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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의미 있는 자립 경제로 나아가려면

[평화가 살길이다] 평화 체제 위해 공공토지임대제 개혁 확대해야

조성찬   기사승인 2018.05.11  13: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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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대한 개혁이나 사건들은 궁극적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녹아들어 간다. 종전 협정과 평화협정 체결, 핵실험 중단 등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들도 시간이 지나면 평범한 일상의 일부가 된다. 일상은 그만큼 위대하다. 그래서 시인 이성복은 "부모님이 강건하시고 아이들이 내 품에서 잘 자라는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다"라며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평생에 걸쳐 '일상'을 탐구한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는 일상에서 비참함과 위대함이라는 모순된 두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일상의 비참함은 사물·욕구·돈 등 현실의 지배를 받는 분야와의 관계에서 비롯하며, 위대함은 땅에 뿌리박고 영원히 지속되는 속성에 기인한다고 봤다. 그런데 세대를 거듭하면서 영원히 지속되는 우리네 삶터가 사물(토지)·욕구·돈 등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일상의 위대함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단언컨대 일상의 위대함은 지배받는 시간에 비례해 비참함의 정도가 깊어진다. 이런 점에서 동학 농민 전쟁은 권력과 재산의 극단적인 불평등으로 인한 일상의 비참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던 농민들의 마지막 탈출구였다. 이러한 사건들이 모여 우리네 역사가 되었다.

북의 '위대한 일상' 프로젝트

북의 사회주의국가 건설 역시 권력과 재산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위대한 일상'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국가 이름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명명했다. 새로운 국가 건설의 실질이 어땠느냐와 별개로, 형식상으로나마 인민들에게 주권이 부여되고(민주주의), 인민들이 지속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물적 기초를 확보하려는(공화) 방향성을 지향했다. '권력'과 '부'라는 두 개의 역사 변수가 북측 국명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공화'(republic)라는 정치 용어는 흔히 대의제 정치를 말하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는 라틴어 'res publica'에서 나온 것으로, '공공의 것' 또는 '공동의 부'(common wealth)를 의미한다. 이때 공동의 부가 창출되는 근원은 토지다. 헨리 조지의 이론에 따르면, 공동의 부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가치, 즉 지대가 핵심이다. 토지라는 자연 자원이 철학적으로 공동의 것이지만, 이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공동의 부로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상의 위대함이 비참함에 처하지 않고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북이 그동안 추진한 전략들을 살펴보면 과히 성공적이지 않아 보인다. 북은 김윤상(2009)이 분류한 4가지 토지제도 중에서 토지 공유제를 택하면서 계획경제와 강하게 결합되었고 결과적으로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북은 이러한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자립적 민족경제를 핵심 키워드로 하는 경제 발전 전략을 추진했다.

북은 이를 개혁·개방 정책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으나, 외자 유치를 위한 경제특구와 개발구 건설 및 토지제도 개혁 등의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최근에는 남북 간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북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종료하고 경제 발전 집중 전략을 택했다. 북의 '위대한 일상' 프로젝트에 새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북의 자립 경제 전략 추진

북의 자립 경제 전략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 건설의 기본 전략으로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노선'을 제창했다. 그 배경은 당시 사회주의적 국제분업을 강조한 소련과 갈등하면서 개별 사회주의국가 차원의 자립 경제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북이 내세운 자립적 민족경제란 "민족국가 내부에서 생산 소비적 연계가 완결되어 독자적으로 재생산을 실현해 나가는 경제체제"로 정의되며, 이러한 노선에 따라서 북의 경제는 체제 내부의 완결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외부 경제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지나치게 내수 중심 산업 정책을 추구하면서 성장 동력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농업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게다가 1962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5차 전원회의를 통해 '국방·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하면서 군사 분야로 과다한 지출이 이뤄졌고, 그 결과 경제가 함께 발전한다는 전략은 실패했다(이종석, 2014). 이러한 전략의 실패는 향후 북측으로 하여금 자립 경제를 강조하되 부분적인 개혁과 개방을 통해 외부 경제와의 유기적인 결합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들어서 북의 자립 경제 전략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2018년 4월 20일, 북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날은 남과 북의 정상들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열기 불과 1주일 전이었다.

북은 결정서에서 핵실험 및 ICBM 시험 발사 중지를 선포했다. 그리고 핵-경제 병진 노선을 마무리하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당의 새로운 전략 노선으로 공식화했다. 북은 2013년 3월 31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로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했었는데 이번에 그 기조를 바꾼 것이다. 정상회담 개최 1주일 전에 이렇게 중대한 결정을 한 이유에 대해 확실한 시그널을 남측과 미국에게 보내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지배적이지만,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 지점이 바로 북의 '정상 국가'를 향한 분명한 의지라는 점이다.

자립 경제 추진을 위한 북의 토지제도 변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북은 부분적인 개혁과 개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첫 시도는 1984년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합영법'을 제정한 것이다. 그 후 1992년에 '외국인투자법'을 제정·공포하고, 제15조에서 외국의 투자 기업 또는 개인 투자자에게 토지이용권 설정 가능성을 인정했다. 토지 부문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1993년에 '토지임대법'을 제정(1999년 개정)한 것과 이에 근거한 토지이용권의 인정이라 할 수 있다.

토지이용권 제도는 사회주의적 토지 소유제에 의해 이념적으로 토지소유권은 국가 또는 협동단체에 속하지만, 외국 기업이 장기간 토지이용권을 설정받아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임대'라고 부르지만 실제적으로는 '토지이용권'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 투자하는 외국의 기업과 개인 및 합영·합작 기업에 출자하려는 북한의 기관·기업소·단체는 토지이용권을 설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토지임대법' 제2조, 제5조). 그 전제로, '합영법'을 개정해 토지이용권을 합영 기업에 출자할 수 있도록 했다(합영법 제11조). 토지이용권은 토지 관리 기관과의 임대계약에 의해 최장 50년까지 설정할 수 있다.

북은 1992년 헌법 개정 이후, 1998년에 다시 헌법을 개정해 개혁과 개방을 좀 더 넓게 추진할 수 있는 헌법적 기초를 마련했다. 1998년 개정 헌법에서는, 생산수단의 소유 주체를 종래에는 국가와 협동단체로만 인정했던 것을 국가와 사회 협동단체로 확대했으며, 도로, 해상운송 분야의 건설 및 운영 사업에 외국인 또는 외국 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교통 부문에서 국가 소유 대상을 철도, 항공 운수로 제한했고, 중국의 경제특구와 같은 '특수 경제 지대' 창설을 위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북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개방 정책의 핵심은, 중국이 추진했던 큰 틀의 경제체제 개혁보다는, 당면한 경제적 난관을 벗어나기 위해 외자를 유치하려는 대외 개방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토지이용권 유상 사용은 주로 경제특구(개발구 포함)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2002년 7월 1일에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가 발표되고, 같은 해 7월 31일에 '토지 사용료 납부 규정'이 발표된 이후, 농민들이 농업 생산물 중 일부를 지대로 국가에 납부하는 현물지대 납부 방식의 토지 유상 사용이 초보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주택 유지 보수를 위해 낮은 수준의 살림집 사용료를 부과하고, 장마당 자릿세를 부과하기는 하지만 물권에 해당하는 토지이용권 설정에 기초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본격적인 공공토지임대제 개혁 확대로 보기에는 무리다. 자립 경제 전략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공공토지임대제 개혁을 경제특구와 개발구를 넘어 전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특구와 개발구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공공토지임대제 개혁 진행

기본적으로 북쪽 경제특구 토지제도는 토지의 국유를 유지하면서 물권 성격의 토지이용권만 분리해 유상 설정해 주는 방식이다. 북은 아직까지는 '토지이용권의 설정'을 전면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라선경제무역지대·신의주특별행정구·개성공업지구·금강산관광지구 같은 특구와, 최근 설립한 지방급 개발구에서만 허용하고 있으므로,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실험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의 '토지임대법'은 특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토지이용권의 설정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토지이용권을 확대 설정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마련되어 있으나, 실질적인 토지이용권의 설정이 허용되고 있지 아니하며, 구체적인 토지이용권의 설정은 특구 및 개발구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외국 투자 기업 및 외국의 개인 투자자를 주 대상으로 하고, 북쪽 내에서는 합영·합작 기업에 출자하는 북측 기관, 기업소 및 단체로 제한된다.

북측 경제특구의 토지 유상 사용 방식을 핵심적으로 정리하면 50년 단위의 토지이용권을 매각하면서 일시에 임대료를 받고, 매년 토지 사용료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토지이용권 등기 등을 통해 물권적 규정을 두고 있는 점, 토지사용권 기한을 50년으로 비교적 충분한 기간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 토지이용권 계약은 일반적으로 협의 방식을 적용하면서도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구의 경우 입찰·경매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점, 토지 사용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는 점, 저당 대출이 가능한 점 등 토지 유상 사용 제도가 갖추어야 할 체계들을 나름대로 취하고 있다.

또한, 토지이용권의 유상 사용은 주로 외국 기업 및 외국인에게 국한되어 있으며, 용도 변경이 어렵다는 점, '토지법'이나 '토지임대법'에서 아직 토지이용권을 물권의 일종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럼에도 북측 경제특구에서 적용되는 토지이용권 유상 사용 제도는 필자가 정의하는 공공토지임대제에 매우 가까운 형태다.

북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2013년 5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그 해 11월에 13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 이후 평양시를 포함한 전국 각 지역에 20개 이상의 경제개발구를 지정, 추진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설치된 것은 2017년 12월 21일 발표된 것으로, 평양시 강남군 고읍리의 일부 지역에 설치되는 강남 경제개발구이다. 경제개발구의 기본적인 토지 사용 방식은 기본적으로 경제특구와 유사하다.

경제개발구의 기본 전략은 각 도 등 지방정부가 자력갱생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인프라 등 설치에서 북측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라 외국 투자 기업이 책임지는 구조여서 경제개발구 사업 추진에 한계가 크다. 이 지점에서 평화 체제 형성 전후에 남측의 건강한 자본과 지식이 적극적으로 북측 경제개발구에 참여할 필요성이 분명해짐을 알 수 있다.

평화 체제 준비를 위한
공공토지임대제 제도 개선 및 확대 필요

평화 체제 이행 전후에, 북이 의미 있는 자립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체제 내부의 자원에만 의존하는 전략이 아니라 외부 경제와의 유기적인 결합이 중요하다. 즉, 한국 지방정부, 시민사회 및 경제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북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두 나라가 살길이다.

그런데 북이 남의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기 위해서는 공공토지임대제라는 큰 틀에서 안정적이면서도 상호 간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토지 재산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개성공단 사례처럼 50년 토지 사용에 대해 1㎡당 1달러(미국)라는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의 지대는 남측 기업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북측에게는 매우 불합리하다. 물론 토지 사용료 납부를 10년 동안 유예한 후 2015년부터 부과할 예정이었지만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향후 문재인 정부의 신경제 지도 구상이 북의 동의를 얻어 북에서 철도와 도로 등 기간 시설 개발 사업이 본격화하면 과거 나선시의 사례처럼 필연적으로 토지 투기가 따라오게 되는데 이러한 부작용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도 토지 재산권 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경제특구과 개발구를 중심으로 이러한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북의 토지제도를 살펴보아서 알 수 있듯이, 아쉽게도 경제특구와 개발구도 충분히 활성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외부의 일반 도시에까지 확대 적용되지 못하고 있어서 북측 경제의 유기적인 산업 연관 효과가 낮다. 또한 그 제도에 있어서 보완할 지점들이 있다. 따라서 경제특구와 개발구에서 제도 개혁에 대한 실험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었다면, 다음 수순으로 제도 개혁을 완비하여 외부 공간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토지+자유연구소 조성찬 통일북한센터장이 '평화가 살길이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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