체의 형태로 오신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나는 우리의 감각이 나타난 몸을 통해 신을 경험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체현'(embodied)됐다는 건 우리가 '성적 존재'(sexual beings)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초기 개신교인들이 이걸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들 중 일부는 사랑이 단지 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당신이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 보자. 아이를 사랑할 때는 그 아이를 안고, 잡는다. 아이는 부모의 '터치', 신체적 접촉 없이 성장할 수 없다. 우리가 체현된 존재라고 하는 건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유대-기독교 전통에 영혼은 좋고 육체는 나쁘다는 인식이 있었다. 페미니즘과 퀴어신학은 조금 다르다.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신학자가 있는데, 그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기독교 전통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는데 사랑하는 건 결국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사랑'을 말할 때는 우리 몸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몸 없이 체현된 영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몸으로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서서히 나를 해방시켰다. 동성애가 옳지 않다며 차라리 독신을 선택하라는 교회 사람들도 있었다. 성적 지향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인생을 사는 방법으로 독신을 택하라는 거다. 이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잘라 내는 것이고 정죄하는 것이다.

캐나다연합교회에는 교회 건물 외부에 무지개 깃발을 걸어 성소수자를 환영한다고 알리는 교회가 증가하고 있다. UCC 성소수자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 캐나다연합교회(UCC)가 동성애자도 목사가 될 수 있다고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다 지켜봤다. 당사자로서 어땠나.

신학생일 때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수치스럽다기보다 공포심이 들 때였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거주지를 얻기도 힘들었다. 성소수자들은 신체적으로 폭력을 당할 수 있는 위협에 시달렸다.

교회에서도 동성애자들을 향한 혐오 메시지가 있던 때였다. 내가 속한 교단(UCC)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교회에서 이 주제로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동성애자를 향한 분노와 증오 섞인 논쟁이 오갔고, 어떤 이들은 동성애자는 목회자가 될 수 없도록 그냥 내쫓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UCC는 논쟁을 지속하면서도 동성애자를 교회에서 내쫓는 것까지는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너무 (누군가를) 증오하는 쪽으로 가 버리니까. 교단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조차 동성애자라고 해서 교인 자격을 박탈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1988년, UCC는 동성애자들을 내쫓을 수 없고, 교단 소속 교인이라면 누구나 목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하게는 '동성애자 목회자'를 포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교인의 자격에 관한 논의였고, 교인이라면 누구나 목회자가 될 수 있다는 정책을 바꾸지 않은 결과였다.

1990년대에는 더 진보적인 결정을 내렸다. 정부에서 동성 결혼의 가능성을 논의하자 UCC는 목회자가 동성 결혼을 하겠다고 한 커플도 축복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당시 UCC는 정부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쪽에 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일을 진행하는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교단 역시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의 연합이다. 교단 총회 차원에서는 그렇지만 지역 교회 단위에서는 이런 일을 원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 당사자로서 교회에서 논의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는가.

젊었을 때는 그랬다. 교회 사람들이 증오를 선동하고, 동성애자는 다 교회를 떠나라고 얘기하는 걸 듣는 건 분명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이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걸 더 많이 이야기한다. 혐오 발언은 사람을 아프게 하기 때문에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논쟁하는 걸 택하지 않고, 사랑의 메시지를 더 많이 퍼트리려고 한다.

앤드리아와 나는 '긍정하는 교회'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목회를 더 많이 전파하고, 그런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은 당신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당신을 증오하지 않으신다. 어떤 이들은 분명 계속해서 혐오 발언을 하겠지만, 동시에 다른 메시지를 계속 퍼트려야 한다. 혐오 메시지를 들을 때마다 직접 싸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럴 때 내 안에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나를 향한 그분의 깊은 사랑을 더 많이 느끼려고 노력한다. 인생을 살면서 터득한 방법이다.

- 지금도 교단 방침과 지역 교회 사이에 온도 차가 존재하는가.

그렇다. UCC 소속 2500개 교회 중에 200개 교회 정도만 공개적으로 성소수자를 포용한다. 10%에 못 미치는 숫자다. 나머지 90% 중에도 성소수자 목사를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교회가 있을 수 있고, 동성애는 옳지 않다고 설교하는 교회가 있을 수도 있다. 몇몇 사람과 몇몇 교회는 이 때문에 교단을 떠나기도 했지만, 반대로 교회가 성소수자를 긍정하기 때문에 우리 교단으로 오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교단은 방침을 정했지만 그 안에는 아직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헌틀리 교수(왼쪽)는 성소수자 목회 가능성을 논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5월 중순 서울을 찾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5월 17~18일 열린 국제회의에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지 들었다. 그런 반대 운동 혹은 혐오 설교가 누군가의 삶을 위험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도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동성애가 죄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나는 내부에서 우리끼리 논쟁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가 공개적으로 성소수자를 환영한다고 표현하는 일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는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학교'다. 우리 학교는 성소수자를 긍정하지 않는 다른 교단과 함께 설립한 학교임에도, 지금 우리는 "이게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는 동료들과도 크게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대신 "우리 학교는 지금 성소수자를 긍정한다"고 말한다.

연합신학대학교 재학생 세 명 중 한 명이 성소수자다. 물론 우리 학교에도 보수적이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단에서 온 학생들도 있다. 모든 종류의 신학이 만나는 곳이지만, 서로 논쟁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학생들에게 진정성 있게, 신실하게 살라고 한다. 자신이 뱉은 말을 그들의 삶이 증명하게 한다.

- 한국교회 내 반동성애 진영은 성경에 '동성애는 죄'라고 써 있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UCC에게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다. 성경에서 딱 한 구절만 택해서 그것이 온전한 진리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전체 맥락을 통해 보겠느냐는 거다. 예를 들면, 남성은 남성과 성적 관계를 가지면 죄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합성섬유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섬유 이상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1980년대에 합성섬유가 자연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반대하는 이단 그룹이 있었다.

성경의 한 구절만 선택해 그 구절이 다른 구절에 비해 '완전한 진리'(absolute truth)라고 이야기하려면, 모든 구절에도 그 원리를 다 적용해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부분이 있다. 여성에게 돌을 던지고 남성 동성애자를 죽이라고 써 있다. 나는 오늘 아침에 계란, 우유,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그것도 안 된다.

그렇게 얘기하는 대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성경에는 몇 가지 행동을 정죄하는 구절보다 긍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다. 당신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고 믿는가, 아니면 판단하시고 정죄하시는 분이라고 믿는가. 나는 사랑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사랑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 '사랑'에 대해 얘기해서 하는 말인데, 한국의 반동성애 활동가들은 "동성애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바꾸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정죄이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널 사랑해. 하지만 넌 평생 누군가와 진지한 관계를 가질 수도 없고, 사랑 없는 삶을 살아야 해", "우리는 너를 사랑해. 하지만 네가 누구인지 결정하는 그 부분은 하나님에게 사랑받지 못해"라고 말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캐나다의 보수 교회에서도 여전히 동성애자는 원하면 (성적 지향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그럴 때 나는 이성애자들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한다. 만약 이성애가 죄라고 여기는 세상이 있다. 동성을 사랑하는 것만 허락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고 얘기하면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섹슈얼리티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덧입혀진 행동 양식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이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바꾸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극단적인 논쟁은 누군가의 마음을 바꿔 놓지 못한다. 경험에 비춰 이야기하면, 내가 특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이슈에 있어 마음을 바꿀 수 있었다. 나는 백인으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고, 따라서 그 생각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백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특권이라는 걸 인식하면서, 내 안에 있는 인종주의를 직면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스스로 특권을 지닌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까지가 쉽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사랑하니까 그들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그들 안에 호모포비아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 쉽지 않을 거다.

2016년 캐나다 매니토바주에서 열린 게이 프라이드에 참여한 그리스도인이 든 피켓. "기독교인들이 당신들을 대한 방식을 대신 사과한다"고 쓰여 있다. UCC 성소수자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 젊은 성소수자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교회 모습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교단보다는 지금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더 많이 봤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젊은 성소수자가 동성애자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에 몸담고 있으면 굉장히 힘들다. 그런 교단에서 "너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목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듣는 젊은이들이 우리 교단으로 온다. 다른 전통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를 다 끝내고 목사가 됐는데 교단에서 그 목사가 게이라는 걸 알고 쫓아냈다. 하지만 교회는 목사의 성적 지향은 상관없다며 해고하지 않았다. 결국 교회가 교단에서 쫓겨나 UCC로 왔다. 반대로 UCC는 동성애를 정죄한다고 해서 쫓아내거나 하지 않는다. 누구든 환영하고, 다양성 속에 살며, 그 다양성 안에서 각자의 신실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 교회가 성소수자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한국도 그렇고 캐나다고 그렇고 젊은 성소수자의 자살률이 높다. 그들이 커밍아웃할 때 교회가 그들 모습 그대로 받아 주고 긍정하는 게 필요하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교회로서 굉장히 중요하다. "당신의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기 때문에 사랑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캐나다) 교회에서는 젊은 성소수자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고 그들을 환영하는 장소를 더 많이 만들려 하고 있다.

1990년대 UCC가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동성애자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교회'를 만들고 교회가 공개적으로 성소수자를 지지해야 한다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때 사람들은 "도대체 왜 교회가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물었다. 그 대답이 여기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젊은 게이 남성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지 고민하던 청년이었다. 사회에서 자기가 속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그가 길을 가다 교회 건물 밖에 걸린 무지개 깃발을 봤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는 예배당에서 또 다른 무지개 깃발을 봤다. 교회 사무실에 가서 직원을 만났는데, 마침 그 직원이 남성의 아픔을 알아보고 차를 한잔 대접했다.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누구든 교회의 일원으로 받겠다고 공표한 '긍정하는 교회'였다. 교회가 남성의 목숨을 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UCC는 공개적으로 성소수자를 긍정한다고 밝히고, 교회 건물 바깥에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붙이고, 무지개 깃발을 다는 교회를 늘리고 있다.

- 한국교회에 몸담고 있는 젊은 성소수자들은 정말 열심히 싸우고 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 모습 그대로 살게 한 원동력이 있다면.

오래전에도 젊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공간의 존재가 정말 중요했다. 내가 내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정말 중요하다.

작지만 교회 안에서 흘러나온, 성소수자를 변호해 주던 목소리도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내가 20살쯤, 교회에서 동성애 문제를 논하는 모임이 있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인들이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참여했다. 최대한 논쟁을 길게 끌면서 끝나는 시간까지 남아 있다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정관을 내놓기로 한 거다. 논쟁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결국 자리를 뜰 걸 알고 자기들끼리는 자리를 지키자고 약속했더라.

그 사람들 의도대로 정관에 찬성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겨 통과했고 나는 울면서 그 모임을 떠났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나이 든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목사님이 내가 눈물 흘리는 걸 봤다. 그 목사님도 정관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당시에는 역부족이었다. 목사님은 "내가 처음으로 너의 고통을 진짜 이해한다. 앞으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데 더 헌신하겠다"고 편지에 적었다.

그런 사람들, 우리를 지지하는 앨라이(Ally)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캐나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 번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동성 결혼이 가능할 거라 상상해 본 적도 없다. 힘들지만 우리가 긴 여정 가운데 있고, 이 길이 우리를 더 큰 사랑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는다. 사랑이 혐오보다 강하다는 걸 직접 봤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믿는다. 혐오가 더 강해 보이지만 절대 사랑보다 강하지 않다. 그게 우리 기독교의 이야기다. 예수를 죽였지만 그 죽음에서 사랑이 피어 나왔고 부활을 통해서 그 사랑을 알게 됐다. 한국도 지난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사랑과 긍휼, 연대가 혐오보다 강하다는 걸 직접 체험하지 않았나.

인터뷰가 끝나고 배우자 앤드리아(왼쪽)와 대화를 나누는 헌틀리 교수. 두 사람은 18년 동안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곳을 여전히 교회라 할 수 있을까.

우리 교회의 오랜 교인이 해 준 이야기다. 유대-기독교 전통에서는 언제나 배제와 혐오의 목소리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이방인이냐 아니냐로 논쟁했다. 구약의 어느 시대나 혐오·배제 문제가 있었다. 개신교 전통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이 더 강하다. 예수님은 사회에서 가장 배제된 사람에게 가셨다. 개신교 전통에서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령을 이야기한다. 두 개가 만나면 우리는 바뀔 수 있다. 교회이면서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한다? 그들이 예수의 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우리가 만든 구조 속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고 본다. UCC에도 문제가 있다.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이 어떤 특정한 교회에 가고 싶어 했다. 교회가 그 학생의 필요를 채워 줄 수는 있는데,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곳은 아니었다. 결국 그 교회로 보낼 수 없었다. 그녀가 받은 소명을 꽃피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도 아직 천국은 아니다.(웃음) 예수님이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한국교회가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있었던 곳을 보면 예수님이 나와 우리 교회를 변화시키셨다.

- 한국의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굉장히 힘든 시간이라는 걸 알기에 힘내라고 할 수도 없다. 당신이 이 그룹에 속하는지 아닌지 논쟁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대화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 (성소수자 존재를) 너무너무 숨겨서 아예 말조차 꺼낼 수 없었을 때가 있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변화가 있었고 한국에도 빠르지는 않겠지만, 변화가 있을 거다.

할 수 있는 한 젊은 성소수자들을 보호하고, 서로 단결하고, 열심히 기도하자.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느끼고 그 힘을 믿자. 앞으로 내가 "한국의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고 할 때는 진짜 뜻하는 게 있다는 말이다. 그게 우리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와 희망을 나누고 공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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