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미국·스위스 과학자가 "현재 존재하는 생물 중 90%는 10~20만 년 전에 나타났으며, 이들의 유전적 다양성도 거의 같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록펠러대학교 마크 스토클 교수와 스위스 바젤대학교 데이빗 세일러 교수는 인류진화학 학술지 <휴먼에볼루션>에 '왜 미토콘드리아가 종을 정의할까(Why should mitochondria define species)'라는 주제로 글을 실었다. <휴먼에볼루션>은 "이번 결과는 진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고 평가하고, 5월 21일 연구 결과를 요약한 기사를 내보냈다.

연구 결과를 두고 일부 국내 언론은 진화론이 근거를 잃었다는 취지로 보도를 했다. 6월 3일 'NTD TV KOREA'는 "'진화론 무너지나'…美 대학 DNA 연구 결과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NTD TV는 중화권 기반의 미국 방송사로, 페이스북 팔로워 2000만 명, 국내 팔로워(NTD TV KOREA)는 100만 명에 이르는 매체다. <위키트리>도 4일 "'동물 대부분 인간과 같은 시기에 출현했다' 진화론 흔드는 연구 결과 나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는 6월 5일 자 종교 면 헤드라인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근거 잃는 진화론…美·스위스 과학자, 진화론 뒤집는 연구 결과 발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연구가 창조과학을 지지할 수 있다는 논조를 담았다. "모든 생명체가 거의 같은 시기에 출현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면 진화론의 맹점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창조과학회 회원들의 인터뷰도 싣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6월 5일 자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1면에 실린 기사. 국민일보 갈무리

저자 "진화론 지지하는 명확한 증거"
미국 창조과학자도 큰 의미 두지 않아

매체들이 인용한 연구 결과에는 정작 '진화론이 무너졌다'는 식의 표현은 없다. 저자도 이번 연구 결과가 진화론을 전혀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거주 중인 신경과학자 스티브 김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스토클 교수에게 이메일로 문의했다. 스토클 교수는 "우리 연구가 진화론을 바꾸거나 진화론에 도전하지 않는다. 우리 연구는 진화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진화론을) 지지하는 명확한 증거(The idea of evolution is NOT changed or challenged by our work. The article itself is best proof that our research 'is supporting but not denying the theory of evolution')"라고 답했다.

스토클 교수는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미 스스로 결론 내린 사람들에 의한 오독까지 막기는 어려울 것 같다(I doubt it is possible to prevent mis-reading of evolutionary science by persons who have already made up their mind that evolution didn’t occur)"고 언급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앞서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에도 이번 연구 결과가 진화론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고 밝혔다. <크리스천포스트>는 5월 30일, 두 사람을 이메일로 인터뷰한 후 "그들은 이번 연구가 젊은 지구 창조론을 지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Neither Stoeckle nor Thaler believe that their research endorses Young Earth Creationism)"고 보도했다.

<크리스천포스트>는 미국의 창조과학자들도 이번 연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6월 1일 자 기사에서 생화학자 겸 창조과학자 파잘 라나(Fazale Rana) 박사는 "두 사람의 연구가 진화론을 약화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they did not believe their study underminded the Theory of Evloution)"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는 "이 연구가 뜻밖의 결과를 밝혀냈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화론에 도전하는 결과'라는 의미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This study has yielded unexpected results, but I personally wouldn't rely too heavily on this study to challenge the evolutionary paradigm)"고 했다.

스티브 김은 <뉴스앤조이>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중간 종이 없다는 결과가 다윈을 당황하게 했다"는 보도 내용이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창조과학회에서 이야기하는 중간 종과 연구 결과에 언급된 중간 종은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한다. 연구에서는 현생 종과 현생 종 사이의 간격을 말하고 있지만, 창조과학회가 말하는 중간 종은 원시적 인류와 현생 인류 사이의 중간 종을 뜻한다. 이 부분은 진화의 속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브 김은 "다윈은 진화의 속도가 일정해서 중간 종이 항상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유전학이 발달하면서 부인됐다"고 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 대해 "DNA 바코드 부분의 진화 속도가 빠르며, 해당 유전자 다양성이 인구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발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글을 <더사이언스라이프>에도 실었다.

이번 일과 관련해 우종학 교수(서울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내 언론의 보도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우 교수는 "2018년 현재 한반도에 현존하는 인간 90% 이상이 1920년대 이후 출생이다. 비유하자면 (언론 보도는) 이를 놓고 한반도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건 1920년대 이후가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각적으로, 순식간에 기적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셈"이라고 썼다.

우 교수는 "논문 초록을 읽어 보면 절대 (진화론을 뒤흔드는 연구 결과라고) 잘못 해석할 수 없다. 연구 결과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마음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니 과학 면에 실리지 않고 종교 면에 실리는 것이다. 진화과학이 정식 논문도 아니고 리뷰 수준의 글 하나로 근거를 잃는 일이 생기겠느냐.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 중에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 반복 확증되지 않거나 틀린 결과로 판명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썼다.

기사 내용이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위키트리>는 해당 기사를 삭제했고, NTD TV KOREA는 제목 앞 단락을 '진화론 무너지나'에서 '진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바꾸고, 일부 문장을 수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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