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부산창대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부산동노회 정기노회. 상담 전문가 목사에게 성추행당한 피해 당사자들과 지지 그룹이 피켓 시위에 나섰다. 사진 제공 기독교반성폭력센터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회 성폭력 피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해자 목사를 면직하지 않고 '사직' 처리한 데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4월 1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최기학 총회장) 부산동노회(정일세 노회장)가 열린 부산창대교회 앞에 '성폭력에 안전한 교회를 만들라', '부산동노회는 성범죄자 제대로 치리하라', '예장통합 장청 임원 2차 가해 사과하고 사퇴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청년 여섯 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 2월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부산 상담 전문가 이 아무개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당사자와, 이 씨 밑에서 상담 교육을 받으며 교회에 출석했던 청년들이다. 이 목사는 보도 후 부산동노회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노회는 3월 5일 이를 처리했다.

피해자 그룹은 반발했다. 노회가 피해자들 의사를 물은 뒤,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이 씨를 치리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노회에 책임을 묻기 위해 직접 행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노회가 시작하는 오전 9시 이전부터 창대교회 주차장 곳곳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처음에는 노회를 준비하던 교인, 노회에 참석하던 노회원들과 실랑이가 있었다. 한 여성 교인은 피켓 시위에 동참한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간사의 사진을 찍고 들고 있던 피켓도 빼앗았다. 몇몇 노회원은 "뭘 이야기하려는 건지 자세하게 피켓에 적으라"고 지적하고 "주차장에 모여 있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해자 그룹이 피켓 시위까지 계획한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이들은 노회가 피해자들 입장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 씨를 사직 처리한 것에 공개 사과하길 바랐다. 부산동노회 소속 대한예수교장로회 전국청년연합회(장청) 임원들이 피해자들을 2차 가해를 저지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임원직을 사퇴하라고도 요구했다.

이들은 부산동노회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 주길 기대했다. 이 씨의 경우 이미 사직 처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피해자 그룹은 부산동노회가 나서서 다음 총회에 이를 헌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피켓을 든 청년들을 격려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 제공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정일세 노회장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청년들을 찾아와 피해자들을 따로 만나겠다고 밝혔다. 정 노회장은 "3월 12일 열린 임원회에서 피해자들을 만나자고 결의했다. 곧 날짜를 잡겠다. 피해자들 마음이 상당히 힘들고 아플 텐데… 만나서 사직 처리 문제에 대해 얘기해도 된다. 이 목사의 경우 이미 우리 노회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부를 수도 없지만, 피해를 입은 청년들은 만나서 상황이 어떤지, 우리가 뭘 도울 수 있는지 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밤늦게까지 꿋꿋하게 시위를 이어 갔다. 이들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중간에 오셔서 물 주시고 가는 분도 계셨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신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렇게까지 했으니 된 거 아니냐. 이제 그만 가 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청년은 "노회에서 자꾸 사직과 면직은 다를 게 없다고 하는데, 그건 결과론적 시각이다. 사직에는 '일신상의 이유'라고만 남지만, 제대로 된 치리 과정을 거쳐 노회에서 면직이 되면 사유가 달라진다. 우리가 그곳에 간 이유는 권한을 가진 노회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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