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은 아직도 투쟁 중이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된 후 11년, 완공된 후 3년째다. 마을 공동체는 여전히 분열된 상태이고, 아름다웠던 강정포구는 완전히 제 모습을 잃었다.

반대 측 주민과 지킴이(활동가)들은 지금도 제주는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며 평화운동을 이어 가고 있다. 매일 아침 해군기지 정문에서 100배拜를 올리고 인간 띠 잇기를 한다. 하지만 해군기지가 완공된 후 이들에 대한 관심은 뚝 떨어졌다. 아직도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성서한국' 임왕성 목사는 2012년부터 '제주 평화 순례'를 기획해 강정마을을 찾았다. 올해도 7월 23일부터 4박 5일간 강정마을에 간다. 제주 평화 순례는,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마을의 평화가 무너진 갈등 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기독 청년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고민하게 한다. 강정마을 주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함께한다. 성서한국을 포함한 복음주의 운동 단체 13곳이 제주 평화 순례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이번 제주 평화 순례에는 특별한 순서가 준비돼 있다. 강정마을도 4·3 사건 당시 희생자들이 발생했던 지역이다. 70년 전 공권력에 가족들을 잃은 사람들이 지금은 국책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터전을 짓밟혔다. 성서한국은 제주 평화 순례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주 곳곳에 있는 4·3 유적지를 탐방하는 시간을 준비했다.

순례를 앞두고 성서한국 사회선교국장 임왕성 목사를 만났다. 그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평화가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남북이 대치하는 한반도 특성을 고려해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기독교인은 그 이상을 보며 평화를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용산구 성서한국 사무실에서 6월 5일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강정마을은 지금도 투쟁 중이다. 사진 제공 성서한국

- 제주 평화 순례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2012년부터 기독 청년들과 제주 강정마을을 찾기 시작해, 올해로 5회째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순례를 떠났고 그 다음부터는 2년마다 갔다.

제주 평화 순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2012년 2월 송강호 박사(개척자들)를 만나면서다. 다른 일로 제주에 갔다가 강정마을에 들렀다. 당시 마을은 구럼비 발파 문제로 상황이 안 좋았다.

송강호 박사가 청년 사역을 하는 내게 물었다. 기독 청년들이 왜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느냐고. 송 박사는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늘 평화를 말하고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강정마을에 오면 평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직접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인근에는 국제 선교 단체가 운영하는 기독교 대학 캠퍼스가 있다. 수많은 기독 청년이 해마다 그곳에서 예배하고 하나님나라가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 한라가 시작하는 곳이 강정이다. 송강호 박사는 서귀포 끝자락 강정마을에서 평화가 깨지고 있는데, 이 일을 외면하고 어떻게 한라에서 시작하는 평화를 노래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의 송 박사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슬퍼 보였다. 그 말을 듣고 결심했다. 여름에 청년들과 함께 제주에 다시 내려오자고.

- 평화 순례에 참석한 청년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청년들이 주로 하는 건 '농활'이다. 밭에서 잡초를 뽑거나 순을 따고 오래된 비닐하우스를 정비한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문제는 강정마을에서 무척 복잡하고 예민한 사안이다. 외부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갑자기 사건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청년들이 먼저 마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주민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농활을 하면서 청년들은 마을 주민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되고 나서 마을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주민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지 등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날에는 마을 주민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고 공연을 선보이는 잔치를 준비한다.

- 올해는 제주 4·3 사건이 70주년을 맞는다. 이와 관련해 특별히 준비한 시간이 있다던데.

4·3 유적지를 탐방할 계획이다. 참석자들은 두 팀으로 갈라져, 한 팀은 제주시, 다른 팀은 서귀포시에 있는 유적지를 답사한다. 강정마을 지킴이들이 각 팀에 들어가 청년들을 안내할 예정이다.

강정마을에 살고 있는 4·3 유족들의 강연도 준비했다. 이들은 두 번이나 공권력에 피해를 입은 분들이다. 4·3 사건 당시, 많은 제주도민이 이념 때문에 갈라지고 국가권력에 희생됐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강정마을이 이념 때문에 서로 갈라지고 국가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 이런 제주도민의 아픔을 4·3부터 추적해 가면서 살펴볼 계획이다.

2016년 4회 제주 평화 순례 모습. 해군기지 앞에서 기도회와 인간 띠 잇기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성서한국

- 해군기지 문제는 이미 끝난 거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해군기지가 2016년 2월 완공됐다. 기지가 들어선 상황에서 반대 운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과 지킴이들이 운동을 시작한 지 4000일이 지났다. 햇수로는 올해로 11년째다. 그동안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측 주민과 지킴이들이 벌인 싸움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권 싸움이었는지 아니면 평화운동이었는지. 만약 해군기지가 강정마을에 들어서는 조건으로 더 많은 보상과 실리를 얻기 위한 싸움이었다면 이제 멈추는 게 맞다.

이 싸움은 실리를 더 챙기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강정마을을 생명과 평화를 우선으로 여기는 마을로 바꾸기 위한 운동이었다. 해군기지 건립을 기점으로 제주 전체가 전쟁 기지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지킴이들의 싸움이 여기서 중단된다면 그 흐름이 가속화할 것이다.

강정마을은, 2007년 해군기지 수용 결정이 난 이후 지금까지 너무 많이 변했다. 큰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을 중앙에는 마을회관과 헬스장, 노인회관 등을 겸한 대형 복합 커뮤니티센터가 세워졌고, 곳곳에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유령 건물들이 난입하고 있다. 반대 측 주민과 지킴이들은, 아름답고 평온했던 강정마을이 온갖 상가와 유흥업소가 즐비한 기지촌으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군에 대항했던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이제 강정마을을 개발과 투기 대상으로 보는 투자자들과의 싸움으로 확전하고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해군기지 반대 운동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할 것 같은데.

강정마을 지킴이들도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고 한다. 매일 하는 활동이 똑같다. 100배, 인간 띠 잇기, 기도회, 미사 등.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으니 운동도 개선돼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하는 것이다. 제주 평화 순례도 어떻게 보면 6년 전 방식 그대로 이어 가고 있다.

솔직히 매일 조금씩이라도 상황이 나아지고 새로운 활동을 기획해 우리들도 더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실제로 평화가 깨지는 갈등 현장에서 평화운동을 한다는 것은, 지루함을 버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회의, 매너리즘 등과 싸우며 당사자들 곁을 지키는 것. 그것이 평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인내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을 모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오늘날 한반도는 남북 화해 무드를 맞이하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극적으로 펼쳐졌다. 평화를 향한 일관한 외침과 행동이 남북 화해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했던 문정현 신부가 그런 말을 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왜 실패할 싸움만 하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문 신부는 "실패할 것을 안다고 해서 미리 포기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했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함께하는 이들 덕분에, 당사자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강정마을 외에도 송전탑 건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밀양 청도 삼평리에도 여러 번 갔다. 비록 제주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밀양에는 송전탑이 들어왔지만, 반대 운동을 무조건 실패라고만 단정하고 싶지 않다. 부당한 공권력을 향해 '이것은 잘못됐다'고 싸우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공권력의 역할, 평화의 의미 등을 고민한다. 이들이 고민에서 얻은 답을 삶에 적용해 살아간다면, 이 싸움이 무의미하다고만 볼 수 없다.

임왕성 목사는 당사자들 곁을 지키는 것이 평화운동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제주 평화 순례에 거는 기대도 비슷할 것 같다.

현장이 주는 임팩트가 있다. 직접 주민들 이야기를 듣고, 기지 앞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도전을 받는다. 평화 순례 이후 자발적으로 마을에 찾아가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기독 청년들에게는 도전과 고민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안보가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평화도 힘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동의한다. 오늘날 한국이 처한 상황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분단국가이고 전쟁의 위협에 놓여 있지만, 평화를 말하고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사야는 마지막 때 하나님나라를 평화의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이 나라가 저 나라를 치지 않고, 더 이상 어떤 나라도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나라를 예언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들 역시 이사야가 성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사람들에게 평화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제주 평화 순례는 기독 청년들에게 평화의 하나님나라를 고민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제주 평화 순례 참가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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