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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선택하면 평화는 가능하다

꼼꼼히 따져 읽는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세 변화

구교형   기사승인 2018.05.02  15: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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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북아가 요동치고 있다.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가 놀라고, 기대로 기뻐하고 있다. 기왕이면 지금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990년대 냉전 시대가 끝난 이후 지난 20여 년간 세계는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새판 짜기를 모색해 왔지만, 한반도와 동북아는 잠시 동안을 제외하면 끊임없는 압박과 도발의 악순환이었다. 바로 작년 말까지만 해도 핵과 미사일 실험은 계속됐고, 이를 빌미로 한 북한을 향한 압박과 위협이 도를 넘어갔다.

그런데 2018년에 들어서자마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갑작스레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으로 만드는 승부수를 띄웠다. 미국을 비롯해 주변국 모두가 한반도 평화 체제에 동승하도록 만드는 대반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그 흐름을 알지 못하면 도무지 믿기 힘든 이 놀라운 대반전에는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는 걸까. 지금의 관점에서 그 숨은 사연들을 들여다보자.

1. 모든 것이 새롭다

과거 두 번의 정상회담과 비교해서도 적지 않은 변화와 파격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앞서 두 번 모두 우리 대통령이 방북한 것에 비하면, 비록 판문점이라는 제한된 구역이지만 이번에는 북측 최고 지도자가 월남했다.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처럼 보였지만 문 대통령의 군사분계선 북측 이동도 엄연한 실정법상으로 보면 미리 합의되지 않은 파격이었다.

무엇보다 앞선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항상 베일에 가려져 있던 최고 지도자의 배우자가 함께 찾아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남편'이라 부르고 부부 동반 일정을 진행한 것도 파격 중 파격이다. 북한은 작심하고 정상국가임을 선언한 것이다. 나름 북한을 잘 안다고 자부한 나도 예측을 뛰어넘는 김정은과 최근 북한의 파격적 행보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2.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파격적 연출과는 다르게, 실제 이번 판문점 선언은 앞선 1차 정상회담(2000년) 6·15 선언이나 2차 정상회담(2007년) 10·4 선언과 비교해 보면 새로운 게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고위급 회담 진행,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국제 대회 공동 참가, 이산가족 상봉이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철도와 도로 연결, 상호 비방 중단, 서해 평화 수역 조성,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불가침 합의 준수와 군축 진행, 비핵화와 주변국과의 회담 추진도 멀게는 노태우 정부 때의 남북 합의서(1991년)로부터 6·15선언과 10·4 선언에서 다 다뤘던 문제들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3. 중요한 건 파격성이 아닌 지속성과 실현성

자칫 잘못하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엄청나 보이지만, 사실은 알맹이가 없다고도 말하기 쉽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지난 20여 년간 무슨 사연들이 있었던 걸까.

3-1. 20년의 실패

냉전 시대(1945~1990)가 끝나면서 체제 안전판이 한 번에 사라져 버린 남과 북은 서로 적대적이던 상대방 체제 국가들과 수교하고 공동 번영을 모색하기로 하여 UN에 함께 가입하고, 화해와 불가침 합의서를 발표하였다(1991년: 적대 해소와 정상 국가 선언, 국제적 평화 체제).

그러나 공동 번영의 합의 정신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남한은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한 반면, 북한은 1990년대 북한 최고 지도부의 잇따른 사망(김일성, 오진우, 김일 등)과 자연 재해, 경제난과 그에 따른 대량 기아 사태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더 압박하면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로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계속해서 북한을 외면하고 고립했다.

결국 체제 불안과 생존 위협 앞에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향한 북한의 집착은 커져만 갔다. 북한은 붕괴는커녕 핵과 미사일을 더욱 개량했다. 그러면서 몸값을 불려 놓은 한국, 미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분명한 한계에 다다랐다.

3-2.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

그렇다면 길은 하나뿐이다. 이제라도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수교하여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북한 역시 핵 동결을 시작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 협조하여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6자가 참여하는 평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20년 전에도 이것이 핵심이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이것만이 함께 살길이다.

문재인과 김정은, 그리고 남북 최고 지도부들은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주고받았던 지난 남북 관계 역사가 시간이 흐르며 흐지부지되고 다시 최고의 긴장과 적대 관계로 변해 갔던 역사의 교훈을 철저히 공부한 흔적들이 보인다. 이들은 지금 민족 감정이나 순진한 기대감만 가지고 나선 게 아니라 복잡한 국내 및 국제 역학 관계와 시대 흐름까지 철저한 계산하여 면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철저히 하늘의 도움을 받고 있다.

지금 남북 및 한반도 정세의 핵심 과제는 엄청난 말의 잔치가 아니라, 실천 가능한 항구적 평화 체제 실현에 있다. 지금 우리는 온통 북한이 핵을 다시는 개발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는 완전 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불가역적 북핵 불능'이다.

좋다. 그러나 그러려면 북한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 강국들도 모든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이와 같은 약속이 함께 따라 줘야 비로소 북한도 핵을 포기, 폐기할 수 있는 것이다. '불가역적 한반도 비핵화'(북핵+다른 강국 핵)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공고한 평화 보장 체제가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게 종전 선언이고 평화협정이다. 여기에 남북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3자, 4자, 나아가 러시아, 일본까지 참여하는 동북아 6자 평화 체제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기껏 잘 합의해 놓고,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합의는 실망을 넘어 서로에 대한 더 큰 불신과 증오만 남긴다.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국도, 중국도, 필요하면 일본과 러시아도, 아니 온 세계가 다 참여하여 흔들리지 않는 대못을 쳐 버리자는 게 앞선 북중 정상회담과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넘어 곧 진행할 북미, 그리고 예상되는 북일 정상회담이 가는 방향이다. 그 증거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언제고 하겠다'가 아니라, 올해 안에 하겠다고 못을 박을 것이다. 이게 '불가역적 평화 체제'다. 첫 단추를 아주 잘 끼웠다.

공개 밀담에서 두 사람은 분명히 그런 솔직한 속내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 내용을 처음부터 다 밝히면, 시작도 하기 전에 온갖 반대에 부딪칠 게 뻔하기 때문에, 최고 정상 둘만 만나 '공개적이면서도 몰래' 자신과 자기 체제의 어려움과 기대, 서로를 향한 솔직한 전략과 조언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둘은 그 확신을 얻고 헤어졌다. 이제 그들은 움직일 것이다. 우리도 끝까지 함께 가자.

4. 백성들이 나서야 할 '평화의 선택'

그러나 이 엄청난 역사적 대변혁에 당사자인 우리 백성들이 할 역할이 있어야 한다.

4-1. 통일보다 평화

우리는 지난 70년 분단 시대 내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왔지만, 남북한이 엄연히 별개 나라로 UN에 가입한 현실에서 섣부른 통일 강조는 서로에게 적화통일, 흡수통일의 두려움만 갖게 한다. 뭐든지 의심하고, 툭하면 서로 없애 버리려고만 하면서, 서둘러 한 나라 한 체제로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대화를 위한 대화라도 좋으니 자꾸 만나 보고, 함께 뭔가를 해 보면서 부단히 가까워지고, 제법 믿을 수 있게 되면, 그때서야 한 핏줄, 한 나라의 꿈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통일은 평화의 열매로만 기대할 수 있다. 평화 시대를 살지 못하면, 통일 시대는 불가능하다. 나아가 평화야말로 남북을 넘어 동북아 주변국 모두를 함께 묶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 가치이자 열쇠다.

4-2. 통일 비용보다 분단 비용 생각해야

얼마 전 감동 속에 막을 내린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처음 남북 단일팀 구성이 결정되었을 때 적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반대했다. 4포 세대, 5포 세대라는 말처럼, 지금도 살아가기 힘든 것이 젊은이들의 현실인데, 북한과 교류하고 통일한다는 건 가뜩이나 적은 우리 몫을 더 퍼주는 일 아니냐는 일리 있는 염려다. 소위 '통일 비용론'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리가 부담해야 할 비용보다 지금과 같은 대립과 분단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남과 북이 쏟아붓는 분단과 적대 비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대체 '분단 비용'이 무엇인가.

오직 북한과 맞서 싸우기 위해 무조건 투입해야 하는 막대한 군비를 우리가 그토록 기대하는 출산과 육아, 교육과 사회복지, 환경 개선, 경제와 노동조건 개선 등에 투입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질은 훨씬 향상될 것이다. 서로 빨갱이, 종북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스스로 가진 창의력과 능력을 억지로 숨기는 것으로 사라지는 엄청난 가능성과 기회의 낭비는 또 얼마나 많은가.

대통령감이 아닌 것을 처음부터 알면서도 이명박, 박근혜 같은 위인들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 떠받든 것도 모두 분단 체제가 아니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언제는 신자유주의가 지상 최고의 축복인 것처럼 선전하더니 형편이 어려워지자 다시 국익을 앞세워 말도 안 되는 경제 보복을 자행해도 미국에게 꼼짝없이 당하기만 해야 하고, 아직 성능을 장담하지 못해 실전 배치도 안 되고 가성비도 형편없지만 한미 동맹으로 무조건 미국 무기를 사 줘야 하는 한국의 처지도 분단 때문이지 않은가. 이 모두가 대한민국의 분단 비용이다.

그러나 막대한 분단 비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있다. 3세대로 넘어간 전체주의적 독재 속에 대다수 인민이 헐벗고, 굶주리며 반인권에 시달리는 현실도 분단이 아니었다면 70년 동안이나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 넓게 보면 한반도를 넘어 중국, 러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와 유럽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엄청난 대륙 문화의 가능성을 버리게 된 것도 70년 넘도록 분단이라는 깊은 함정에 빠져 남북 모두가 날려 먹는 막대한 분단 비용으로 봐야 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미국이 북한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우리와 대화해 보면 내가 남쪽이나 태평양상으로 핵을 쏘거나 미국을 겨냥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말했다고 4월 29일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4-3. 일단 만나면 달라진다

그러나 우려를 넘어 일단 남북 젊은이들이 만나기만 하면, 현실은 달라지고 역사는 일어난다. 1991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의 현정화-리분희, 같은 해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단일팀, 이어 올해 평창에서 보여 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공동 응원, 그리고 남북 여자 축구팀이 각종 대회에서 만날 때마다 보여 주는 뜨거운 우정….

김정은, 리설주, 김여정, 현송은(삼지연 관현악단장), 김영남, 김영철(노동당 부위원장), 호위 깍두기들 그리고 평양냉면까지. 이제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지난 70년 냉전 역사의 편견들이 설 자리가 잃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화, 우리의 통일은 오직 정치권과 위정자들에게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우리들이 자꾸 만나고, 방문하고, 교류하여 분단 체제의 장벽을 밑에서부터 허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금강산과 개성, 그리고 백두산과 평양 방문까지도 기대하자. 우리가 평화를 선택하면, 평화는 가능하다.

구교형 / 찾는이광명교회 목사, <뜻으로 본 통일 한국 - 분단 시대 극복을 꿈꾸는 그리스도인의 통일 교양>(IVP)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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