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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리는 키

[판타지는 믿음을 배반하는가] '칠드런 오브 맨'(2006)

강도영   기사승인 2018.04.23  18: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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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칠드런 오브 맨' 포스터.

*이 글에는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2006)의 주인공 테오는 아내 줄리안과 함께 망해 가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운동가였으나 아들 딜런이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독감으로 목숨을 잃자 부인과 이혼한 채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테오는 십수 년 전에 이혼한 부인 줄리안과 그녀가 이끄는 피쉬당에게 납치를 당하고, 흑인 소녀 키(Kee)를 항구까지 안전하게 수송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녀는 불임의 시대에 다시 기적적으로 임신을 하게 된 소녀였다. 피쉬당의 요구는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 중인 '휴먼 프로젝트'로 키를 옮겨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영화는 휴먼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불임으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유토피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20여 년 동안 단 한 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은 세상에서 임신은 그 사실 자체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불임으로 이제는 끝을 달리고 있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정부도, 반정부 단체도 모두 아이를 가진 소녀 키를 원했고 그녀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테오의 아내 줄리안은 키를 인간의 끝없는 탐욕으로부터 보호하면서 그녀가 품은 희망을 지키고 싶었다. 줄리안이 키를 보내고 싶었던 곳 휴먼 프로젝트. 그곳은 아마도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받고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인공 테오는 자신을 납치한 피쉬당에게 흑인 소녀 키를 수송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네티비티 스토리'가 본 영화의 기본 내러티브다. 성경에서 소개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예수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보여 주면서 2018년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구원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오는지를 다시 가늠하게 한다. 영화가 따라가고 있는 예수 탄생 이야기의 절정에서 우리는 이제 아이를 낳는 키를 만난다.

그렇게 귀중한 아이를 낳는 곳이라면 세상 편한 곳이어야 마땅하겠으나 예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역시 그녀가 아이를 낳는 곳도 한참 전쟁이 진행 중인 곳이었다. 전쟁 피해자들이 몸을 피신하고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마저 짓밟힌 난민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 있는 곳이다. 그때 모든 삶의 소망이 끊어진 그곳에서 포화 소리를 뚫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전쟁 통이지만 그 어떤 소리보다 더 강력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우리는 듣는다. 또 총칼이 사람을 찌르고 폭탄이 도시를 초토화하고 있는데 아기의 칭얼거림에 모든 것이 무력화하는 기적을 본다.

그곳에 서 있는 모든 어른은 갓 태어난 아이를 응시한다. 우리에게는 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탄생이 그들에게는 구원의 기적이 되는 역설을 경험한다. 아기가 지나가자 바로 군인은 "Cease Fire"를 외친다. 전쟁의 비이성과 비합리성을 단 하나의 생명이 멈추게 한 것이다. 군인들 사이로 아기가 지나가자 마치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처럼 군인들의 대형이 나눠진다. 아기를 쳐다보는 군인들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이는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고 또 어떤 이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그렇게 아기가 지나가면 다시 전쟁은 시작되지만 일말의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곳에서 우리는 생명을 통한 강한 희망을 맛보게 된다.

서로 죽고 죽이는 추격전을 거쳐 거리에서 폭탄을 터트리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시가전을 뚫고 휴먼 프로젝트로 향하는 항구에 도달하게 되는 두 사람의 여정을 보는 것 자체도 박진감 넘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변하는 두 캐릭터가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테오가 처음 키의 임신한 모습을 본 곳은 마구간이었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질문에 키는 자신이 숫처녀라고 말하지만 사실 많은 남자 사이에서 누가 아이의 아빠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류의 희망을 품은 어머니의 모습을 찾기에 적합한 캐릭터는 전혀 아니다.

흑인 소녀 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

사실 테오도 이 일에 전혀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키와 함께 도망가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키의 보호자로 동행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계속에서 역설적 상황으로 두 사람을 몰아넣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테오(Theo)와 함께 키는 여정을 떠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다. 신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약속은 안전한 착륙이지 평탄한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듯, 매 순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위기 상황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 사람을 돕는 손길들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불평투성이지만 시종일관 키 옆에 붙어서 끝까지 키를 안심하게 해 주는 아주머니 미리암(공교롭게도 모세의 누나와 같은 이름이다), 항구까지의 안전한 수송을 위해 역설적으로 난민 수용소행을 택하는 두 사람을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경찰 시드(불법 대마초 거래를 통해 알게 된 경찰이다), 난민 수용소에서 눈에 띄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최적의 조력자 집시 여인 미렌카까지 어느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밖에 없는 줄 알았던 두 사람의 구원 여정은 이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을 통해 완성된다.

2027년을 배경으로 하는 '칠드런 오브 맨'은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의 종말을 다룬 영화라면 우주 전쟁이나 원인 모를 바이러스 또는 환경 재해 같은 외부적이고 영화적인 이유에 의한 디스토피아 현상을 보여 줬을 테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조금 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원인을 택했다. 바로 '불임'에 의한 종말이다. 더 이상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세상이라니. 2018년인 지금으로부터 9년 후 일이기 때문에 현실감이 더해진다.

불임의 원인 중 하나로 GMO를 상정하고 아주 철저하게 이를 관리하는 유럽의 불안감을 상기하듯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원인 모를 이유로 임신이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은 마지막 세대로서 세상의 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가 슈퍼스타가 되며 혹시 그가 결혼을 하면 아이를 다시 낳고 그로 인해 세상이 끝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이어져 갔던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그의 죽음으로 모든 소망의 끈도 끊어져 버린다.

흔히 하는 말로 세상이 내일 망한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못 다한 꿈을 실현한다거나 평소에 하지 못했던 좋은 뜻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영화가 보여 주는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은 무정부 시대에 돌입했고 종교 간 전쟁, 종족 간 내전, 인종 간 폭력 등이 난무한다. 망해 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국가의 모습을 건사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이며 독재에 가까운 리더십 아래 철저한 통제의 모습을 보여 준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은 약자를 돌보지 않는다. 쉽게 어려움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어린이와 여자, 노약자들은 기를 쓰고 영국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하지만 영국은 난민을 수용하지 않으며 불법 이민자가 발견되면 바로 색출하여 추방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난민들을 벌레 보듯 하며 부르는 '퓨지'라는 이름은 아마도 '도망자'를 뜻하는 퓨지티브(fugitive)와 '난민'을 뜻하는 레퓨지(refugee)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2006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2018년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떠오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모습들이다.

아기를 안은 키와 그를 보호하는 테오. 포화 소리를 뚫고 울려 퍼지는 아기 울음소리에 군인들은 절로 길을 비킨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

철저하게 외국인을 타자로 배제하고 차별하는 나라의 자국민은 더 나은 삶을 보장받고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 역시 마지막 세대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언제 죽든지 곧 개인의 종말을 맞이할 목숨이니 정부는 그들이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살 약을 제공한다. 멸망하는 디스토피아 현실에서 국가가 자국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이 자살용 약을 배포하지만 여전히 대마초를 마약이라며 통제하는 모습에서 영화 속 세상이 처해 있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2006년에 개봉한 영화는 2027년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영화가 그 미래가 얼마나 지금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지 놀라울 정도이다. 지금은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면 이단 종교인 양 쳐다보지만 우리는 영화를 통해 그려진 종말의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특히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한 2016년에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많은 전문가가 브렉시트 원인 중 하나로 난민을 지목하고 있으니 10년 전 영화가 내다본 미래의 모습이 너무도 정확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영화의 감독이 멕시코 사람이었고 할리우드나 미국에서 경험했을 법한 여러 상황들 때문에 또 이런 상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예언자적 상상력은 먼저 우리가 처한 위기의 상황들을 솔직하게 직면하는 데서 시작한다. 환경, 폭력, 인종, 민족, 종교 간 갈등, 차별과 배제와 전쟁까지 그는 디테일하고 광범위하게 문제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무엇으로부터 오는지 통렬하게 외친다. 그것은 생명이다. 가장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낮은 곳으로 임해서 전쟁을 멈추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 그런 아이의 탄생.

그것이 바로 세상을 다시 살리게 하는 열쇠이지 않을까.

강도영 / 20대에 청어람을 통해 영화계 입문하여 어느덧 10여 년이 지났다. 방송국, 영화사에서 영화를 수입·배급하는 일을 하다가 뒤늦게 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어떻게 영화와 신학을 접목해 세상과 교회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주 중에는 빅퍼즐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주말에는 광교산울교회 청년부 전도사로 살고 있다.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가 격주 간격으로 6차례 영화 칼럼을 연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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