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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자립 돕는 게 남북 상생의 길

[평화가 살길이다] '지대 추구' 허용 않는 경제 발전 제도 필요

조성찬   기사승인 2018.06.04  16: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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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국가'와 '자립적 민족경제' 추구는
북의 본질적인 욕구

5월 한 달, 한반도 시계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북측 풍계리 핵실험장이 공개 폐기된 5월 24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2일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예고 없이 5월 26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판문점 북측 지역에 있는 통일각에서 다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10시에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북미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속보로 전해졌다. 이후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실무 차원의 물밑 협상이 진행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의 태도에 놀라운 변화가 감지됐다. 트럼프가 정상회담 취소를 결정하자 북측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자극적인 비난을 삼가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로 유연하게 대응했다. 전 같았으면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다시 핵실험과 핵무장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발생했을까. 그 본질적인 이유는 체제 유지에 기초하여 '정상 국가'를 추구하려는 북측의 사회적 욕구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 국가와 사회 문화적으로, 특히 경제적으로 교류하면서도 기존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자립적 민족경제를 추구하겠다는 전략에 대한 의지와 시그널을 분명하게 보여 준 것이다. 이제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할 일은 북측의 이러한 욕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여러 차원에서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당연히 종전 선언과 평화 체제 구축이다.

북, 체제 유지가 가능한
경제 개방 모델 탐색 중

북은 그동안 경제 개방 모델로 중국 모델을 탐색해 왔다. 그런데 최근 중국 모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인접해 있으며 같은 사회주의국가라는 점 등 유사점도 많지만, 국가의 사이즈가 달라 외부 자본에 휘둘리는 정도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또한 중국 모델이 보인 지나친 투기성 개발과, 그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 역시 의문을 갖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북측 내에 진출한 중국 기업의 행태 역시 반감을 갖게 했다. 중국 자본, 정확히 말하면 홍콩 영화배우 성룡成龍이 북측 나선시 인근 비파섬에 카지노를 설치했는데, 이 카지노에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나진특구 안에서도 카지노가 확대되는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북측 정부로서는 이러한 해외 자본 투자가 반가울 리만은 없다.

여러 매체를 통해 북측의 개혁·개방에 대한 태도를 종합해 보면, 북은 여전히 개혁·개방에 신중한 입장이다. 중국이나 베트남, 러시아 등은 국가 차원에서 개혁과 개방을 선포하고 큰 틀을 바꾸려는 노력을 지속했지만 북은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선포하지 않았다.

북은 북중 경협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경협을 적극 추진하여 경제 강성 국가 건설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면적인 개혁·개방에 나설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회주의 체제와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해 개혁·개방의 수위와 폭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종전 선언 및 평화 체제가 시작되어도 큰 틀에서는 당분간 변화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측이 제도적, 경험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문재인 정부의 신경제 지도 구상 등 다양한 버전의 국제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할 경우 북은 오히려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모델보다는 베트남 모델을 더 선호한다는 기사가 나왔다(<매일경제>, 2018년 5월 3일 자; <주간조선>, 2018년 5월 21일 자).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도중 도보다리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직접 밝혔다고 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을 인용하며, "북한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경제특구를 신설하는 중국식 모델이 아니라 외국의 특정 기업을 선정해 자국에 투자하도록 하는 베트남식 개방을 선호한다"는 내용을 전해 왔다.

그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은 정치적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획기적으로 성장하게 했다. 둘째,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유효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모델의 주요 특징은 외국 투자자에게 시장을 개방해 자본을 유치하여 경제를 성장하게 하는 것인데,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만 서구 자본을 유입할 수 있다. 셋째, 중국과의 일정한 거리 두기 효과다. 중국과 교류한 경험이 거의 없는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이 북한을 속국으로 인식하는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으며, 최근 중국의 대북 제재와 압박에 대해서도 실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중국 모델 역시 체제 유지 및 경제 발전의 동시 추구라는 측면에서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첫째 이유는 필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둘째 셋째 이유는 북으로서 타당한 것이 분명하다.

체제 유지 및 경제 발전
동시 추구 가능하려면

그런데 베트남식 모델이라고 해서 한계가 없을까. 북은 앞에서 살펴본 3가지 지정학적인 이유 외에 더 우선시해야 하는 본질적인 조건들이 있다. 북은 현재 토지가 저렴하고,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지리적으로는 아시아 및 유럽 대륙으로 이어지는 진출로이다. 그리고 노동이 저렴하면서도 수준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유휴자본은 물론이고 해외 자본 역시 호시탐탐 북이라는 거대 시장이 열리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즉, 막대한 개발이익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 나진시의 토지 투기 경험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본질적인 조건이란, 북이 개방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가 우려하는 '지대 추구'(rent-seeking)가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북이 가진 잠재력을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이다.

자신의 존재가 보호받으면서 발전하려는 욕구는 한 개인이든 한 사회든 동일하다. 그런데 오늘날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은 발전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한 개인과 사회를 위기에 빠뜨리는 경향이 강하다. 필자는 이와 같은 파괴적인 구조를 '토지+금융 매트릭스'라고 표현하는데, '매트릭스'라는 표현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따온 말이다.

경제의 최하위에 토지 매트릭스가 있다면, 최상위에는 금융 매트릭스가 있다. 토지 매트릭스에서는 토지 불로소득을 사유화하여 빈부 격차를 심화하고 서민들이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금융 매트릭스에서는 강제된 성장 메커니즘이 정부나 기업 및 가계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이제 두 매트릭스가 만나서 형성된 '토지+금융 매트릭스'는 개별적인 매트릭스가 지닌 파괴력을 극대화하여, 괴테의 말대로, 우리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믿도록 하는 노예의 삶으로 전락하게 한다(조성찬, 2012).

평화 체제가 형성되고, 남북 간 그리고 국제적인 경제협력이 진행된다고 할 때, 북이라고 '토지+금융 매트릭스'에서 예외일까. 북은 토지 소유권이 국가에 있으며, 은행도 모두 국가 소유이지만, 평양을 중심으로 부동산의 투기적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농촌 마을에서는 고금리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물론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지역적 편향성이 있기는 하지만, 드러나는 문제 양상만 놓고 보면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초래하는 문제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여기서 북이 경험하고 있는 두 가지 문제의 중심에는 소위 시장 허용 및 확대를 통해 형성된 '돈주'라는 자본가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향후 투기적인 해외 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따라서 북이 경제 개방을 허용하더라도 특히 토지와 금융에서 지대 추구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위한 제도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제도 구축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다만 필자가 진행했고, 지금도 실험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델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관광산업에 기초한 토지 사용료 순환형 경제 발전 모델'(조성찬, 2015)이며, 다른 하나는 대북 민간 지원 단체인 하나누리가 나진특구에서 진행하고 있는 '마을금고를 통한 농촌 자립 마을 모델'이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아래 '별첨'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별첨1] 관광산업에 기초한
토지 사용료 순환형 경제 발전 모델

북은 현재 점진적으로 산업 부문별 토지 사용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1차 산업인 농업의 경우, 협동농장에서 포전 담당제를 중심으로 농민이 일정한 분량을 납부한 후 나머지에 대한 처분권을 부여하는 개혁 조치를 추진 중이다. 2차 산업의 경우, 지방정부 주도로 경제개발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활성화한다면 북한 내 기업소들도 적극 참여할 수 있다.

3차 산업의 경우, 주택 사용이나 장마당처럼 도시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들에게 부동산 사용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들 조치들의 공통점은 토지 등 부동산을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토지 사용료, 부동산 사용료, 자릿세, 살림집 사용료 등의 형식으로 '지대'를 납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토지 등 부동산 사용 주체의 재산권을 인정 및 보호하면서 이들의 생산 의욕을 끌어올려 지방정부의 재정수입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원리상 지대 수입의 재정 충분성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과, 북한이 현재 주력하고 있는 생태 관광에서 발생하는 수입을 체계화하여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 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

즉, 관광산업에서 발생하는 수입을 기초로 하여 '농업 발전 → 서비스업 발전 및 도시화 → 제조업 발전'으로 추진할 수 있다. 관광산업은 큰 투자 없이도 상당한 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북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제 회생 전략이다. 또한 지역 내에서 창출되고 순환되는 가치들의 흐름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도록 금융 시스템을 함께 고려한다면 더 완성된 경제 발전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산업에 기초한 토지 사용료 순환형 경제 발전 모델 개념도. 그림 출처 조성찬, "북한의 관광산업에 기초한 토지사용료 순환형 경제발전 모델 연구", 2015년 6월 30일, 북한연구학회보(KCI) 제19권 제1호

[별첨2] 하나누리, 마을금고를 통한
농촌 자립 마을 모델

필자가 몸담고 있는 사단법인 하나누리는 통일부 등록 비영리 대북 민간 지원 단체로, 2007년도에 설립된 이래 2009년부터 지금까지 나진특구에서 농촌 마을 지원 사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지원 목적은 실질적 자립을 돕는 것이다.

하나누리는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며 2017년부터는 한 농촌 마을과 협약을 맺고, '마을금고'라는 방식을 통해 사회 목적 투자를 진행하여 마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마을금고는 마이크로 파이낸싱(Micro Financing)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소액 대출 방식으로, 스웨덴의 야크은행(JAK Bank)이 적용하고 있는 무이자 저축-무이자 대출 시스템을 차용하였다. 이 모델은 현재 기독교 경제사상에 뿌리를 둔 시민단체인 희년함께가 '희년은행'이라는 모델로 국내에서 추진하고 있다.

하나누리는 이 마을과 10년 지원 협약을 맺고, 단계별 자립 목표에 대한 큰 틀에 합의하였다. 먼저 '경제적 자립'을 '외부 지원 없이 한 마을이 스스로 식량, 육아, 주거, 교육, 의료, 에너지, 자치 등 기본 필요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하고, 3단계에 이르는 자립 목표를 설정했다.

1단계 자립은 우선적으로 식량과 육아를 감당하는 상태다. 2단계 자립은 중앙 및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기능을 제외한 주거, 교육, 의료, 에너지, 자치 등 나머지 기능을 감당하는 상태이다. 3단계 자립은 고등교육, 고급 의료 등 높은 수준의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이다. 하나누리는 기본적으로 10년 동안 2단계 자립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설정했다.

이러한 목표 달성에서 마을금고 역할이 핵심적이다. 마을금고는 기본적으로 사업 대출과 가계 대출을 진행하게 된다. 현재 하나누리가 이 마을과 맺은 협약의 핵심은 10년간 투자한 원금을 그대로 100% 환수하여 마을금고에 재출자하는 것이다. 재출자 목적은 2차 자립을 위한 재원 확보를 돕기 위한 것이다. 향후에는 마을 전체 및 일반 가계의 저축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마을은 주체적으로 자립을 추구하면서도 원금을 지속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 책임감을 보여 줘야 한다.

최근 하나누리는 이 마을과 식품 가공 공장 설립 및 가계 부채가 심각한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가계 대출 사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하나누리가 제안한 '무이자 저축-무이자 대출'이라는 큰 틀에서 한 가구당 최대 500위안을 1년 동안 무이자로 빌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마을의 가계 대출 사업을 위해서는 대략 500만 원의 기금이 필요하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개인 및 교회들은 이러한 민간 차원의 남북 협력 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남북 상생에 가담할 수 있으며, 더 실질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마을금고 사업에 참여를 원하시는 독자는 온라인(바로 가기: '북한 지역 개발 사업' 선택)으로 후원할 수 있다.

토지+자유연구소 조성찬 통일북한센터장이 '평화가 살길이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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