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블레이드러너 2049'(201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그건 종말과 같았다. 이제 더 이상 희망할 필요가 없었다. 마침내 10년에 걸친 추격이 끝났다. 그의 주위로 침묵이 찾아왔다. 그곳은 세상의 축소판 같았다. 욕정과 범죄와 불행한 사람들이 꽉 들어차 그 악취가 하늘까지 이르는. 하지만 시간이 짧다는 것을 확신하기만 한다면 거기서도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레이엄 그린, <권력과 영광>, 202쪽)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중략)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중략)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중략)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1-7)."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질문들, 신체와 기억

영화는 상상으로 기록된 과거이지만 그것은 현재에서 미래를 예고(projection)한다. 최근 몇 년 사이 4차 산업 혁명을 둘러싼 AI 논쟁이 뜨거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영화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제기할 여러 문제를 상상하고 예고해 왔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이다. '블레이드러너'는 2019년 LA를 배경으로 미래 세계에 대한 암울한 전망과 독특한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여 'SF 느와르의 걸작'으로 오랫동안 회자되고 인용되어 왔던 영화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러너 2049 Blade Runner 2049'(2017) 또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복제 인간, AI를 가르는 경계에 주목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블레이드 러너'가 보여 주는 인간에 대한 몇 가지 묘사는 신체와 기억, 감정과 감각, 영혼, 출생, 자유의지와 같은 철학적일 뿐 아니라 신학적인 질문마저 내재하고 있다. 먼저 전편과 마찬가지로 영화가 가장 주요하게 보여 주는 인간에 대한 정의는 '기억의 문제'이다. 인간은 각자 고유한 기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전편에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기억의 진위를 구별하는 기계, 보이트 캄프 검사(V-K, Voight-Kampff Test)를 사용해 리플리컨트를 식별한다. 복제 인간 리플리컨트의 기억은 이식된 가짜 기억이기 때문에 인간의 것과는 구분된다. 데커드는 레이첼과 기억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이에 대한 대답과 눈동자 반응을 보고 블레이드러너인지를 식별한다. 그래서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눈은 인간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신체 기관으로 영화가 가장 주목하는 신체 이미지이다.

전편을 계승하듯 '블레이드러너 2049' 역시 거대한 '눈'의 이미지로 시작한다. '눈은 영혼을 비추는 창'처럼 간주되어 인간의 몸과 영혼을 연결하는 통로, 외면과 내면을 연결하는 감각 인지 기관이다. 눈의 반응을 통해 기억의 진위를 구분하여 그가 리플리컨트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영화 마지막에서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를 통해 의문에 붙여진다. 이식된 가짜 기억일지라도 삶의 경험을 통해 기억을 축적하면서 자신만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획득해 가기 때문이다. 그가 고유한 기억을 기억하는 방식은 인간성의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밖에 없게 한다. 즉 리플리컨트의 기억이 과연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결론짓는다.

'블레이드러너'와 '블레이드러너 2049' 포스터.

'블레이드러너 2049'는 2019년에서 한 세대가 지난 2049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는 순종적 신모델 넥서스9 리플리컨트이자, LA 경찰 소속 블레이드러너이다. 영화 첫 시퀀스는 K가 구모델 넥서스8 리플리컨트 사퍼 모튼을 폐기하는 내용이다.

임무를 마친 후 K는 집 앞에 있는 죽은 나무 아래 땅 속 깊은 곳에서 한 군용 보관함을 발견한다. 이 상자는 30년 전 죽은 한 여성의 유골이 담긴 납골함이다. 하지만 곧 유골이 출산 중에 죽은 리플리컨트의 것임을 밝혀진다. 인간과 리플리컨트 사이의 경계가 분명한 사회에서 리플리컨트의 임신 가능성은 사회의 기본 질서을 뒤흔들 전쟁이나 학살을 예고하는 대사건이다. 경찰 국장 조시(로빈 라이트)는 K에게 출생한 아이에 대한 모든 흔적을 지우라는 새로운 임무를 준다. 임무를 맡긴 후 조시 국장과 K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K: 태어난 존재는 영혼이 있지 않을까요?

조시: 넌 영혼 없이도 잘 살아 왔어.

K는 사퍼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린다.

"너희 신모델은 인간들 밑이나 닦아 주지. 기적을 본 일이 없으니까."

K는 자신이 리플리컨트이기 때문에 어릴 적 기억이 이식된 가짜 기억임을 알고 있다. 그가 생생하게 떠올리는 기억은 목각 말 인형을 들고 있는 이미지이다. 그의 기억은 전편 데커드의 유니콘에 대한 기억처럼 영화를 이끌어 가고 이해하는 중요한 이미지로 작동한다.

전편에서 유니콘은 데커드가 인간인가 리플리컨트인가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드는 논쟁적인 것이었다(마지막까지 모호하게 처리된다). 하지만 본편의 목각 말 인형에 대한 K의 기억은 특정한 이유로 자신에게 심어진 실제 기억이라는 점이다. 영화 중반, K는 자신에게 기억을 만들어 준 세계 최고의 메모리 메이커(Memory Maker) 아나 스텔리네 박사(Dr. Ana Stelline)를 찾아간다. 기억의 진위 여부를 테스트 한 후 박사는 그 기억이 실제 기억이라는 말해 준다.

영화의 주요 서사는 K가 이중의 문제에 직면하도록 배치한다. 태어난 아이의 흔적을 찾아 없애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도록 만든다. K를 둘러싼 외부 사건과 내면의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목각 말 인형은 케이가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면서 자기 기억을 찾고 정체성을 회복해 가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사건이 전개되면서 케이는 혼란에 빠지고 무표정하던 얼굴은 인간적인 고뇌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세계를 지각하는 또 다른 감각, 촉각

전편의 보이트 캄프 검사는 눈을 통해 블레이드러너를 판별하는 기계였다. '블레이드러너 2049'에서는 보이트 캄프 기계 외에 기준선 테스트(Baseline Test)를 검사하는 기계가 새롭게 등장한다. 그것은 블레이드러너의 복종성을 검사하는 기계다. 임무를 마치고 본부로 돌아온 K는 매번 이 기준선 테스트를 받는다. 보이트 캄프 검사처럼 이 테스트 역시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고, 질문에 반응하는 눈동자와 목소리로 기준선을 넘는지 여부를 판별한다. 테스트의 몇 가지 질문을 살펴보자

질문: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은 기분은?
손가락이 맞닿는 기분은?
당신 아이를 팔에 안는 기분은?

대답: 연결되다(interlinked).

인간의 감각 중 촉각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묻는 질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두 단어, 셀(cell)과 연결되다(interlinked)라는 단어가 뒤섞인 문장이 수차례 반복된다. 하지만 케이가 대답할 말은 '셀'과 '연결되다'로 제한되어 있다. 셀은 생물학적 의미에서는 세포이며, 또한 방 혹은 감옥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셀 사이에는 벽이 있으며, 이 벽을 넘어설 수 없다. 이는 인간과 리플리컨트 사이의 벽이기도 하다.

그들의 연결은 직접적인 연결이 아닌 오직 벽을 통해서일 뿐이다. 직접적 접촉일지라도 벽을 전제한다. 모든 문장은 어딘가에 갇혀 있음, 혹은 갇힐 수 있음을 의미하는 복종과 노예 상태를 뜻하고 복종하게 만들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감금을 연상하도록 문장을 구성한다. 공포와 불안을 통해 순종을 주입시키려는 테스트이다. 모든 문장은 "Within cells interlinked(자막 해석: 방 안에 연결되다)"로 귀결된다. 즉, "셀(방, 감옥, 세포) 안에 연결되다"라는 문장으로 돌아간다.

또한 이 테스트는 모든 접촉에 대한 인간적인 정서가 포함된 의미 부여를 부정하고 단지 연결이라고 주입한다. 그저 "연결되다"라는 기계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케이는 아이를 안는 감촉을 '연결되다'로 해석해야 한다. 접촉을 의미하는 언어적 다양성을 말살하고, 공포와 복종의 언어로 귀결하게 한다. 모든 감정과 촉각의 다양성, 즉 인간적 감각을 제거하는 훈련인 셈이다. 이렇게 순종적인 리플리컨트를 시험하는 테스트가 완료된다. 테스트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케이는 다시 기계 음성의 경고 메시지를 듣는다. "접근에 주의하십시오." K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인지하며 무감각하게 살도록 훈련받고 있다.

이처럼 촉각에 대한 묘사와 강조는 전작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심정적 변화는 K가 아이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자신의 어릴 적 기억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일어난다. 촉각에 대한 묘사는 K가 처음 스텔리네 박사를 만나고 나온 후부터다. 실제 기억임을 알게 된 K의 무표정한 얼굴은 처음으로 격하게 일그러진다. K는 촉각적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K가 인간적인 감정의 반응을 나타낸 것처럼 케이는 사무실에 나와 하늘에서 내리는 흰 눈의 감촉을 손바닥으로 느낀다. 정체성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 후 접촉에 대해 인간적인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런 반응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음 장면에서 K는 기준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기준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리플리컨트로서의 업무 수행이 금지되어 있다. 그는 접근 금지선을 넘은 것이다. 촉각에 대한 묘사는 홀로그램 AI 연인 조이와의 관계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다소 기계적이던 조이는 에미네이터(Emanator: 홀로그램을 어디서나 호출할 수 있는 휴대용 단말기)로 옮기고 난 후 변한다.

옥상에서 비를 맞을 때 실체가 없는 홀로그램 조이가 인간처럼 비의 감촉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존재처럼 묘사되고 이 둘 간의 관계도 상상적으로는 서로 만질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촉각적 이미지의 연결은 마지막 장면에서 K의 손에서, 딸 스텔리네 박사 손으로, 다시 아버지 데커드 손으로 이어진다. K가 리플리컨트 공동체를 따라 자유의지의 길을 선택한 후 신체의 감각은 은혜를 느끼는 감각, 은총의 터치가 된다.

전작에서 룻거가 죽음의 순간에 내리던 '빗속의 눈물'처럼, 순결한 희생을 상징하는 새하얀 눈을 맞으며 K는 죽음을 맞는다. 여기서 촉각은 자연현상을 하늘의 축복처럼 맞이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각 작용이다.

조이와 K. 영화 '블레이드러너 2049' 스틸컷

디스토피아 느와르

'블레이드러너 2049'에서 묘사되는 미래 세계는 다분히 암울하다. 영화의 중심 배경인 캘리포니아는 인간의 환경 파괴로 대기가 오염되어 낮에도 희뿌연 하늘이 계속되고 이상기후로 인해 6월에도 눈이 내린다. 해수면이 높아져 도심은 해안 라인을 따라 만들어진 거대한 방파제에 둘러싸여 있다. LA 외곽의 풍경 역시 생태계가 파괴되어 숲과 자연은 찾아볼 수 없고 사막처럼 황량하다.

데커드가 사는 과거 라스베이거스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오렌지빛 대기로 덮여 있다. 인간들은 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어 식민지 행성을 개척하고 오프 월드로 이주했다. 도시에는 문화와 인종이 혼재된 퇴락한 문화와 최첨단 기술 문명이 공존한다. 어둠 속 도심은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사람들의 눈을 유혹하는 갖가지 상품 광고들이 즐비하다. 서민들이 사는 건물은 할렘가의 그것처럼 낙후되었고 부랑자들이 건물 안에 함께 거주한다. 진짜 동물이나 자연적 재료는 희귀하고 진귀하게 여겨진다. 거리 여자는 K가 갖고 있는 목각 말 인형을 보고 진짜 나무를 처음 봤다고 말한다.

K는 아이의 흔적을 찾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데, 다양한 모습으로 지구가 황폐해졌음을 보여 준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지역에 있는 고아원은 아이들을 노예처럼 가두고 일을 시킨다. 과거 타이렐사의 유산을 거머쥔 새로운 통치자 월레스(자레드 레토)와 같은 최고 기술 자본가가 핵심 권력을 쥐고 있다. 복제인간 제작을 통해 무한 노동력을 생산하고 제공하여 자신의 영역을 더욱 확장해 나간다.

사회를 규율하고 통제하는 공권력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기존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인물이 경찰 국장 조시이다. 리플리컨트에게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벽 위에 지어졌어. 두 종족(인간과 리플리컨트)을 구분하는 벽. 그 벽이 없다고 했다간 전쟁이 터지거나 학살이 벌어질 거야."

영화의 디스토피아 세계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리플리컨트 사이의 분명한 경계를 전제한다. 리플리컨트는 그 구조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새롭게 개발된 리플리컨트는 군인, 노동자, 접대부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리플리컨트들은 거기서 발생하는 차별과 억압 상태에 놓여 있다.

순종적 리플리컨트 K는 운명처럼 현실에 순응해 살지만 경찰 본부 안에서, 그리고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에게 '껍데기(Skinner/Skinjob)'이라는 경멸과 조롱의 말을 듣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자유를 꿈꾸는 리플리컨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인간의 복제품이 아니라 개별적 인간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 나선 이들이다.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어났어(born, not made)"

'블레이드러너 2049'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중심 사건은 '리플리컨트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기적에서 비롯한다. 영화 초반 K가 발견한 납골함에서 발견된 여성의 유골은 30여 년 전 레이첼의 것이었고, 아이는 전편의 주인공 데커드와 레이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음이 밝혀진다. 출산이 불가능한 리플리컨트의 탄생은 사회의 근본을 흔들 사건으로 경찰은 그 흔적을 지우려하고, 웰레스는 더 큰 야망을 위해 그 기술의 비밀을 훔치기 위해 그들을 찾기 시작한다.

고전과 신화를 비롯해 원형 서사에는 여러 탄생 서사가 있지만, 이 영화는 분명하게 성경의 탄생 서사를 취하고 있다. 영화는 탄생에 대한 성경 말씀 중 주요하게 세 군데에서 인용한다. 먼저, '니케아신조(the Nicene Creed)'에 있는 "출생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으며(begotten, not made)"라는 구절이고, 두 번째는 이사야서에서 인용한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마지막은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니"이다.

첫 번째, "만들어진게 아니라 태어난거야(born, not made)"라는 말은 영화에서 수차례 언급된다. K는 거대한 쓰레기 처리물장 안에 있는 LA 고아원이 자기 어릴 적 기억 속 실제 장소임을 알게 되고, 숨겨 놓은 목각 말 인형을 찾는다. 홀로그램 연인 조이는 K의 기억이 실제였음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너는 특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어난 거야(you are special, born, not made). 진짜가 되었으니 진짜 이름이 필요해. 조(Joe)"라며 K를 인간의 이름으로 새롭게 지어 부른다.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어난 거야(born, not made)"라는 구절은 신앙고백 중 하나인 니케아신조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는 또한 유일하신 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니, 이는 성부에게서, 곧 성부의 본질로부터 태어나신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된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된 하나님이시고, 출생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으며, 성부와 동일 본질이시고 (하략) (I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Begotten Son of God, born of the Father before all ages.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consubstantial with the Father)"

두 번째는, 이사야서에서 인용한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For to us a child is born)"(사 9:1-7)는 웰레스가 "한 아이가 태어났다(A child is born)"는 말로 전해진다. 출산 가능한 리플리컨트를 만들려는 야욕을 가진 웰레스는 태어난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아이라 하지 않고 '한' 아이를 찾을 것을 명령한다. 태어난 아이가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임을 강조한 말이다.

세 번째는, 영화 후반 웰레스가 데커드와 만났을 때 한 말이다. 웰레스는 출산 기술을 빼내기 위해 데커드를 납치한다. 데커드를 유혹하려고 전편의 레이첼과 똑같이 생긴 복제 인간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Then God remembered Rachel; he listened to her and enabled her to conceive)(창 30:22)."

아이의 어머니 레이첼(Rachael)은 '라헬(Rachel)'의 영어식 발음이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두 번째 아내인 라헬은 요셉(Joseph)과 베냐민을 낳았다. K의 새 이름 조(Joe)는 요셉의 영어식 발음 조셉(Joseph)의 애칭이다. 창세기의 라헬이 요셉을 낳은 것처럼 레이첼과 조의 관계에서 둘 간의 유비가 성립한다.

어릴 적 기억이 실제라는 것을 알게 된 K는 자신이 태어난 아이라고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는 근원과 정체성을 뒤흔든 이 발견으로 혼란해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에 희망을 가진다. K는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데커드를 찾아간다. 하지만 짧은 만남에 곧이어 그들은 뒤쫓아 온 두 무리, 즉 데커드는 웰레스에게, K는 리플리컨트들에게 납치된다.

K와 데커드. 영화 '블레이드러너 2049' 스틸컷

갈라디안증후군(Galatians Syndrome)

2022년 지구에는 대정전이 발생했다. 10일 동안 지구가 암흑에 쌓였던 사이 세상에 있던 모든 전자기록은 삭제됐다. 이는 한 아이가 태어난 얼마 후의 일이다. 영화상의 현재 시점인 2049년, K는 아이의 흔적을 찾아 대정전 이전 정보가 있는 DNA 보관소 기록실에 간다. 2021년 6월 10일 출생한 아이를 찾던 중 두 사람에게서 동일한 DNA를 발견한다. DNA가 동일한 사람은 없으므로 남자와 여자, 둘 중 하나는 복제본인 것이다. 두 아이는 고아원에 보내졌고, 이후 여자는 죽고, 남자아이는 사라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여자아이의 사망 증명서에서 특별한 점이 발견된다. 사망 원인이 유전 장애인 '갈라디안증후군'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병명이다. 이 증후군은 이후 더 이상 언급되진 않지만, 무균실에 사는 아나 박사의 존재를 설명해 주고, 영화의 전체 주제를 이해하는 열쇠로 작용한다.

성경 인용으로 보이는 이 증후군과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와의 관련성은 막대하다. 사도 바울의 서신 중 하나인 갈라디아서의 주요 내용은 기독교가 유대인의 종교였는데 이방인에게 전파되면서 율법의 조문, 즉 유대인을 다스리는 율법의 조문을 예수를 믿는 자들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담고 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은 육체의 행위를 정한 율법의 조문을 넘어서 믿음의 법,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에 이르는 성령을 따라야 함을 강조한다. 바울은 이 서신에서 '율법의 법'과 '믿음의 법'의 대조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복음의 원리를 설명한다. 대조를 이루는 법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린 이가 그리스도 예수이다. 영화에서는 이 막힌 담을 헐어 버릴 이가 태어난 아이의 존재이다.

영화에서 유전 장애로 소개되는 이 병명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진짜 인간과 복제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이 있고, 근본적으로 배제적인 이 둘 간의 충돌에서 오는 유전적 징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리플리컨트 간의 회복할 수 없는 거리감을 표현하는 신드롬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이 가짜 사망진단서의 병명은 육체를 따라 만들어진 율법의 조문과 복음의 열매로서 은혜의 원리의 대조와 갈등을 넘지 못해 생긴 신드롬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강조하듯, 케이가 만난 리플리컨트 공동체는 기적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K는 깨어나 자신을 데려온 리플리컨트 공동체와 대면한다. 아이를 안고 있던 사진 속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프리사이며, 레이첼을 대신해 아이를 맡아 숨어서 길렀다. 프레이사와 사퍼는 아이에게 의붓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K는 프리사의 증언을 통해 아이가 여자였고, 그 주인공인 아나 박사가 자기 기억을 그에게 준 것임을 알게 된다. 그는 다시금 혼란을 느낀다. 프리사는 K에게 이렇게 말한다.

"거기서 기적을 보았어… 그 아이로 인해 우리가 노예에 불과한 존재가 아님을 뜻하니까. 우리에게 아이가 태어난다면, 우린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의를 위해 죽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야."

"넌 그게 너라 생각했어? 우리 모두 그 아이처럼 되길 원하지. 그래서 우리가 믿는 거야."

프리사는 '의를 위해 죽는 것'과 '믿음'을 강조한다. 그렇게 결성된 공동체가 태어난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기로 한 리플리컨트들이다. 이는 갈라디아서의 구절들과 흡사하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중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중략)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갈 2:16)."

그들은 비록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들 가운데 태어난 자가 있다는 기적에 대한 믿음으로, 스스로 노예로 살아가기를 멈추고 의의 열매를 얻는 믿음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인간의 노예로 만들어진 리플리컨트에게 아이의 탄생에 대한 믿음은 그들을 자유케 할 믿음이다. 바울은 마찬가지로 "율법에 매어 종노릇하던 초등 학문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언약에 대한 믿음으로 자유인이 되라"고 충고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는 아니지만, 예수가 성령을 보냄으로 부여한 가능성, 예수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성령으로 부여받았음을 믿는 것과 같은 원리다. K 역시 태어난 아이는 아니지만 프레이사의 말처럼 한 아이로 인해 자신 역시 영혼을 가질 가능성의 존재로 인식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블레이드러너 2049'는 인간과 복제 인간, AI를 가르는 경계에 주목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 '블레이드러너 2049' 스틸컷

절망적 세계에서 찾은 희망

'블레이드러너 2049'는 단순히 세상의 종말을 다룬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학적 의미에서 묵시默示(revelation, apocalypse)적인 영화이다.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새로운 생명이 나며,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 것은 성경의 계시적 요소이다. 마찬가지로 기적적인 아이가 레이첼이라는 여자의 척박한 자궁에서 나고, 해방과 구원을 공동체에 가져온다는 서사 역시 성경에서 비롯한다.

'블레이드러너 2049'가 만들어지기 전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세 편의 단편이 소개되었다. 그중 한 편인 '2048: 노웨어 투 런'에는 영화 초반 K가 찾아간 제거한 리플리컨트 도망자 사퍼 모튼의 과거 이야기가 그려진다. 사퍼는 한 소녀에게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소개한다.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의 대표작이자 종교소설인 <권력과 영광 The Power and the Glory>(1940, 1962년에는 영화로 제작)이다. 군사혁명 이후 1920년대 멕시코의 가톨릭교회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던 실제 상황을 배경으로 한 타락한 신부의 필사적인 도주와 고뇌를 그린 소설이다. 멕시코에서 다른 사제들이 강제로 결혼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 홀로 도망자로 사는 한 사제를 통해 정치와 신앙, 권력과 영광의 갈등 안에서 발견하는 신의 가능성과 초월성을 다루고 있다. 사제는 죽음의 상황을 예견하면서도 죽음의 길로 가게 된다.

죄악의 세상에서 예언자는 더욱 가중한 고난을 받는다. 호세아, 예레미아처럼 불구가 된 세상에서 고난은 신의 대리인에게 내리는 가혹한 형벌이자 놀라운 축복이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사일런스')처럼 절망적 상황에서 깨닫게 되는 신의 선함이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어쩌면 고통과 죄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인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다.

영화 후반, 데커드와 웰레스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웰레스는 출생 정보를 얻기 위해 데커드를 설득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고통만 주는 사랑? 당신은 고통을 사랑해. 기쁨을 더해 주니까"라고 말한다. <권력과 영광>에서 타락한 신부가 "고통이 기쁨의 일부이듯 이곳은 천국의 일부입니다"(115쪽)라고 설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데커드는 황폐해진 세상에 쫓겨 도망자로 살아가지만 딸을 그리워하는 사제와 비슷하게 살고 있다. 타락한 사제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처음에는 사퍼와, 나중에는 데커드와 겹쳐진다.

아이가 태어나고 숨기는 것을 도우며 의붓아버지 역할을 했던 사퍼는 경찰에게 쫓기는 도망자로서의 불안하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기적을 기다린다. 현 생애에서 아이를 통해 자유를 얻을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하다. 하지만 타락한 신부와 유사하게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그는 K와의 만남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K에게 '기적의 실제'를 전한다.

그를 통해 기적을 믿게 된 K는 데커드를 딸에게로 인도한다. 소설 속에서 금기된 술을 마시고 사생아를 낳은 타락한 사제는 도주 중 자신의 딸과 짧고 불행한 조우를 한다. 마찬가지로 전편에서 레이첼과의 도주 이후 30년 동안 도망자로 살아온 데커드 역시 마지막에 딸과의 조우가 이루어진다.

마지막 순간, 자유의지와 희생은 그에게 없는 정보이지만, K는 누구의 명령과 무관하게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독자적인 선택을 한다. 데커드를 그의 딸인 아나 스텔리네 박사에게 데려간 후, K는 계단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떨어지는 '흰눈의 은총'을 느낀다. 밖에서 K가 눈을 맞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데커드는 딸을 만난다. 무균실 안에서 아나는 손으로 흰 눈의 감촉을 느끼고 있다.

데커드는 유리벽 너머에 있는 딸에게 손을 내민다. 비록 아나가 가상현실로 흰 눈을 만지고, 데커드가 유리벽을 통해서만 딸의 손을 느낄 수 있을지라도, 어느 순간 기적은 그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만남과 접촉을 만들어 낸다.

임세은 / 현대영화이론으로 영화과 석사를 마치고, 영화 저널에서 잠시 일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영화미학을 공부했다. 사랑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현재 대학 및 아트 네마에서 강의하며, 영화로 말씀을 묵상하는 '시네-레마'라는 코너로 국민일보 영화 칼럼을 쓰고 있다.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 공동대표를 맡아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상문화이론 및 비평적 적용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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