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신학계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2년이나 지났지만, 세기의 대결로 명명된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지금도 생생하다. 인간의 패배로 끝난 대결에 세계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한편 AI에 관심을 쏟았다. AI 영역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바둑을 넘어, 기사를 쓰고, 작곡을 하고, 법률 지원을 하고, 심지어 유명 화가의 기술을 모방해 새로운 그림까지 만들어 낸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말 그대로 혁명을 거듭하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술의 발달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법과 윤리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유럽 의회는 올해 2월, AI 로봇이 사람을 해하거나 재산에 손해를 입힐 경우 법적 책임을 묻는 결의안을 통과하기도 했다.

위기감은 신학계에도 존재한다. 올해 3월, MBC 다큐멘터리 '10년 후의 세계: 멋진 신세계와 일자리 도둑' 편에서는 10년 뒤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을 예상했는데, 그중에는 변호사, 의사와 더불어 '성직자'도 있었다.

인공지능 사회에서 '기독교 윤리'는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한국기독교윤리학회(기독교윤리학회·김은혜 회장)는 '포스트휴먼 시대, 기독교 윤리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4월 21일 장로회신학대학교(임성빈 총장)에서 2018년 정기 학술 대회를 개최했다. 기독교윤리학자 70여 명이 모여 새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머리를 맞댔다.

학술 대회에서는 인공지능 시대가 펼쳐짐에 따라 미래 교회가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포스트휴먼과 과학기술: 4차 산업과 기독교윤리학의 과제'란 제목으로 발제한 유경동 교수(감신대)는, 과학기술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지지할 수 있도록 기독교 공동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유 교수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로 '신학의 위기'를 들었다. 과학의 발달로 '창조주 하나님의 실재'와 '인간의 죄', '십자가 대속', '천국' 등과 같은 신학적 개념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유 교수는 "로봇 문화의 사고 안에서는 천국이 부정될 것이다. 기독교윤리학은 이 같은 문제에 응답해야 하며, 하나님의 실재를 변증하는 일에 앞장서고, 십자가의 사랑을 구현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이 발전할수록 기독교의 역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교회 개혁과 영성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미래 사회 초지능의 기계화를 맹신하지 말고 하나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과 인간의 형상대로 조립된 기계의 차이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낙원에서 복낙원으로의 귀환: 인공지능과 노동, 그리고 기본 소득'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곽호철 교수(계명대)는,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하고 대량 실업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가올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노동관을 제시했다.

곽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보편적 복지가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 예로 기본 소득을 제시했다. 기본 소득 이야기만 나오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노동 의욕 상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곽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에는 자동화로 재원 마련이 더 용이할 것"이라며 자율 주행 무인 자동차를 하나의 예로 들었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무인 자동차가 늘어날 경우 전체 차량의 수가 현재의 10%로 줄어들고, 그에 따라 자동차 운용 및 유지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곽 교수는 "무인 자동차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절감되는 비용으로 기본 소득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노동 의욕 상실과 관련해서는 "정작 기본 소득을 실험한 국가들을 보면, 노동 의욕을 상실한 경우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실업이 확대되고 양극화가 심화할 때 모든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기본 소득이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기본소득을 통해 구성원은 사회적 박탈감을 극복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I가 단순노동만 대체하지 않는다. 목회자, 변호사, 의사까지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MBC 갈무리

기조 강연에 나선 임성빈 총장은 '기본'을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신학계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봤다. 이런 상황일수록 신학 교육이 공공성을 담아내고 영성과 인문학적 요소를 함양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임 총장은 "기술 발달이 너무 빠르니까 윤리가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학자들이 과학자들과 더 대화하고, 치열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한국기독교윤리학회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발맞춰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신학 선언문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혜택은 인정하되, 인간성 위기와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포스트휴먼' 시대에 전개될 새로운 인간성을 토론하는 공론장에 기독교윤리학적 전망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아래는 선언문 전문.

'포스트 휴먼' 시대를 바라보는 한국기독교윤리학회 신학 선언문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전 지구적인 논의가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알파고', '무인 자동차', '사물 인터넷' 등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 발전은 인간성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새로운 질문과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오늘의 세계를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다가오는 윤리적 도전에 책임적으로 응답하고자 한국기독교윤리학회는 2018년 정기 학술 대회에서 '포스트휴먼 시대, 기독교 윤리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한 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포스트휴먼' 담론에 있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요한 의제임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발전과 로봇 기술의 확대가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변화가 인간성의 위기와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에 인류의 공존과 공동의 선이 보장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러한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포스트 휴먼'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신학적 사명이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이번 학회에서 다가오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기독교 윤리적 전망과 실천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이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획득하리라는 견해들은 인간성을 개조하거나 증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견해는 창조신학에 근거한 신학적 인간관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며, 또 이성, 자유, 행복, 인권 등 인류의 생존과 공존에 기여해 온 가치들의 윤리적 토대를 의심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과 '포스트 휴먼' 담론이 서구 중심적으로 구축된 근대적 인간상을 극복하고 모든 인류에게 윤리적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제안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과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에 우리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전개될 새로운 인간성을 토론하는 공론장에 기독교윤리학적 전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다짐한다. 특히 우리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형성될 새로운 정치 질서와 노동환경을 주목하며, 기술 발전의 혜택이 모든 인류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모든 이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정의롭고 공평한 '포스트휴먼'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한국교회와 함께 신학 공동체로서 감당해야 할 공적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각 교단과 신학계가 향후 전개될 '포스트휴먼' 시대의 선교적 과제에 대해 우리와 함께 고민해 주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정부는 '4차 산업혁명' 및 '포스트휴먼' 논의를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적 득실의 측면에서만 접근하지 말고, 인간성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며 본 학회는 그러한 공론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임을 밝힌다.

2018년 4월 21일
한국기독교윤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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