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정의와 평화의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토지 공개념이 담겼습니다. 불어오는 희년의 바람이 정의와 평화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통일에 대해 오랫동안 기도하고 연구하며, 정의와 평화를 한국교회에 외쳐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생명과 평화의 영이 일으키는 바람 앞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배워 보려 합니다.

1. 최철호 목사(밝은누리 대표): 대한 조선 영세 중립 생명 평화의 땅을 향한 기도와 삶
2. 방인성 목사(하나누리 대표): 통일과 평화의 초석, 희년
3. 강경민 목사(남북나눔 이사):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4. 최열 목사(나팔소리선교회 대표): 신철, 한반도의 기구한 역사를 몸에 안은 우리 시대의 호세아
5. 이문식 목사(한반도평화연구원 이사): 하나님나라와 한반도 평화

강경민 목사. 사진 제공 희년함께

1부 통일

-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총신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보수 교단 목사입니다. 성서한국 이사장을 두 차례 역임했고, 지금은 기독연구원느헤미야 이사장으로 있습니다. 한국교회 개혁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통일 운동과 관련해서는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평통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인도주의적 북한 지원 단체인 남북나눔, 탈북자들을 위한 여명학교, 하나로장학회 등의 설립 및 운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산은혜교회가 있는 고양에서는 고양평화누리, 100만고양자치연대 상임대표로 있습니다. 고양평화누리는 크게 보면 평화통일 운동이고, 100만고양자치연대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돼 있습니다. 우리 역사도 보면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이 항상 새의 양 날개처럼 같이 갔잖아요. 지역에서도 평화통일 운동, 민주화 운동을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역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이기도 합니다. 내년 말에 은퇴하는데, 지금은 무엇보다 목회 마무리를 잘하는 게 가장 큰 과제입니다.

- 일산은혜교회 비전이 '예수 한국, 성서 한국, 통일 한국, 선교 한국'입니다.

제가 신대원 졸업할 때 쓴 논문 주제가 '하나님나라와 사회변혁'입니다. 23년 전 일산은혜교회를 개척하면서 제 나름대로 하나님나라 신학에 근거한 목회를 고민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우리 역사에 토착화하는 것이 예수 한국, 성서 한국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 성서적 가치가 기준이 되게 하자는 의미였지요.

예수 한국, 성서 한국의 비전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서 평화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입니다. 평화통일을 거치지 않고,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하고 하나님나라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허구적이기에 통일 한국을 비전으로 세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나라를 온 세계에 전파하는 열망을 품고 선교 한국이라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일종의 열린 민족주의라고 할까요.

- 교회의 비전과 통일운동을 연계한 고양평화누리 활동을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기존에 해 왔던 여명학교, 남북나눔, 평통연대 등 통일 운동은 다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1995년 고양에 와서도, 10여 년은 교회만 지역에 있었고 기독교 NGO 활동은 다 서울 중심으로 했지요. 목회는 고양에서 하는데, NGO 활동과 사회 활동은 다 서울 중심이었습니다.

1974년 로잔언약에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게 교회가 해야 할 마땅한 일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는 세계 복음주의 기독교에서는 신학적 정리가 끝났어요. 기독교의 사회 활동은 2가지로 나눌 수 있지요. 소셜 서비스와 소셜 액션. 우리말로 하면 사회봉사와 사회 활동입니다.

그동안 교회의 사회 섬김이라 하면 소셜 서비스, 사회봉사를 많이 생각했어요. 평화통일 운동이라든가 민주화 운동이라든가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 참여 운동은 소셜 액션, 사회 활동에 속한 부분입니다. 지역 교회가 당연히 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서울 중심으로 해 와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사회 활동을 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봉사는 우리 교회가 그런 대로 잘했습니다. 고양에서 소문날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사회 활동 측면에서 지역 운동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고양평화누리를 시작했습니다. 저와 최준수 목사님이 같이 시작했는데, 고양 지역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 상관없이 참여합니다. 사회운동이니까요. 활동을 하다 보니 장로가 많더라고요. 이사가 25명 되는데, 15명 정도는 장로일 거예요.

강경민 목사가 고양평화누리 상임대표로 활동하는 모습. 사진 제공 고양평화누리

민주화 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은 같이 가야 한다고 해서, 여러 사람과 100만고양자치연대를 창립했어요. 고양자치연대에서 좋은 후보 추천을 열심히 했는데, 올해부터는 시민의 교양을 높이는 정치아카데미를 시작했습니다.

평화통일 운동은 2012~2013년 초창기에 청소년 평화통일 숲 가꾸기를 진행했습니다. 원래는 북한에 유실수를 심기 위해 묘묙 3만 그루를 준비했는데,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고양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묘목을 다 나눠 주었습니다. 묘목을 나눠 주면서 부탁했죠. 때가 되면 북한으로 갈 묘목들이니까 키워 달라고 말입니다.

그에 앞서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개성으로 가는 길 부근에 상징적으로 통일 숲을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초등학교 학생들, 학부모 등 200여 명과 개성으로 가는 길목인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한반도 지도 모형의 화단을 조성하고 비무장지대 부근 통일촌에도 꽃을 심었습니다. 남북 관계가 열리면 북한에 가서도 유실수와 꽃을 직접 심으려고 합니다. 그때는 남북 청소년들이 함께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남북 교류 협력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통일 담론 형성에 역점을 두었어요. 고양평화누리가 먼저 포럼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고양에 있는 여러 NGO단체가 함께하는 '고양 포럼'으로 발전했습니다. 고양 포럼을 월 1회 진행했는데, 이제 70회를 넘어갔으니 오래됐죠. 평화 담론을 넓히는 데 핵심적인 일이었습니다.

- 왜 교회가 통일과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요.

진보 교회, 보수 교회를 막론하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김세윤 교수님은 사랑의 '이중 계명'이라는 독특한 말을 붙였는데, 여기서 비켜 갈 그리스도인은 누구도 없죠. 그런 의미에서 이웃 사랑은, 시대와 이념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 명제입니다.

한국 같은 분단 체제에서 고통받는 북녘 동포들을 품지 않는 이웃 사랑은, 좋게 말하면 지엽적이고 비판적으로 말하면 허구적 사랑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인간적 본성으로 가족과 친척 등을 사랑할 수 있어요. 교회 입장에서 북녘 동포들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계명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해요.

우리 교회도, 교인들도 다 민족 구성원이잖아요. 일제 때 한민족이라면 조국 광복을 역사의 일차적 과제로 봤던 것처럼, 지금은 분단 시대이기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역사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의식이 없을 수 없죠.

역사의식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분단 극복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역사적 사명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 소명을 선도해 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당연히 평화와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데, 교회 안에 내재된 역사적 아픔 때문에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고양 포럼에 참석한 강경민 목사. 사진 제공 고양평화누리

- 남북 나눔 운동을 통해 25년 넘게 북한을 도와 오셨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북한을 돕는다고 하면,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을 해요. 북한을 돕는 일은 종북 활동이라는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그런 영향을 받았어요. 북한 돕기 운동 일선에 선 사람들은 다 종북 프레임에 걸려들었어요. 심지어 저보다 훨씬 온건하신 홍정길 목사님에게도 종북주의자라는 소문이 들려요.

우리 교회에서도 북한을 돕자는 우리 목사님이 종북주의자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교인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북한 돕기 운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많았죠. 조금 과장하면,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떠난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예요. 교회가 성장하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교인들이 떠난다는 게 목사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이죠.

많은 분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난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 중 신앙생활 오래하다가 우리 교회 와서야 신앙인으로서 북한을 도와야겠다고 각성했다는 분이 많아요. 참 고맙죠. 성도들이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정말 보람이 있죠.

-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과 구체적 실천을 많이 해 오셨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을 하시기도 했고, 페이스북에서 현실 정치에 대한 구체적 발언을 많이 하십니다. 남북나눔 전 이사장 홍정길 목사님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청하는 호소문을 내기도 했죠. 보수 교단 분위기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교회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깊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밤을 새며 흥분하면서 읽었던 책이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한길사)였어요. 원제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였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을 이렇게 하면 그리스도인 말고는 안 읽는다며 제목을 바꾸자고 해서 '뜻으로 본 한국 역사'로 바꿨다고 알고 있어요.

처음에 함석헌 선생이 완강하게 반대했대요. 제가 그 책을 가지고 있는데,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성광문화사) 서문에 그 이야기를 길게 소개했어요. "내가 왜 그걸 반대했냐.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읽는다는 건 참 좋은 것인데, 성서적 입장에서도 역사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적 입장에서라야만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게 주장하신 함석헌 선생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말에 홀딱 반했어요.

그 책을 읽으며 받은 영향이 저의 신학적 사유를 계속해서 지배해 왔어요. 성서적 입장에서도 역사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성서적 입장에서라야만 역사를 쓸 수 있다는 거지요. 당신은 목사인데 왜 이런 사회적 활동을 하느냐는 질문은 그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목사이기 때문에 사회변혁 활동을 해야 한다. 당신은 목사면서 왜 그런 것도 안하느냐." 그렇게 물어야 하는 거죠.

일제시대 한국교회는 3·1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잖아요. 기미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어요. 초기 한국 기독교는 강력한 사회참여 정신, 민족정신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 전체 인구 대비 기독교인 비율은 1.6%였어요. 2%가 안됐어요. 그런데 3·1 운동으로 감옥에 가고, 불나고, 피해를 받은 기독교인 비율은 25%에요. 기독교인 수가 한국 인구 전체 2%도 안 됐는데, 3·1 운동의 후유증으로 피해를 본 기독교인들은 25%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교회가 엄청난 피해를 본 거지요.

강력하게 피해를 보면 순교적 각오와 저항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부정적으로 영향이 나타나요. 일본이 저렇게 기독교가 융성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일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한국의 대원군이 천주교인을 핍박한 수준으로 엄청난 핍박을 받았어요. 예수를 믿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 되어 버렸죠.

기독교가 3·1 운동에 적극 참여한 후유증으로 교회 내에서 종교와 역사, 신앙과 정치를 분리하기 시작했어요. 일본 총독부의 정책이기도 했었고요. 종교와 역사, 신앙과 정치를 분리하는 프레임이 그냥 오랫동안 굳어져 버린 거죠. 당신은 목사이기 때문에 역사 변혁 운동에 앞장서야 하는데, 왜 당신은 목사면서 그런 것도 안 하느냐고 묻는 게 정당한 질문입니다.

2014년 9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조 단식에 참여한 강경민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한국교회 교인들 중 북한 정권이 무너져서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이가 많습니다. 흡수통일은 가능한지, 흡수통일이 된다고 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믿음은 있는데 대책이 없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공부는 안 하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에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북한 정권을 망하게 해서 통일시켜 준다? 좋습니다. 좋은 믿음이기는 한데요. 그럼 흡수통일 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얘기죠.

두 가지 측면에서 흡수통일은 불가능해요. 첫 번째는 북한은 독립국가예요. 북한과 대한민국은 둘 다 UN에 가입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세계가 인정한 독립국가예요. 북한이 무너진다고 남한으로 자연적으로 흡수가 안돼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북한은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면 중국 군대가 들어가서 북한을 인수할 수 없고, 미국이나 대한민국도 북한을 인수할 수가 없어요.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이 있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정권이 무너져도 어느 나라든지 거저 흡수할 수 없다는 겁니다.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뭐예요? 지금은 김정은이 희한하게 중국과 맞서기도 해요.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면, 김정은 정권보다 더 중국에 예속된 세력이 북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의 동북사성 비슷한 위성국가 출현이 제일 예측 가능한 일입니다. 미국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해도 중국과 전쟁을 할 수 없으니, 결국 북한은 지리적 정치적으로 영향이 가장 큰 중국의 위성국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면서 가장 친중국적인 국가가 등장한다면 오히려 통일이 더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흡수통일이라는 것은 국제정치학적 상식으로 가능하지 않아요.

두 번째로, 설령 국제정치 상식을 뛰어넘어 남한이 흡수통일한다고 해 봅시다. 우리가 2000만 명을 어떻게 먹여 살릴 거예요? 지금 남한에 들어와 있는 탈북 주민이 3만인데, 탈북자를 연구하는 학자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현재 남한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탈북 주민은 10만 명이라고 합니다. 지금 3만 명도 정착이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북한 정권이 무너져서 남한이 북한을 통치하게 된다고 하면 북한사람들이 남한에 못 넘어오게 할 수 있어요? 넘어오는 사람들 총으로 쏠 거예요? 우리의 경제 규모로는 현실적으로 흡수통일이 불가능해요. 흡수통일을 말하는 사람은 믿음은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일은 북한의 연착륙입니다. 북한 국민소득이 5000달러만 넘어도 지금처럼 독재하기 어려워요. 노무현 정부 때 합의한 10·4 선언에는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개성공단 같은 곳을 몇 개 더 만들자는 합의가 있어요.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가 5만 명이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계획할 때 20만 명을 고용할 계획이었어요.

그런 공단이 5개가 생기면 북한 노동자 100만 명이 일하는 건데, 100만 노동자의 가족을 포함하면 북한 인구 500만 명이 남북 경제협력 지역에서 일하는 셈이에요. 이렇게 되면 북한 경제도 연착륙할 수 있고, 소득이 늘어나면 정치 구조도 바뀔 수밖에 없어요.

북녁 수해 복구 긴급 지원. 사진 제공 남북나눔

2부 정의

-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토지 공개념'이 들어갔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은 '토지 공개념' 정신이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희년의 토지법과 닿아 있다고 설파하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희년'을 소개해 조금 더 알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희년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목사님께서 이해하고 정리하신 '희년'은 무엇인가요.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된 다음 해가 희년이잖아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각 지파와 가족에게 토지를 주실 때는 소유권을 허락한 게 아니고 경작권을 허락한 거예요. 가난 때문에 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고 해도 소유권을 넘긴 게 아니라 경작권을 넘긴 것입니다.

경작권에 대한 비용 계산도 희년까지 몇 년 남았는지, 몇 년 동안 내가 경작을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내가 경작권을 인수할 때 30년 경작할 수 있으면 경작권 비용이 높아지고, 희년이 5년밖에 남지 않아 5년 경작할 수 있으면 토지 가격은 떨어지는 거고요. 토지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토지 경작권을 임대해 주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했으면 잘살았을 텐데, 이스라엘 백성도 그걸 못 해서 고난을 받은 거 아니에요.

성경에서 '7'은 '완전'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식년이 7번 반복된 다음 해인 희년에는 안식년의 정신이 완성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식년도 기가 막힌 법입니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안식년에 일어납니다.

7년마다 안식년이 되면 종을 해방해야 하고, 부채를 탕감하고, 땅을 쉬게 합니다. 땅을 경작하지 않아도 나온 곡식들을 자연 소출하는데, 그건 땅 주인 것이 아니라 종들, 거류민들, 가축들, 들짐승들 모두가 함께 나눕니다(레위기 25장). 안식년의 세 가지 조치만 해도 부의 불평등이 7년마다 얼마나 고르게 일어나겠어요?

세례요한이 말했던 "주의 길을 평탄하게 하라.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진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7년마다 한 번 실시되는 안식년만 해도 평등 구조가 상당히 회복됩니다. 그렇게 7번을 하다가 희년이 오면 소유권마저도 땅의 원래 주인한테로 돌아가 버리니까 사회적 평등이 완성됩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토지가 갖는 생산 수단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으니까요.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희년이 성취됐다고 하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하고, 하나님나라 안에서 성취된 인간의 회복이라는 완성된 그림을 보여 준 것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지 않고 정신적 영적 해방만을 말하는 것은 관념적이고 허구적이 될 수 있어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자꾸 분리하여 해석하려 하는 경향이 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한 가운데, 영적 자유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한국교회가 재림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재림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워낙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사기꾼도 많다 보니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재림 자체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의미를 유보해 버렸어요.

그리고 믿음 좋은 사람들에게는 죽으면 좋은 곳에 간다는 신앙만 남아 있는데, 사실은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가르친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어떻게 되지? 새 하늘과 새 땅이 성취되지요. 새 하늘과 새 땅은 뭐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완성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가장 가까운 모델이 있다면 희년 사회입니다.

아파트를 구입할 때 지어진 아파트를 보고 사는 게 아니라 모델하우스를 보고 삽니다. 희년 사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 주는 가장 근접한 모델하우스예요. 모델하우스인 희년 사회를 이해하지 않고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상하지 못하죠. 기독교인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신앙을 놓쳐서는 정말 안 되고, 희년 사회를 꿈꾸고 기도하고 실천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성취될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리워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 지난해 일산은혜교회에 희년실천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희년실천위원회 구성의 의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희년실천위원회는 제가 주도해서 한 게 아니에요. 희년운동을 열심히 하는 집사님이 제안한 거예요. 우리 교회 정도 영적 토양이라면 희년위원회가 활성화할 수 있으니 한번 해 보자는 제안을 하셔서 작게 시작했어요. 작게 시작했지만 희년실천위원회가 정착하기에 좋은 토양이기에 힘 있게 잘 성장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23년째인데, 그동안 평균적으로 예산 40%가 교회 밖으로 나갔어요. 최근 들어 교회 밖에 생기는 구제의 수요들은 나라에서 많이 하고 있고, 점점 복지사회가 돼 가니 우리 교회 내로 눈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많이 힘드니 청년부를 깊이 들여다보면 필요가 더 보이겠지요.

문제는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따로 예배하고, 독립된 성처럼 있다 보니 청년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들을 목회적 관점에서 깊이 살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청년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풀어 가는 작은 교회 사례가 있으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침착하면서도 과감하게 한국 사회 주요 개혁 과제를 풀어 가고 있습니다. 토지문제는 기득권층에게 '역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격렬한 반발이 있을 수 있어 개헌과 구체적 입법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 교회가 힘이 되었으면 하는데, 재를 뿌리지 않을까 우려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가 '토지 공개념'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30년 전만해도 한국교회 교인들 의식 수준은, 내가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것은 교회 밖에 없다는 것이었잖아요. 대표적 예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어떻게 살까 고민하면서 교회에 헌신하기 위해 가정도 희생했어요. 가정을 돌보지 않고 교회를 위해 자기 에너지를 다 바쳤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걸 잘못됐다고 한마디로 일축할 수 없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가 신학적인 통찰력이 부족했다는 거죠.

교회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인식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많은 교회가 가정도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이니 가정도 잘 세우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한국교회가 온 거예요. 그런데 아직 보편화하지 않은 게 사회의식입니다.

우리 사회와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라는 하나님나라 신학이 아직 한국교회에 보편화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보면 교회에서 가정으로 왔고, 다음에 필연적으로 가는 곳은 사회가 될 수밖에 없죠.

한국교회 상황은, 교회가 사회와 역사를 놓치면 사회와 역사가 거꾸로 교회를 덮치는 경계선에 와 있는 거 같아요. 교회가 정신 차려서 섬김의 정신으로 다시 사회와 역사를 변혁해 나가는 주체가 될 것인지, 역사에 매몰될 것인지 기로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복음주의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나라 신학이야말로, 가장 균형 잡히고 성서적인 신학 운동, 신앙 운동이라고 봅니다.

하나님나라 신학 운동이 어떻게 한국교회 주류가 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는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역사 속에 함몰될 겁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루터기를 남겨 두시고 새싹을 키우시겠지만요.

사회에 교회의 메시지가 들어갈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이죠. 함께 사는 것. 성서 개념으로 말하면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하수처럼 넘치는 세상'입니다.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이죠. 정의의 핵심은 나눔입니다. 나눔의 삶을 이루기 위한 구약시대 당시의 방편이 희년 제도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정의 실현' 측면에서 토지 공개념을 지지해야 합니다. 토지 공개념이 실현되지 않아서 우리 사회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어요.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고 하지만, 자영업자들이 제일 고통을 받고 있는 부분이 임대료 문제예요. 건물주들이 높은 임대료를 통해 신소작제, 착취적 소작제를 계속해 가고 있어요. 오늘 우리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성을 파괴하는 공적 1호는 상가든 주택이든 턱없이 높은 임대료예요.

이 불의한 사회구조, 이 구조 악의 근본은 어디에서 왔나요. 하나님의 토지 정책을 거역한 인간들, 특별히 기득권 계층의 반역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일하지 않아도 부자가 되고 불의한 방법으로 부가 세습되는 사회제도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점진적으로 변혁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이론을 달 수 없는 하나님의 명백한 뜻이에요.

엊그제 우리 교회 등록한 청년이 그래요. 회사에서 사장이 백번 "나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이야기를 해도 큰 변화가 없다가 법 하나 바뀌니까 회사 복지가 확 바뀌더라고. 회사원을 사랑하는 사장의 자비심에 기대는 것보다 법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먼저 법이 없어도 그런 자비를 실천하며 제도가 바뀌도록 압박해야 하지만요. 더불어 살라는 기독교 정신을 법을 통해 제도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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